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이 힘들다며 자발적으로 상담을 의뢰했는데 정작 검사를 해 보면 아무런 고통감이 드러나지 않거나 구조화된 검사에서 방어 척도가 상승하면 평가자가 당황하기 쉽습니다.
'스스로 힘들다고 왔으면서 왜 방어하는 거지?', '검사 결과를 보면 그렇게까지 힘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왔지?'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아동/청소년이 본인 문제가 아니라 가정 불화 때문에 힘들어서 도와달라고, 또는 가정 내 문제를 고발하러 총대를 메고 나왔을 가능성입니다.
아동/청소년은 가정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부의 도움을 받으러 나온 것이죠. 엄밀히 따지자면 자신만 상담을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검사에서는 방어적으로 응답하거나 비교적 건강한 상태라면 심리검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럴 때는 최대한 빨리 부모에게 연락해야 합니다. 부모가 상담자의 호출에 응하는 태도를 보면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있거든요. 일반적인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자발적으로 또는 학교 당국의 권유에 의해 상담을 받으러 간 걸 알게 되면 처음에는 당황하더라도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것인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달려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상담자의 연락을 피하거나, 2) 호출에 응한다고 해도 상담자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아이가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방어막을 가동하거나, 3) 심하면 가족의 문제를 밖으로 노출한다고 자녀를 탓한다면 확실히 가정 내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이럴 때는 아동/청소년이 문제가 아니며 부모가 문제(소위 독이 되는 부모)이거나 최소한 가족 내 역동에 개입을 해야 하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문제가 있거나 가족 역동을 다뤄야 하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미 개입하기 늦은 사례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모가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방어벽을 세우거나 상담을 중단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오면 부모까지 심리평가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걸 routine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부모가 건강하다면 아동/청소년만 상담하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행운의 사례는 거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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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모님들의 특징 중 하나는 '기승전 공부'입니다. 어떠한 문제로 왔든 상담을 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용 설문지만 봐도 주 호소나 증상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 부모가 없을 정도지요. 그래서 ADHD, 우울 장애, 불안 장애, 틱 장애 등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공부를 열심히(사실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가 꼭 따라 붙습니다. 이 정도 되면 부모님들이 공부 중독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평가를 하고 난 뒤 해석 상담을 할 때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오로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우리 아이의 지능(IQ)이 얼마인지입니다. 기준은 또 엄청나게 높아서 부모님들이 그나마 안심하는 지능의 마지노 선은 120입니다. 이 밑에 해당하는 지능을 이야기하면 표정이 어두워지고 간혹 90대로 나오기라도 하면 평균 수준의 지극히 정상적인 지능인데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 합니다.
그래서 해석 상담을 진행하는 임상가들은 인지 기능 영역을 이야기할 때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요. 어떻게 해야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오해를 사지 않는 해석 상담이 가능한지 정리해 봤습니다.
1. IQ에 대한 간략한 orientation을 우선적으로 제공할 것
: IQ의 평균이 100이고 표준 편차가 15라서 플러스/마이너스 1 표준 편차가 85~115에 해당하고 이 범위가 전체의 68%를 차지한다는 것, 부모님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120이라는 지능이 사실은 굉장히 드물다는 것(130이 상위 2%에 해당하니까요), 100이하의 지능도 통계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의 지적 능력이라는 것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2. IQ보다 언어성/동작성 지능의 차이, 소검사 편차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할 것
: 전체 지능은 수검자의 대략적인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 뿐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이 많죠. 요즘은 Wechsler 지능 검사도 반구 국재화 이론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언어성, 동작성 지능의 유의미한 차이가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언어성, 동작성 지능이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시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그 차이가 유의미할 때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10~15개에 이르는 소검사 편차입니다. 동일한 지능(예를 들어 110)이라고 해도 소검사가 고른 분포를 보이는 것과 편차가 큰 것과는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실제 인지 기능을 발휘하는 면에서도 잠재력보다는 기능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강점과 약점이 되는 기능을 중심으로 해석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능이 높으냐 낮으냐 보다는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보강해야 할 부분인지를 일러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교육적이니까요.
3. 아동/청소년의 호소 문제(chief complaint)와 인지 기능의 관계를 설명할 것
: 많은 부모님들이 IQ는 불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심리평가를 실시한 아동/청소년이 어떤 심리적 문제나 정신 장애로 고통을 받는 경우 그런 영향으로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치료가 되면 어떤 부분이 회복되는지 등등을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불안 수준이 높은 아동/청소년의 경우 주의력 관련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불안을 적절히 통제하게 되면 병전 수준으로 주의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짚어서 알려줄 수 있습니다.
부모를 대상으로 한 해석 상담은 education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고 특히 IQ가 불변이 아니라는 점, IQ보다는 언어성/동작성 기능의 차이, 그보다는 소검사 편차에 의한 인지 기능의 비효율성, 강점과 약점 분석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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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TCI와 MMPI-2로 살펴본 반사회성 성격장애 양상'이라는 포스팅에서 TCI로 반사회성 성격장애 가능성을 확인하는 걸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격 장애 진단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심리검사도구 TCI' 포스팅에서도 TCI를 이용해 성격 장애 진단을 위한 단계적 접근법을 설명드린 적이 있고요.
오늘은 이해하기 쉽게 좀 더 쉬운 비유를 활용해 보겠습니다.
* 기질 : 음식의 종류
* 성격 : 냉장고의 온도 조절 기능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주 호소가 대인관계회피, 사회적 철회, 무기력이라고 해 보죠. 대인 관계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고 사회 적응도 잘 못하기 때문에 Social Anxiety Disorder, Social Phobia, Adjustment Disorder, Depressive Disorder의 진단 가설을 변별하던 중에 이 내담자가 혹시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혹은 Problem)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 TCI로 검증을 해 보기로 합니다.
1단계. 성격의 성숙도 체크(자율성,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 사용)
: 자율성 및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가 모두 30점 미만이거나 자율성+연대감의 합산 백분위 점수가 30점 미만인 경우 성격 발달의 정도가 기질유형에 미치는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위 내담자의 경우 자율성의 백분위 점수는 80점,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는 1점이라서 모두 30점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충족하지 않지만 자율성+연대감 합산 백분위 점수가 21점이라서 조건을 충족함. 성격장애(또는 문제) 가능성이 있어 보임.
그야말로 냉장고의 온도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냉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라면 안에 보관한 음식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음식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2단계. 기질유형의 확인(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 척도의 T점수 3분 분할점 사용)
: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T점수가 45미만, 45이상 55이하, 55초과인지에 따라 L, M, H로 명명하고 3 X 3 X 3 조합의 기질 유형 확인.
위 내담자의 경우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T점수가 각각 39, 38, 35이므로 모두 Low이며 LLL기질 유형을 갖고 있습니다. 해석집의 LLL 기질유형을 찾아보면 Schizoid(분열성) 기질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내담자는 DSM 분류 방식을 따르자면 Cluster A의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Problem)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추가적인 평가나 치유적 개입을 해야 합니다.
냉장고 안을 살펴보니 아쉽게도 가공된 통조림이 아닌 부패되기 쉬운 해산물이 들어 있었네요. 냉장고의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꽤 오랜 기간동안 보관할 수 있었겠지만 냉장고가 고장난 상태(성격의 조절 기능이 성숙하지 않음)이므로 금방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취약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성격의 조절 기능이 양호하거나, 반대로 성장하면서 조절 기능이 고장난 경우에도 건강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테지만 취약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성격의 조절 기능까지 고장난다면 성격 장애로 발현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그래서 성격 문제가 있어 보이는 내담자를 상담할 때는 TCI를 활용해 비교적 간편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를 변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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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심리평가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모든 심리검사는 대면 검사로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검사 도구의 선택과 검사 실시 타이밍은 평가자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강조점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이야기를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두 번째 강조점 중 심리검사 도구와 관련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심리검사 도구를 사용하는 임상가라면 누구나 심리평가보고서를 잘 작성하고 싶을텐데요. 심리평가보고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수검자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formulation할 수 있어야(즉, 수검자의 심리상태 그림이 잘 그려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심리검사 도구의 선택이 중요하죠.
검사 수가와 관련하여 이미 심리검사 도구 묶음인 battery들이 구성되어 있는 병원 환경은 예전부터 그랬다 치고 요새는 상담 현장도 단기 상담으로 가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선별 심리평가를 routine하게 실시하는데, 원래 그래서는 안 됩니다. 효율성만 따지다 보면 소탐대실 할 수 있죠.
앞에서 말씀드린 심리평가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을 다시 요약해 보자면,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잘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제대로 된 검사 도구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검사 도구는 어떻게 선택해야 잘 선택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걸까요? 당연히 평가자가 검사 전에 세웠던 가설(변별 진단을 위한 가설, 성격 역동을 파악하기 위한 가설, 예후를 예측하기 위한 가설 등)을 검증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등교 거부 행동을 보이는 중학생의 부적응 양상을 평가하려고 할 때, 학교 생활의 어려움이 낮은 지능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지능 검사와 같은 인지 기능 검사의 실시가 필수적입니다. MMPI-A에서 LAS, IMM이 상승한다고 해도 부분적으로만 이를 입증할 뿐이죠. 결국 지능 검사가 필요합니다.
이미 실시할 검사 도구가 정해져 있는데다 평가자가 검사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임상가들은 이미 실시한 검사 결과를 갖고 일종의 '사후 가설'을 세우는데 그건 연구 방법론에서 일단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후 이리저리 통계 분석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소위 말하는 '별이 뜨는' 결과를 중심으로 역방향으로 논문을 엮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엄청 비효율적이고 시행착오적인 방법이죠.
원래
심리평가의 가설 검증 절차는 의뢰 사유와 현 병력, 주 호소 문제를 중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평가자가 선택한 뒤 실시한 검사 결과에 따라 가설을 채택할 것인지, 기각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심리평가 시 심리검사 도구는 평가자가 필요에 따라 선택,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가설을 가장 잘 검증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도구를 선택하는 겁니다. 당연히 가설을 가장 잘 검증할 수 있는 심리검사 도구인지를 파악하려면 심리검사 도구에 대한 이해와 숙지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가설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어떻게 해야 심리평가를 위한 가설을 잘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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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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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가가 아닌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임상가들은 이미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전문가를 만나 면담을 끝낸 수검자를 평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chart에 기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설정하고 심리평가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왜 하필 지금 왔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뭐 당연히 도움이 필요하니까 왔겠지 또는 버티다 버티다 안 되니까 힘들어서 지금 왔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마는 거지요.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왜 하필 지금 왔는지를 탐색하는 게 굉장히 유용합니다. 정말로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왔는지, 알려지지 않은 오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외부의 도움을 받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랬다가 최근에 깨닫게 되었는지, 그랬다면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는지 등등 매우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묻지 않으면 수검자가 알아서 대답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 전 또는 검사 후 면담에서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병원 장면처럼 문제의 정도가 심각한 수검자가 많은 곳에서는 심리평가를 할 때에도 변별 진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단 기준 충족을 위한 주 호소(Chief Complaint) 중심으로 탐색하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잠재 가설이 너무 많아질 수 있어 진단이 틀릴 가능성이 커지고 무엇보다 임상가에게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왜 하필 지금 오셨냐?"는 질문에 대한 수검자의 응답을 면밀히 살펴보면 불필요한 진단 가설들을 배제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심리검사 sign만으로 알기 어려운 빈틈을 메울 수 있는 여러가지 단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임상가들께서는 꼭 '왜 하필 지금 오셨냐'는 질문을 잊지 말고 수검자(또는 보호자)에게 꼭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 이 질문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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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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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호소,
진단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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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 3에서도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심리평가를 실시할 때 검사가 끝난 뒤 원자료를 늘어놓고 뒤적거리면서 퍼즐 맞추듯이 case formulation하는 것만큼 비효과적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임상가들이 여전히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한 5년 쯤 전에 의뢰 사유를 확인하고 가설을 설정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을 드린 적(
'심리검사 전 필수 점검 사항 - 의뢰 사유 확인과 가설 설정' 참조)이 있었죠.
그런데도 여전히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를 바탕으로 진단 가설을 세우는 데 있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이 많더군요.
제가 볼 때 이 문제는
증상을 바탕으로 세운 '1차 가설'과 심리평가를 통해 검증해야 하는 '2차 가설(진단 가설)'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든 상태이며 어릴 때부터 그런 증상이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누군가 내 욕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호소하는 20대 여성을 평가한다고 해보죠
증상을 바탕으로 한 1차 가설(증상을 보았을 때 평가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가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Social Phobia :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고 피하게 된다(당황스럽다, 불안하다?).* Avoidant PD :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람들을 피해 왔다(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다)* SPR, prodromal stage : 밖에 나가지 않고 최근에 누군가 내 욕을 하는 느낌이 든다(social withdrawal, idea of reference or auditory hallucination).* Adjustment Disorder, chronic state : 어릴 때부터 그런 증상이 시작되었다(identifiable stressor?). * Delayed PTSD : 시선 공포가 있다(비난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guilty feeling?)
등등
1차 가설은 수검자의 주 호소(chief complaint)를 통해 세우는 것으로 숫자가 많아도 상관 없고 틀려도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가설을 많이 세울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어차피 가설 검증 과정에서 배제될테니까요. 1차 가설 설정에서는 정확성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가설이 포함되는 것에 치중하세요.
그런데 심리검사 결과를 갖고 이 많은 1차 가설을 몽땅 검증하려고 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뿐더러 검증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해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을 내리기 위한 2차 가설로 추려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변별 진단을 위한 추가 정보를 수집하는 겁니다.
위의 보기로 다시 돌아가서
* Social Phobia의 경우 모든 사람에게 그런지 낯선 사람들에게만 그런지(대상의 일반화 가능성 확인)* Avoidant PD의 경우 창피나 거절을 당한 과거 경험과 그런 경험의 반복 여부(지속성)* SPR, prodramal stage의 경우 persecutory ideation, auditory hallucination 여부(사고 장애 유무 확인)* Adjustment Disorder, chronic state의 경우 가정 및 학교 생활에서의 부적응 유무(malfunctioning)* Delayed PTSD의 경우 sexual history 및 eating problem 확인
등을 추가 면담, chart 및 clinical history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1차 가설 중 몇 개가 탈락하게 되고 좀 더 가능성이 큰 소수의 진단 가설(2차 가설)로 추려지게 되죠.
이제 추려진 몇 개의 진단 가설을 드디어 심리검사 결과를 통해 검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1차 가설을 검증하지 말고 일단 2차 가설로 한번 더 추려낸 뒤 심리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2차 가설만을 검증하시면 좀 더 효과적인 case formulation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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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할 때 평가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정반대로 해석해야 할 것 같은 검사 sign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주 호소가 또래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존감이 낮고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보여 평가를 받는 청소년이 있다고 할 때, MMPI-A의 LSE 척도 점수가 하늘을 찌르고, 반대로 ES 척도 점수는 바닥을 치며, HTP에서는 온통 필압이 약한 그림 투성이에, 평가자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검사 태도를 보이는 피검자가 문장 완성 검사에서 "내가 믿고 있는 능력은 최고다", "나의 장래는 더 없이 밝다"라고 응답하였다면 얼핏 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검사 sign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 지 난감하죠.
특히 로샤 검사에서 이런 sign이 나오게 되면 로샤 검사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게 되고 결국은 엉뚱한 formulation을 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피검자가 자신의 심리상태를 검사에서 그대로(순방향) 드러낸다는 평가자의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위의 사례에서 피검자는 자신의 자신감 부족을 compensation하기 위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과장해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 문장 완성 검사에서 피검자가 보여준 자신만만한 자기 기술은 취약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overcompensation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합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검사 sign과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검사 sign을 발견하게 되면 해석 방향을 반대로해서 보면 의외로 다른 검사 sign과 잘 통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의식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한 심리검사의 sign을 해석할 때에는 이 방법을 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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