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의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은 건 설사 그렇게 보이더라도 중독이 아니라는 겁니다.
간혹 중독을 변별할 때 빈도와 강도를 기준으로 하거나 중독의 피해를 바탕으로 하시는 임상가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빈도가 잦고 강도가 강해도 중독이 아닐 수 있고, 중독으로 인한 피해가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라고 해도 역시나 중독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중독자에게 예외없이 나타나는 두 가지 모습을 통해 중독임을 변별하라고 임상가들에게 권합니다. 하나는 상습적인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무책임입니다. 중독자는 무엇에 중독되었든 간에 일단 중독되고 나면 이 두 가지 모습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치료의 목표도 이 두 가지를 없애는 것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책임과 상습적인 거짓말을 알아차리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제 행동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하고 하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단기간에 중독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중독의 대상이 구체적이냐를 따져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도박에 중독되었다고 하면 어떤 도박이냐와 상관없이 도박이라면 무조건 환장을 한다고 생각하고 알코올 중독이라면 술이기만 하면 뭐든 주종은 상관 없이 마실거라고 가정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독자에게는 예외없이 일종의 취향이라는 게 있어서 도박 중독자는 본인이 중독된 도박이 있습니다. 경마 중독자는 카지노 게임에 끌리지 않고, 온라인 불법 도박자는 내기 바둑에 관심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자는 아무 게임이나 하지 않고 자신이 중독된 그 게임만 집중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문장완성검사의 내용을 보면 그 게임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도 주중 취향이 있어서 소주파는 소주만, 맥주파는 맥주만 마십니다. 물론 소주파는 도저히 소주를 구할 수가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맥주라도 마시겠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무조건 소주를 마십니다. 모든 중독 분야가 이런 식으로 다 똑같습니다. 중독의 대상은 매우 구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중독이 의심되는 사람을 보면 대상이 구체적인지를 살펴보세요. 아니라면 중독이 아닌 다른 문제(파괴적 관심 끌기, 회피 행동 등)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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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 현장에서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없는 경우를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동/청소년이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는 그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방법이 없거나 아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증상 호소이건 파괴적 관심 끌기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는 가정의 부모님들 중 다행스럽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항상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드립니다.
"시간을 내세요"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니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더군요.
하나는 '채찍질에는 능하나 당근은 줄 줄 모른다'는 겁니다. 본인들부터 억압받으며 성장해서 그런지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억압 기술에는 매우 능하지만 무엇으로 강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한데 항상 채찍질만 하다보니 자녀들이 더 이상 뛰는 걸 거부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당근을 줄 줄 모른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당근으로 돈 이외에는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박탈이 심한 부모님일수록 돈과 물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웬만큼 누리고 자란 요즘 세대 아이들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는 방법이고 효과가 있다고 해도 단발성입니다. 왜냐하면 돈에는 마음이 없거든요. '마음은 필요없고 차라리 돈이나 내놔'라고 말하는 건 그만큼 마음을 담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냉소가 깔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당근으로 사용해야 하냐하면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원입니다. 물론 부자라면 일정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자는 시간 단위 벌 수 있는 돈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더 더욱 시간을 내기가 어렵죠.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남는거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에게 마음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내는 겁니다. 시간 대신 돈을 주는 건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모든 걸 돈으로 때우는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혐오와 냉소만 불러일으키죠.
제가 시간을 내라는 조언을 드리면 자녀가 거부한다는 핑계를 대시는데 그건 자녀가 부모가 시간 내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시간을 내려면 1) 진정성을 담아서, 2) 자녀가 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3) 자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자녀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몇 번 시도해보다 지레 안 된다고 포기하면서, 부모가 원하는 걸 자녀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스펙 쌓기로 많은 시간을 요구받아온 우리 아이들이야말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자 선물인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부모가 정말 그걸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믿을 수 없어 시험하는 것이죠. 그러니 자녀를 위해 그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시겠다면 우선 신뢰성 시험부터 통과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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