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심리학 분야를 비롯해 인문학을 살펴봐도 그렇고요. 힐링을 다루는 많은 책들도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 상 옳은 말일수록 내 것으로 만들기는 더 어렵더군요. 저는 나름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구든 그렇게 되려면 단순히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결정적인 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런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만 에크하르트 톨레가 이야기하는 'Now'를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게는 그런 체험의 기회를 준 두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하고 '여행'입니다.
죽음과 직접 조우했던 건 아니었지만 삶의 유한성에 대해 뼈저리게 통찰했던 경험이었죠. 지금도 가끔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세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래가 주목되는 심리학 박사였던 제 학부 선배의 죽음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어처구니없이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조문을 가면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기는 하지만 그 선배의 장례식장에서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 인생이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에 빠져 한동안 힘들었었죠.
두 번째 죽음은 가뭄에 콩나듯이 제게는 아주 드문 술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문이었던 녀석의 죽음이었습니다. 제 보험 설계사이기도 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술 생각 나서 전화했냐?"고 농을 던졌는데 그 녀석이 아니라 그 녀석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귀갓길에 뺑소니 차에 치여 그 녀석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전년도 말에 기분좋게 술 한잔 하고 헤어지면서 불콰한 얼굴로 사람좋게 웃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 녀석은 자신에게 내년이 없을 걸 알았을까?'하는 생각이 몇 달 동안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나에게도 내년이 허락되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도요. 조문을 갔다가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한 약혼녀를 보고 가슴이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그날 참 많이도 울었지요.
세 번째 죽음은 도박 중독 상담을 받던 제 내담자였습니다. 술 문제도 함께 있던 분이었는데 가족과 함께 상담을 받고 있었고 가족 갈등이 심해서 그 쪽으로 초점을 맞춰 상담을 진행하던 차에 이 분이 술 김에 가족에게 울분을 토로하면서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박카스 병에 담아놓은 농약을 충동적으로 마시는 바람에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저세상으로 가버리셨습니다. 그 때의 충격으로 포스팅을 한 글(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도 있습니다. 그 당시 남은 가족들을 계속 상담하면서 함께 애도 작업을 했는데 상담자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유한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지금까지 살면서 저도 병환이나 고령으로 많은 친지들과 사별했지만 선배와 친구와 내담자, 이 세 사람의 죽음만큼 제게 큰 울림을 준 사건이 없었습니다. 이 세 번의 경험으로 제 인생관이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생명의 덧없음을, 삶의 유한성을,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전혀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지 않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남지 않을만큼요.
그래서 저는 죽음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 올 때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지 말고 최대한 머무르면서 그 의미를 곰씹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싶겠지만 버티세요. 어차피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언제 내게 닥칠 지 모릅니다. 그걸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를 살 수 있습니다.
죽음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Now'를 충실하게 살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여행'도 있습니다. 죽음과는 반대 의미에서요. '삶의 충실함'을 몸으로 느꼈거든요. 몇 번의 경험이 있었는데
'2006년 터키 여행 때 생일날 열기구 위에서 본 떠오르는 아침해', '2009년 네팔 여행 때 본 일출', '2010년 쿠바 여행 때 마리아 라 고르다 해변에 누워 있던 경험', '2011년 스페인 여행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눈물 흘린 경험', '2013년 케냐 여행 때 라무섬에서 보낸 2박 3일' 등이 대표적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꼈거나 살아있기를 잘 했다는 뿌듯함을 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행에는 여러가지 장점이 참 많지만 저는 제가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도 여행을 사랑합니다. 여행을 가면 현재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게 되거든요.
세 번의 죽음을 간접 체험한 뒤로 제 현생관이 바뀌었고 여행을 통해 그 가치를 잊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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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미래와 현재가 얽히는 영화는 하나같이 관객에게 두통을 선사하는데 그걸 어느 정도 극복한 영화가 제 생각에는 '백 투 더 퓨처'였습니다. 두 가지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죠. 미래의 존재가 현재에 와서 아무 것도 손대지 않는다(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는 것과 미래와 현재의 자신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
루퍼에서도 여지없이 이 골치아픈 일이 일어납니다. 미래의 자기가 현재에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현재의 자기가 미래의 자기를 죽였기 때문이죠. 그러니 당연히 현재의 자기가 미래의 자기를 죽였어야 시간의 흐름이 제대로 돌아가는데 미래에서 온 자기가 현재의 자기를 두들겨패고 자취를 감춥니다. 미래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죠(이게 핵심 줄거리). 사실 현재의 자기를 때려눕히고 자취를 감춘 순간 자신이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올 조건 자체가 상실된 것이니 말이 안되는 상황이 됩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저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장치가 몇 가지 들어가 있는데 하나는 현재의 자기가 미래의 자기를 죽인다는 설정(터미네이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자기에게 영향(사실은 고문)을 미치면 현재에 돌아온 미래의 자기에게 곧바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영화에서 아주 끔찍한 장면으로 나타납니다)이죠.
결국은 잘못된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는 건 현재의 자기라는 메시지(지금의 내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는)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깜짝 반전이 있습니다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은 못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을 좋아해서 선택한 영화였습니다만 괜찮았습니다. 인셉션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어 이번 영화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비슷한 인상을 주기 위해 하관에 특수 분장을 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외양은 조금 이상하지만 역시나 연기력은 훌륭합니다.
국내에서는 조토끼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얼마전에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를 모두 봤다고 한국 영화계에 러브콜을 날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미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 기대되는 배우지요.
덧. 잘 만든 영화임에도 옥의 티가 하나 있는데 가장 뜬금없는 장면이 러브씬이라는 거. "이건 대체 뭥미?"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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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박 중독자에게는 무엇보다도 미래가 중요하다'라는 글에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도박 중독자의 문제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미래를 보려고 하지 않는 도박 중독자의 시각과 미래에만 집착하는 가족의 시각 차이가 갈등의 악화 원인이라는 점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위에 링크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도박 중독자는 미래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과거의 미련에만 사로잡혀 허우적거리고 도박 중독의 늪에서 조금 빠져나오게 되면 그 때부터는 자신이 처한 현실만 바라보고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고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도박 중독 치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은 어떨까요?
도박 중독자와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온통 신경을 미래에만 쏟고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만 걱정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정작 현재를 누리지 못합니다.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만 하고 한편으로는 도박자가 또 도박에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 자신들이 발 붙이고 살고 있는 현재에 눈을 돌려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도박자는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고 살려고 하고 그 가족은 현재를 보지 못하고 미래만 걱정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도박자와 가족 간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도박자는 나보고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울이는 자신의 현재 노력을 가족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서 억울해하고 가족들은 뻔히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박자에게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거지요.
그래서 도박자가 현재 뿐 아니라 미래를 예견하면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지나치게 미래를 걱정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끔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챙겨주는 것이 도박 중독 치료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시간에 대한 도박자와 가족의 시각 차이를 좁히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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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확실치는 않아도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버틴다고 해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요 모양 요 꼴로 살 것이 분명하다면 누가 현재를 희생하고 앞날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도박 중독자는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박에 중독된 도박자는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합니다. 근시안(tunnel vision)에 빠져 있어 터널 안에 들어온 사람이 터널 끝 이외의 주변 시야가 차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박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지는 것도 영향을 미치지만 시간에 대한 감각도 일반 사람들과 달라져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게 됩니다.
도박에 빠져 있을 때도 그렇고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어도 초반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서 잃어버린 돈에 대한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실수했던 도박판을 복기하거나 돈을 땄던 도박판을 상상하면서 위안을 얻게 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발등에 떨어진 현재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도박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된 가족들이 대위 변제를 거절하고 손을 떼면서 도박으로 인해 생긴 각종 피해들이 도박자에게 물 밀듯이 밀어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도박 빚을 갚는 것,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일을 부랴부랴 하는 것, 소홀헀던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들을 한꺼번에 하느라고 허덕거리게 됩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표하는 도박자와 당연한 거 하면서 무슨 칭찬을 들으려고 하느냐며 뻔뻔함에 어이없다는 가족들의 의견 차이 때문에 갈등이 폭발하는 시기도 이 맘때쯤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도박 중독자가 과거와 현재에 발이 묶인 채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특히 현재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만 치중해서 미래를 쳐다 볼 엄두를 내지 않거나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상류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다시 밀리기 쉽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계속 노를 저을 수 있는 원동력이니까요.
바꿔 말하면 도박 중독자가 미래를 이야기하고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말하기 시작하면 도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자를 대하는 상담자와 가족들은 반드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도박자가 미래를 이야기하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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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심리치료/상담 기법들이 'here & now'를 강조합니다.
소위 현존(현재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 현재가 중요할까요?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취약하고, 미래에 집착하는 사람은 불안 장애에 취약하다고요.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은 이루지 못한,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깔려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감정을 유발하게 되어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불안은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나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하고 있어 실제 경험 유무와 상관 없이 어느 정도의 확률로든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불안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우울, 불안을 야기하는 과거, 미래에 대한 집착은 둘 다 비교에 의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경험한 것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우울하게 될 것이고,과거에 경험한 것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현재의 상태와 비교함으로써 우울하게 되는 것이죠.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와 비교함으로써 그 차이에 의해 유발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게 되면 그런 비교의 가능성이 대폭 줄어듭니다.
그래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치료/상담의 방향을 현재에 맞춤으로써 우울, 불안의 출현 가능성을 억제하고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안전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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