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아마존닷컴
1998년에 나왔으니 15년이 넘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책 아니냐고 우습게 보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임상/상담 수련 과정을 위한 교과서 중 감히 최고라고 평가하는 책입니다.
최근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걸 대학원 때나 수련 1년차 때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배가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캐나다 Manitoba 대학 교수들을 주요 집필진으로 해서 David Martin과 Allan Moore가 엮었는데 그야말로 임상/상담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모든 것을 집대성 해 놓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면서도 친절하게요.
내용을 간략하게 함께 살펴보죠.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 Foundations
2. Phases of Therapy
3. Client Populations
4. Contexts
5. Therapists' Considerations
1부는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에서는 empathy와 sympathy의 차이, 경청, 현존 같은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고 2장에서는 치료 관계, 라포 형성하기, 전이와 역전이 등 관계에 대한 issue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심리치료의 국면에 대한 내용을 5개의 장에 할애하고 있는데 3장에서는 초기 면접에 대해서, 4장에서는 심리평가, 5장에서는 초보 상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 6장에서는 자살 위험성 평가와 개입, 7장에서는 종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부 역시 5개의 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주요 내담자를 유형 별로 다루고 있습니다. 8장에서는 아동, 9장에서는 청소년, 10장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 11장에서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내담자들, 12장에서는 비자발적인 내담자들을 어떻게 상담하는지 알려줍니다.
4부도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에서는 현장 및 치료의 유형 별로 임상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죠. 13장에서는 학교 상담실, 14장에서는 가족 치료에 대해서, 15장에서는 집단 치료, 16장은 법적, 윤리적 문제, 17장은 비교 문화적 상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5부에도 5개의 장이 있는데 임상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사안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8장에서는 임상 수련에서 살아남는 방법, 19장에서는 수퍼비전과 관련된 모든 것들, 20장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를 비롯한 각종 보고서 쓰기, 21장은 심신의 안녕과 관련된 이슈들, 마지막으로 22장은 임상 수련 모델의 시조가 되는 임상가들을 리뷰하고 있죠.
각 부분을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려면 당연히 세부 전문 서적을 따로 읽어야 하겠지만 임상 수련 과정의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로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게다가 총 5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22개의 장으로 잘게 쪼개 놓았기 때문에 나눠서 읽기에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제가 특히 마음에 드는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주 쉬운 영어로 쓰여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원서 중 이해가 잘 되는 순서로만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이 정도의 원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학도라면 앞으로 공부하는데 애로가 꽃필거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하는 추천 대상은 임상/상담 대학원생 등 임상/상담 수련을 앞둔 분들입니다. 1년차들도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덧. 아마존에서 2월 말까지 무료 배송(35불 이상인 경우)하고 있으니 45.55$이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돈값은 확실히 하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515
제가 초보 상담자일 때 빠져 있던 착각 중 하나는 상담을 하는 동안에 내담자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필요한 말과 쓸데없는 말을 잘 분류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 정신을 쏟아서 상담에 임해도 정작 중요한 공감과 경청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두뇌 과열로 하루 일과를 마치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죠.
그런데 내담자가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상담자에게 보내는 신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내담자가 하는 말에 쓸데없는 건 없다는 걸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대찌개를 먹을 때 소시지가 중요하냐 사리가 더 중요하냐, 가장 필요없는 재료가 무엇이냐를 놓고 따지지 않는 이유는 부대찌개라는 음식에는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다 각기 소중하고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하나의 재료를 통째로 빼면 아무래도 감칠맛이 사라지게 되지요. 때로는 부대찌개라는 고유성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내담자가 상담에서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담자가 하는 말에는 내담자의 인생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그 좋은 머리로 분석해서 쓸데없다고 분류한 내용이 내담자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좀 더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야 할 부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 내담자가 힘들어 하는 부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특수한 상황 묘사가 더 중요할 수는 있어도 아무런 쓸데가 없어 폐기처분해야 하는 말이란 건 없습니다.
그러니 상담자라면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마음을 굴리기 바랍니다.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해하지 말고 음악처럼 이해하세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500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412
상담을 하면서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상담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메모를 하지 않자니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기 벅차고, 혹시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을까 두려워 복기하자니 메모를 해야 한다는 불안이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메모를 하자니 내담자가 취조받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메모를 하는 동안은 짧은 찰나의 순간이기는 해도 눈맞춤이 끊어지고 내담자에게서 나오는 비언어적인 정보를 놓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초보 상담자일수록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예전에 ...라는 글에서 메모는 최소한으로 하라는 조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를 포기할 수 없다면 상담자만 메모를 할거냐 말거냐로 고민하지 말고 좀 더 전향적으로 내담자도 필요하면 메모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실제로 상담자의 말을 적어가고 싶거나 뭔가 통찰을 얻었을 때 곧바로 메모를 하고 싶어하는 내담자가 적지 않으나 상담 장면에서는 상담자만 메모를 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하고 메모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조차 못하는 내담자가 많습니다.
훈련받은 상담자도 상담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의 흐름을 경청으로 따라가면서 요점을 파악하고 요약해서 반영하고, 공감하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내담자가 그걸 기억하고 일상에서 활용하고 연습하고 일상에서 깨달은 걸 다음 상담 때 정리해서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기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에게 언제나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까이 두고 뭔가 이야기 할거리가 생각나면 메모를 해서 상담 시간에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상담 시간에도 자유롭게 메모를 하라고 허용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담자가 메모하는 동안에 끊어지는 상호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담자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메모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지엽적인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핵심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내담자에게도 메모를 허용하는 것이 더 치유적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407
부부를 만나는 상담자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고 또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립니다.
부부 상담을 할 때 상담자가 상담 초반에 부부 모두에게 반드시 orientation해야 하는 내용이죠.
부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상대방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며 비난하고 상담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받고자 합니다.
물론 자신에게는 별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방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배우자일수록 문제가 악화되는데 일조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어쨌거나 초보 상담자는 그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부부 사이를 중재하려고 시도하거나 사실 찾기(fact finding)에 매달리곤 합니다. 조금 더 경험이 있는 상담자라면 일단 부부를 각자 상담하면서 같은 상황에 대한 배우자 각자의 시각 차이를 확인하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부부 상담은 누가 잘못했느냐의 책임 여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의 방법을 찾는 자리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저는 다음과 같은 예를 자주 듭니다(좀 지저분하기는 합니다만 효과는 좋습니다)
"두 분의 집 거실에 탁자만한 크기의 엄청난 똥무더기가 있습니다. 냄새가 진동할 뿐 아니라 파리가 꼬이기 시작하는 심각한 단계이죠. 두 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상담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이 똥을 누가 쌌느냐, 누가 더 많이 쌌느냐 혹은 누가 이것을 치워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치울 것이냐입니다. 이 똥은 반드시 두 분이 힘을 합쳐야만 치울 수 있습니다. 제가 대신 치워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이 순간부터 범인 찾기, 책임자 찾기, 치울 사람 찾기는 그만두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부부 상담은 누가 얼마나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부가 협력하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담 초기에 이 초점 맞추기에 실패하면 상담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부부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