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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가마타 히로키 교토대 교수가 쓴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14권의 과학 고전을 선별하고 뒷 이야기를 통해 각 책의 내용을 재미나게 풀어내면서 매 장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양서까지 추천하는 좋은 책이었죠.
오늘 소개하는 강신주 선생의 이 책이 이와 흡사한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내용이 철학이고 시를 통해 풀어낸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목차를 보시죠.
1. 기쁨의 연대 - 네그리와 박노해
2. 언어의 뼈 -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3. 사유의 의무 - 아렌트와 김남주
4. 삶의 우발성 - 알튀세르와 강은교
5.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시즘 - 바타이유와 박정대
6. 소비사회의 유혹 - 벤야민과 유하
7. 무한으로서의 타자 - 레비나스와 원재훈
8. 망각의 지혜 - 니체와 황동규
9. 미시정치학 - 푸코와 김수영
10. 대화의 재발견 - 가라타니 고진과 도종환
11. 밝음의 존재론 - 하이데거와 김춘수
12. 주름과 리좀의 사유 - 들뢰즈와 최두석
13. 애무의 비밀 - 사르트르와 최영미
14. 작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 - 아도르노와 최명란
15. 해탈을 위한 해체론 - 데리다와 오규원
16. 미래 정치철학의 화두 - 아감벤과 한하운
17. 육화된 마음 - 메를로 퐁티와 정현종
18. 포스트모던의 모던함 - 리오타르와 이상
19.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 - 바디우와 황지우
20. 인정에 목마른 인간 - 호네트와 박찬일
21. 한국 사유의 논리 - 박동환과 김준태
보시는 것처럼 굉장히 다양한 철학 사상가와 시인을 짝지었습니다. 총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시인이 등장합니다. 그 연결의 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저자가 시집도 꽤나 읽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책을 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거든요.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에서처럼 나중에 읽기 위해 찜해 놓을 책들을 여러 권 건졌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저처럼 철학을 곁눈질만 하는 문외한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는 겁니다. 강신주 선생도 글을 쉽게 쓰는 재주가 있어서 참 고맙더군요. 모쪼록 남모를 고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건 이제 그만두고(그들을 돕는 일은 저 같은 상담자들에게 맡겨두고), 본업인 철학 분야에서 좋은 책을 많이 써 주기를 바랍니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훌륭한 책이고 훌륭한 시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마당쓸고 돈 줍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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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너무 어려워서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시집과 철학책을 멀리 하는 진정한 이유는 시나 철학에서 자신의 일상적 삶을 동요시키는 듯한 불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네그리와 박노해'를 통해 민중 아닌 다중의 논리가,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를 통해 언어에는 뼈가 있다는 사실이, '아렌트와 김남주'를 통해 사유는 곧 의무라는 판단이, '알튀세르와 강은교'를 통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바타이유와 박정대'를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의 비밀이, '벤야민과 유하'를 통해 자본주의의 소비 논리가, '레비나스와 원재훈'을 통해 기다림의 신비가, '니체와 황동규'를 통해 망각의 지혜가, '푸코와 김수영'을 통해 자발적 복종의 무서움이, '고진과 도종환'을 통해 타자로의 비약이 지닌 신비가, '하이데거와 김춘수'를 통해 존재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들뢰즈와 최두석'을 통해 마주침과 주름의 논리가, '사르트르와 최영미'를 통해 애무와 섹스의 비밀이, '아도르노와 최명란'을 통해 교환 불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데리다와 오규원'을 통해 죽음과 삶의 관계가, '아감벤과 한하운'을 통해 생명 정치의 무서움이, '메를로-퐁티와 정현종'을 통해 사랑과 고독의 진실이, '리오타르와 이상'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가, '바디우와 황지우'를 통해 사랑의 내적 구조가, '호네트와 박찬일'을 통해 인정투쟁의 심리학이, '박동환과 김준태'를 통해 한국 사유의 가능성이 펼쳐집니다.
* 촛불 집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가자들은 네그리가 말한 것처럼 '공통되기(becoming common)'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힘을 주면서 참가자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분리시키고 단절시켰던 간극을 극복하고 공통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처음 맛보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경제 개발은 자본가 계층을 양성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농지를 정리하고 기계화함으로써 농촌에서 남아도는 인력을 양산해 내야 했던 것이지요.
*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철저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 우발성과 마주침의 철학을 주장한 루이 알튀세르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집요하게 마주침의 문제와 그것의 효과에 대해 숙고했던 인물이었지요.
*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간의 성적인 욕망에 일종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바타이유 이후에 에로티즘을 사유할 때 우리는 매번 금기라는 문제에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레비나스는 그다지도 집요하게 타자라는 문제에 집착했지요.
* 과거는 우리에게 기억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도 기대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물론 현재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 푸코는 우리의 자유를 길들이고 억압하려는 권력이 청와대나 국회 같은 거시적 층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도처의 개인들이 의식하기 힘든 미시적인 차원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ㅁ을 밝혀 냅니다. 이 때문에 흔히 푸코의 정치철학을 미시정치학이라고도 부르지요.
* 대화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부터 고진은 다음과 같은 타자론을 전개합니다. "타자는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런 타자와의 관계는 비대칭적인 것이다".
* 고진은 철학, 언어학, 경제학 등도 모두 예외 없이 타자에 대한 비약, 혹은 도약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사랑이란 감정이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사르트르의 철학 전체는 '존재와 무'라는 제목으로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무(nothingness)'는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현재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해체주의자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는 데리다입니다. 그는 '차이'가 모든 것의 의미를 구성한다고 통찰했던 철학자였지요.
* 이탈리아의 현대 철학자 아감벤이라면 문둥이들을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을 겁니다.
*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적대 관계가 공동체 외부의 벌거벗은 생명(조에)과 공동체 내부의 정치적 존재(비오스) 사이에 그어졌다면, 이제 근대 민주주의에서 그것이 한 개체 내부에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를 함께 각인시키는 식으로 이행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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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그리 사상의 진화(2008, 갈무리, 마이클 하트, 박서현/정남영 옮김)
* 다중(2008, 세종서적,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서창현 외 옮김)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천재의 의무(2000, 문화과학사, 레이 몽크, 남기창 옮김)
* 기형도 전집(1999, 문학과지성사, 기형도)
* 철학적 탐구(2006, 책세상,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옮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 한길사,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2008, 이매진, 알튀세르, 권은미 옮김)
* 에로티즘의 역사(1998, 민음사, 바타이유, 조한경 옮김)
* 시간과 타자(1996, 문예출판사, 레비나스, 강영안 옮김)
* 들뢰즈의 니체(2007, 철학과현실사, 들뢰즈, 박찬국 옮김)
* 들뢰즈 커넥션(2005, 현실문화연구, 존 라이크만, 김재인 옮김)
* 천 개의 고원(2001, 새물결,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 차이와 반복(2004, 민음사)
* 존재와 무(2009, 동서문화사, 사르트르, 정소성 옮김)
* 해체론 시대의 철학(1996, 문학과지성사, 김상환)
* 목소리와 현상(2004, 인간사랑, 데리다, 김상록 옮김)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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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으로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유고작인 '정신의 삶'을 보통 드는데 인간의 조건은 앞뒤의 두 저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철학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유태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하이데거 밑에서 수학했고(잠시 사귀기도 했죠;;;) 야스퍼스의 지도 하에 박사 논문을 썼을 정도로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과 두루두루 교류했던 사람입니다. 여성 철학자로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로자 룩셈부르크에 자주 비견되곤 했죠. 혹자는 시몬 베이유, 에디트 슈타인을 함께 묶어서 4대 유태인 여류 철학자로 꼽기도 합니다.
인간의 조건에서 다루지 않고 남겨 놓았던 사유, 의지, 판단의 정신적 활동을 저술하던 1975년 12월 4일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사망하고 맙니다.
한나 아렌트는 노동, 작업, 행위를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을 구성하는 세 가지 근본 활동으로 봤는데 그녀는 이 책에서 각각의 요소인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를 일별하여 인간의 조건을 다시 사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석이 많은 책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주석이 많다는 건 본문에서 설명한 것 만으로 독자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보거든요. 이건 단순히 글을 쉽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쨌거나 그만큼 함축적인 글쓰기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역시 제 선입견에 여지없이 들어맞는 책입니다. 주석도 많고 어려워요. ㅠ.ㅠ
상당히 천천히 곰씹어 가면서 읽었는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제 지식의 부족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전체주의의 기원'부터 읽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는 독서였습니다. 원문을 비교하며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의 질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쉽게 번역된 책을 아는 분이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저처럼 한나 아렌트 정도의 철학자가 쓴 저작은 읽어줘야 교양인이지 하는 나이브한 태도로 도전해서는 좀처럼 오르기 어려운 거봉이니 충분히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덧1. 책의 난도와 별개로 한길사도 디자인에 신경을 조금만 더 썼으면 좋겠습니다. 하드 커버 양장까지는 참겠는데 디자인이 정말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구립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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