한국임상심리학회 운영세칙에는 전문회원 연수평점제(2조 2항)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 전문회원으로서 당해 1~12월까지 1년간 연수평점을 5점(10시간) 이상 취득하지 못한 자에게는 다음 해 1~2월 이사회 심사를 거쳐 주의경고를 한다. 주의경고는 해당 회원에 대한 개별 연락 및 학회 홈페이지를 통한 공지가 포함된다. * 3년 연속으로 주의경고를 받은 자는 이사회 심사를 통해 전문회원으로서의 자격정지 처분을 1년간 내린다. 이 기간 동안은 임상심리전문가로서의 활동(예: 전문가 수련과정에 대한 슈퍼비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간단히 요약하면 1년에 10시간 이상 학회 행사에 참석해서 돈(등록비)을 내라는 말입니다. 안 그러면 경고를 할 터이고 이걸 3회 이상 무시하면 밥줄을 정지시키겠다는거죠.
사실 이 모든 것은 임상심리학회가 가난해서 생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임상심리학회가 돈많고 부유한 학회였다면 이런 구질구질한 내규 따위가 필요하지도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상심리학회가 동네 조기 축구회가 아닌 이상 운영하는데 있어 여기저기 돈이 많이 필요하고 무보수로 일하는 회장과 이사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회비를 내라고 해야 할 정도의 열악한 재정 상태라는 점, 연회비로는 이 정도 큰 규모의 학회를 유지하기에 턱없기 부족하기 때문에 일년에 몇 차례 있는 학술대회의 등록비를 통해 어느 정도 보전해야 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연수평점제의 엄격한 적용에 반대하지는 않으며 저부터도 가능하면 연수평점을 채우기위해서 열심히 학회 행사에 참석할 겁니다.
그런데 최소한 연수평점제를 엄격하게 적용하기에 앞서 두 가지 정도는 학회 운영진이 고민을 해 보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두 가지 사안은 모두 왜 학술대회 참석이 저조한가와 관련 있습니다.
첫째. 학술대회 일정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모르겠으나 저처럼 직장에 매인 사람들은 학교에 계신 분들과 달리 내 마음대로 시간을 뺄 수 없어서 윗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그게 싫으면 천금같은 개인 휴가를 써야 하는데 참 야속하게도 학술대회는 왜 항상 평일에 걸쳐서 하느냐 말이죠. 주말에 하면 누가 잡으러 온답니까? 게다가 누구 편하자고 꼭 대학 방학 때 하는건지. 휴가 기간에 쉬지 말고 학회에나 참석하라는 건가요?
둘째. 수련 레지던트와 junior 전문가들이 커리큘럼의 질적 저하에 대해 그렇게 불평들을 하면 한번쯤은 대대적으로 의견 수렴을 하든지 해서 뭔가 참석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올라오도록 노력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체 언제까지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실시하지도 않는 supervisor의 심리평가 워크샵, 내담자를 만나지도 않는 교수의 심리치료 강의를 들어야 합니까? 책에 다 나와있는 뻔한 내용 들으러 시간 들여 돈 들여 지방까지 내려가게 만들어야 합니까? 대체 언제까지 제대로 된 심리치료 supervision도 받지 못하는 수련 레지던트들만의 사례회의를 열 겁니까? 현장 전문가의 치료 사례회의는 끝까지 안 할겁니까?
전문회원들의 느슨함을 질타하는 것은 좋은데 손쉬운 단매만 치실 생각하지 말고 당근도 좀 고민하셨으면 좋겠네요. 좀 심하게 말하면 현장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강사들의 엉성한 강의들으러 가는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복장이 터질 지경입니다.
제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되면 최근 5년 동안의 학술대회 커리큘럼을 꺼내서 늘어놓고 비교해보세요. 새로운게 얼마나 추가되었고 그 중 정말로 영양가 있는 강의 꼭지가 얼마나 되는지도요.
학술대회에 등록만 하고 확인증 받아서 곧바로 돌아나오는 전문회원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것만 아세요. 아, 이렇게 말씀드리면 강의 끝나고 확인증을 받아가는 방식으로 다시 바꾸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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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이메일 한통을 받았습니다.
46대 임상심리학회 총무이사가 되신 박지선 선생님 명의로 발송된 이메일의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동계학술대회가 지금까지 관례 상 전문가 자격 시험을 앞둔 수련 레지던트들의 포스터 및 사례 발표의 장으로 활용되온 것이 적절하지 않으므로 향후 동계학술대회는 본연의 취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것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학술대회는 학술대회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학회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2년 간의 유예 기간을 설정한 학회의 사려깊은 조치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제 생각에 이제 학회가 고려해야 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련 레지던트들의 포스터 및 사례발표를 통해 어찌 보면 손쉽게 채울 수 있었던 동계학술대회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점점 들을 것이 없어서 학회에 참석하기 싫고 연수 평점을 채우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억지로 간다는 회원들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 내실있는 내용으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할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문회원들의 사례 발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이흥표 선생님이 교육 이사로 일하실 때 총대를 메고 추진하셔서 그 해에는 현장에서 치료와 상담을 실시하는 선생님들의 생생한 발표를 들을 기회가 그래도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없어져서 이제는 예전과 다름없이 심리평가든 심리치료든 전문가의 사례 발표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지회나 연구회도 그다지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만 되면 심리평가, 심리치료 사례 발표를 하지 않는데 이래서는 학회의 발전이 없습니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그저 지회나 연구회에서 사례 발표를 완료하라고만 요구하지 말고 학회 차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수효와 사례 발표 완료 건수 등을 조사하여 필요하다면 임시 사례 회의라도 열어서 어떤 레지던트 선생님도 수련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지회와 연구회에서 사례 발표 기회를 잡느라고 애를 먹는 수련 레지던트들이 많은데 동계학술대회에서마저 포스터 및 사례발표를 할 수 없게 된다면 병목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 자명하니까요.
사전 경고도 좋지만 수련 레지던트의 입장에서 대안 마련까지 고민하는 학회가 되었으면 더 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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