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신혼 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례사 1위로 5분 이내에 끝내는 간략한 주례사가 뽑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추세에 발맞춰 저도 5분 이내에 끝내고 주례 잘 모셨다는 인사 한번 들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딱 4가지입니다. 이래놓고 한 말씀 더 한 말씀 더, 이런 짓은 안 하겠습니다. 정말 딱 4가지만 말씀드리죠.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내용은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정도 아닙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를 잃으면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첫 번째 말씀은 바로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무조건 상대방 배우자의 편이 되십시오. 부모도 자식도 형제자매도 배우자의 앞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혈육의 인연과 정은 쉽게 끊어지지 않지만 부부가 쌓은 신뢰의 성은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배우자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왜 무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만큼 가까워서요? 아닙니다. 헤어지면 아무 사이도 아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배우자의 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배우자는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응원군을 원하지 정의의 재판관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말씀 역시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무조건 배우자의 편이 되라는 말은 총론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말씀은 각론에 해당합니다. 실천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주 쉽습니다.
어설픈 마음 읽기를 하지 말고 무조건 사실을 말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에게 사기를 칠 의도로 행한 적극적인 거짓말만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보를 모두 알리지 않는 소극적인 거짓말도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그 빈자리를 추론과 마음 읽기로 메워야 하는데 여기에서부터 오해와 왜곡이 발생하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사실을 숨기는 것도 하지 마세요. 책임은 자신이 지되 배우자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만큼은 완전히 투명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앞서 두 가지의 말씀은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를 쌓고 지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부부 사이를 붙여놓는 접착제와 같은 것들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부터 드릴 말씀은 부부 사이를 떼어놓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의 내용과 사뭇 다르다고 생각되어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큰 맥락에서 다른 말은 아닙니다.
바로 독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싱글의 삶이 끝나고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밀착된 삶이 새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는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개인으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희생하지 말고 배우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희생을 미화하고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댓가가 없는 희생이라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희생은 항상 기대를 낳습니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기대라면 괜찮겠지 싶겠지만 사실은 그게 더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가 열심히 내조하면 내 고마움을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가 좌절되었을 경우 더 큰 분노를 생성하게 됩니다. 그러니 희생하지 마시고 기대하지 마시고
배우자가 없었다면 어차피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이니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하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러려면 뭐하러 결혼하느냐고 묻는 분이 계셔서 그 차이를 설명하는게 참 쉽지 않지만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주도적으로 살면 배우자의 사랑과 존경은 저절로 얻게 된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오히려 고난도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도 독립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보통 결혼을 하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이 재정 관리를 전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용돈을 받아서 쓰는 사람은 항상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고 전담하는 사람도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지출을 극도로 억제하게 되니 욕구 불만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재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으면 용돈을 받아서 쓰는 사람은 재정 상태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결혼을 하더라도 독립 채산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자분들께서 반발하시는데 과연 재정을 관리하면서 본인에게 득 되는 일이 뭐가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장품이라도 돈 걱정 안 하고 제대로 사신 적이 있던가요? 알뜰살뜰 모아서 집 마련했다고 누가 제대로 알아주던가요?
요점은 니 돈 내 돈 나누자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재정 관리 능력을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 반드시 가계부를 써야 합니다.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서 미래의 재정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가정의 빚이 얼마인지, 수입이 얼마인지, 지출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미래 계획을 세운다는게 어디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꼭 가계부를 쓰십시오. 재정 전문가들이 그럽디다. 가계부를 쓰는 것만으로도 생활비가 30% 정도 감소한다고요.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득이 되는 것이 가계부 쓰기입니다.
신혼 부부를 앞에 두고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는 둥, 니 돈은 니 돈 내 돈은 내돈으로 살라는 둥 다소 생경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이니 그냥 객적은 소리이겠거니 하고 넘기지 마시고 한번쯤 신중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5분이 지난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주례사를 끝내려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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