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 문제와 정치 사상사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필리프 사시에가 지었고 홍세화 선생님이 번역한 똘레랑스에 대한 책,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Pourquoi La tolerance, 1999)'를 북 크로싱합니다.
역자 인터뷰나 해설이 실린 책 중에서 이처럼 책 내용 이해를 돕는 경우는 별로 못 봤던 것 같네요.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의 기원, 형성, 현대의 의미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소개글'을 참고하시고요.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태그 -
Book Crossing,
똘레랑스,
민주주의,
북 크로싱,
북크로싱,
사회,
앵똘레랑스,
정치,
정치 사상사,
필리프 사시에,
홍세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921
★★★☆☆
이미지 출처 : YES24
현대 사회 문제와 정치 사상사를 전문으로 하는 필리프 사시에가 쓰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홍세화 선생님이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편집인이 밝힌 것처럼 '평등한 세상을 위한 지식'을 담으려는 시리즈 중 한 권이고 똘레랑스를 그러한 지식의 하나로 생각했네요.
CD가 제공되기도 하지만 이 책의 서두 부분에는 홍세화 선생님의 '성찰하는 개인에서 행동하는 시민으로'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인터뷰는 시야를 좁게 만들어 정작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책은 예외의 경우로 앞으로 읽게 될 똘레랑스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잘 요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가 잘 되더군요.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는 관련 분야의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의외로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똘레랑스의 기원, 어떤 역사적 절차를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아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만 항상 잘 읽히는 책만 볼 수는 없는거니까요.
닫기
* 똘레랑스의 의미를 가장 간단하게 줄인다면 '관용'보다는 '용인'에 가깝습니다. 관용이라는 말에는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똘레랑스는 그런 게 아니라 '차이'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중용과 외유내강이 개인에 중점을 둔 문제라면 똘레랑스는 사회적 가치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합니다. 똘레랑스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문제로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 똘레랑스가 마치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어영부영 우유부단한 것으로 보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단호한 자세를 요구하는 거죠.
* 차이를 용인하라는 똘레랑스를 풀어서 얘기하면,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지적 인종주의가 뭐냐 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두뇌 용량이 크게 나올 수 있거나 아이큐가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이 학업 성적의 차이로 나타나고 학업 성적의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낳는 것, 또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지적 인종주의라고 부른 것입니다.
* 앵똘레랑스가 기득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소수자나 약자에 대해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이 작동되는 이유가 다수자, 다수에 속하는 집단들의 자기 만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똘레랑스가 확장되는 것은 기득권의 약화와 연관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종교개혁 시기, 당시의 똘레랑스는 공적인 소관 사항으로서, 종교의 진리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탄압하지 않는 정치와 그런 정치를 실행하는 군주의 개인적 태도를 가리켰다.
* 18세기 말에 이르러 똘레랑스는 국가의 처신을 계속 지탱함과 동시에 오늘의 '인간관계의 바람직한 방식'으로서의 개인적 태도로도 지칭하게 되었다.
* 볼테르는 앵똘레랑스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를 선험적으로 유죄라고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정신적 자세로 보았다. 앵똘레랑스를 폭력적 행동 이전에 가장 분명하게 내면화된 것으로 본 사람은 틀림없이 루소였다. "나는 자기가 믿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냉혹하게 저주를 내리는 모든 사람을 앵똘레랑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앵똘레랑은 더 이상 진리의 이름으로 약탈하고, 죽이고, 박해하는 자만을 뜻하지 않게 되었고, '생각하는' 죄인, 즉 생각의 죄인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 로크는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부심과 자만심에서 온다고 보았다. 요컨대 앵똘레랑은 다른 사람들을 오직 그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사람이다.
* 로크는 똘레랑스가 참된 교회의 주된 특정이라고 썼다. 만일 우리가 인간에게 그가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선, 친절, 그리고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명백히 기독교인 자체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 인간에게 유일한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명백한 것 앞에서 굴복하는 의무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명확한 사실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자는 "거짓되고 범죄의식"을 가진 자이므로 우리는 그런 의식의 잘못된 자유를 정당하게 구속할 수 있다.
* 똘레랑스가 정착되려면 이중의 확증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차이의 질서에 대한 확증이고, 또 하나는 다른 것들의 평화적 공존을 전제하는 유사성의 질서에 대한 확증이다.
* 똘레랑스는 모든 경우에서 서로 침투할 수 없는 두 개의 질서를 긍정하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질서가 어떤 질서이든.
* 모든 사상의 대결을 받아들이는 똘레랑스는 따라서 정확하게 진리를 구성한다.
* 똘레랑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과 마주한 의무-도덕-가 각자 그것에 공손히 복종하도록 놔두어야 할 만큼 충분히 진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인간을 그 자신의 내면의 확신에 복종하게 놔두는 것이다.
덧. 이 책은 2000년 상형문자 출판사에서 발간된 '왜 똘레랑스인가'를 개정하고 원고를 추가하여 2010년에 다시 펴낸 것입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태그 -
관용,
똘레랑,
똘레랑스,
로크,
루소,
민주주의,
배제,
볼테르,
상형문자,
억압,
용인,
지적 인종주의,
차별,
차이,
토마스 아퀴나스,
피에르 부르디외,
필리프 사시에,
홍세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917
트위터를 하면서는 그래도 제 정치 성향이 드러날 트윗을 남기기는 했어도 그동안 개인적으로 어느 정치 세력을지지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 적이 거의 없고
포스팅을 하면 계속 남게 되는 블로그에서는 더더군다나 밝히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투표 독려나 했었죠. referer log를 살펴보다 허지웅씨 블로그에서 유입된 링크가 있길래 따라가보니 작년 총선 때에도 진보신당(지금의 진보신당과는 다른)을 지지한다는
'포스팅'을 이미 한 적이 있더군요. 이 죽일 놈의 기억력~
그래서 그동안 비판적 지지를 한답시고 소위 될 놈만 찍어온 저로서는 나름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글입니다.
앞으로는 될 놈이 아닌 되어야 할 놈을 찍을 것이며 노동자라는 제 계급적 정체성에 충실한 정당과 정치세력만을 지지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트위터에서 이미 공언한 것처럼 앞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새누리당은 왜 빼느냐고 물으신다면 새누리당은 차마 정당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이익단체이니까요.
그래서 사회당과 통합한 것을 축하드리고 이번 선거를 비롯해 앞으로도 (당분간은)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사표가 되어도 좋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다행히 제가 사는 지역에도 진보신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 주셔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 좋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영선 후보는 지난 선거 때 뵙고 4년 만에 다시 얼굴을 뵙는데 진보신당의 심재옥 후보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정치에 둔감한 저도 잘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이번에 꼭 3%넘어서 김순자 여사님 꼭 원내 진출하시기 바라고 홍세화 대표님도 함께 가셨으면 좋겠네요.
덧. 제가 가진 표가 한 표라서 너무 죄송합니다. 녹색당 여러분들. 마음으로나마 응원합니다.
태그 -
계급,
김순자,
노동자,
녹색당,
민주통합당,
박영선,
블로그,
비판적 지지,
사회당,
새누리당,
심재옥,
정당,
정치,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트위터,
홍세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908
민중의 집(peoplehouse.net)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마포에 있는 지역 주민 자치 공동체로 홍세화 선생이 공동 대표를 맡고 계시는 곳인데 아이들이 방과 후 무료 배움터로 이용할 수 있는 '토끼똥 공부방'도 운영하고 있죠.
제가 어렸을 때에도 갖고 놀았던 과학상자를 요새 아이들도 좋아하나 봅니다. 토끼똥 공부방에서도 아이들이 과학상자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어제 타임라인에 2학기에 신입생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재료가 부족하니 집에서 활용하지 않는 과학상자가 있으면 기증해 달라는 트윗(@jinbohouse)이 올라왔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뭔가 마음 뿌듯한 일을 할 것이 없을까 찾던 중에 이거다 싶어 기증 의사를 밝혔고 어제 과학상자 시리즈 중 가장 큰 것을 구입해서 곧바로 보냈습니다.
곧 연휴가 시작되는터라 추석 전에 배송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추석 선물이 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래는 구매 인증샷~
그리고 이건 토끼똥 공부방 담당자께서 올려주신
수령 인증글~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674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는 월간 작은 책에서 창간 12주년, 87년 노동자 대투쟁 20년을 기념하여 '작은 책 스타'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좌 중 6개를 묶어 펴낸 책입니다.
정태인, 홍세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 노동 현장의 명사 뿐 아니라 박준성, 이임하, 안건모, 하종강 등 강호 고수들의 생생한 입말로 된 강의록을 들쳐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책 소개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국방부의 불온서적리스트에 당당히 등재된 자랑스러운 책,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617
★★★☆☆
이미지 출처 : YES24
제목만 보면 왜 80%의 노동자 민중이 20%의 자본가들에게 지배당하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줄 것만 같은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전직 버스기사이자 이 책의 대표저자인, 안건모 선생의 글 중 일부를 책 제목에 사용했을 뿐 사실 상 월간 <작은 책>이 창간 12주년, 87년 노동자 대투쟁 20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작은 책 스타'라는 제목의 강좌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역사(박준성), 여성(이임하), 글쓰기(안건모), 경제(정태인), 교육(홍세화), 노동(하종강) 등, 여섯 개의 글 꼭지를 갖고 사회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들이 수려한 말빨(?)과 그에 못지 않은 진심과 열정을 담아 강의한 내용을 한데 모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그대로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입말 그대로 풀어놓아 읽기가 참 편하고 쉽습니다. 읽는 족족 눈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고 참 재미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왠지 빨갱이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이 책은 읽다보면 귀중한 내용들이 많아서 왜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확실히 가는 책입니다. 역시~
정태인, 홍세화 선생은 그래도 좀 눈에 익은 분들이지만 다른 분들은 처음 보는데 다들 각 분야에서 한 자락 하는 분들임에는 틀림 없어 보입니다. 특히 하종강 선생의 글은 정말 일독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종강 선생의 강의 중 인상 깊은 대목 하나를 소개합니다.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에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죄 없이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 열등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것은 옳은 게 아닙니다"
추천 대상은 그 잘난 대한민국 1%에 들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서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서민들입니다.
덧. 그런데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 지 아세요? 제 생각에는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20에게 완전히 세뇌되어 (주제넘게도) 자신이 이미 20이라고 믿거나 입 닥치고 주변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면 20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80인 것은 알고 있으나 20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데 그 댓가를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치르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20에게 굴복하면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일 겁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