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머리가 굵어진 자녀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춘기가 되어 변성기가 되고 여드름이 돋아 나기 시작하면 슬슬 짜증이 늘고 어른들에 대한 반항이 심해지면서 고민이 시작되곤 했는데 요새는 그 연령대가 점점 내려가고 있고 스마트폰 등 IT기기로 인해 대화 단절의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만 되면 이미 자녀의 대답 패턴이 "네", "아니오", "몰라요", "싫어요"와 같이 단답형에 그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들이 많죠.
어렸을 때야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이래라 저래라 해도 찍소리 않고 고분고분하게 복종했던 자녀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대답도 시큰둥하고 눈도 안 맞춘 채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부모를 귀찮아 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지요.
그래도 자녀를 사랑하는 많은 부모들이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터 보고자 애를 쓰지만 방법을 잘 몰라 답답해들 합니다.
몇 가지 중요한 원칙과 Tip이 있는데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내 자녀는 나와 독립적인 인격 개체이며 나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알게 모르게 내 자녀는 내가 낳았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사랑으로 포장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너는 내 아들/딸이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대화를 시도하는 한 절대로 자녀들의 말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철저히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에 깔고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탤런트 최수종씨가 집에서 아이들과 상호존대를 결코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못해도 자녀를 대할 때 밖에서 다른 어른을 대할 때 처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대화를 시도할 때는 '강요'가 아닌 '부탁'하듯이 말을 건네야 합니다. 대화를 시도했다가 자녀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 기분이 상한다면 자녀라면 당연히 부모의 대화 시도에 응해야 한다는 기대를 깔고 있는 것이고 그건 자녀에게 대화를 강요한 겁니다. 자녀들은 그런 강요를 아주 예민하게 눈치채거든요.
거절당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때만이 부탁하듯이 대화를 시도한 것이죠.
이렇게 전향적인 자세로 말을 걸었는데도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자녀들에게는 어떡할까요? 잠깐 그 전에 이것부터 생각해보죠. 혹시 이미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계셨나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냉소를 짓지는 않으셨나요? 지금까지 자신에게 관심도 없어 보이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말을 건다고 '아~ 우리 부모가 개과천선을 해서 드디어 나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하는 자녀는 없습니다. "왜 이러시지? 뭐 잘못 드셨나? 내가 뭐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죠. 그래서 역시나 방어적인 반응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Tip 한 가지.
자녀가 기대했던 것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녀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세요. "오늘 별로 이야기 할 기분이 아닌가 보네. 아빠가 귀찮게 해서 미안해.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이야기하자. 언제라도 아빠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와"라는 식으로요. 대화는 물처럼 흐르는 겁니다. 잠시 끊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계속 흐를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되죠.
자녀와 대화할 때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쁩니다. 다른 부모는 다 실패하더라도 나는 내 아이들과 꼭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거라는 희망을 잃지 마세요.
결국 끈질지게 시도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자녀와의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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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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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정신과 전문의인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쓴 책입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심리학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하네요.
이미 심리학 서적 소개 포스팅에서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심리학자가 아닌 사람이 심리학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이나 비슷한 거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심리학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신의학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든다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뭐 그렇다고 심리학자들이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심리학에 대해 정통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면 괜찮겠는데 지금까지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기대 수준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실망도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신경증 환자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인지 행동 전문가이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깨달음이나 통찰, 받아들임 같은 접근법이 아닌 구체적인 기술을 익히고 연습해서 조금씩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는 겁니다.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힐링을 표방한 어설픈 책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 입니다. 자존감에 대해 새롭게 주는 정보가 없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입니다. 번역자도 공을 들여 열심히 번역한 것 같은데 말이죠.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이 낮다 높다의 차원 뿐 아니라 강하다 약하다의 차원까지 도입하는 바람에 기존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혼란을 준다는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자존감은 높지만 약한 사람들을 대비하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거나 자존감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 보기에는 좀 난해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내용이라서 차라리 선안남 선생님의
'행복을 부르는 자존감의 힘(2011)'을 읽으시는 것이 좋겠고, 자존감 개념에 어느 정도 익숙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닫기
* 역설적이지만, 좋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잘한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동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 '더 이상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라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잊어야 자존감이 발전한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긍정하기, 나를 잊고 다른 것과 다른 사람들, 삶에 관심을 쏟기 등.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헛된 반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이가 쓰면 던져버려라. 길을 가다 가시 덤불이 나오면 피해 가라. 그것으로 족하니라. '왜 이런게 있는 거야?'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기주장을 할 수 없다.
* 다수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좀 더 자주 나타난다.
*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다.
* 시기는 우리가 갖지 않은 것,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대할 때 드는 기분 나쁜 감정이다. 한편, 질투는 이미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감정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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