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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매사에 의심많은 회의주의자이자 냉소주의자인 제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닥치고 추종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본 조비'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본 조비는 제가 유일하게 모든 앨범을 사 모으는 밴드(가수?)인데 기분이 울적할 때(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본 조비의 음악을 들으면 마술처럼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이후로 광팬이 되어서 닥치는대로 모든 작품을 읽었는데(제가 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해변의 카프카' 소개글 참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주력 분야인 장편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닥치고 읽어야 하는 'must read' 아이템임에 틀림없지요.
30년 동안 여기저기에 써 두었던 다양한 글들을 '서문 해설 등', '인사말 메시지 등', '음악에 관하여', '(언더 그라운드)에 관하여',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 '인물에 관하여',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질문과 그 대답', '짧은 픽션', '소설을 쓴다는 것', '해설 대담'이라는 주제로 묶어서 출판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야말로 하루키라는 남자를 양파처럼 맛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새삼 들었는데,
1. 이 사람은 참 고양이 같은 남자로구나(실제로 고양이와 살았고 아마 지금도 함께 살고 있을 겁니다)2. 이 사람 (보기와 달리) 참 마음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구나3. 이 사람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
마음의 구성 성분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게 팔할이 넘을 것이 분명한 회의와 냉소는 하루키에게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긍정과 낙관으로 가득찬 사람 같거든요. 그래서 많이 부럽습니다.
하루키는 관찰력이 워낙 뛰어난 사람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심미안이 아주 발달되어 있어서 하루키처럼 살 수만 있다면 사는게 얼마나 알차고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 제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라니까요.
소설과 관련해서는 하루키만의 소설관이랄까, 세계관이랄까 하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좀 당혹스러웠는데 이 책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정리되었거든요.
소설을 쓸 때 마음에 새겨 놓고 있다는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는 생각과
"나는 비교적 다림질에 자신이 있다, 라고 할까 적어도 내 셔츠는 내 손으로 다려 입는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그게 당연하기 때문이다"라는 삶의 자세가 저랑 비슷한 걸 확인한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모든 글 꼭지가 다 마음에 들지만 특히 '음악에 관하여'에 속한 글들이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번역자인 이영미씨가 번역을 해서 그런지 매끄럽고 읽기 편합니다. 하루키팬이라면 이런 책을 놓칠리가 없을테니 하루키를 잘 모르는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네요. 읽는 맛이 아주 좋습니다.
덧. 완소 하루키가 어느새 환갑이 넘었다니 뭔가 아쉽고 슬프고 그렇습니다.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걸 보고 싶은데 말이죠. 시간이 야속하게도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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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해변의 카프카는 25년 동안 8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낸 다작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 만에 심혈을 기울여 써 낸 장편소설입니다. 2003년에 나왔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최근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뭐 항상 그랬듯이 책 내용 소개는 없습니다. 앞으로 읽어볼 분을 위한 배려라고나 할까요? ^^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들이 좋고 싫어하는 정도가 매우 극단적인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저처럼 매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의 수도 만만치가 않죠.
노르웨이의 숲(국내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저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듭니다)을 읽은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작인 '어둠의 저편'까지 대부분의 소설과 에세이(하루키의 에세이집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를 읽었지만 그러면서도 제가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지금까지 잘 몰랐습니다.
음악과 음식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고 상황 묘사가 감칠맛이 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변의 카프카를 읽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요..
다음은 해변의 카프카 중 일부입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나카타'라는 머리가 모자란 할아버지를 끝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트럭 운전사 '호시노'의 독백입니다.
"왜 아저씨가 이상하냐 하면 음, 아저씨는 나라는 인간을 바꿔버렸기 때문이지. 불과 열흘 동안에 나는 엄청나게 변했어.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로 주위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냥 대충 보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구. 지금까지 조금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악이 묵직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거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누군가, 비슷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야... 후략" - 해변의 카프카 하권 342p 중 -
그렇습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제 주변의 것들에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무심코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것들에게...
저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제 인생이 2002년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쯤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하룻밤 만에 딴 사람처럼 바뀌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워밍업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도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보면 살아가는 모양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저를 알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의 저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도 깜짝 놀라신 일이 있었고요. 전부는 아니지만 제 인생의 변화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조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것에 예민해진 것 같은데,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하여간 뭔가가 풍부해졌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하여간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항상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는 줄곧 생각에만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 복잡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려면 머리를 정신없이 써야합니다. 그렇지만 삶에 좀 더 짙은 색깔을 입히려면 때로는 생각을 끄고 마음을 켜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6500원이라는 가격은 커피 한 잔 값으로는 정말 터무니없군', '이 원두는 어떻게 로스팅을 했을까' 따위의 생각은 일단 끄고 혀의 밑바닥을 쓰다듬으면서 맴도는 커피의 맛과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 그리고 코끝을 감도는 커피 향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 박물관에 있는 마티스의 그림을 모두 처분하면 대체 어느 정도의 금액이 될까', '이 그림들 정말 진품일까?'와 같은 생각은 차곡차곡 접어서 잠시 치워두고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이 진탕되어 울렁거리는 느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건대 생각을 끄고 마음을 켜고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돈을 많이 벌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야 그렇게 됩니다. 당연히 단기간에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확신합니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_-;;;
해변의 카프카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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