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동/청소년 사례 supervision을 할 때 입이 닳도록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절대로 부모의 문제를 간과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양 부모가 모두 건강한데 자녀만 유독 문제가 있었던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더군요.
아동/청소년을 평가할 때 부모도 포함시켜 심리평가를 해 보면 거의 대부분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자녀보다 부모에게 더 심각한 문제가 있죠. 그래서 상담/심리치료의 초점이 자녀가 아닌 부모가 될 때도 많습니다. 어찌 보면 자녀는 부모를 포함한 가정 내의 문제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부모 개개인에 대한 개입이 중요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동/청소년은 부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니 부모-자녀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부모를 대상으로 한 부모 교육(양육 코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모 교육(양육 코칭)에서 제가 깨달은 몇 가지 원칙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잘못을 지적하는 건 (전혀) 효과 없다
: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지적은 변화 동기가 높은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효과가 있고 안타깝게도 부모 교육을 받으러 온 부모들은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괜히 기분만 상하게 해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부모-자녀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부모가 잘못한 게 맞다 한들 잘못을 지적하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특히 원 가족의 역동을 현 가정에서 재현하는 부모에게는 역효과가 더 커집니다. 그러니 하지 마세요.
2. 잘하고 있는 걸 칭찬하는 것도 (거의) 효과 없다
: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잘하고 있는 걸 칭찬하는 건 어떨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경우가 있는데 1) 이미 상담자의 의도를 의심하고 온 부모는 상담자의 칭찬을 믿지 않으며, 2)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부모는 자신이 못하고 있는 걸 감추려고 일부러 방어적으로 그런 척 할 수 있으며, 3) 자신이 잘 하고 있다는 걸 아는 부모는 어차피 상담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지 마세요.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걸 칭찬하는 것도 효과가 없다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당연히) 잘 해야 하지만 잘 못하고 있는 걸 알게 하면 됩니다. 왜 '알려주면'이 아니라 '알게 하면'이라고 표현했냐 하면 '너 이거 잘 모르지? 내가 알려줄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1번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잘 알고 계시겠지만'이라는 전제 하에 넌지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전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채찍질'이 아닌 '당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부터 채찍질을 당하고 자라서인지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고 벌 주는 건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그래서 그 영역은 건드릴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도와줘야 할 부분은 균형을 찾는 겁니다. 바로 '당근' 전략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부모들은 당근을 받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백지 상태나 다름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 당근을 원하는지, 자기 자녀가 어떤 기질이어서 어떤 당근이 잘 먹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이 때, 채찍질이 너무 과도하니 좀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지만 채찍질을 줄이라고 하면 다시 1번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근을 주려고 하면 채찍질을 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채찍질을 줄이기 위해 부모와 밀당하지 마시고 당근을 늘리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이제 당근 이야기를 하는 중요한 전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너 이거 잘 모르지? 내가 알려줄께'가 아닌 '이미 잘 하고 계시겠지만'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와 놀이를 하는 시간대가 언제인가요?"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아이와 매일 놀아주고 계실테니'라는 전제를 깔고 물어보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이 부모가 아이와 전혀 놀아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이런 전체 하에 이야기를 해야지만 부모가 '아이들과 매일 놀아주는 게 부모가 꼭 해야 하는 일인건가? 이 상담자는 놀아주는 걸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또 한 가지는 당근 이야기를 할 때 당근의 종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역시나 '이미 잘 하고 계시겠지만' 전제를 깔고 이야기해야 하고요. "아이와 놀아주실 때 소꿉 장난처럼 역할 놀이를 더 많이 하시나요. 씨름 같은 신체적 놀이를 더 많이 하시나요?"라는 식으로 물어봅니다. 물론 당연히 이 질문을 하는 부모는 둘 다 안 할 겁니다. 그러니 둘 다 해야 하고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이 아이의 기질이나 욕구에 맞는 놀이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자극을 주는 겁니다.
이처럼 채찍질과 당근의 균형을 맞추되 항상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이라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해야만 부모들의 방어막을 우회하여 우리가 원하는 당근 전략을 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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