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인류학자 중 한 명인 피에르 클라스트르가 1974년에 쓴 정치인류학 책입니다. 정치인류학 고전 중 한 권으로 꼽히는 저서죠.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남아메리카 민족학 전공학자로 1960년대 대부분을 남미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의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연구한 내용을 이 책으로 엮어냈는데 안타깝게도 3년 뒤인 1977년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과 맑스주의 인류학을 극복하고 원시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원시사회를 문자도, 역사도, 국가도 없는 사회이며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생계 경제 사회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니까 세계를 정복하러 다녔던 근대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죠. 원시 사회라는 말 자체가 인류의 최초 단계에 고착되어 머물러 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하지만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이는 서구적 사고의 자민족 중심주의에 의해 비서구 사회를 이국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견해 때문에 나타난 편견이라고 주장하죠. 많은 원시사회에서 권력이 폭력과 완전히 분리되어 위계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실증 사례를 들면서 모든 사회는 고대적 사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논박의 결과로 원시사회야말로 권력을 소유함으로써 불평등을 야기하는 국가 자체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있어 추장의 권력이라는 것이 전쟁에서의 지휘권(전쟁이 끝나면 무용지물이 될 뿐 아니라 전쟁 중에도 언제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박탈당할 수 있는), 그리고 제한된 일부다처제의 아내 선택권에 국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에 당연히 따를 것으로 기대되는 소유의 집중과 힘의 강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부족민에게 절대적으로 봉사하는 자리라는 건데 대체 이렇게 의무만 있고 권리와 권력은 전혀 없는 무력한 추장으로 선출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저처럼 원시사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혔던 분들이라면 꽤나 충격을 받으실 수 있는 인류학 서적입니다. 다만 인류학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자신있게 추천은 못 드리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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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화에 우리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정치권력이 없다고 해서 그 문화에 정치권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개념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 정치권력은 인간 본성,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니체의 생각은 틀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폭력 없는 정치는 상정할 수 있지만 정치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 사회는 무엇보다도 재화, 여성, 말이라는 세 가지의 기본적 차원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유형의 '기호'를 직접적인 준거 틀로 하여 인디언 사회의 정치영역이 구성된다.
* 지역 외혼은 근친혼 금기를 강화하는 소극적 기능이 아니라 자기 공동체 밖에서 혼인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는 적극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역 외혼제의 의미는 정치적 연대의 수단이라는 기능 속에서 발견된다.
*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가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 고대적 사회, 각인의 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모든 신체에 똑같이 새겨진 각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즉 너희들은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복종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라고.
* 사실 우리들의 생각 속에는 신앙을 가진 자의 믿음과 같이 내면화된, 즉 사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어 있다.
* 우리는 생계 경제가 전혀 비참한 생활 속에 놓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사회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나 식량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동물적인 상태에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만 일하고서도 생존-아니 그 이상-을 확보하였다.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외부적인 힘이 없다는 것이 원시사회의 본질을 규정한다.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도끼가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탐낸 이유는 같은 시간에 10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10분의 1의 시간에 끝마치기 위한 것이었다.
* 수렵, 어로, 채집이 반드시 이동 생활 방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나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주 생활을 하는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만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 사회가 무능하고 기술적으로 뒤떨어지며 문화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그들이 농경 생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정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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