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초에
'학교 적응을 못하는 아동을 심리평가할 때 고려할 점'이라는 포스팅에서 학교 부적응을 보이는 아동/청소년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지적 제한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적 제한에 의한 학교 부적응을 고려할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표준화된 지능 검사를 실시하는거지만 문제는 개인 지능 검사가 종합심리평가 내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평가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지능 검사를 반드시 실시해야만 하는 아동/청소년을 사전에 선별할 수 있다면 현장 임상가의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아동/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선별심리평가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MMPI-A를 활용해 낮은 지능의 가능성을 예상함으로써 지능 검사를 실시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때 사용하는 척도는 A-las 내용 척도와 IMM 보충 척도입니다.
* 1단계 : A-las 척도의 상승 + A-las1 척도의 상승
(모 척도는 최소 60T 이상, 소척도는 최소 65T 이상 상승 필요, 70T 이상이면 가능성 up!)
A-las 척도(낮은 포부)는 16문항으로 구성된 내용 척도로 관련 연구 결과 저조한 학업 수행 및 학교 활동 참가 회피의 가장 좋은 측정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A-las 척도에는 두 개의 소척도가 포함되는데 A-las1(낮은 성취성)과 A-las2(주도성 결여)입니다. 당연히 둘 다 높다면 좀 더 확신을 갖고 수검자의 지적 제한을 예상할 수 있지만 둘 중 A-las1 척도가 좀 더 분명하게 지적 제한 문제를 드러내는 척도입니다. 즉,
A-las 모척도가 60T 이상 상승하고 A-las1 소척도가 65T 이상 상승하면 낮은 지능을 의심해야 합니다.
조금 극단적인 반례를 들면, A-las2(주도성 결여) 척도는 상승하는데 A-las1(낮은 성취성) 척도는 상승하지 않는 경우는 낮은 지능보다 학습 의지 박약이나 수동성, 학업에 대한 무관심, 목표 상실 등의 요인을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 2단계 : IMM 척도의 상승 (최소 65T 이상 상승, 70T 이상이면 가능성 up!)
IMM 척도(미성숙)는 1992년에 Archer, Pancoast 및 Gordon에 의해 개발된 척도로 총 43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척도 이름처럼 점수가 높을수록 수검자가 더 미성숙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령 증가와 부적인 상관을 보이기 때문에 연령이 증가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바꿔 말하면 똑같은 점수일 경우 중학생에 비해 고등학생이 더 미성숙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IMM 척도에 포함된 문항들은 자신감의 결여, 통찰과 내성의 결여, 인지적 복합성의 결여, 자기 중심성, 적대감과 반사회적 태도와 같은 내용들을 포함하는데 연구 결과 남녀 모두에서 학업상의 어려움과 높은 관련을 보였습니다.
A-las 척도의 상승(+A-las1의 상승)만으로도 낮은 지능과 그에 따르는 낮은 학업 성취도, 학교 부적응 등을 고려할 수 있지만
IMM 척도까지 동반 상승한 경우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 및 경험의 부재까지 겹치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1단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낮은 지능(ID보다 BIF나 BA가 더 문제)을 의심해야 하며 최소 생활기록부 점검과 발달력 탐색을 해야 하고 표준화된 지능 검사의 추가 실시를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에서까지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면 수검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이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심리평가와 별개로 해석상담과 부모교육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적 제한에 의한 학교 부적응이 야기되는 것이니 A-sch 내용 척도의 상승도 예상할 수 있지만 경험적으로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A-sch 내용 척도도 동반상승한다면 당연히 더욱 신뢰롭게 해석할 수 있지만 A-sch 척도가 상승하지 않는다고 해서 낮은 지능에 의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죠.
즉, 2단계 점검 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낮은 지능에 의한 성적 저하와 이에 따르는 학교 부적응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A-sch 척도의 상승까지는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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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alo님이 포스팅하신 글(게임 보고서)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마음 한 켠편에 접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결론이랄 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학습을 위해 일정 수준의 박탈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교육은 좀 더 전인적인 부분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 이야기는 학습에만 국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학부생이었을 때 저는 과 내 심리학 학술 모임에서 활동했습니다. 지금도 졸업생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심리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었죠. 심리학에 걸신이 들렸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그때는 정보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인터넷도 없었고(있기는 했지만 매우 제한된 사람만 사용할 수 있었으니), 도서관에는 없는 책 투성이 였습니다. 원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형 서점의 외서 판매부를 이 잡듯이 뒤져야 했으니까요. 겨우 구한 원서를 번역하다시피 노트에 정리를 하고 그림을 베껴서 그릴 정도(생리 심리학의 경우)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 노트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착이 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치열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을 보면 도무지 치열함이 없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예전에 비해 자료 검색이 훨씬 쉬워졌지요. 원문 검색도 앉은 자리에서 마음대로 하고 보고서만 전문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편리함 때문에 치열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부족함이 없으니 고민이 없고, 고민이 없으니 노력이 부족해지더군요. 강사가 힘들게 준비한 PT 자료를 복사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노트북 자판 치기도 귀찮아서 칠판을 폰카로 찍어버리더군요. 유료 강좌인데도 별다른 심각성 없이 내 돈 내고 내가 빠지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그냥 빠져버리고(다른 사람의 학습 의욕을 꺾는 문제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용도 이해 못하면서 족보를 짜깁기해서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런 어설픈 노력으로 받은 학점들을 소중하게는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자신이 원하는 학점을 주지 않으면 이메일로 협박을 하고 교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는 통에 강사가 학생의 눈치를 보고 학생이 원하는대로 강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강사가 의욕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그저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10초에 한 번씩 웃길 수 있도록 '웃찾사'나 열심히 연구해야 하지요.
뭐든지 돈과 시간과 인터넷만 있으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학습의 기쁨과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후배들의 실력(?)은 그나마 제가 공부를 하던 때보다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학부 때부터 선배에게 겨우 얻은 원서를 몰래 제본해 한 페이지에 50개 이상씩의 단어를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을 하던 열정은 사라지고 요새는 원서를 교재로 채택하면 교수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게 됩니다. 고학년이 되어도 원서를 제대로 해석하는 학생이 드물고 대학원을 가지 않으면 외국 저널을 참고하는 학생이 없습니다. 저널 명을 알려줘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되묻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필수 분야라고 하는 통계 방법론에 대한 지식도 하향평준화된 것 같고(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더 형편없습니다)... 답답합니다.
인제 와서야 대학원 때 뭘 물어보면 박사 과정 선배들이 달랑 책 이름 하나 던져주고 거기에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는지 이해합니다. 그 당시에는 그 선배들을 원망하고 이를 바드득 갈면서 밤을 새서 원서를 읽었지만 지금은 그 선배들이 고맙습니다. 그 박탈감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기에 좋은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기르게 되었고, 자료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강의를 할 때 수업 노트를 복사해주지 않습니다. 출처(reference)를 밝히지 않는 소스를 자료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보고서는 반드시 꼼꼼히 읽어보고 내용을 이해하고 쓴 것인지 구석구석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선배들처럼 누군가가 정말 중요한 내용을 물어보면 출처만 가르쳐주고 화두를 던집니다. 그걸 깨달은 사람은 저처럼 이를 갈면서 찾아보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겠지요. 그건 그 사람의 몫입니다.
이런 말을 블로그에서 주절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저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노땅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덧. 그렇다면 왜 저는 이곳 자료실에 자료를 올리고 있는 걸까요? 월덴 3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감당하는 분들은 충분히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가신 분들은 몰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결실은 노력하는 자만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거든요.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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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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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에는 박탈이 필요하다.
언제나, 다시 읽어도 좋은 글입니다. 내 주절거림의 내용이 너무 많아질 것 같은 데, 트랙백해도 될까 모르겠습니다.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