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인지'와 '역동'을 결합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입니다. 인지 과학과 정신역동적 접근은 심리치료의 큰 줄기들 중 의식과 무의식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통합한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책은 그런 결합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사고와 정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이론은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비합리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다분히 인지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합리성의 근원은 무의식에 있으나 이는 자기-자각, 고양된 자각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고 통찰을 통해 근본적인 태도를 바꿔 적응적인 행동패턴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내용을 보면 저자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끼워맞출 생각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목차를 보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지는데,
1장. 갈등 : 침투적 정서, 반복적인 대인관계 패턴들
2장. 마음의 상태
3장. 자각 : 도식, 동기, 표상 양식들
4장. 정서의 통제 : 방어적 통제과정들
5장. 정체성 : 자기 도식
6장. 관계들 : 역할 관계 모델
7장. 성격 : 성격의 병리학적 수준
8장. 심리치료에서의 성격의 통합
보시는 것처럼 초반의 1, 2장을 제외하고는 다루는 내용 대부분이 인지 영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나름 집중해서 읽었는데도 대체 어디에 정신역동적 접근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물론 각 장의 내용은 충실하며 충분한 정보가를 가지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저처럼 인지역동적 접근이 궁금해서 책을 펴든 분이라면 책을 덮을 때 실망하실 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내용들이라 '월든지기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도 없네요.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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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아민 말루프의 대표 저작, '사람 잡는 정체성(Les Identites meurtrieres, 1998)'을 북 크로싱합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책입니다.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혈통주의에 입각한 한핏줄 주장을 계속하는 건 더 이상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고 자칫하면 프랑스처럼 큰 댓가를 치를 위험도 있죠. 여러모로 고민해 봐야 하는 주제입니다.
여담이지만 굉장히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너무나도 쉽게 풀어가는 저자의 글솜씨가 놀라운 책입니다. 겉표지만 보고 가졌던 선입견이 산산조각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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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레바논에서 출생하여 12년 동안 주요 일간지에서 국제부 기자로 활약하다 1979년 종교 분쟁에 휩싸인 조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아민 말루프(Amin Maalouf)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평범한 난민 지식인처럼 보입니다만 아민 말루프가 이 책을 쓸 수 있게 된 배경은 그가 꽤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동의 아랍인 출신이지만 이슬람교도가 아닌 기독교도이며 프랑스어로 글을 쓰면서도 모국어인 이슬람교의 언어, 아랍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속한 미묘한 위치를 점하는 종족에 속해 있죠.
이렇듯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 있었고 사람들이 '우리'라고 부르는 정체성이 말 그대로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책을 번역한 박창호 선생님 말처럼 이 책의 주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묻는 문제가 야기하는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논의입니다. 흡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비슷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 같지만 헌팅턴이 다소 거시적인 관점에서 종교의 충돌에 의한 국제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다면 아민 말루프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무엇을 보고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정체성 문제이죠.
이미 다문화 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이 된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이 정체성 문제는 많은 갈등과 소통, 조정의 필요성을 야기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곪아 터진 문제인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을 우리나라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더 걱정이고요.
처음 이 책을 읽기 위해 집어들었을 때 표지의 다소 살벌한 그림도 그렇고 사상서를 많이 출판하는 '이론과실천' 출판사의 저작이라 살짝 거리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펴기가 무섭게 이 책에 빠져들게 되었죠. 저도 처음 알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아민 말루프가 굉장히 글을 잘 쓰는 작가거든요.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글이 참 담백하며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은데도 아주 쉽게 읽힙니다. 필요할 때마다 정곡을 찌르면서도 신랄하지 않고 따뜻한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해지지 않는 균형감이 일품인 책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다룬 보기 드문 저작입니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는 아주 훌륭한 교양 서적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강추합니다.
덧. 지인께서 북 크로싱 해 주셔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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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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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대학교 철학 교수인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이 쓴 책입니다.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녹화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죠.
저자가 서문에서도 강조하며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책은 죽음을 다룬 여느 책들과 달리 인간이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이나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지 않습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슬픔의 장면도, 장례 산업과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죽음을 외면하려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까요?
다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죽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철학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영혼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여정을 제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과 같은 철학적인 개론서를 쓸 때는 서로 다른 다양한 주장을 소개하면서 저자 자신은 중립을 지키는 방식과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옹호하는 방식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저자는 후자를 택하겠다고 서론에서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영혼은 없다.
2. 영생이란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3. 두려움은 죽음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4.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살도 이성적,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바라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매우 상반된 것들이죠.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장.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2장. 영혼은 존재하는가
3장.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4장.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5장.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6장.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7장.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8장.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9장. 죽음은 나쁜 것인가
10장. 영원한 삶에 관하여
11장.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12장.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14장. 자살에 관하여 :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
목차만 봐도 흥미진진합니다만(나만 그런가?), 철학책이라서 그런지 당연히 이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존재한다는 이원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설사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영혼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장담을 (아직까지는) 할 수 없다는 점,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양립주의(compatibilism)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꽤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검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는 게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철학적인 전개가 복잡해지면 어김없이 손쉬운 예가 등장해 이해를 돕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장기 상담을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본질적인 주제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것인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립못한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덧.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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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된 '디아스포라' 강상중 교수가 쓴 에세이 '고민하는 힘(惱む力, 2008)'을 북 크로싱합니다.
정체성 문제에 대한 상당한 고민 끝에 어떤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들었는데 그 결과가 책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개인적으로는 좀 실망했습니다. 저도 기대를 내려놓는 연습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는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실지도 궁금해서 북 크로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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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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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가 쓴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청년 시절 재일 교포 2세로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정체성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면서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치열한 고민 속에서 삶의 돌파구를 찾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하는 힘을 알리는 이 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평생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는데도 치열한 고민의 끝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자아(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 39p, 확실하게 말하면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41p),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인간을 찾는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지도 않고 읽으면서 계속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온전히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결국은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관계망에 들어가는 것으로 타협한 것 같은 찝찝함을 느끼게 만들더군요. 게다가 후반부에는 노령화 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인지 '늙어서 최강이 되라'와 같은 다소 보기 민망한 장으로 책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장은 안 쓰느니만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와 같은 제목처럼 그야말로 굵직굵직한 인생의 화두들을 던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저자의 해답은 별로 참신하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저작을 일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간 시도가 신선했고 말미에 제시한 연보와 나쓰메 소세키의 저작 소개가 되레 유익했습니다.
그처럼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타인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라면 저는 그런 깨달음은 거부하겠습니다.
별로 추천드리기 어려운 책이네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강상중 교수의 내한 강연 동영상도 함께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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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저는 개인적으로 리암 니슨을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했지만 많은 분들이
'테이큰(Taken, 2008)'에서 보여준 강렬한 연기를 기억하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신 것 같던데 그렇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테이큰에서 보여준 강렬한 액션 연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런 액션을 보여줄 수 자체가 없어요. 스토리 상(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의 정체성이란 것은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축적된 기억에 비추어서 판단하는 것 뿐이죠. 달리 말하면 기억을 조작해 버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본인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불시에 당한 자동차 사고에서 머리를 부딪쳐 기억을 잃은 리암 니슨이 자신이 누구인지 입증할 개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아내마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정체성 위기에 빠집니다. 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정작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틀린걸까요, 아님 내가 미친걸까요?
영화사에서 기가 막힌 반전이 있다고 선전하지만 사실 그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은 아닙니다. 영화를 유심히 보신 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합니다. 저처럼 둔한 사람도 한낱 식물학자에 불과한(?) 주인공이 베를린 도심 추격전에서 기가 막히게 차를 모는 것을 보고 쉽게 알아차렸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폭발씬에서 더 놀랐습니다. 차라리 그게 더 반전이더군요.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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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이력의 철학자 탁석산 선생이 2008년에 쓴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 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2008)'을 북 크로싱합니다.
일반 철학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철학자는 많지만 한국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철학자는 보기 드뭅니다.
특히 한국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패배주의적인 관점에서 다룬 글이 많은 데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가 한국인을 건강하게 지켜준 방법론이라는 시각에서 쓴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관점이 상당히 신선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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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은 이력이 범상치 않은 사람입니다. 과거 명문이었던 경기고를 나왔으나 독서와 축구에만 몰입하다 꼴찌로 졸업을 했고 재수 뒤 서울대 자연계열에 입학했지만 1년 후 자퇴, 군 복무 후 한국외대 영어과에 입학하였고 부전공이었던 철학에 심취하면서 철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2000년 '한국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쓴 글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후 꾸준히 한국의 주체성, 민족성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철학적으로 다룬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도 그런 글쓰기의 연장선상에 서 있습니다.
탁석산은 이 책에서 문화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아니라 유사성만 있을 뿐이고 문화는 사실 상 단절에 의해 발전되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문화의 특징을 찾아내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문화재가 갖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에서 옛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게다가 문화는 삶의 방식이지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로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문화는 당대의 문맥에서만 의미를 갖고 작동하는 것이니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문화를 이해하자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고유의'라는 억지를 부리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려고 애썼다고 이야기합니다.
탁석산은
한국의 문화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때문에 한국의 문화가 건강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실용주의는 이러한 세 가지 ~주의를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나왔다고 보고 있고요.
상당히 파격적이면서 다소 과격한데도 상당히 재미있는 화두를 많이 던지는 글쓰기를 하더군요.
저는 이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책들을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마도 시사IN에서 추천한 책 목록 속에 들어가서 읽게 되지 않았나 싶은데 탁석산의 다른 책도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검색해 보니 꽤 많은 책을 썼더군요.
한국인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접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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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소개한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과 인지, 또는 자신과 자신이 한 잘못을 분리하는 일종의 외재화(externalization)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건 인지부조화가 생겼을 때 자기정당화의 덫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인지부조화에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인지부조화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어떤 것에도 소속감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범위를 아주 넓혀서 보자면 '욕구' 자체를 갖지 않는 것이지만 그건 일정 경지에 이른 종교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할 것 같고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속할 수 있는 어떤 집단에도 소속감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소속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내가 어느 가족의 일원이든, 어느 회사를 다니든, 어느 국가의 국민이든 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름표에 의해 규정하지 않는 것이죠.
만약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항상 내가 속한 집단보다 하나의 상위 범주로 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라면 비정규직의 고통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보다 한 단계 상위 개념인 노동자로 나를 규정하는 것이죠.
내가 등 따숩고 배부르다면 제 3세계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에 마음으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나를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 규정하는 겁니다.
모피를 만드는데 희생당하는 동물들을 생각한다면 나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되고요.
항상 자신의 정체성을 상위 범주로 규정하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생길 행동 자체를 하지 않게 될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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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프랑스 소설이나 영화는 조심하는 편입니다. 무심코 접했다가 당황했던 경험이 꽤 많거든요.
1978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소설은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신비와 몽상의 언어로 탐색했다는 평을 받는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만 파트릭 모디아노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대가이고 애독자도 꽤 많은 것 같더군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문학성, 작품성을 따지기에 앞서 모든 책은 자신의 독서 코드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소설은 더하죠.
이 소설은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는 '나'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몰입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난이도가 좀 높다고 느꼈습니다.
평가가 그리 좋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 지 모르겠네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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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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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 3 블로그 주인장 월덴지기 님의 북크로싱(책 돌려읽기)을 통해 읽은 책. 이사짐 싸면서 책을 더는 안 사겠다고 결심한 것도 있고 (반만 지키고 있지만 ^^;) 우편요금만으로 돌아가며 재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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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피리부는 사나이'인데다 제목이 '옛 이야기의 매력'이고 거기에 출판사인 시공주니어에서 어린이 문학 이론서 범주로 묶어서 내 놨으니 뭔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 평론같은 책일 것 같습니다만 전혀 아닙니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로 자폐아 치료와 교육으로 유명한 브로노 베텔하임이 쓴 것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서양의 전래 동화에 숨겨진 정신분석적인 의미를 분석하고 아이들의 정신적 발육과 정서적 성장에 옛 이야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지내는 어른들에게 옛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읽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부모가 직접 읽어주라고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옛 이야기를 통해 환상 속에서 어른의 지배로 생기는 위협에 보복하는 공상을 부모가 인정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네요.
옛 이야기의 장점은 세상을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섣불리 충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도덕과 양심을 강요하지도 않죠. 오히려 그래서 아이들은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은 읽으면서 자아를 통합하고 건강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측면은 오히려 옛 이야기의 장점으로 바로 이 장치를 통해 아이들은 개인의 내면 심리로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또한 옛 이야기에는 신화와 달리 항상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어 있기에 아이들은 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옛 이야기의 내용에 빨려들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즉 환상 속에서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비롯해 다양한 정신역동적인 문제를 안전하게 해결하는 것이죠.
1권의 목차만 보셔도 이 책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내면에서 들여다 본 삶
2. <어부와 지니> - 옛 이야기와 우화의 비교
3. 옛 이야기와 신화 -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4. <아기 돼지 삼형제> -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5. 마법의 필요성
6. 대리만족과 의식적 깨달음
7. 외부화의 중요성 -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
8. 변형 - 사악한 계모의 환상
9. 내면의 혼돈에 질서 부여
10. <여왕벌> - 통합에의 도달
11. <오누이> - 이중적 본성의 통합
12. <뱃사람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 - 환상과 현실
13. <천일야화>의 액자이야기
14. 두 형제 이야기
15. <세 가지 언어> - 통합하기
16. <세 개의 깃털> - 얼간이 막내둥이
17. 오이디푸스적인 갈등과 해결 - 빛나는 갑옷의 기사와 위기에 처한 소녀
18. 환상에 대한 공포 - 왜 옛 이야기는 금지되는가?
19. 환상의 도움으로 유아기를 넘어서기
20. <거위치는 소녀> - 자율성 획득
21. 환상, 회복, 도망, 그리고 위안
22. 옛 이야기의 구연에 대해서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일부러 두 권으로 나눈 것 같이 보입니다. 2권의 첫 페이지가 267p부터 시작되니까요. 1권이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한 것이라면 2권은 실전편으로 '백설공주', '세 마리 곰', '헨젤과 그레텔', '잭과 콩나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의 실제 옛 이야기를 들어 정신역동적인 해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권을 함께 연달아 읽어야 합니다.
번역은 역자가 심리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확하여 읽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심리학, 정신분석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필요합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의 경우 조금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옛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정신역동적인 측면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눈을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개인적인 추천 대상은 현장의 치료 전문가, 심리치료/상담 전공자,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들이 되겠습니다.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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