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저는 원래 유럽의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쓴 글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습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속된 말로 재미를 거의 못 봤거든요. 틀린 말도 아니지만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 굳이 에둘러서 말하면서 핵심을 피해가는 것 같은 그 애매모호함이 싫었고, 무엇보다 유머 코드가 맞지 않아서 요절복통이라는 선전 문구들과는 달리 쓴웃음만 나오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유럽 출신의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은 피해왔는데요.
그런데 이 책은 다릅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빌고 있는데 꼭 저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먹고 잘 살던 성공한 꾸뻬라는 정신과 의사가 등장합니다. 어느 날 꾸뻬씨는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친데다, 무엇보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는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전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여행 중에 깨달은 행복의 조건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나갑니다.
꾸뻬씨가 어디를 여행하는지 구체적인 지명은 소설 속에 제시되지 않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대번에 짐작할 수 있도록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요. 대표적인 곳이 홍콩입니다. 주말이 되면 필리핀 가정부들이 노숙을 하는 장면까지 세밀하게 등장합니다.
소설 본연의 목적에도 충실해서 줄거리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며 쉽게 몰입되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입니다.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잡는 책은 그리 많지 않지요.
이 책의 후반부에 꾸뻬씨가 행복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를 만나 자신이 행복한 지 알아볼 수 있는 비교 기준을 몇 가지 듣는데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더군요.
1. 현재 당신의 삶과 당신이 원하는 삶에 차이가 있는가 :
없음
2. 현재 당신의 삶과 과거에 최고로 좋았던 삶에 차이가 있는가 :
지금의 삶이 더 나음
3. 현재 당신이 갖고 있는 것들과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상관 없음
이 기준에 따르면 저는 참으로 행복하네요~
소설 자체도 흥미롭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유익하고 좋지만 발레리 해밀이 그린 삽화마저도 정말 마음에 쏙 듭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꾸뻬 씨의 인생 여행', '꾸뻬 씨의 우정 여행' 등의 속편이 계속 번역되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던데 찾아서 마저 읽어보고 싶습니다.
행복에 관심있는(관심없는 분들이 과연 계실까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닫기
* 배움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배움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 배움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 배움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 배움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 배움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배움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 배움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 배움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 배움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배움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 배움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 배움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 배움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 배움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 배움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 배움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 배움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 배움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배움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 배움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 배움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 배움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덧. 이 책은 직장 자료실에서 빌려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931
이번 세월호 참사로 안산 단원고에 자원봉사를 나간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 기록을 학교에 남겨두는 것에 불응하고 일제히 외부로 갖고 나간 문제로 갑론을박 말이 많습니다.
한국 심리학회 산하 재난심리 위원회를 통해 파견 나간 심리요원들은 처음부터 어떠한 자료일지라도 일체 파견된 학교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라는 교육을 받고 나갔기 때문에 다행히 염려할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신과 선생님들은 지원 체계가 갖춰지기 전에 단원고로 들어간데다 개업의이거나 개인 자격으로 봉사하신 분도 많아서 일이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원칙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는 상담, 진료 기록, 심리검사 자료를 단원고에 보관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단원고 내에 이 모든 자료를 보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나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단원고의 경우 이 자료를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연결해서 담당할 상시 전문가를 채용했습니다. 그러니 자원봉사를 나간 임상가들은 이들과 협력하여 단원고의 생존자와 유가족 및 관련자에 대한 치유와 회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이 논쟁에서는 내담자가 아예 배제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떤 기관이든 상담, 심리검사, 진료 기록 등은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의무기록이고 반드시 내담자의 동의 하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도 단원고의 내담자 중에는 자신을 상담하던 정신과 선생님을 따라 외부에서 진료를 계속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처음부터 고려되었다면 학교 내에 설립될 치유 센터로 연계될 내담자와 자원봉사를 나온 임상가를 따라 외부로 연계될 내담자를 구분해서 다르게 접근하는 방안이 마련되었겠죠.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고 그 결과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할 내담자의 의무기록이 외부로 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학교가 미덥지 못하고 관리 체계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해도 외부로 유출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입니다. 자원봉사자는 그게 언제가 되었든 결국은 떠나야 하고 그 때 남게 될 내담자와 환자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합니다. 이번에 자원봉사를 나간 정신과 선생님들은 치료의 중추를 자신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치료의 중추는 어디까지나 내담자/환자입니다. 끝까지 내담자/환자를 책임지려는 자세는 존중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핵심만 짧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불필요하게 말이 길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상담 기록 뿐 아니라 심리평가와 관련된 자료 등 모든 의무기록은 원칙 상 내담자/환자가 있는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내가 개업한 센터나 클리닉에 찾아온 내담자/환자의 기록이라면 그곳에, 이번 세월호 참사 지원처럼 자원봉사를 나간거라면 해당 학교에 보관하는게 원칙입니다. 내담자/환자의 기록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을 것 같으면 대책을 마련해야지 보관 장소를 옮겨서 외부로 유출될 위험을 감수하면 안 됩니다.
덧. 국회의원 등 비관련자가 열람을 요청하면 내담자/환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당연히 거부해야 마땅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거부 주체가 학교이지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태그 -
내담자,
단원고,
상담 기록,
세월호,
소아/청소년 정신과,
심리검사,
심리요원,
심리평가,
안산,
임상가,
자원봉사,
자원봉사자,
재난심리 위원회,
정신과 의사,
진료 기록,
치료,
한국 심리학회,
환자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637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임상가가 모두 해당 기관에 고용된 경우라면 고민할 일 자체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기관이 임상심리학자와 심리평가 건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심리평가를 의뢰한 의뢰인(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전문가 등)이 생각한 client의 문제와 심리평가 결과가 다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진단을 내려야 하는 정신과 의사의 경우 자신의 임상적 판단과 심리평가 결과가 많이 다른 경우에는 심리평가 결과에 따라 자신의 임상적 판단을 부정하거나 심리평가 결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생각을 고수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 때 심리평가의 의뢰 사유가 군 면제, 법정 소송의 증거, 보험금 수령을 위한 근거 제출 등 client의 현실적인 이득과 관련이 있는 경우 실질적인 책임자인 의뢰인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클 수 있죠.
그래서
꽤 많은 의뢰인이 심리평가를 실시한 심리학자에게 심리평가보고서의 수정을 요구하는데 경미하게는 보고서에 포함된 문구를 순화된 표현으로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심하게는 지능 지수의 조작까지 그 범위가 다양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의 수정은 심리학자의 양심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전문가 윤리 규정 위반이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심리평가보고서는 평가자의 이름과 자격 이름, 자격 번호, 직인이나 사인이 들어간 문서 원본으로 의뢰인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심리평가를 받은 분들도 이 점을 꼭 확인해 주세요. 심리평가자의 이름과 자격 이름과 자격 번호, 직인이나 사인이 들어가지 않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비용을 지불하고 심리평가를 받은 client에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사실 더 큰 문제입니다만;;;).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심리학자 중 많은 수가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계약직이거나 건별로 보수를 지급받는 알바이기 때문에 매일 기관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그냥 문서 파일로 원거리에서 전송하는 일이 많고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임상가와 상의하지 않고 문서 파일을 임의로 수정하는 일이 발생합니다(결코 적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따라서 심리평가보고서를 문서 파일의 형태로 이메일에 첨부해 전송하는 심리학자들께서는 다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1. 원칙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자격 이름, 자격 번호, 직인이나 사인이 들어간 문서본으로 줄 것
2. 부득이하게 문서 파일의 형태로 전송할 경우 수정, 편집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달할 것
2-1. PDF파일로 변환해서 전달(아래아한글(2002버젼 이상)의 경우 PDF로 변환하는 방법은
'이 글' 참조)
2-2. PDF파일도 수정 가능하니 인쇄만 가능하도록 보안 설정할 것(보안 설정 방법은
'이 글' 참조)
태그 -
client,
PDF,
사회복지전문가,
심리검사,
심리평가,
심리평가보고서,
심리학자,
아래아한글,
의뢰인,
임상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지능 지수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748
지금까지 제가 이 카테고리에 올린 글은 상담과 심리치료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카테고리 이름조차 '상담/심리치료'이죠. 제가 상담과 심리치료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는 이유는 현장에서는 굳이 그런 구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어 이 참에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법 상 의사에게만 치료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의사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치료', '요법'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불법이죠. 그래서 한 때 놀이치료라는 명칭을 쓰려던 학회가 치료놀이학회로 개명을 하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었죠. 어쨌거나 심리치료라는 말을 사용하는 분들은 정신과 의사가 묵인하고 있어서이지 마음놓고 써도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임상가들은 정신과 의사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 상담이라는 말을 일부러 선호하기도 합니다. 저도 좀 그런 편인데 굳이 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정신과 의사를 자극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상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더 큽니다만.
제가 상담이라는 용어를 심리치료보다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의 특성 때문입니다. 정신병, 병원, 환자, 치료라는 말을 끔찍히 싫어하는 도박자의 특성 상 굳이 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조기 탈락율을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제 경험 상 도박자는 상담, 상담자와 같은 용어를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더군요.
또한 심리치료라는 말은 듣는 사람이 시작 전부터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고 고쳐야 할 병에 걸려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와 달리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인식론적으로 좀 더 권력 위계를 높이 세우는)를 통해 치료자가 권위의 도구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굳이 하얀 가운을 입는 것, 큰 책상을 사이에 두고 명패 앞에 앉히는 것, 어려운 전문 용어를 남발하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치료에 비해 상담이 더 내담자의 치유와 행복에 도움이 되는 전인적인 용어에 가깝다고 보는데 심리치료적 기법은 상담 중에 상담자가 적절한 타이밍만 잡으면 언제든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례 발표를 들어보면 사례 개념화 후 특정 심리치료적 접근법에 따라 상담(?)을 진행하는 걸 자주 보는데 제 경험 상 특정 심리치료적 접근법을 그대로 고수해서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상담자가 그런 경직된 사고틀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내담자의 치유력을 약화시키거나 심하게는 중도 탈락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부터 상담이라는 용어가 심리치료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폄하하는 스스로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상담이 전쟁이라면 심리치료는 전투입니다. 전투의 승리는 분명히 중요하지만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죠.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겁니다.
태그 -
도박 중독,
사례 개념화,
상담,
상담자,
심리치료,
심리학자,
의사,
임상가,
정신과 의사,
정신병,
환자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609
★★★★☆
이미지 출처 :
YES24
저는 폐쇄병동보다 보호병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좀 더 안온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도 잔인한 세상의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마음의 힘이 약해진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칭의 유래가 마음에 들거든요.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정신병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병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줄 알지만 정반대의 의미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폐쇄병동이라는 제목이 좀 불만스럽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병동은 폐쇄병동도 아닙니다. 반 개방병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출입이 자유로운 병동입니다. 게다가 제목만 보면 무슨 스릴러나 공포 소설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제목을 잘못 붙인 댓가로 이런 좋은 소설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죠.
읽으면서 예전에 임상심리전문가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 생각이 많이 났던 소설입니다. 보호병동은 아니고 낮병원 생각이 많이 났어요. 거기에도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처럼 만성 정신분열병 환자분들이 많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몰입도 잘 되고 환자의 면면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분위기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피부처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실제 정신과 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놀라운 개인력을 가진 환자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작위적이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신과 환자라고 하면 무슨 외계인 보듯이 생각하는데 진단명에 의한 구분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지, 그럼에도 그런 웃긴 구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향방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방향을 바꿀 충분한 마음의 힘이 정신과의 만성 환자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담담하면서도 힘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굳이 휴머니즘 소설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작품 해설에서도 소설가인 오사카 고가 말했듯이 이 작품은 성장 소설입니다. 왜 폐쇄병동이라는 무거운 제목이 달린 이 소설이 성장 소설인지는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가 하하키기 호세이라는 필명을 쓰는 정신과 의사인데 그래서 그런지 환자라든가 병원에 대한 묘사가 탁월합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을 매우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1979년에 등단한 이후로 꽤 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소설가로 이 소설로는 제 8회 야먀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지요.
보호병동 수련을 받을 예정이거나 받고 있거나 받았던 모든 임상가들에게 추천합니다. 이미 전문가가 되신 선생님들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과 함께 마음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가를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수련을 앞두거나 이미 받고 있는 선생님들에게는 한번쯤 임상가로서의 자세를 돌아보고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469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을 쓴 미리암 그린스팬(Miriam Greenspan)은 여성심리학의 태두라고도 할 수 있는 상담자입니다. 국내에는 늦게 소개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이미 출판된 지 30년 가까이 되는 고전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조금은 구닥다리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자 스스로 상담자임에도 정신과 의사의 지도 하에 수련을 받은 점이라든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심리검사의 특정 검사 sign을 하나의 문제에 연결하는 식으로 배워 결국은 심리검사를 불신하게 된 계기가 된 것 등 현재의 상황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이 책에서 가부장적인 치료 틀의 예로 들고 있는 Freudian의 정신 역동적 접근과 Rogerian의 인본주의적 접근만 하더라도 이 책이 씌여지던 당시에나 주류에 해당했지 요새는 흐름이 많이 바뀌었지요. 요새 어떤 정신과 의사가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toxic하게 정신 역동적 접근과 진단 체계만을 고집하나요. 오히려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게 된 것이 더 문제이죠.
저자는 자신이 받았던 상담 경험에서 그 당시 상담 접근이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틀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으로써 여성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여성주의 심리상담의 틀을 마련합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저자의 임상 경험이 녹아있는데 기존의 상담 내지는 심리치료적 접근이 가부장적인 시스템에 의거하여 세 가지 신화(1.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2. 모든 심리적 문제는 곧 의학적 문제이다, 3. 진단과 치료의 전문가만이 이를 치유할 수 있다는)에 의해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제대로 치유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 환경까지 포함된 삶의 맥락에서 내재된 분노를 이끌어내어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간략히 말하자면 정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성주의 심리 상담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권력이 전체 여성의 총체적인 권력과 어떻게 뒤얽혀 있을 수 밖에 없는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성주의 심리상담이 여성의 억압을 종식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억압을 인식하게끔 하여 스스로 억압을 내면화하고 좇는 것을 최소로 줄이도록 도울 수는 있다는 것이죠.
여성들의 분노를 표면에 끌어내어 적절히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점과 , 사회적/제도적 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를 내면화시켜 다뤄줘야 한다는 것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는 아내를 상담하면서 불면과 우울한 기분 증상만 다루고 다시 지옥같은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건 치료가 아니니까요.
현재도 대부분의 심리상담이 온통 개인의 내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사회 구조적인 영향, 특히 착취와 이로 인한 소외의 문제로 직접 타격을 받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소중한 틀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을 상담하는 상담자라면 한번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번역자가 공을 많이 들였는지 내용이 쉽지 않은 책인데도 잘 읽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그것도 저자가 이 책을 쓰던 당시의 미국 문화에 치중된 내용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심리학자가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반대입니다. 임상심리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거든요. 또한 빈곤층이 경계선 성격 장애로 주로 진단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 경험 상 이것도 한국에서는 반대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지엽적인 세부 내용에 집중하지 마시고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여성주의 상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덧. 저자가 상담 훈련만 받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정신 병리적 문제까지 상담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역시나 정진경 선생님이 추천사에서 지적을 하셨더군요. 의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환자'까지 상담으로만 접근하는 건 굳이 약물 치료가 필요없는 '내담자'에게 약을 먹이는 것 만큼이나 위험천만하고 client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읽는 분들의 주의가 요망됩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태그 -
Freudian,
Rogerian,
내담자,
미리암 그린스팬,
상담,
상담자,
심리상담,
여성심리학,
여성주의 심리상담,
인본주의적 접근,
임상심리학자,
정신 역동적 접근,
정신과 의사,
정신병리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353
저는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이후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능한 한 진단을 내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진단을 내리곤 했습니다. 종합병원에서는 진단을 내리지 않기가 더 힘이 듭니다.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일종의 집단압력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심리평가보다는 심리치료와 상담이 중시되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또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어 진단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내리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진단을 내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학자가 진단을 내리는데 주로 활용하는 DSM 체계의 문제 때문입니다. DSM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부정확한 소수의 정보에 의해서도 과잉 진단(false positive)이 내려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병원 장면에서는 효율적인 도구일 수 있지만 심리치료를 주로 하는 제가 보기에 DSM-IV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고 DSM-V도 그다지 개선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둘째, 임상심리학자가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심리평가를 실시하게 되면 진단보다 더 중요한 심리적 문제를 놓치거나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특히 의사가 특정 진단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진단과 일치하지 않는 검사 sign을 의사가 원하는 진단에 맞추어 누락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물론 의사의 잠정 진단을 완전히 무시하고 백지 상태에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저는 아예 처음부터 의뢰 사유에 집중해서 진단을 요구하는 상황(정신장애 진단, 병사용 진단서 발급, 법정에서 사용할 참고 자료 등)이 아니라면 진단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심리평가를 실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현실적인 문제인데 의료법 상 치료 권한을 의사가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진단을 내리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우울한 기분이 들어 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초등학생이 있을 때 진단 상 depressive disorder라고 진단을 내리게 되면 그게 반응성 우울인지 따질 필요도 없이 정신과 의사는 쉽게 항우울제를 처방할 겁니다. 실제로 이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상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래서 차라리 심리적 고통감과 문제를 명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의사가 보고서의 내용과 달리 약물을 처방하려고 해도 아무래도 부담을 느낄테니까요.
그래서 진단을 내리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심리평가보고서에 진단명을 쓰지 않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태그 -
DSM-IV,
DSM-V,
false positive,
supervision,
상담,
심리검사,
심리평가,
심리평가보고서,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진단,
치료자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242
★★★☆☆
이미지 출처 :
YES24
제 생각에 앞으로 우리나라 임상심리학이 당면할 가장 큰 어려움은 심리치료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임상심리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사회의 요구 수요를 충족하지 못함으로써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치료자의 역할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리치료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 자체가 없으며 앞으로도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서는 현장에서 거의 쓸 수 없는 치료 이론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우는데 그치고 임상심리 레지던트 수련 과정에서는 형식적인 사례 발표 requirement만 있을 뿐 실질적인 수련이 없습니다. Big 3 병원에서도 수련 레지던트가 제대로 된 치료를 담당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supervision을 받지 못합니다. supervisor조차도 치료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제 생각에 현재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임상심리학자 중 심리치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모두 포함해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도 안 될 겁니다. 치료 supervision을 할 수 있는 치료자는 거기에서 다시 10% 미만이라고 봅니다.
이미 상담심리학자들이 그동안 약세였던 심리평가 훈련을 많이 보강한데다 정신보건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이미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평가에만 의존해서는 임상심리학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반가우면서도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임상심리학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합니다.
심리학 전공이지만 track을 바꿔 정신과 의사가 된 저자가 자신의 치료 supervisor와 함께 쓴 이 책은 심리치료의 시작에서 종결 때까지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서 풀어 쓴 책입니다. 일종의 Field Manual이라고 볼 수 있죠. 특정 치료 기법의 소개가 아닌, 치료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공통된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치료적 유대관계의 시작과 평가, 진단, 치료 계획 세우기, 치료의 구조화, 치료비 청구하기, 비밀 보장과 한계점, 치료적 딜레마, 종결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서술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각 영역 별로 치료자가 실수할 수 있는 상황을 실패/성공 protocol로 대비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친절하게 배치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나라의 실정과 다른 미국의 임상 현실을 반영한 책이라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약물 중독과 관련된 section을 강조한 것이라든가, 민영 보험때문으로 보이는 치료비를 청구하는 부분이 상세하게 다루어진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을 반영하는 심리치료 실전 서적은 없기 때문에 이 책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 대상은 앞으로 심리치료자가 되기를 꿈꾸는 대학원생, 그리고 현장에서 심리치료를 담당한 지 6개월이 안 된 초보 치료자입니다. 물론 현장 경력이 좀 되는 치료자라고 하더라도 한번쯤 일독을 해서 손해볼 것은 없겠지요.
닫기
* 심리치료에서 내담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거의 없다. * 기본적인 인사법에서부터 치료자는 내담자가 이끄는대로 따르는 것이 좋다. * 치료자의 개인적인 물건을 노출함으로서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은 치료자의 관심을 내담자의 고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고 내담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내적 경험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내용을 말하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는 시작 질문이 중립적이고 아무 것도 가정하지 않은 질문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해 왔던 증상들을 치료자가 즉각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확하지 않은 기대를 가지도록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내담자로 하여금 기대했던 치료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때 적절치 않은 퇴행 행동을 보이도록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치료 초기에 '내담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왜 지금 치료를 받을 결심을 하였는지', '내담자의 감정을 인정하기', '우리를 강조할 것', '자문 상담회기 동안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적절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성공적인 첫 회기를 위해 중요한 것은 '내담자의 고통에 대해 공감적 경청을 하는 것', '자문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 '필요에 따라 자살위험도를 평가하는 것', '내담자와 치료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태그 -
Suzanne Bender,
Therapist,
내담자,
신성만,
심리 치료,
심리치료,
심리학,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
정신과 의사,
치료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881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에 손이 가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신과 의사가 (당당히) 책 제목에 심리학을 가져다 쓸 때에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을테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상담에 도움이 되는 뭔가 특별한 이야기 한 자락이라도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Barbara De Angelis의 '당신이 나를 위한 바로 그 사람인가요',
Morgan 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영국 BBC 다큐멘터리 '행복' 중 아직까지 어느 책도 보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한번쯤 봐도 괜찮은 책입니다. 그야말로 눈높이에 딱 맞는 책입니다. 쉽게 읽힐 뿐만 아니라 곳곳의 예시도 눈에 쏙쏙 들어오게 배치했거든요.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위의 세 권, 특히 '당신이 나를 위한 바로 그 사람인가요'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심리학 전공자 또는 상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 다 알고 있는 내용일테니까요.
사실 상 이 책은 부제가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라고 되어 있지만 30대를 20대나 40대로 바꾸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30대를 '이행기', '미지의 시기'라고 부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세대로 규정하고 있지만 글쎄요. 별로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별로 30대를 대상으로 쓴 글 같지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차라리 그냥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썼다면 납득이라도 했겠지만 30대라고 콕 집어서 제목을 붙여놓고는 영 30대에 맞지 않는 옷을 걸쳐놓으니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출판사의 상술에 낚였다는 불쾌감만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게다가 중간에 인용한 내용들도 잘못된 것들이 꽤 됩니다. 예를 들어 지나친 낙관주의를 경계한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그나마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때까지 살아있었다고 반대로 오독하거나
퀴블러 로스가 발견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중 일부만 차용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애도 과정을 설명하는데 (멋대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눈에 상당히 거슬립니다.
게다가 아들러의 '권력에의 의지'를 설명할 때 예로 든 저자 자신이 병동 chief였을 때의 에피소드는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사실 김혜남 선생님이 그런 분이었다는 것에 실망했습니다.
나중에 김혜남 선생님은 이 책에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아 아쉬웠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화답하기 위해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라고 비매품인 작은 책자를 부록으로 냈습니다. '서른 살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30가지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저는 여기서 또 한번 실망했습니다. 그나마 본 책에는 이런저런 심리학 관련 지식이라도 있지만 이 작은 소책자는 완전히 저자 자신의 말만 있을 뿐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거든요.
전에 리뷰했던
이무석 선생님의 '30년 만의 휴식'에 이어 또 다시 실망한 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은 읽기를 주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직접 읽어보고 평가하고 싶다는 분들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굳이 구입하시지 말고 북 크로싱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414
.
2009/10/23 17:48
.
요즈음에는 맘에 안 드는 책은 읽다가 그냥 던져버린다. 한 때는 맘에 안 들어도 책은 끝까지 정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끝까지 읽곤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맘에도 안 드는 책을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