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 때 우울증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성인 ADHD를 거쳐 이제는 양극성 장애 진단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무슨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하나같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내리는 학교 앞 정신건강의학과 의원까지 있다고 하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양극성 장애라면 결국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cycle이 있다는 것이니 꽤 오랜 기간 동안 종단적으로 기분의 변화 과정을 추적해봐야 비교적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것인데 그냥 문진만으로 턱하니 양극성 장애 진단을 내리는 무모한 병원이 너무 많습니다.
양극성 장애 진단을 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준은 결국 조증 상태(manic state)의 유무인데 문제는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과 '주의력'을 기준으로 조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조증 상태일 때도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고 주의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역방향으로 해석하는 건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충동적이고 파괴적 행동은 파괴적 관심 끌기 행동일 수 있어서 양극성 장애보다는 성격 장애(특히 B군)를 먼저 변별해야 하고 주의력 문제는 더더군다나 워낙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증부터 의심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증상은 'irritability'입니다. 실제로 조증의 진단 기준 중에 '과민한 기분'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주의력처럼 우리나라에서는 mania보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청소년/초기 성인기의 우울 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irritability이며, 자극추구, 위험회피 기질이 모두 높지만 성격 미발달로 인해 이러한 접근-회피 갈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도 irritability이고, 신체화 불안 수준이 매우 높을 때도 irritability가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irritability 증상으로 mania 가설을 세우는 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증의 핵심 증상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건 'up된 기분'입니다. 기분이 좋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냥 기분이 붕 떠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에너지가 넘치며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만 가득 차 있고 이로 인해 잠을 전혀 안 자도 피곤하지 않고 의욕 과잉으로 뒷감당이 안 되는 이런 저런 일을 계속 벌이는 게 조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다른 증상들은 모두 up된 기분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증상들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들 사례를 심리평가 supervision하는 경우가 최근에 늘고 있는데 열에 아홉은 도무지 조증 상태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기존에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내담자를 상담하는 선생님들은 무엇보다 먼저 'up된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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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에서 심리치료 및 상담을 하는 임상가들에게 반드시 읽어볼 것(+소장)을 권하는 치료전문가용 서적 3종 세트가 있습니다.
지금 소개를 드리는 '정신분석적 진단'과 이전에 소개한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2007)', '
정신분석적 사례이해(1999)'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권의 책을 쓴 Nancy McWilliams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치료자 중 한 사람이면서 제 role model 중 한 명입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어떤 교재도 치료의 효율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심리치료가 주는 그런 종류의 마음 깊숙이 느껴지는 믿음을 제공해 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제가 이런 태도 때문에 Nancy McWilliams를 좋아합니다. ^^
Nancy McWilliams가 정신역동적 접근을 하는 치료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책 3권이 모두 '정신분석적'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지만 사실 상 그녀의 책은 오랜 임상경험이 녹아 있는 개념 충만한 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 정신분석과 전혀 상관이 없더라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제목 때문에 이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도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Nancy McWilliams의 책 중 이 책이 가장 먼저 나온 책인데도 국내에는 가장 늦게 소개가 되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정한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책을 쓴 순서대로 '진단' -> '사례 이해' -> '치료'의 순으로 읽었다면 맥락에 기초한 공부를 할 때 더 큰 도움을 받았을 것 같거든요.
앞서 번역된 다른 두 권의 책과 달리 '정남운', '이기련'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는데 '
지금-여기에서의 전이분석(1993)'에서 보여주신 깔끔한 번역 실력을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셔서 원래 Nancy McWilliams가 책을 쉽게 쓰는 편이기도 하지만 더욱 이해하기 좋게 나왔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1부에서는 진단이 왜 필요한지(정신역동적 접근을 하는 치료자라면 다소 뜻밖인 주장)에 대해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이 부분도 재미있습니다)하고 있고 성격 구조에 대해 발달 수준과 그 임상적 함의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특징적인 것은 일차적(원시적) 방어 기제와 이차적(상위) 방위 기제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 것인데 풍부한 사례를 제공하고 있어 방어 기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더 할 나위없이 좋은 책입니다.
2부에서는 반사회성 성격, 자기애성 성격, 분열성 성격, 편집성 성격, 우울성 성격과 조증 성격, 피학성 성격, 강박성 성격, 연극성 성격, 해리성 성격 등 주요 성격을 '추동', '기질', '방어 기제', '대상관계', '자기', '전이와 역전이', '치료적 함의', '감별진단'의 구분에 따라 현장 치료자들이 확실히 개념을 잡을 수 있도록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현장에서 성격 문제를 가진 내담자를 많이 만나지만 성격 문제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 책 한 권이면 기본적인 감을 잡는데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Nancy McWilliams의 책을 소개할 때마다 제가 정신역동적 접근을 따르지 않는 치료자라고 해도 꼭 필독하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장 가치 천만 점의 책이며 임상가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으로 강추합니다.
덧. 이 책은 새 책으로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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