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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람 좋은 상담자라는 말을 듣고 싶으신가요 아님 유능한 상담자라는 평가를 받고 싶으신가요?
좋은 상담자와 유능한 상담자가 같은 의미라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오히려 반대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지요.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심리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을 때 이걸 수검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게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심리평가 결과는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수검자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평가자가 알아낸 사실 그대로 최대한 정직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수검자에게 상처주는 일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되기에 평가자는 최대한 수검자가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만요.
하지만 반대로 평가자가 해석 상담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심리평가 결과 중 수검자에게 상처가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수검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첫 번째 가능한 이유는 '좋은' 상담자이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반대로 보자면 '나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나는 내담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 싫다'는 욕구가 강하면 그럴 수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담자는 친구가 아니며 상담은 수다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치유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고통 없는 치유란 건 불가능한 것이죠. 뼛속깊이 들어찬 고름을 모두 긁어내야 새로운 세포와 조직이 생성되어 새 살이 돋아나듯이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필요합니다. 제가 도박 중독 상담을 할 때 중독자와 자주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박을 멈추고 삶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팔이나 다리 한 짝을 내놓으실 수 있을까요?'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치유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결국 큰 희생을 감수해야 진정한 치유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상처받는 상황을 피하겠다면 결국 치유도 포기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가능한 이유는 내담자가 상처받았을 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상담자 스스로의 불안감 때문입니다. 자신감이 부족한 상담자일수록 그러한데 훌륭한 외과의사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우수한 실력만큼 환자를 수술 중 잃어본 경험이 많은 의사일 겁니다. 경험 없는 노하우는 없으며 노하우가 없으면 고수가 될 수 없거든요.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와 실패 경험이 없는 상담자는 절대로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눈 딱 감고 돌파해야 하는 관문입니다. 치유를 위해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상처까지 피하려고만 노력하면 그 상담자는 평생 그렇고 그런 상담만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내담자가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임상가들은 내담자를 위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상처와 모욕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치유를 위해 내담자에게 상처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모든 과정이 상담자가 되기 위한 단계라는 걸 수용하고 노력하는 상담자는 빠른 시간 내에 고수가 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상담자일수록 내담자에게 상처를 덜 입히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 많은 내담자를 빠른 시간 안에 도울 수 있는 유능한 상담자가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능한 상담자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좋은' 상담자로만 남으려고 하지는 않았기에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좋은' 상담자보다는 '유능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상담자로 남으려고만 하면 '무능한' 상담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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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탈도박 단계'라는 포스팅에서 저는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그만두는데 있어 밟아나가는 과정을 3개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포스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 그 때는 도박에 대한 도박자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늘은 각 단계에서 도박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1단계 : 도박이 하고 싶지만 억지로 참는 단계
: 도박이 하고 싶다는 건 여전히 도박 충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듯이 이 단계에 속한 도박자도 늘상 도박 충동에 시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도박 생각이 전혀 안 나다가도 느닷없이 강렬한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항상 도박을 하고 싶다는 충동은 느끼지만 그렇게 강한 수준은 아니고 막상 도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단계에서는
도박 충동과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이 중요한 단계로 가만히 있으면 상류에서 오염 물질이 계속 흘러내려오는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충동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오염 물질을 퍼 내야)합니다.
도박 충동을 자극할 수 있는 시간, 사람, 장소를 적극적으로 피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 2단계 : 도박이 두려워서 차마 못하는 단계
: 도박 충동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되고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도박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지는 않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도박과 관련된 자극에 접하게 되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1단계를 거치면서 도박을 계속 했을 때의 결과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참고 있는 단계이죠. 문제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는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라져서 제동력이 계속 약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박 충동이 침투할 틈이 없도록 일상 생활을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개구멍이 뚫린 곳은 없는지 매사 확인하고 발견할 때마다 틀어막아야 합니다.
* 3단계 : 도박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단계
: 2단계까지 무리없이 진행했다면 더 이상 도박에 관심을 두지 않고 도박으로 인해 야기되는 흥분과 짜릿함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특별한 사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도박 충동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는 비교적 안정된 단계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혐오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다만 그냥 마음놓고 잘 살면 되는 건 아니고
도박과 관련이 없다고 해도 삶의 목표와 방향, 속도를 평소에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박 중독으로부터 치유되는 과정은 처음에는 도박과 관련있는 것들을 챙기고 나중에는 도박과 언뜻 관련이 별로 없어보이는 것들까지 꼼꼼히 챙겨서 물 샐 틈없이 만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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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이 어떤 병이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자신이 받은 훈련 베이스에 따라 입장이 갈립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임상심리학자의 생각이 똑같을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도박 중독이 치유가 매우 어려운 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마 같은 생각일 겁니다. 물론 왜 어렵냐는 이유에 대해서는 또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요.
저도 그랬지만 중독 분야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누구나 어떤 치료 방법이, 어떤 치유적 접근이 도박 중독에 가장 효과적인지를 찾기 위해 애쓴 경험이 다들 있을 겁니다. 저는 절충-통합적 접근으로 귀결했습니다만.
중독 치유에 대한 치료 효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특별히 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걸로 나옵니다. 그거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인데 충격적인 건 자발적 회복(spantaneous recovery)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거든요. 물론 이 자발적인 회복은 그냥 내버려두면 나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이 자발적인 회복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마음의 힘이 워낙 강력한 것이어서 그 마음의 힘을 집중하면 혼자만의 힘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믿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마음의 힘이 작동하기 위한 최초의 동력은 중독자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펌프로 물을 긷는 것과 비슷한데 최초의 마중물은 누군가 부어줘야 하는 것이죠.
다른 비유를 들면 도박 중독 치유가 어려운 이유는 자유 의지의 회로가 끊긴 상태라서 동력이 전달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회복의 엔진이 가동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의 하나 확률로 그 회로가 우연히 연결될 수 있지만 그 터무니없는 확률만 믿고 손을 놓고 기다릴 수가 없고 무엇보다 그 연결된 회로가 다시 끊기지 않고 유지될 거라는 기대를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중독자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이 낭비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중독자가 혼자만의 힘으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아무것도 베팅하지 않겠습니다. 그 베팅의 대가가 제 내담자의 소중한 인생이라면 더더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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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중에도 글을 잘 쓰는 분들이 꽤 많죠. 심리학의 난해한 전문 지식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 쓰는 재주를 가진 분도 많고 몇몇 분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 가장 문학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는 글을 쓰는 심리학자는 단연코 이흥표 선생님입니다.
이 책은 이미 전작인
'사람은 왜 아픈가(2012)'에서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인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 이흥표 선생님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사람은 왜 아픈가(2012)'가 상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을 마음으로 따라가는 책이라면 이 책은 사람은 대체 왜 상처를 받는 것인지, 사람이 이런 상처를 과연 치유할 수 있는 것인지, 결국 사람이 선택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의 답을 생각으로 따라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 마음은 왜 아픈가
2. 신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가
3. 인간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가
4. 무엇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가
5.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굉장히 방대한 연구들의 review 결과에 기반하여 엄정하고 과학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면서도 인문학의 향기를 담아내는데도 소홀하지 않고 있어 읽는 맛이 남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볍게 읽자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게 읽을수도 있고, 그 안에 담긴 함축된 의미를 진지하게 음미하려면 한 구절 한 구절을 곰씹으며 천천히 읽을 수도 있는 묘한 매력의 책이죠.
예전에 이흥표 선생님이 상처에 대한 인문학적인 책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걸 기억하기에 저는 그냥 가볍게 출, 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훌훌 읽으려고 마음 먹고 집어 들었는데 제 손과 눈과 마음을 잡아끄는 대목이 많아서 자꾸 읽는 속도가 느려지더군요.
상처는 피할 수 없으며(운이 좋다면 최소한의 상처만 받겠지만) 잊을 수도 없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 상처를 받아들일 지 말 지를 결정하는 건,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건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고요.
상처받은 분들과 그 상처를 '그루밍'하는 자의 길에 서겠다고 결심한 모든 분들에게 현명한 선택의 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여 많은 분들과 함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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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상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치유에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죠.
도박 중독이 마음의 병, 의지의 병이니 치유되고자 하는 중독자의 의지가 중요한 건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반대로 도박 중독에서 치유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치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그만큼 단도박, 탈도박 의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의지만 있으면 될까요?
비만인 사람의 예를 들어보죠. 체중이 너무 늘어나서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심장과 관절에 무리가 가서 의사가 반드시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살을 빼려는 의지를 다지죠. 그럼 살을 빼겠다는 의지만 다지면 살이 빠질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그래서 각종 다이어트에 돌입하기도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겠다며 헬스 클럽에 등록을 해서 며칠 나가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경고를 받았을 때 다졌던 강철같은 의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저녁 드라마를 보면서 야식을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의지를 뒷받침하는 습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도박 중독으로 다시 돌아오면, 감당하기 어려운 도박빚이 생기고 그게 드러나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난리법석을 칠 때는 눈물 콧물 바람에 당장이라도 도박을 끊을 것처럼 각오를 다지죠. 혈서라도 쓸 기세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잠도 잘 오고 식욕도 좋아지고 때로는 이제는 도박을 조금씩 해 볼까 하는 나태한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초반의 의지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재산권 방어를 위해 재정 분리를 하지도 않고, 가계부를 쓰지도 않으며, 재정 전문가와 상의해 채무 변제 계획을 수립하지도 않고, 도박을 대체하기 위한 취미 생활을 찾아보지도 않으면서 그저 이제는 도박을 끊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앉았다고 그 질긴 도박 중독이 쉽사리 떨어져나가줄리가 만무한 것이죠.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면 피해를 집계하고 방파제를 쌓고, 산꼭대기에 대피소를 만들어야지 해변에서 주먹만 불끈 쥐고 각오를 다진다고 쓰나미가 다시 안 오지는 않습니다.
도박 중독자의 초반 의지만 갖고 본다면 아마 만리장성도 하룻밤에 쌓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 그 만리장성은 한낱 모래성일 뿐입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 치유를 고민하는 분들은 초반 의지를 강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고 그 시스템이 습관처럼 몸에 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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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에게 자기 반성과 자아 성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도박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그로 인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을 꼼꼼히 살펴봐야만 도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어떠한 즐거움도 느껴서는 안 되고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간혹 도박(또는 재발) 사실을 고백하고 난 후 얼굴이 편안해진 도박자에게 울화가 치밀어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가족들이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도 치유 효과는 별로 없기 때문에 상담자는 이를 만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도박자가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사소한 즐거움마져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가족의 눈치 때문이라면 그런 자학은 가족을 편안하게 만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박자 스스로에게 치유의 희망을 불어넣지도 않습니다.
그건 시쳇말로 피해자 코스프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도박자가 자신을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짐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고 희망을 엿볼 수 있도록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도박자가 잠시 행복해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울컥하는 가족도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그 가족 구성원의 문제이지 도박자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 중독 치유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고 완주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급수대에서 목도 축이고 열이 오른 몸도 식혀야 합니다. 그래야 퍼지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겁니다.
대신 달릴 때 곁눈질하거나 뒤를 돌아보며 눈치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면 됩니다. 가족들에게는 그걸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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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박에 중독된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의아했고 지금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 중 하나는 도박을 하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도박을 오래 했다고 해도 도박과 상관 없이 살았던 삶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 때 어떻게 살았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물론 도박 중독이란게 도박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못하게끔 눈을 멀게 만드는 블랙홀 같은 존재이기는 합니다. 일단 도박에 중독된 이후에는 도박으로 돈을 딸 욕심에 사로잡히든, 도박 때문에 생긴 손실을 복구할 마음에 초조해지든, 어떻게든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으려고 혈안이 되든 간에 모든 삶이 도박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도박에 저당잡힌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분들은 도박을 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도박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고, 그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상상하고, 그런 삶이 주는 싱싱한 생명력과 소소한 즐거움을 상상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고 워낙 재발이 잦은 병이니 항상 무서워하고 경계하고 조심하고 다시 도박을 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고만 생각한다면 도박에서 자유로운 삶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도박 중독 치유의 목표는 재발하지 않기 위해 도박이 언제 내 뒤로 다가올지 두려워하며 평생을 곁눈질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언제 도박에 중독되었는지를 잊을만큼 생기에 가득찬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도박을 완전히 그만둔 내 삶이 어떤 모양일지, 어떤 느낌일지, 어떤 냄새일지, 어떤 소리일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도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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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에
'자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자가 되지 말고 치유하고 나서 그래도 원할 때 상담자가 되라' 라는 글에서는 마음이 건강한 상담자만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좀 더 확장해보면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도 상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없다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실겁니다. 대부분의 상담자가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 몸살에 걸려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리고 열이 나는 상황에서 내담자가 하는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일 수 없다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에 걸려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하며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내담자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요. 심리적으로 weak해진 상담자는 내담자의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상담은 내담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고도의 정신 노동입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하죠.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는 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한다는 건 내담자에 대한 전문가의 직무 유기입니다. 그러니 평소에도 충분한 신체적 휴식과 마음의 평안을 도모해야겠지만 문제가 심각하다면 상담을 미뤄두고 수리와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내담자에게 본보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담자가 왜 내담자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어떤 접근법을 따르는 상담자이냐에 따라 충분히 달리 보실 수 있는 문제니까요.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자의 의도와 달리 상담자를 본보기로 삼는 내담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상담자가 이를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걸 따지는 건 별로 의미없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 내담자는 상담자에게서 희망의 빛을 찾고 싶어하고 상담자의 건강한 부분을 본보기로 삼아 따라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상담자처럼 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걸 그냥 잘못된 의존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습니다.
'나는 그냥 당신을 돕기 위해 훈련받은 상담자이니 나를 좋아하는 것도, 나를 따라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저 내 도움만 받으라'는 건 중립에 집착하는 상담자의 헛된 기대일 뿐입니다.
현상이 그러하니 상담자는 어떤 내담자이든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 모델링할거라고 전제하는 게 낫습니다. 좀 더 능수능란한 상담자는 그러한 내담자의 욕구까지 상담 장면에서 함께 다룰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상담자는 무엇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내담자보다도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더 우선해서 balance를 잃지 않도록 항상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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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아이 운동'의 태동에 지대한 역할을 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의 고전 '천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드라마(1979)'를 북 크로싱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치유에 관해 깊이 있는 탐색과 정진을 해 온 결과물이 집약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착 외상이 어떤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만 모든 심리적 상처의 근원에 애착 외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식의 자기 확신이 너무 지나친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받은 전문가라면 비판적인 시각의 배양을 위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책입니다만 실제로 부모-자녀 관계로 인해 외상을 입은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왠만하면 읽지 마세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소개글'을 참고하시고요.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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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제 책을 읽었다면서 단도박 모임을 다니는 어떤 여자분이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도박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본인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예전에 도박 중독자였나 봅니다.
이 분 말씀은 제 책의 내용 중 대부분을 수긍하지만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것과 도박 중독이 치유되어도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은 틀렸다면서 제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혹시나 여쭈어 보니 역시나 제 책을 다 읽지 않으셨더군요. 제대로 읽으셨다면 제가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고 한 적이 없다는 걸 아셨을텐데요(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은 과연 불치병인가'). 더구나 제 책의 홍보 문구 중 하나가 앞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는 '도박 중독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다'이니 겉표지도 제대로 안 보신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하여간 도박 중독은 완전히 치유된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과연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가에 대한 것인데요.
제게 연락하신 분의 주장으로는 본인이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고 보니 갈망이 사라지고 생각조차 전혀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도박에 중독된 적이 없으니 갈망이 사라지는 완전한 치유 상태를 경험하지 못해 그런 틀린 이야기를 썼다는거지요.
과연 그럴까요?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면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요? 그렇다면 더 이상 도박을 겁낼 필요가 없어지는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에서 치유되어도 갈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평생 주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1년에 포스팅한 글이 있습니다(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도박 충동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격한 운동을 하다가 인대를 다치면 몸이 완전히 나은 뒤에도 인대가 손상된 부위의 기능이 예전처럼 100% 발휘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취약점이 생긴 것이죠. 취약점이 생긴 부위는 또 다시 다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에 한번이라도 중독되었던 사람은 완전히 치유된다고 해도 도박에 한번도 중독된 적이 없는 사람과 달리 중독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갈망을 느끼지 못하는 건 왜 그럴까요? 그건 갈망이 의식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무의식 수준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망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죠. 정말 무의식 수준에서는 갈망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치료자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습니다만).
예전에 본인이 하던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조심스럽게 접해 보는 겁니다. 경마를 하던 분들은 경마공원에 가 보거나, 고스톱을 하던 분들은 화투패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려 보는 것이죠. 그러면 있는지도 몰랐던 갈망이 어느새 불끈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철저히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피하고 열심히 치유의 길을 걸어온 사람일수록 갈망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명심하세요. 도박에 대한 갈망은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오판과 자만심이 재발의 재앙을 불러온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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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로서의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심리평가나 상담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투명하게 모든 것을 내담자와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심리평가와 관련해서는 관련글을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도 있고요.
*
'심리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인가'
*
'피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겠다는데(혹은 갖겠다는데) 그걸 왜 막나'
그런데 부부 상담이 실패하여 이혼 소송으로 귀결된 상황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의 내담자였던 부부 중 한 쪽 배우자가 이혼 소송에 사용하겠다며 상담 기록을 달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담 기록은 내담자의 것이니 그냥 줘도 될까요? 아니면 소송 상대인 배우자의 동의가 없는 한 요청한 내담자의 상담 기록만 추려서 제공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걸린 경우에는 가능하면 상담과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담자로서의 중립 위반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담 기록을 요약하거나 확인서를 쓰려고 노력해도 이미 진행된 상담 내용을 통째로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부 상담자로서의 중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큽니다. 상담자의 중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라든가, 중립을 지키는 것이 100%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couple therapy의 경우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거지요.
2. 상담 내용의 오용 문제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지만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과 반대로 법은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내담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법은 사실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치유를 위해 내담자가 힘겹게 털어놓은 본인의 치부와 비밀이 악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상담 기록을 요청하는 배우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걸 활용하려고 요구하는 것이죠).
3. 이중 관계
제가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상담 기록 공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이중 관계를 맺는 것이고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상담 기록을 넘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법적인 조력자 또는 지지자의 관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추가되는 겁니다. 그 뿐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한 때 내담자였던)와 맺었던 치유 관계가 훼손되는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상담자들이 법적인 문제로 상담 기록을 요구받을 때 법적 한계와 상담자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의 무게만 고려하기 쉬운데 치유적인 관계 안에서만 생각해도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적 소송 때문에 상담 기록을 요청받으면 상담 중이든 이미 종결한 상태이든 반드시 요청한 내담자와 다시 약속을 잡아서 전후 사정을 듣고 이를 상담의 틀 안에서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상담 기록의 요구가 냉철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의 충동적 표출이나 수치심의 배출 경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상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담자의 역할을 고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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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심리치료에서 저항(resistance)이라 함은 '치유 목적에 반하는 환자/내담자의 모든 행동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입니다.
통찰 지향적(insight-oriented) 심리치료에서는 증상과 행동 양식에 대한 탐색을 하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불안이 초래됩니다. 이 때 내담자는 이러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게 되죠.
저항은 모든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일찌기 Freud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를 근원에 따라 5가지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1. 억압 저항(repression resistance)
: 위협적인 충동(threatening impulse)을 의식 수준의 바깥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를 회피하려는 자아의 시도에서 유래된 저항. 모든 증상 형성의 기초가 되며 내담자는 이를 통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됨.
2. 전이 저항(transference resistance)
: 모든 유형의 전이 태도(transference attitude)로부터 발생될 수 있으며 내담자는 자신의 기본적인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단순히 상담자를 동일시 하려 하거나 반대로 경쟁적인 태도를 취하려 함. 상담자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말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모습으로 나타남.
3. 이차적 이득 저항(secondary-gain resistance)
: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에 동반된 이차적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기인하는 저항.
4. 초자아 저항(super-ego resistance)
: 스스로 처벌받고자 하는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구에 기이하는 저항. 내담자가 경험하는 증상이 분명 고통을 주지만 이를 없애는 걸 꺼려함. 우울한 내담자에게서 자주 발견됨.
5. 반복-강박 저항(repetition-compulsion resistance)
: 통찰을 획득하고 억압을 undoing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담자가 여전히 부적응적인 행동 양식을 유지하려는 식으로 저항하는 것.
출처 : '임상 실제에서의 정신과적 면담(The Psychiatric Interview in clinical practice, 1st, 1971)'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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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빚을 갚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이 있고 제가 쓴 책에서도 꽤 길게 다루었죠.
채권자가 자신이 빌려준 돈이 도박에 사용될 것을 사전 인지하고 빌려준 경우에는 민법 제 103조에 의거하여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요. 또는
도박 중독자가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돈을 빌려준 경우에 조금이라도 도박과 상관이 있다면 깨끗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오늘은 다른 측면에서 도박 빚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죠.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희박한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만약 도박 자금 또는 도박 빚을 갚으라고 꽤 큰 금액의 돈을 빌려준 부자 친구가 더 이상 신경쓸 필요 없다며 통 크게 나온다면 그 친구 말만 믿고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당연히 그 친구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그 돈을 갚으라고 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경우입니다.
많은 도박자들이 친구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진심어린 우정을 봐서라도 억지로 갚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도박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 봐야 합니다. 도박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생각이 내 내면의 무엇에게서 나왔는지를요.
어차피 도박 중독 치유의 길이란 험난하기 이를 데 없고 오래 걸리는 힘겨운 길인데 굳이 더 멀리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하며 자기 합리화한 결과로 그런 생각에 이른 것은 정말 아닌지요?
빚 갚기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실과 양심의 문제이고 그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중독의 삶에서 치유의 삶으로 옮겨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그것이 도박 빚 갚기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작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훨씬 더 큰 치유의 희망을 포기하는 소탐대실이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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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할 때 상담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내담자의 측면을 크게 생각, 감정, 행동으로 나누어 본다면 한 회기가 끝나갈 때 특히 주의해야 하는 부분은 단연코 내담자의 감정입니다.
회기 중에 다루었던 생각과 행동은 다음 상담 때까지 내담자가 곰씹어 보고, 연습해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연결 고리같은 부분이지만 감정만큼은 어떤 감정으로 상담을 끝냈느냐에 따라 치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담을 하던 도중 내담자가 자신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준 부모와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분노에 사로잡혀 손발을 부들부들 떨다가 급기야는 오열을 한다고 해보죠.
그런데 상담자가 시계를 곁눈질로 슬쩍 보니 이번 회기가 곧 끝날 시간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급수습, 급정색을 하고 서둘러 마무리를 해야 할까요?
회기는 그렇게 마무리가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내면에 침잠해 있던 분노와 고통감,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이 올라와 내담자를 온통 사로잡고 있는데 회기가 끝난다고 그런 감정까지 쉽게 정리가 될까요?
상담 시간을 최대한 정확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내담자의 부정적 정서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는데도 부랴부랴 회기를 끝내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설사 내담자가 충분히 다루지 못한 감정에 대해 상담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해도 부정적인 정서 상태로 상담을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담에 대한 거리낌이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상담을 마친 이후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부정적 정서 때문에 연이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회기에 상담자를 만날 때까지 최소 일주일의 시간 동안 온전히 혼자서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내담자가 부정적인 정서에 휩싸여 있을 때는 그대로 회기를 마치지 않습니다. 충분히 ventilation을 해서 다루고 난 뒤 내담자가 평온한 마음을 느낄 정도로 가라앉은 다음에야 조심스럽게 다음 회기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집니다.
절대로 내담자가 상담을 마치고 부정적인 기분으로 돌아가게 하지 마세요. 즐거운 기분으로 돌아가도록 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그 부정적인 감정이 충분히 해소된 다음에 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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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1984년 내면아이와 성인자아의 연결을 통해 심리 문제를 해결하는 '내면적 유대감(inner bonding)' 치유 과정을 에리카 초피크 박사와 공동으로 최초 개발한 Margaret Paul 박사가 썼습니다.
원래 이 분을 유명하게 만든 책은 'Healing Your Aloneness'로 우리나라에는 '내 안의 어린아이 :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만나는 자기 치유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Healing Your Aloneness'를 읽은 뒤 내면아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성인자아가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독자들의 빗발같은 성화에 보답하고자 나온 후속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면아이에 대해 좀 더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분들은 Healing Your Aloneness를 먼저 읽으시는 것이 좋고 임상/상담 장면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이 책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마가렛 폴 박사가 주장하는
내면적 유대감 형성을 통한 치유라는 건 대부분의 탁월한 치료적 기법이 그렇듯이 원칙적으로 간단합니다.
성인자아로서 하는 '생각'과 내면아이로서 느끼는 직관적인 '느낌'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택'과 '책임'을 인식하고 연결하는 것과 비슷해서 좀 놀랐습니다.
이 책은 앞서 출판된 'Healing Your Aloneness'를 읽지 않은 사람도 내면아이 치유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여졌고 내면적 유대감 형성을 해 나가는 과정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상담의 초보자라도 쉽게 개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배우자, 부모, 자녀, 친구, 동료와의 관계를 각각 풍부한 사례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무에서 활용하기에도 좋습니다.
특히 이 책은 각 장의 주요 개념을 장이 끝나는 부분에 다시 한번 요약 정리하고 있어 독학을 하기에도 편리합니다.
내면아이 치유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하는 명저입니다. 시중에 내면아이 치유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 책이 갑입니다.
중독자를 상담하는 상담자들은 반드시 읽어보세요.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닫기
* '내면아이'란 우리의 인격 중에서 가장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부분으로, 감정을 우선시하는 '직감적인' 본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본래 모습이자 핵심적인 자아, 타고난 인격인 셈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내면아이와 어린 시절의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유치함이 아닌 '순수함'을 말한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내면아이의 연약함, 직관력, 경이로움, 상상력, 타고난 지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쇠퇴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 '성인자아'란 논리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현실 세계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한다. 즉 우리의 지성적이고 우뇌적 부분이며,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의식인 셈이다. 성인자아는 존재보다는 행동, 경험보다는 행동과 관계가 있다. 성인자아는 우리의 인격 중에서 후천적으로 배운 부분에 해당한다.
* 내면적인 유대감 형성의 목적은 잘못된 믿음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으며 살아온 믿음들, 수치심을 주며 자신을 제한하는 잘못된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 내면적인 유대감 형성의 3단계
- 1단계 :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불편함이나 갈등을 인식하는 것
- 2단계 :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 3단계 :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 자신의 감정과 단절되면 타인에게도 단절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단절을 더욱 더 고조시킨다. 이렇게 내면의 자신, 즉 내면아이와 단절되면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 사실 의식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대부분이 '성숙하고 적절하며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행동이 뒷받침될 때만 의미가 있다.
* 내면아이가 성인자아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자신이 사랑스럽지 못하고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성인자아가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의지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의존이다.
* 의존의 두 유형
- 내면아이가 항상 '남의 시중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
- 사랑을 베풀지 않는 성인자아가 '남들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
* 모든 종류의 의존은 자신의 내면 및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서 갈등을 지속시키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 내면적인 유대감 형성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단계는 마음을 열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선택하는 부분이다.
* 배우려는 의도에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모든 감정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믿음이고, 두 번째는 기꺼이 고통을 느끼려는 의지다.
* 내면적인 유대감 형성에서는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한쪽으로 치워둔다. 판단이 유대감 형성 과정과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대감 형성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 내면아이가 침묵을 지킨다면 이유는 2가지다. 성인자아가 자신을 살펴보고 알아가려는 의도가 아닌 방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와 내면아이가 아직 당신의 의도를 믿지 못하는 경우다.
* 내면아이가 되어 말할 때는 인형을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선 인형의 얼굴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고 가슴에 안은 상태에서 숨을 들이마신다. 내면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마치 아이가 된 것 같은 상상을 하라. 인형이 당신의 내면아이가 되는 것이다.
* 내면아이가 되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다시 성인자아의 역할로 돌아와 아이를 위로해줘야 한다. 가슴에 품었던 인형을 안아 올려서 인형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려라. 사랑의 마음으로 인형을 바라보면서 내면아이에게 그 아이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알려야 한다. 또한 내면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다른 질문을 할 수도 있다.
* 우리는 여러 고통으로 힘들어지면 상담가, 친구, 성직자, 알코올 중독자 모임 등 외부에서 도움을 구한다. 하지만 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 삶을 힘들게 하는 잘못된 믿음 6가지
- 나에게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
-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무력하다.
-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내 감정보다 중요하고, 나는 그들의 감정에 책임이 있다.
-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는 나에 대한 생각과 느낌, 나를 대하는 방식을 통제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원할 때는 나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나는 고통, 불편함, 두려움, 상처, 슬픔, 타인과의 단절, 지루함, 실망, 수치심,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
* 우리가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기준은 그 행동을 하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드느냐가 아니라, 그 행동을 마친 결과 자신에게 어떤 기분이 드느냐다.
* 진정한 기쁨이란 어떤 것일까?
: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 기분, 일체감, 순조롭게 흘러가는 느낌 등이다. 이런 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 바로 자유다. 기쁨의 확실한 증표로는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 사랑을 베푸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가치와 사랑스러움을 스스로 인정하는 방법이다.
* 우리가 자신을 보호하는 4가지 방식
- 물질, 활동, 사람에 대한 중독
- 노골적인 통제.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이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 은밀한 조종. 칭찬, 보살핌, 친절함, 유혹 등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좋아하거나 인정하도록 만들려는 것을 말한다.
- 저항
* 의존의 기본이 되는 것은 성인자아와 내면아이의 단절에서 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이다. 이 둘이 단절될 때 의존적인 사람들이 모여 의존적인 관계를 만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 이상에 중독되어 있는데, 의존적인 관계는 서로의 중독을 더 부채질한다. 의존적인 관계는 성인자아가 내면아이에 대한 책임을 저벼릴 때 일어난다. 의존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2가지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첫 번째는 자기애적인 사람 혹은 남의 시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공감적인 사람 혹은 남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다.
* 성인자아와 내면아이가 연결되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이다.
* 자존감을 쌓기 위해 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면아이를 위해 실제로 행동해야만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
* 누군가 자신을 사랑스럽지 못하게 대할 때 참는 것은 상대에게도 절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 부모님께 베푸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지고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두려움, 의무감, 죄책감에서 부모님에게 베푼다면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 적절한 한계를 설정해주는 성인자아 없이 버려진 내면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감정적, 성적, 신체적으로 학대할 수 있다. 즉 자녀에 대한 아동 학대는 적절한 한계를 만드는 성인자아의 부재로 버려진 내면아이가 분노에 휩싸일 때 일어난다.
* 자녀들이 말을 잘 듣게 만드는 법을 물어보러 상담실을 찾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내면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자녀들에게 개인적인 책임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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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상담은 성인 대상의 상담과 많이 다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성인과 달리 아동/청소년은 대부분 부모나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방문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본적인 신뢰감이 부족한 내담자가 많아서 성인보다 훨씬 더 라포 형성이 중요하고 또 어렵습니다.
또한 라포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심리치료 기법이나 상담 기술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기 상담의 효과가 제한적인 것도 상담자에게 꽤 큰 부담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동/청소년 상담은 시작도 라포에서 시작하고 끝도 라포에서 끝난다고 봐도 될 정도로 라포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라포 형성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 하나는
'완전하게 진실하기'입니다.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달지 않고 어떠한 순간이든 솔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성인의 경우에도 진실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 상담이 진정한 치유를 야기하는 걸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basic trust rebuilding이 중요한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완전한 진실성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상담자가 '이 정도는 숨겨도 되겠지'. '치유를 위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잖아', '모든 것을 말하는 게 내담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같은 여지를 두면서 상담한다면 라포 형성은 어림없습니다. '완전하게 진실하기'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 가능합니다.
사실 완전하게 진실하기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것만으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원칙까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내담자의 편 되기'입니다. 이 원칙도 그냥 선언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이어야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최소한 상담 내용이나 심리평가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부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내용('
부모가 아동/청소년의 심리평가 원자료를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내담자의 치유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내담자의 편에 서서 내담자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강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길은 요원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 형성의 시작은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 이를 위한 두 가지 원칙. 1) 완전하게 진실하기, 2) 내담자의 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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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한다'라는 글에서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모두 달성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며 이것이 치유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까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 가족을 유지할 버팀목이 약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말을 하는 분이 계셔서 추가 포스팅합니다.
가족이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건 도박 중독으로 인해 희망이 없다고 결론내려서이지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을 하고 난 뒤 헤어져야겠다고 결심을 한 가족이 있다면 그건 이미 도박 중독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독립할 자신이 없어 참고 살았을 뿐 이미 마음은 도박 중독자를 떠난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저 먹고 살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는 상태, 몸은 함께 있으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 그것을 과연 진정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가족과 상호의존되어 있으니 도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다가 가족이 독립하게 되면 자신만 버려질 것 같은 불안을 도박자가 느끼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독립만 하고 나면 도박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가족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제적 어려움과 배신의 이중고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이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도박자를 포기하고 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상담까지 받으려고 할까요?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 건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독립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박 중독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헤어질 위험이 있으니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가족을 방해하는 건 가족을 볼모로 잡고 싶다는 도박자의 욕심 때문에 도박 중독 치유에 들여야 할 에너지와 노력을 낭비하는겁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자는 가족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본인부터 먼저 가족을 믿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그러면 가족도 반드시 화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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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만화가인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음 그래픽 노블 '담요(Blankets)'입니다.
2004년 선보이자마자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하비상 '최고의 작품', '최고의 작가', '최고의 만화가' 상을 휩쓸었고 그 이후로도 아래와 같은 수상과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 이외에는 데뷔작인 '안녕, 청키 라이스'와 '하비비', '여행기' 등이 있습니다. 그래픽 노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천재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인데요.
★2004년 하비상 〈최고의 작품〉, 〈최고의 작가〉, 〈최고의 만화가〉 수상
★2004년 아이스너상 〈최고의 작품〉, 〈최고의 스토리〉 수상
★2004년 이그나츠상 〈뛰어난 작가〉, 〈뛰어난 그래픽노블〉 수상
★2005년 프랑스 만화 비평가 협회 ACBD 대상 수상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최고의 만화책〉 상 수상
■2012년 『타임』 선정 〈자전적 그래픽노블 10〉
■2012년 오프라닷컴 선정 〈역대 최고의 러브 스토리 8〉
■2011년 「가디언」 선정 〈최고의 그래픽노블 10〉
■2011년 『페이스트 매거진』 선정 〈2011년 최고의 만화책 20〉
■2010년 코믹 북 리소스 선정 〈2000년대 가장 중요한 만화책 30〉
■2010년 그래픽노블 리포터 선정 〈최고의 그래픽노블 CORE TEN 10〉
■2010년 하이파이브! 코믹스 선정 〈2000년대 최고의 만화 20〉
■2010년 알트 데일리 선정 〈2000년대 최고의 그래픽노블〉
■2009년 AV 클럽 선정 〈2000년대 최고의 그래픽노블 25〉
■2009년 포비든플래닛닷컴 선정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그래픽노블 50〉
■2009년 『페이스트매거진』 선정 〈2000년대의 최고의 그래픽노블 20〉 1위
■2005년 『타임』 선정 〈『타임』 역대 최고의 그래픽노블 10〉
■2004년 「쥐트도이체 차이퉁」 선정 〈2004 최고의 만화책 5〉
■2003년 『타임』 〈2003년 최고의 만화책〉 1위
■폴 그레빗 〈죽기 전에 봐야 할 1001권의 만화책〉
크레이그 톰슨은 TV 시청과 음악을 듣는 것까지 일일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만화 월간지를 유일한 상상력의 탈출구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이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게 했고 결국에는 그래픽 노블 작가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절로 붓이 움직인 듯 자연스러운 터치의 그림체로 유명한 크레이그 톰슨은 이 작품에서 따돌림으로 외로웠던 어린 시절과 상상력을 억압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는 가식적인 개신교의 두 얼굴에 대한 회의, 인간에 대한 불신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장통과 사랑의 아픔 등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족과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솔직하게 다룬 일 때문에 여전히 부모와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는 작가의 상처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따돌림, 성 폭력, 가정 불화, 가정 폭력, 종교의 허식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작품 전체에 배어 있어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은 아닙니다.
작가의 개인적 상처와 종교관, 깨달음 등에 공감(레이나와 왜 그렇게 끝냈는지는 공감 못하겠지만)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그림체가 아니라서 추천을 드릴 정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드커버인데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라서(가격도 만만치 않음) 소장하실 분이 아니라면 구매해서 보기가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분들은 북 크로싱 포스팅을 기다리셔도 좋겠네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덧2. 펀샵에서 온라인 서점과 비슷한 가격에
무릎 담요를 사은품으로 주는 행사를 진행 중(센스 굿~)인데 담요는 크기도 적당하고 모양과 색깔도 예쁩니다만 결정적으로 보풀이 묻어나서 바지의 재질을 따져가며 덮어야 하는 번거로운 문제가 있습니다(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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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 환상은 멜라니 클라인이 주창한 개념인데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치유를 위한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내담자의 치유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오판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전능 환상은 내담자가 진정한 치유와 회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담자의 성장도 저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라서 상담자는 전능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상담자가 초심자일 때는 전능 환상보다 낮은 자존감 문제나 전이-역전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전능 환상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상담이 몸에 익으면 어떤 상담자라도 한번쯤은 전능 환상의 시험대에 서게 됩니다.
전능 환상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거기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저 뭔가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좋은 느낌과 함께 상담 전반이 어렵지 않게 파악되고 내담자에게 어떤 말을 할 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도 대화가 술술 풀려가는 기분이라서 상담이 재미있다고 느끼고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전능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상황을 한 두가지 정리해봤습니다. 두 상황 모두 건설적인 비판은 없고 칭찬만 난무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경우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내담자가 상담 장면에서 더 이상 갈등이나 어려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상담자를 칭찬만 하는 경우입니다. 보통 상담자를 이상화하기 때문에 상담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상담자의 일거수 일투족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출석 및 과제 수행이 완벽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담자는 라포가 굳건히 형성되고 상담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습니다만 두 가지를 통해 전능 환상 유무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하나는 상담 목표의 중간 점검입니다. 상담 목표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상담자가 내담자보다 높은 곳에 앉아 내담자를 내려다보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내담자가 상담자의 상담 기법이나 가치관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역전이가 일어나는지를 분석해 봐야 합니다. 생각의 차이는 당연한 것임에도 자신만이 옳고 내담자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면 전능 환상일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상담 현장과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자신의 동료나 선후배, supervisee들이 더 이상 건설적인 비판이나 조언을 하지 못하고 첫 번째 경우처럼 칭찬만 할 때입니다. 물론 실제로 상당한 내공을 갖춰 칭찬받을만한 실력을 보이는 상담자일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런 칭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기분이 마냥 우쭐해지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지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할텐데도 그들의 칭찬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넙죽 받아들이는 건 전능 환상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일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경우보다는 첫 번째 경우가 좀 더 상담자에게 익숙하면서도 쉽게 전능 환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전능 환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상담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초반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초심을 점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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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어떤 말을 하건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도박 중독자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것도 자신의 잘못이고, 그만하라고 가족들이 말릴 때 귀담아 듣지 않은 것도 자신의 잘못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도박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할테니 제발 도박만 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읍소합니다.
얼핏 보면 자신의 도박 문제를 인정하고 치유가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가 갈등 하나 없이 변화 단계 중 준비 단계나 실행 단계에서 곧바로 출발하는 도박자는 매우 드물거든요.
오히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면 납작 엎드려서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유형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자기 고백에는 잘못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진정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상담자에게 의존하고 자신은 편하게 묻어가려고만 하죠. 의존 대상이 가족에서 상담자로 바뀐 것 뿐입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도박자는 제 시간에 상담에 오고, 상담도 열심히 하지만 재발이 잦으며 재발을 하고 나서는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동시에 다시 열심히 노력할테니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도박 문제에 대한 진지한 수용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도박 결과를 깊이 숙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발이 반복되고 끝내는 지쳐버린 가족이 포기하는 걸로 상담이 끝나고 맙니다.
이런 도박자일수록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치유 초반부터 한계 설정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의사 결정부터 자신이 직접 내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극도의 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담을 아무리 오래 해도 치유의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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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worksheet라고 썼지만 특정 심리치료 기법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worksheet의 보기를 든 것 뿐입니다.
가끔 상담 supervision을 할 때 상담을 잘 해나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내담자에게 뭔가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때로는 죄책감까지 느끼는 상담자를 봅니다.
상담과 심리치료 기법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입니다.
저는 상담과 심리치료 기법을 개념적으로 조금 다르게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상담은 암 치료이고 심리치료 기법은 화학 요법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박 중독을 치료한다면 필요에 따라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는 인지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 CBT 중의 일부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CBT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저처럼 절충-통합적 접근을 선호하는 상담자에게 심리치료 기법은 타이밍의 문제이지 무엇이 우선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어떤 특정 심리치료 접근법을 주로 따르는 상담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로 게슈탈트 기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더라도 상담의 틀을 게슈탈트적으로 짜는 것이지 온통 게슈탈트 기법만 내담자에게 폭격하듯이 쏟아붓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상담자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하려는 것이 내담자의 문제를 큰 치유의 틀로 보고 상담하는 것인지, 일부 증상이나 표면적인 문제만 특정 기법으로 완화 또는 제거하려는 것은 아닌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worksheet의 문제도 이런 구분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저는 대체로
내담자와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기 전에는 worksheet 사용을 자제하는 편인데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내담자가 확실히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worksheet를 섣불리 사용하면 상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내담자에게 어설프게 노출하게 되어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라면 저항, 포기 또는 반대로 심하게 의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그 다음에 함께 해결할 문제를 구체화 하는 것이 다음이며, 목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의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 기술적으로 worksheet를 사용할 지를 내담자와 상의해도 충분합니다.
뭔가를 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부랴부랴 준비한 worksheet로는 절대로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예전에
'상담의 원칙 : 열심히 들어라'에서 이미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뭔가를 자꾸 주려고 하지 말고 그보다 먼저 온몸과 마음을 다해 내담자가 주는 걸 받아 안아야 합니다.
내담자를 치료하려고 하지 말고 내담자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어 주세요.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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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도박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것임을 누차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에 누구든 도박자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 원칙은 너무나 중요해서 어떤 상담자이든 상담 초반에 무엇보다 먼저 도박자와 그 가족에게 특별히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족(특히 원 가족의 부모)이 상담자의 조언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뒤로는 계속 빚을 갚아주면서 앞으로는 도박자를 부탁한다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담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요.
그렇게 강조해서 단속을 해 놨는데 상담자와 상의 한 마디 하지 않고 도박 빚을 냉큼 대신 갚아 주는 겁니다. 당연히 도박자는 가장 큰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 상담에 매진할 동력이 상실되어 유야무야 하다가 상담자와 합의도 없이 상담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재발해서 더 큰 빚이 생기게 되죠. 그러면 다시 그 가족 구성원이 부랴부랴 찾아와서 도박자를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일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혹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첫째,
가족들이 도박자와 상호 의존(co-dependence)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표현을 빌자면 공동 운명체라는 강한 느낌을 갖고 있어서 도박자가 망하면 가족도 망한다는 두려움에 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박자가 망하지 않게끔 빚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둘째,
가족 중 누군가가 도박자의 인생을 좌지우지(enabling)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은 그걸 전혀 모릅니다. 그저 도박자를 사랑해서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enabling을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도박자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닙니다. 계속 무능하고 무기력한 도박자로 남아 있어야만 계속 챙겨줄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빚을 갚아주면 또 다시 구렁텅이로 떨어져 계속 철부지같은 어른애로 살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빚을 갚아줍니다. 물론 이 모든 작용은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가족 중 상호 의존의 덫에 걸려 있거나 enabling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과 조력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족 중 누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죠.
그 다음에는 문제가 되는 그 가족을 도박자와 최대한 거리를 두게 하면서 안전한 가족과만 치유 과정을 협의해야 합니다.
사실 상호 의존의 정도가 심하거나 enabling에 집착하는 가족은 조력자라기보다는 도박자와 마찬가지로 치유가 필요한 병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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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베팅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도박을 즐겨도 좋다고 허락한다 해도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고 수긍할 도박자가 얼마나 될까요. 도박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불확실한 사건에 돈을 거는 것이니 돈 또는 돈에 상응하는 물건을 베팅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도박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도박이 존재하는데 돈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당연히 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서도 돈 관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도박자의 수중에 있는 돈, 도박자에게 주어진 돈, 도박자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돈은 도박 자금으로 유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박에 중독되면 재정 관리 능력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는 수입이 발생하는 일을 하건, 기존에 쌓아둔 재산을 쓰기만 하건 간에 제대로 된 자금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정 관리 능력이 돌아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라도 가족이나 믿을 만한 지인이 자금 관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고 그 전에 신경 써야하는 건 도박자가 도박 자금으로 유용할 수 있는 자금원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 투명성이 핵심인데 도박자는 가계부, 최소한 현금 출납부를 꼼꼼히 써서 지출되는 내역을 누구에게나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야(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하고 도박을 하던 당시에 도박 자금으로 사용하던 금액 이하로만 소지하고, 현금화 할 수 있는 물품 등을 아예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용 카드 대신 체크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필수이고요. 도박 중독이 재발하지 않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박 자금원을 차단하는 것이죠.
도둑을 막으려면 집단속을 위해 도둑이 들어올 수 있는 허점과 구멍을 막아야 하듯이 도박 자금으로 악용될 수 있는 자금원을 차단하는 것은 치유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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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립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도박자의 품을 떠나 홀로 서는 것만이 진정한 독립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박자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독립입니다.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과 정서적 독립, 이 두 가지 과제를 모두 달성해야 합니다.
맞벌이 가정이라면 외벌이 가정에 비해 좀 더 나은 형편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박자가 벌어오는 생활비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수입이 반토막 난다는 이야기라서 상당한 긴축 재정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특히 전적으로 도박자의 수입에만 의존하던 외벌이 가정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당장 기본적인 생계를 위협받을 수도 있거든요.
어찌되었든
도박자의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생존할 수 있는 자립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실제로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집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끊기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도박자와 단단히 연결되어 있고 땔래야 땔 수 없다는 속박된 느낌, 도박자가 잘못 되면 자신도 큰일 난다는 위기감, 도박자가 고통받을 때 나만 행복할 수 없다는 부적절한 죄책감, 이런 것들이 모두 정서적 독립을 방해하는 감정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감정들은 도박 중독자의 치유를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고통받는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박으로 돈을 따는 거라고 도박자가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서적 독립을 통해 도박자가 가족들을 부러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박자가 없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봐야 하고 자기 계발이나 여가 활동을 통해 살아 있다는 느낌, 행복감, 충만감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박자와 단단히 묶인 느낌이 공동 운명체라는 절실한 감정은 생겨나게 도와줄 수 있어도 도박자와 자신을 치유하지는 못한다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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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문제로 뒤통수를 얻어맞기 전까지 도박과 도박 중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대처 방법은 사실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헤어지는 것과 참고 사는 것.
주변 사람들도 가족들만큼이나 도박 중독에 대해 모르는 건 마찬가지 상황인데 가족들 입장에서 헤어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차라리 속는 셈 치고 빚을 갚아주거나 도박자의 말을 믿어보는 것이 오히려 해 볼만한 도박일 겁니다.
특히 시댁, 친정 따질 것 없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어른들이 종용하는 경우 많은 배우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박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이 상황을 수용(accept)하는 것과 자신을 희생(sacrifice)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수용한다는 건 도박 중독의 문제가 도박자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일차적인 책임도 도박자에게 있다는 것,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유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면서 도박자 역시 그 원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희생은 수용과 달리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도박 중독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그저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이 창피한 일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박자가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없도록, 필요하다면 도박자의 공범이 되거나, 변명과 거짓말을 하거나, 빚을 대신 갚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뒤집어 쓸 수 있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죠. 당연히 그 결과로 희생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인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합니다.
수용은 희생이 아닙니다. 수용은 치유의 원칙을 지켜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희생은 그저 자신을 던져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입니다. 하지만 수용 없는 희생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잊으세요. 도박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아닌 수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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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가족들이 열심히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도 치유의 열쇠는 결국 도박자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자가 치유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관건인데 문제는 자신이 도박에 중독되었다는 인식이 없는 도박자를 가족들이 어떻게 설득하는가입니다.
도박자는 도박 중독이 병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해도 자신이 그 병에 걸렸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도박자를 설득할 때 중독, 정신병, 병원, 치료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 거부감만 일어나게 되죠. 이보다는 좀 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예를 들어 도박 중독보다는 도박 문제, 치료보다는 상담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도박자를 설득하는 이유가 도박자를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지 도박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자가 전문기관을 방문하는 걸 극구 꺼리는 경우에는 현재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기 위해 일단 평가만이라도 받아보자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도박 중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도박자라도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정도는 경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선택은 도박자의 몫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입니다. 상담을 받겠다고 결정하든,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거부하든 간에 모든 결정은 도박자가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도박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이든 간에 치유 효과는 반감되게 마련입니다. 또한 도박자가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을 탓하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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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힐링, 심리 치유 관련 서적이 서점가를 강타했고 2013년도 1/4분기가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도서 시장에서 강력하게 세몰이 중입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힐링 서적들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힐링 되었다면, 그래서 삶의 위안을 얻고 행복해졌다면 이제 그만 유행이 사그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가 해결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별로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힐링 서적을 읽는다고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힐링 관련 책을 쓰는 저명인사들, 소위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실패자가 아닌 성공한 1%이기 때문에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힐링이 되지 않는거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일부분은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스님이 워킹맘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평생을 캠퍼스 내에서 젊은 대학생과만 교류해 온 사람이 생존 경쟁이 치열한 조직 생활의 어려움과 불안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힐링 서적으로 힐링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힐링 서적은 다양한 총알입니다. 권총탄일 수도 있고, 산탄 총알일 수도 있고 기관총의 총탄일 수도 있죠. 용도에 따라 선택해서 써야 하죠. 제가 볼 때 사실 힐링 서적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총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막연히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각종 총탄을 사 모으는 사수들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조류 사냥이고 갖고 있는 총이 2연발 공기총이라면 필요한 건 2연발 공기총탄 뿐입니다. 다수를 살상하는 기관총탄은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정작 발사 상황에서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죠. 주머니에 여러 가지 총알이 섞여 있다면 빠른 대응이 가능할까요?
저는 힐링 서적이나 심리 치유 워크샵이나 상담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기술, 방법, 전략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자기 분석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어떤 종류의 일을 즐기고, 어떤 상황에서 대인 관계를 맺을 때 편안하고 등등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총알 수집이 아니라 자신의 총기를 분석하고 갈고 닦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유행 따라 우우 몰려다니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마다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사색과 숙고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하루에 자신과 대화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 보세요. 스마트폰을 위시해 오감을 자극하는 어떠한 인위적인 자극도 없이 생각의 심연까지 가라앉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그런 시간이 별로 없다면 아무리 힐링 서적을 많이 읽고 상담을 오래 받고 심리 치유 워크샵마다 바삐 따라다녀도 진정한 힐링을 경험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힐링은 내면에서 시작해서 내면에서 끝나는 것이니까요.
오해하실까 싶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더 이상 힐링 서적을 읽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상담을 그만 받으라는 말도 아니며, 치유 워크샵 참석을 때려치우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의 앞에 언제나 자기 분석을 두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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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현 현상은 우리의 몸이 좋은 영양 물질을 섭취하게 되면 생체 기능이 조절됨에 따라 몸 안의 독소가 배출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 주로 한의학에서 일컫는 말입니다. 잠시 눈앞에 캄캄해지고 어지러운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등의 증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박 중독 치유에서도 명현 현상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하던 도박을 갑자기 중단하고 나면 잘 되던 주의 집중이 안 되거나 짜증이 늘고 잠자리도 불편해 뒤척이게 되는 등 여러 가지 금단 증상이나 문제가 갑자기 새롭게 나타날 수 있죠. 때로는 갑작스럽게 도박 충동이 강해질 수도 있어 내가 제대로 치유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명현 현상의 일종입니다. 제대로 된 치유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도박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저항하는 것이죠. 오히려 아무런 명현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 문제인 것이니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꾸준히 일관되게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치유의 원칙과 기준을 일관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켜나간다면 명현 현상은 곧 사라지고 진정한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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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9일 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 강의에서 사용했던 PPT입니다.
상담 현장, 그 중에서도 아동 및 청소년 상담을 할 때 흔히 접할 수 있는 정신병리문제를 모아서 3시간 분량으로 만든 자료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ADHD* 소아/청소년 우울증* Delayed PTSD(성폭력 생존자)* 학교 부적응 문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ADHD
* 주 호소 문제의 변별
* ADHD 신화 : 허위 긍정의 오류
* 주의할 점 : 주의력 문제의 구분
* 진단
* 평가
* 평가도구
* 치료
2. 소아/청소년 우울증
* 증상
* 우울증의 구분
* 우울 사고 vs. 우울 정서
* 연령에 따른 차이
* 자살 위험성 평가
* 분노 폭발 : 열등감 내재 확인
3. Delayed PTSD(성폭력 생존자)
* PTSD의 진단 준거
* 왜 Delay되는가
* 변별 진단
* 여아의 자해
* 왜 말하지 못하는가
* 근친 성폭력
* 치유에 중요한 요인들
* 심리평가
* 치유의 3단계
* 치유 단계 별 주의할 점
* 상담의 point
* 성폭력에 대한 통념
4. 학교 부적응 문제
* 1단계 : MR, BIF, BA 배제
* 2단계 : Adjustment Disorder 배제
* 3단계 : 스트레스 요인이 집(PCRP 고려)
* 4단계 : 스트레스 요인이 학교(왕따 고려)
이전에 심리평가자가 아닌 상담자의 입장에서 정신병리적 문제를 다룰 때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내용을 다룬 자료인
‘상담에서 만나는 정신병리문제’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 자료는 아동, 청소년 상담을 하는 상담자가 자주 만나는 네 가지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얼마든지 내려 받아 사용하셔도 됩니다. 출처만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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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BIF,
Delayed PTSD,
MR,
PCRP,
PTSD,
근친 성폭력,
변별 진단,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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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성폭력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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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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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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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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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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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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