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상담 현장에서도 심리평가 없이 상담만 진행하는 경우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심리평가의 실시가 통상적인 절차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심리평가와 관련하여 평가자가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검사 라포의 형성 유무 확인', '심리검사 실시 관련 orientation', '비밀 보장 범위 및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된 education'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죠.
저는 거기에 이전에 심리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과정을 추가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수검자가 심리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학습 효과입니다. MMPI-2/A, TCI 등 흔히 사용하는 구조화된 질문지형 검사의 경우는 원자료가 가공된 결과물의 내용을 수검자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지만 지능 검사라든가 반응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로르샤하 검사 같은 투사법 검사는 노출 정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interval(지능 검사의 경우 안전하게 하려면 3년 이상)을 두고 실시해야 합니다. 만약 이전 심리검사 경험이 다시 실시하는 검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면 검사를 미루거나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검사 구성을 달리하는 등 대비책을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 다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검사에 노출된 정도를 파악하는 겁니다. 이건 학습 효과와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는데 수검자가 이전 검사의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지, 예를 들어 문장완성검사의 개별 문항이나 로르샤하 카드를 기억하는 정도인지, 해석 상담 시 이전 평가자가 반응 내용을 보여주면서 해석을 진행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전 검사가 이번에 실시하는 심리평가 결과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가설입니다. 사실 상 심리평가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므로 수검자가 이미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면 왜 심리평가를 또 받는지 알아야 합니다. 기존 평가 결과에 의한 심리치료/상담이 실패했기 때문인지, 그래서 변별 진단이 다시 필요한 지 등을 고려해 가설을 수정하거나 새로 가설을 세워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가설이 바뀌면 선택해야 하는 심리검사 도구와 타이밍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사전 경험은 중요합니다.
심리치료나 상담을 하는 임상가라면 과거에 심리치료/상담을 받은 경험이 왜 중요한 지 잘 아실 겁니다. 심리평가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의 비슷한 이유로 심리평가를 받은 경험을 확인해야 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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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이나 상담 심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심리검사에 노출되기 전에 종합심리평가를 받아 보는 경험이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딱 한번의 검사가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심리학도는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을 것' 포스팅 참조)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누구나 한 차례 이상의 심리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등록 환자에게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심리평가를 받게 한다고 해 임상심리 분야에서 악명이 높은 메X스 신경정신과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재실시하게 되는 일은 꽤 자주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상담/심리치료의 사전-사후 비교를 위해 실시하는 것이죠. 사전 평가에서 나타난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증상의 완화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후 재평가 결과와 비교하기 위해 재실시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심리검사의 재실시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이는 검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재실시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건 '학습효과'입니다. 수검자가 이전에 검사를 실시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 것까지는 크게 상관없지만 검사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후 검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간격을 두고 실시해야 하는거죠. 이 때 기준으로 삼는 게 지능 검사입니다.
아직 K-WAIS-IV와 K-WISC-IV의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전 버젼을 기준으로 보면 언어성 영역의 소검사는 대략 1년, 동작성 영역의 소검사는 2년 동안 학습 효과가 나타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지능 검사의 경우 학습 효과 없이 안전하게 재실시하려면 2년의 간격은 필요하다는거죠.
로샤나 TAT처럼 시각적 자극을 사용하는 투사법 검사는 재실시 간격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검사입니다. 검사 자극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자신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기억하는 건 더더욱 그렇거든요. 하지만 문장완성검사처럼 언어적 자극을 사용하는 투사법 검사는 상대적으로 수검자의 기억에 좀 더 오래 남기 때문에 충분한 간격을 두지 않으면 나중에 실시할 검사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증상의 변화에 따른 재실시 간격입니다. TCI와 같은 기질/성격 검사는 재실시 간격이 커도 기질/성격 유형이 급격하게 바뀌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지만 MMPI-2/A와 같은 정서 상태 검사는 수검자의 정서 상태를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좀 더 자주 실시해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종합심리평가의 경우 실시 목적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소 2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실시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만약
증상 또는 심리적 문제 변화의 사전-사후 비교가 유일한 실시 목적이라면 MMPI-2(또는 거기에 로샤 검사를 추가하는 형태)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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