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병원 급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어합니다. 적절한 금전적 보상과 복리 혜택이 주어지는 유급 수련 과정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경험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종합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이라는 수련 현장의 장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업무량에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종합병원이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희귀한(?) 장애는 별로 못 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병원에서 Sleep Walking Disorder, Fugue,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환자 등을 평가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애는 몸에 밸 정도로 많이 봅니다.
제가 수련받은 병원의 경우 1년차 레지던트는 1/4분기 동안 지적 장애 판정에 투입되는데 다양한 심각도의 Mental Retardation 환자를 지겹도록 평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발달 장애 클리닉에 투입되어 몇 달동안 Communication Disorder, MR, PDD NOS, Autistic Disorder를 변별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보호 병동에서 SPR, MDD 환자를 실컷 평가하고, 다시 외래에서 ADHD, Anxiety Disorder 아동을 평가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 장애를 일정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쌓이는 노하우와 지식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특정 장애에 대한 검사 sign과 case formulation의 감을 잡을 수가 있고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는 다른 장애와 변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의 장애에 대한 감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무조건 다양하고 특이한 환자를 본다고 전문성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얄팍한 잔수만 늘게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앞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심리평가 부문에서도 최종적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증 클리닉의 집중 훈련 과정을 통해 Pain Disorder 환자에 대한 대가가 되든지, 재활 병원에서 뇌손상 환자의 손상 부위를 아주 detail하게 잡아내는 전문가가 되든지, 섭식 장애 센터에서 Eating Disorder 환자를 평가, 치료, 예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든지 말이죠.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평가하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집중'적인 훈련과 전문성의 배양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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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포스팅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객관적인 실상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읽는 분이 각자 현명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정신과는 종합병원과 로컬병원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과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비나 기구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우월함을 가르는 것은 치료진의 전문성입니다.
그렇다면 로컬병원에 비해 훨씬 많은 임상 경험과 다양한 환자군이 몰리는 종합병원 치료진의 전문성이 더 우수할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취약성이 모든 장점을 다 상쇄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의 취약성이란 무엇이냐.
종합병원은 시스템상의 문제로 환자를 깊이있게 볼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종합병원은 로컬병원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환자를 진료해야 하며 그러다 보니 의사가 문진 실력을 발휘할 시간 자체가 없어 환자의 주관적인 보고에 의존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진단을 내릴 때에도 구체적인 진단보다는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안전 지향으로 갈 수 밖에 없죠.
심리평가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면담도 해야 피검자에 대한 충분한 formulation이 될텐데 워낙 검사 대상자가 밀려 있어 정해진 시간 내에 검사를 해치우듯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 피검자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routine하게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한 후 잊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면담을 하고 정보를 모을 시간이 없으니 의사의 진단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제가 만약 정신과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오히려 특화된 분야의 전문가가 운영하는 로컬병원을 찾을 겁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 뿐 아니라 임상심리학자의 면면도 살펴봐야겠지만요.
덧. 제가 supervision하는 선생님들이 대학병원 또는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에서 실시한 심리평가보고서를 의무 기록으로 들고 오는 일이 많이 늘었는데 과거에 비해 어이 없을 정도로 환자의 문제를 엉뚱하게 짚은 보고서가 늘고 있습니다. 터무니 없는 진단도 많아졌고요. 그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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