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도발적인 점 미리 양해 말씀 드립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 가족 상담처럼 아예 처음부터 한 상담자가 한 명 이상의 내담자를 봐야 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동/청소년 상담인데요. 상담의 시작은 아동/청소년이지만 단순히 부모 교육 차원이 아니라 부모도 개인 상담을 받아야 하는 수준으로 판명되는 게 부지기수거든요.
이 때 현재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위시한 대부부의 상담 기관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여 각기 다른 상담자에게 배정합니다. 제가 알기로 표면적인 이유는 상담자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런 방식의 접근에 반대합니다. 물론 저는 상담자가 자신의 비전문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관련 내담자의 상담을 본인이 책임지고 심리평가(검사 도구의 선정, 실시 타이밍 선택 등) 일체도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소 극단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최소한 부모, 자녀가 함께 상담을 받게 된다면 한 명의 상담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관계가 연결된 내담자들을 다른 상담자에게 배정하는 건 기계적인 중립성에 대한 집착이고 심하게 말하자면 상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다분히 기관 방어 위주의 정책입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수검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죠. 저는 그런 방어 위주의 정책이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건 내담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담이 아니에요.
사실 상담자의 중립성만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개념도 많지 않습니다. 상담자의 중립성은 노력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이 아닙니다. 심하게 말하면 저는 상담자의 중립성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설사 그렇게 지켜진 중립성이 내담자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상담자의 중립성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다면 우리는 전이-역전이 분석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일까요? 상담자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켜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도 복수의 상담자를 두는 건 현실적인 면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외부 상담자라면 아예 정보가 차단될 것이고 기관 내 다른 상담자라고 해도 상담자 간 긴밀한 의사소통체계가 없으면 중요 정보가 누락되거나 타이밍을 놓치기 쉽습니다. 게다가 상담자의 치료적 배경이나 접근법이 상이하다면 엇박자가 나기 쉽습니다. 문제 해결 중심 상담자가 부인을, 이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목회 상담자가 남편을 맡아 개인 상담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죠. 이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상담자가 다루기 어려운 전문적인 문제가 분명 있을 수 있죠. 성폭력 외상이나 도박 중독, 혹은 종교적 문제 등의 문제라면 관련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한 명의 상담자가 최소한의 개인 상담을 담당해야 전체 상담 과정을 조망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간혹 부모-자녀 관계를 한 명의 상담자가 다룰 때 자녀와 부모가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상담자를 끌어들이면 어떻게 하냐, 중립을 지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이 계신데 그 건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아닙니다. 약자의 편(이 때는 아동/청소년 자녀)을 들어야 하는 경우죠. 부모가 자신의 가치 기준을 강요하면서 자녀를 억압, 또는 학대할 때 중립을 고집하는 건 내담자의 고통을 방기하는 직무 유기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자들께 한 말씀 드리면, 엮여 있는 갈등이 심하고 도저히 다룰 수 없을 것처럼 역동이 복잡할 때 그 틈바구니에서 버티는 게 힘들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내담자만(대개는 다루기 쉽다고 판단되는) 상담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신감을 잃고 무력감에 빠질 겁니다. 왜냐하면 '아웃소싱'한 내담자에 대한 통제력과 정보를 잃게 되거든요. 이건 눈가리고 수술하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휘몰아치는 갈등의 폭풍 속에서 버텨야 합니다. 그게 내담자를 위한 선택이니까요. 모든 상담은 내담자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기관의 안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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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지만 반대로 아동/청소년은 부모의 권유나 강요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올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도 그렇고 심리평가도 그렇고 아동/청소년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충분한 orientation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아동/청소년 상담의 또 한가지 특징은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는 겁니다. 저는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PCRP를 default 값으로 가정하고 살펴보라고 할 정도로 부모 자녀 관계 문제가 기본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부모 자녀 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압도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상담의 효과가 제한되기 쉽죠. 상담자가 아동/청소년과 어렵게 라포를 형성하고 치료적 동맹 하에서 함께 노력하더라도 부모는 이를 단번에 좌절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자가 상담 초기부터 부모를 최대한 개입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의뢰 단계에서부터 부모님의 적극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심리평가의 해석 상담 시에도 부모님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특별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많은 현장에서 부모가 상담 자체를 싫어해서, 심정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상담을 받고는 싶지만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상담자와 정기적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가 동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는 아동/청소년 분야의 상담자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부모가 함께 오지 않으면 자녀의 변화 책임은 오로지 상담자에게 부과되고 이러한 부담은 상담자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제한하게 되죠.
부모가 정기적으로 상담자를 만나지 못하는 모든 경우에도 상담자는 부모에 대한 심리평가를 통해 간접적인 개입 방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선별심리평가에서도 아동/청소년 뿐 아니라 양 부모 모두에 대해 MMPI-2와 TCI를 최대한 실시하려고 노력하는데 양 부모의 기질/성격과 정서 상태에 대한 정보만 갖고 있어도 아동/청소년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누구를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끌어들여야 하는지, 어떤 부모가 부모 교육에 더 잘 반응하는지, 어떤 부모에게 개인 상담을 권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정리해 보자면,
1. 아동/청소년 상담에서는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기본으로 깔려 있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2. 상담 초기부터 부모의 적극적인 협조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상담 또는 부모 교육을 강력히 권유한다
3. 부모가 여러 이유로 상담을 꺼리는 경우 선별심리평가라도 실시해서 양 부모의 검사 결과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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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상담을 하거나 상담 케이스를 supervision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세상에는 정말 병든 부모가 많더군요. 대표적인 게 근친 성폭력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심한 경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는 부모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그럴 때마다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충격적인 사례를 만나곤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부모라면 절대로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버리겠다는 협박
제가 어렸을 적에도 아이들이 말을 듣게 하려고 다리 밑에 사는 거지들에게 갖다 버리겠다고 하거나 집 밖으로 내쫓겠다면서 어른들이 협박을 하곤 했었죠. 추운 겨울에 신발도 제대로 못 신은 채 쫓겨나 어디 가지도 못한 채 대문 밖에서 덜덜 떨다가 어머니가 몰래 들여보내줘서 구들장 밑에서 언 발을 주무르다 잠이 들었다는 일화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나고요.
어른들은 어른 말 어려운 줄 깨닫게 하려고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농담으로라도 절대로 버리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자 생존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건 곧 죽으라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습니다. 이혼을 앞둔 가정에서 자신들이 누구랑 사는지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유가 엄마, 아빠의 애정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자신을 돌봐줄 지 점검해야만 하는 절박감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고 지켜주겠다는 말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게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말, 다 큰 어른이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 아닙니까?
2. 상처받은(실패한) 자녀 탓하기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차였을 때, 목표했던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때, 어렵게 준비했던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때, 마음 잡고 공부했으나 원했던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았을 때.... 등등 아이들이 상처받는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자녀가 기대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걸 보는 건 부모에게도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부모일수록 그런 열패감과 좌절감이 더 크겠죠.
그렇다고 해도 상처받은 자녀의 탓을 하는 것 만큼은 부모라면 절대로 피해야 하는 일입니다. "네가 조금만 더 노력했어도~", "네가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네가 나만큼만 머리가 좋았어도~", "그러게 더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와 같은 말은 자녀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혀 그대로 뼛속까지 얼려 버립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두터운 얼음벽이 가로막히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집 밖으로 쫓아내는 것 같은 냉혹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패와 좌절은 아쉽지만 기회는 또 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그 때 자신의 편을 들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비난했던 부모를 용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처의 경험을 딛고 신뢰를 다시 쌓는 것도 역시 쉽지 않고요. 그러니 실패와 상처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자녀의 편이 되어 주세요.
3. 편애의 노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자식이 다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덜 아픈 손가락도 있는 법입니다. 그냥 마음이 더 가고, 예쁘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자식이 있는 반면, 뭘 해도 안심이 되지 않고, 못마땅하며, 눈에 차지 않는 자식도 있게 마련이죠.
여러 자녀가 있을 때 더 사랑스러운 자녀와 덜 사랑스러운 자녀가 저절로 가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문제는 편애하는 자식의 존재 여부가 아닙니다. 그런 편애가 당사자인 자녀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편애를 받는 자녀는 일시적으로 우쭐할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편애를 받지 못하는 자녀와 관계가 불편해집니다. 또한 편애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녀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부모가 원치 않는 방향의 행동을 함으로써 '파괴적인 관심끌기'에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편애의 노출은 편애를 받는 자녀이든, 편애를 받지 못한 자녀이든 간에 모든 자녀에게 해롭습니다. 사실 편애를 감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어떻게든 티가 나게 마련이죠), 그래도 최선을 다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로 많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들도 참 많고요.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버리겠다는 협박, 상처받은 자녀 탓하기, 편애의 노출)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렵다면 최소한 나쁜 부모라도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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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만나는 내담자가 특정한 대상에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특수한 유형의 내담자들을 주로 만나는 상담자라고 해도 이직을 해서 다른 세팅으로 옮기거나 개업을 하게 되거나 하면 다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러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다양한 내담자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요?
제가 사용하는 호칭법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학생 이상 성인의 경우는 ~님으로 통일하고 미성년의 경우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지만 대신 말높임을 합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하려는 노력인데요.
다른 상담자들도 대체로 저처럼 내담자를 호칭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이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EAP 사내 상담을 하는 경우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상담하면 full name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보다는 ~대리님, ~차장님 등의 직책으로 호칭하기 쉽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 상담을 할 때 부모를 함께 상담하는 경우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칭하기 쉽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상담에 임하는 내담자의 마음도, 상담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와 내용 모두 관계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 제약의 틀이 상당히 견고한데 사내 상담에서 ~차장님이라고 계속 불리는 상태에서는 내담자가 중간 관리자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상담의 내용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고 ~어머님으로 불리는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 문제나 원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성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관계지향문화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약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무런 관계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라도 full name으로 호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내담자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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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어서 도움을 구하고자 자발적으로 상담 기관을 찾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대개 부모나 보호자에게 이끌려 비자발적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상담자도 성인이다보니 어른에 대해 적대감 또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은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 상담을 나오지만 곧 어떻게든 상담을 피하려 합니다.
그나마 부모나 보호자가 상담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서 상담 때마다 동반하거나 상담이 지속되도록 신경을 써 준다면 상담자가 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어렵다면 상담자 한 사람만의 힘으로 상담을 지속해 나가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예약된 시간에 늦게 나오는 걸로 시작해서 점차 시험이나 학원 등의 핑계를 대면서 상담을 미루게 되고 나중에는 연락 없이 상담을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상담자가 보호자에게 통보하기도 하고 청소년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상담을 지속하고자 하는 인식이 전혀 없을 때는 결국 조기 종결하게 됩니다.
이럴 때 많은 상담자들이 조기 종결을 그냥 손놓고 방치하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보호자, 청소년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등의 조치를 했는데도 상담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걸 어쩌란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상담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흐지부지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한 명의 상담자가 한 내담자를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통제못할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상담을 정상적으로 종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한번은 방문을 하도록 설득을 해서 내담자와 얼굴을 마주 보고 종결 상담을 통해 상담을 끝내야 합니다.
최소한 한 명의 어른이라도 자신을 돕기 위해 끝까지 애썼다는 사실을 청소년 내담자가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부족해서, 동기가 없어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등등의 이유로 상담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해도 나중에 다른 상담자를 통해 지금보다는 좀 더 쉽게 상담을 재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기 종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종결 상담은 내담자의 얼굴을 직접 본 상태에서 진행하도록 최선을 다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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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서 기본적인 신뢰감의 재구축을 통한 라포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담이 그렇지만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는 그야말로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해서 저는 아동이나 청소년을 상담할 때는 거의 규칙이 없다시피 허용적으로 대하는 편입니다.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경우에는 상담을 할 때 의자에 눕는 것도 허용(똑바로 앉아서 어른과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큰 아동이거든요)하고, 예전에는 공부 압박에 시달려 너무 피곤해 하는 고등학생을 상담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도록 한 적도 있습니다. 상담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면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보드 게임을 하는 건 일상이고요.
상담에도 기본적인 예의는 필요하니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바른 자세로 마주 앉아 눈맞춤을 하면서 격식을 지켜가며(은어와 비속어를 자제하면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가 있다면 그게 정말 상담자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내담자를 위한 상담 규칙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 것을 제안드립니다.
어쨌거나 상담 중 거의 대부분의 행동을 인정하는 저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모바일 기기의 사용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connection)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이 끊긴다면 그건 이미 상담이 아닙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활동을 하는 것 뿐이죠.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보다는 차라리 온라인 화상 상담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청소년 상담 도중에 꼭 지켜야 할 규칙을 하나만 꼽으라면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합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자와 계속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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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내담자는 대체로 자신의 정서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상담자가 내담자의 정서 상태를 알아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경우에는 정서 분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거나 어휘력의 부족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제대로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다보니 상담자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내담자의 행동에 치중하게 되고 숙련된 상담자도 인지와 사고 내용만을 중심으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동/청소년이라고 해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 중 사용하는 감정 단어를 그냥 흘려 듣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동/청소년(특히 청소년) 내담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정 단어는 '죽겠다'인데 보통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힘들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민망해 죽겠다'라고 구체적인 감정과 연결해 사용되면 그나마 알아듣기 편하지만 앞의 내용은 생략되고 그냥 '죽겠다'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내담자가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죽겠다'를 사용할 때는
앞에 생략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할 때입니다. 구체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말고 공감, 경청, 반영 등으로 다뤄야 합니다. 게다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아동/청소년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의 affection need를 충족시켜주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 중 '죽겠다'는 감정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우선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게 아니라면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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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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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정서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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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경북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인 김춘경 선생님은 상담과 관련된 책의 저작, 번역으로 이름이 꽤 알려진 분입니다. 다작하는 사람들 중 한 분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분이 번역한 책들 중에서 재미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마음에게 들려주는 101가지 이야기'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월덴 3에도 소개한 바 있는
'상담기법(2003)'과
'상담 및 심리치료의 이해(2000)' 모두 별로였습니다. 읽은 시간이 아까운 수준이었거든요. 제 평가도 아주 박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심 또 시간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더군요. 최고로 좋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소장해도 좋을 정도의 책 중 하나입니다. 내막을 알고 보니 김춘경 선생님이 Adlerian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기반을 갖고 계신 분이더군요. 역시 자기가 잘 아는 영역이라야 책을 쓰든 번역을 하든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죠.
이 책은 Adler 입문서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Adler의 개인심리학은 교류분석(TA), 실존치료, 현실치료, 인간중심치료, REBT, 해결중심단기치료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Adler 학파의 역사와 이론 소개, 2부는 본격적인 기술과 전략 소개, 3부는 다양한 영역에 어떻게 Adler 식의 치료 기법을 적용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 영역도 '아동 상담과 청소년 상담', '노인 상담', '건강 상담', '집단 상담', '단기 치료', '가족 치료', '부부 치료' 등 대부분의 임상 영역을 거의 망라하고 있죠.
번역도 잘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책 자체가 아주 쉽게 잘 씌어 있어 Adler의 개인 심리학적 접근이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서 구현되는지 궁금한 분들의 기대에 호응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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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ler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치료적 초점: 개인의 생활양식 신념. 생활양식 신념은 개인의 인지구조를 구성하며 자기, 세계, 자기 이상에 대한 신념과 윤리적 신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 Adler의 자기 심리학에서 상담자의 역할: 명백히 비중립적이며 오히려 치료 과정에 참여하는 관찰자임* Adler 상담의 원칙: 사회목적론적 관점. 모든 행동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찾는다. 개인 심리학은 증상을 제거하는 것과 행동양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담자가 주위환경의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내담자에게 이해시키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 Adler 학파에서는 낙담한 사람들에게 자기 내면을 보는 대신에 외부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것을 제안한다. 사회적 관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자기 흥미, 자기 자신만의 이익이나 현재의 낙담된 위치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 Adler 학파에서는 내담자의 결점과 약점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상담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격려이다. 격려받은 내담자는 신념, 감정, 목표, 그리고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신의 강점과 개인적인 힘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 Adler 학파에서는 신념이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즉, 부끄럽다는 당신의 신념이 쑥스러운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 Adler 상담에서 사용하는 기적 질문: 만약 당신이 좋아진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나는 일하러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거나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신체적 증상으로 무엇인가 회피하려고 한다는 의미.* Adler 학파는 행동수정체계가 아니라 동기수정체계. 즉, 태도, 신념, 지각, 그리고 목표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그 변화로 인해 행동 또한 변하게 될 것으로 보는 것* Adler 상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치료 전략: 즉시성, 격려, 역설적 의도, 내담자 스프에 침뱉기,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 자기 모습 파악하기, 변화 창조하기, 과제설정과 이행, 인터뷰 종결과 요약하기* 내담자에게 Adler식 상담 요약 시키기 : "나는 ~을 배웠어요"* Adler식 상담에서 부모 교육의 첫 번째 단계는 아동의 그릇된 행동 목표 네 가지를 이해하는 것: 관심, 힘, 복수, 부적절함의 표시
덧. 2004년에 나온 책은 'Adler 상담 및 심리치료 : 개인심리학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제목이었는데 2005년에 곧바로 개정판이 나오면서 제목이 'Adler 상담과 심리치료'로 바뀌었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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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가 보고하는 문제는 핵심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부모-자녀 관계의 특성 상 객관적인 관찰이 어렵기 때문에 부모 역할에 따른 선입관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둘째, 우리나라 부모들의 경우 공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나머지 자녀의 다른 생활 면에 대한 정보가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를 면담할 때 가장 많이 보고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장 많이 보고하는 내용은 성적입니다.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등등이 주를 이룹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보고하는 내용은 품행 문제입니다. 즉 행동 상의 문제이죠. 부모에게 욕설을 하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한다, 또래와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툼이 잦다, 학교에 가면 늘 말썽을 부려 혼이 난다 등등.
부모가 보고하는 내용은 핵심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은 핵심 문제로 야기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공부 문제를 보고하는 이유는 부모의 주된 관심사가 공부이기 때문이며 품행 문제를 보고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눈에 잘 띄는 두드러진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관찰자로서의 부모 보고에 대한 신뢰도만 점검하지 말고 부모가 보고하는 문제가 핵심 문제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표면적인 문제 이면에 자리잡은 핵심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이 때 핵심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공부나 품행 문제를 무시하지 말고 핵심 문제와의 관련성이라든가 표면적인 문제가 핵심 문제를 드러내는 기제로 사용되지는 않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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