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전공자들에게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 없어서 안 하지만 제가 상담자들을 만나는 자리(강의, 수퍼비전, 세미나 등)마다 매번 마르고 닳도록 말씀드리는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공부를 해야 하고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바로
정신병리학과 정신의학진단체계입니다.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니 결국은 정신의학(더 깊게는 정신약물학까지)을 공부하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제가 수련받던 당시와 달리 상담 분야에 계신 전문가들도 이제는 심리평가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눈을 떴기 때문에 심리검사도구에 대해서는 공부하려 하고 활용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에 대해서는 그걸 꼭 배워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상담과 임상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어 증상이 심하고 진단을 받아서 약물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는 병원에 가고, 심리적인 문제만 있고 그 정도 역시 심하지 않아 상담으로 충분히 치유가 가능한 '내담자'는 상담 기관으로 왔기 때문에 굳이 정신병리학이나 정신의학진단편람을 공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상담의 수요가 폭증하여 상담자의 공급이 달리는 것과 맞물려 병원과 상담 기관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많이 약해져서 약물 치료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대인 관계 갈등이나 부적응 등의 문제로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병원에 많이 갑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점점 임상심리학자에게 심리치료의 영역을 개방하는 추세입니다(제가 수련받던 당시만 해도 병원에서 임상심리학자가 할 수 있었던 건 의사가 리드하는 집단상담의 co-therapist로 들어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담 현장에는 점점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한 '환자'군이 늘고 있습니다. 살기가 힘들어지고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점점 더 고갈되어 그런 것인지, 상담의 대중화로 인해 그동안 대증 요법에만 기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위해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담만으로는 치유의 한계가 있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심리평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상담자들에게 물어보면 조현병(과거의 정신분열병)인 것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내담자가 너무나 많아져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심리평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답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만큼 정신병리적인 지식과 진단 기준을 알아야 사례 개념화를 할 수 있는 내담자의 수가 만만치 않게 많아졌다는 것이죠.
상담자가 정신의학을 공부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미 병원 등 다른 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들이 찾아올 경우 진단서, 의료 기록, 병력 청취 등을 통해 어떤 문제로 그동안 치료를 받아왔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자면 정신병리학에 대한 지식이나 진단 기준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DSM과 같은 정신진단편람을 임상심리학자만 익혀야 하는 시대는 이미 가고 있습니다. 물론 상담가와 임상심리학자의 직능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일부 기관에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상당한 불편을 느낄테고 상담자가 직접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진단편람에 의거해 진단까지 해야 하는 기관으로 옮길 수가 없을테니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임상심리학자들이 상담을 공부해야 하는 만큼 상담심리학자들이 심리평가, 정신의학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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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은 모임을 주재하는 리더가 있는 치료적 모임입니다. 상담이 수다가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치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담자의 존재가 중요하기도 하고 반대로 상호 역동이 상담자를 중심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관찰자, 주변인의 역할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쉽지 않은 치료 모임입니다.
상담자가 지나치게 개입하게 되면 일방적인 강의나 교육이 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모든 상호 작용이 상담자를 중심으로 방사성 모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담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리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내담자들이 상담자의 눈치를 보게 되죠.
반대로 상담자가 방관자의 역할에만 머무르면 집단원 간의 소모적인 말다툼이나 의견 차이를 제지하지 않음으로써 치료적인 효과는 반감되고 실망한 일부 내담자가 이탈함으로써 집단의 milieu가 깨지기도 합니다.
특히 도박중독 집단상담은 거의 대부분의 상담자가 도박중독자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담자 대 나머지 내담자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중독 집단상담을 이끄는 상담자가 어떤 stance를 취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이끄는 집단상담을 자동차 튜닝 동호회로 비유합니다.
'도박중독이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타는 것과 같다'고 개인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인 상담이 완료된 후에 참가한 집단상담을 자동차 튜닝 동호회로 비유하면 제가 의뢰한 내담자는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번에 알아들습니다.
이 튜닝 동호회에서 상담자는 운영자와 마찬가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자동차 튜닝 욕심에는 끝이 없죠. 100% 완벽한 치유는 없다는 걸 인정하고 완벽하게 튜닝하려는 동호회원들의 불안을 다루어주고 밸런스에 집중하도록 가볍게 조언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운영자는 동호회의 운영에만 신경쓰면 됩니다. 각각의 자동차는 소유주인 동호회원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니까요. 도박중독 집단상담의 상담자도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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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학사는 주로 정신의학 분야의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합니다. 디자인이나 판형 등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아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는 출판사는 아니지만 간혹 좋은 책을 내고 있어 출판 목록을 유심히 참고하기는 합니다.
Irvin D. Yalom이 Molyn Leszcz와 함께 쓴 이 책은 집단 심리치료내지는 집단 상담의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의 책입니다. 2005년에 개정판 5판이 나왔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번역도 상담 분야에서는 모르는 분이 별로 없는 최해림, 장성숙 선생님이 하셔서 꽤 매끄럽게 읽히는 편입니다.
집단상담이나 집단치료를 하는 임상가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셔야 하고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집단을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그랬습니다. 다른 도움을 받지 않고 집단을 구성하고 지금도 집단 상담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이 책은 집단상담/집단치료의 A to Z를 제대로 담아낸 책입니다.
개인 상담이나 개인 심리치료에 비해 집단상담/집단치료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참석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집단은 '사회적 실험실'이며 안전한 환경에서 지지를 받으며 각 집단원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해결 방법을 탐색하고 마음껏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집단 상담자는 과정의 촉진자로써 집단의 역동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방금 이야기한 집단상담/집단치료의 치료적 요인들, 상담자의 과업, 집단원의 선발 및 집단의 구성, 집단 만들기, 집단의 발전, 상황을 악화시키는 문제 요인들에 대해 꼼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집단을 이끌었던 Yalom의 노하우와 정수가 제대로 담겨 있어 매 장, 매 줄이 귀중한 정보로 가득합니다. 집단상담이나 집단치료를 이끌고 있거나 향후 계획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셔야 하고 개인적으로 소장을 추천하는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37,000원에 달하는 후덜덜한 가격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출판사에서 마음대로 '최신'이라는 낚시용 제목을 덧붙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워낙 좋은 책이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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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신건강과 관련된 현장의 실태는 이렇습니다.
정신과 의사들 이외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 심리치료를 허락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에 발목이 묶여 있는 동안 정작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만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심리치료 및 상담 영역은 퇴보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작금의 실태에 대한 정신의학계 원로들의 개탄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자성의 목소리로 인해 변화의 낌새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회의적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작 중요한 내담자의 권리와 사생활 보호, 상담자의 윤리관, 가치관 문제 등이 소홀하게 취급될 수 밖에 없습니다. 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임상 심리학회만 하더라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session이 한번도 없었으며 최근에서야 겨우 치료자의 직접 윤리에 대해 routine한 교육 과정을 개설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윤리 문제가 적절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임상가들은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필요한 지침서를 읽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척박한 우리나라 임상 윤리 분야의 황무지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제대로 된 윤리 관련 서적이 전무합니다).
심리치료 분야에 발 좀 담궜다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접했을, 그 유명한 Corey 부부가 쓴 이 책은 2007년에 발행된 7판입니다. 그걸 서경현, 정성진 두 분이 번역을 했고요.
그래도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간이기 때문에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윤리적 문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종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이와 역전이 문제 뿐 아니라 상담자의 가치관, 종교관 문제, 다문화적 관점과 다양성의 문제, 비밀 보장 및 사생활 보호 문제, 다중관계 문제, 치료자의 자격과 수련 문제, supervision 문제,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 부부 및 가족 치료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 집단 상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 등 현장에서 심리치료와 상담을 하는 임상가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윤리 문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개 방식이 참 마음에 드는데 우선 각 장의 맨 처음에 Likert 형 척도를 이용한 자기 점검 문항이 제시됩니다. 이 문항에 나름대로 답을 하면서 앞으로 소개될 내용의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예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윤리적 딜레마를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 사례 제시가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무릎을 칠 정도로 안성맞춤입니다. 그리고 말미에는 각 장의 내용 요약과 함께 role playing을 통해 그 장에서 다룬 내용을 실습할 수 있도록 '추천 활동'을 소개해 놓아서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윤리 문제에 대한 맥을 잡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의료관리체계(managed care system)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공개 문제와 다문화적 관점을 다룬 부분은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25,000 원이라는, 학생들은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책값 뿐입니다.
소장까지는 권장하지 않지만 현장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을 담당하는 전문가라면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읽어보셔야 하는 책입니다. 빌려서라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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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은 절충-통합적 접근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치료 방법을 가리지는 않습니다. 치료만 된다면 기본적인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거의 모든 치료 기법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집단치료는 여러가지 면에서 별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도박중독자의 특성 상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집단치료를 치료자가 적극적으로 권유해도 받아들이는 도박자가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2004년에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한국형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치료 효과 검증을 위해 집단 치료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끌고 가느라고 아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집단 치료 이후에 생긴 후유증을 각 치료자가 개인 치료에서 해결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또한 하위 유형이 다양하지 않고 차이점이 별로 없는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과 달리 도박중독은 도박의 종류와 합법/불법 여부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유형이 있고 자칫하면 감옥에서 새로운 범죄 기법을 배우듯이 새로운 도박에 대한 학습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통제하자면 집단 역동을 manage해 본 경험이 풍부한 집단 상담자가 필요한데 현재 국내에는 도박중독 집단치료전문가가 한명도 없습니다.
기법 면에서도 다른 중독에 비해 도박중독의 집단치료기법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으며 workbook 하나 변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실정으로 인해 간판은 집단상담 혹은 집단치료를 걸더라도 실제 내용은 집단 강의나 집단 교육을 하게 되는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그건 집단치료가 아닙니다.
실제로 적용하기에도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집단치료이니 여러 사람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아야 하는데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도박중독자를 한 자리에 모으려면 주말 시간에만 가능한데 대부분의 치료 기관은 주말에 문을 열지 않습니다. 따라서 11월부터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 매주 화요일 3시에 실시하는 집단상담프로그램은 제가 장담하는데 개점 휴업 상태가 될 겁니다(웃기는 것은 가족교육프로그램은 수요일 저녁 7시에 실시하더군요. 가족들의 경우는 대부분 평일 낮시간에도 참여할 수 있는데 말이죠. 효과를 보려면 집단상담프로그램과 시간을 바꿔야죠. 뭘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티가 팍팍 납니다).
물론 평일 낮 시간에 실시하기 위해 거주 시설에 등록된 도박자를 대상으로 할 수 있겠으나 도박자를 위한 거주 시설의 설립 목적이 직업 재활을 통한 사회 재적응이므로 낮 시간에는 직업 교육을 받거나 구직 활동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용이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역시 내년에 광역시 별로 시범적으로 설치할 거주 시설에서도 생각보다 집단치료의 실효성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도박중독의 집단치료는 충분한 준비를 거쳐 신중하게 실시해야 하며 지금과 같이 실적 위주의 날림 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치료인지 명심해야 합니다. 도박중독자를 위한 치료가 되어야지, 실적을 위한 치료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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