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창한데 이건 상담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저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로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자격을 취득한 새내기 전문가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은 듯한 벅찬 뿌듯함과 함께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 실력이 어떠하든,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내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뭔가 몸에 맞지 않는 과분한 옷을 걸친 것 같은 생경함은 덤이죠.
이 때 이러한 과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채우는 데 집중하는 상담자가 가장 많습니다. 수련 기간 동안에 못 읽었던 전공 서적을 탐독하기도 하고, 실전 워크샵에 집중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예 학교로 돌아가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상담자도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총 쏘는 기술보다 전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참전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죠.
전문가 자격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신에게 상담/심리치료란 무엇인지, 임상가로 살아간다면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지, 윤리적인 규정과 별개로 내담자/환자와 치료적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가치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중 관계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 등등.
수련 중에는 내담자/환자를 돕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고 그 기술이 완성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노력은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초보 전문가일때가 아니면 다지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현실과 타협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나서 1년 안에 마무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는 2003년 초에 전문가가 되고 나서 8월에 취업하기 전까지 약 6개월을 실업 급여를 받으며 쉬었습니다. 가치관을 정립하겠다는 구체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수련받느라고 미친 듯이 일만 하다 갑자기 쉬게 되면 할 일이 없거든요. 결국 자신과 대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일이나 공부를 시작하지 말고 충분히 쉬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게 임상가로서의 평생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런 가치관을 정립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상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내담자를 우선하겠다는 저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2018년 제가 속한 조직에서 순환 근무를 위한 지방 파견을 가라는 명령이 갑자기 내려왔습니다. 지방 센터에도 상근 상담자를 충원해야 한다는 건의를 이미 수년 전부터 했지만 회사는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다가 그 사업장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정부에서 근로 감독을 나온다고 하니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서울의 상담자를 긴급 파견해 보여주기를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6개월 또는 1년 간격으로 서울 센터에 근무하는 3명의 전문가를 계속 순환 파견 보내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제대로 상담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신규 내담자를 받아서 상담을 하더라도 내년에 제가 파견 명령을 받으면 저나 내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저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거기에서 상담을 시작해도 1년이 지나면 또 거기에서 진행하던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야말로 상담자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인거죠. 그래서 회사에 상담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가라는 것이죠. 이런 회사의 몰상식보다 더 역겨운 건 함께 일하던 다른 상담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조직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냐는 겁니다. 이 좋은 조직에서 잘리지 않고 정년퇴직을 하려면 내담자를 희생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상담자가 되면 안 되는 사람' 포스팅 참조).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제 가치관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6년 동안 일해온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8년 독립을 했습니다(
'인생 Season 2를 시작합니다' 포스팅 참조). 그리고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자평합니다.
제가 다니던 직장은 임상/상담 통틀어서 가장 일 적게 하면서도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무기 계약직이기 때문에 입 다물고 회사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그야말로 꿀 빠는 직장이죠. 그걸 제 발로 차버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았다면 저도 현실과 타협했을 지 모릅니다.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흔들릴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시점이 저처럼 늦게 오는 행운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현실과 타협하기 전에, 임상가의 가치관을 정립해 두시기 바랍니다. 저는 실력보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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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히도 저는 상담 회기 제한이 없는 곳에서 상담을 시작한데다 분야가 도박중독이었기 때문에 초단기 상담부터 200회기 이상의 장기 상담까지 여러 경험을 했지만 최근 상담의 추세는 단기 상담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상담자라면 단기 상담에 관련된 치료적 접근을 고민하고 공부할 수 밖에 없죠.
내담자의 호소 문제가 대인 관계 갈등일 때 굉장히 많은 경우 핵심 문제가 부모-자녀 관계인 걸 보면 대상관계이론에 바탕을 둔 접근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단기 상담에 접목시킨 게 바로 이 책의 주제인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Time Limited Dynamic Psychotherapy)'입니다.
밴더빌트 대학교의 Hans Strupp이 개발한 이 기법은 내담자의 핵심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치료 과정의 초점으로 삼는데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의 전제와 목표, 사례개념화, 상담자의 자세와 역전이 등 핵심적인 내용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Hanna Levenson이 치료자들을 위해 적용한 훈련 과정을 따라가며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수련을 받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전문 서적들이 이론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부모-자녀 관계 문제, 특히 애착 외상을 입은 내담자의 수가 이미 상당수를 차지하고 지금도 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걸 감안하면 단기 상담에서 대상관계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는 상담자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치료 기법 중 하나가 될거라 예상합니다. 그러니 일단 이 책만큼은 꼭 읽으세요. 특히 '순환적 부적응패턴(cyclical maladaptive pattern)'을 추출하는 절차는 반드시 알아두셔야 합니다.
Hanna Levenson의 이 책은 2008년에 학지사에서 나온 version(17,000원)과 2016년에 박영스토리에서 나온 version(15,000원)이 있는데 저라면 오래된 번역 시점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단연코 학지사에서 나온 version을 구매할 겁니다. 왜냐하면 믿고 볼 수 있는 정남운 선생님의 번역본이기 때문입니다. 정남운 선생님의 정평한 번역 솜씨는
'지금-여기에서의 전이분석'(이 책도 강력 추천합니다)에서도 이미 빛을 발한 적이 있죠.
닫기 *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TLDP)는 밴더빌트 대학의 Hans Strupp이 현대 정신분석, 특히 대상관계이론에 바탕을 두고 개발한 접근이다.
* 정신분석 기법 중 단기치료자를 위해 현저하게 바뀐 점은 치료자가 환자의 퇴행과 의존을 피하고 환자의 강점을 강조하며 치료과정을 보다 더 현실에 바탕을 두려고 한다는 것과 ‘완전한 개인사’를 구성하기 위해 생애 초기의 기원적 자료를 수집하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에서 치료자는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지금-여기에서의 관계에 더 집중하며, 정보가 불완전해도 기꺼이 그것에 기초하여 개입한다.
* TLDP는 환자가 다른 사람 및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활용한다.
* TLDP는 만성적인 대인 문제나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른바 어려운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된 융통성 있는 단기치료 접근이다.
* TLDP는 만성적이고 역기능적인 상호작용 스타일을 가진 환자를 위한 접근이면서, 시간 사용에 민감한 접근이다.
* TLDP는 대인관계적 단기 심리치료다. TLDP의 목표는 환자들이 부적응적 대인관계 패턴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며, 이는 치료적 관계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체험과 이해를 촉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치료가 의도하는 바는 환자가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수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 TLDP 모델의 7가지 기본가정
1. 환자들은 혼란스러운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인관계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2. 역기능적 양식은 과거에 학습된 것이다.
3. 역기능적 양식은 현재 유지되고 있다.
4. 환자는 치료자를 대상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재현한다.
5. 치료자는 참여관찰자다.
6. 치료자는 환자가 재연하는 문제에 휘말려 들어간다.
7. 주된 대인관계 문제 패턴이 존재한다.
* TLDP에서는 심리적 증상과 문제가 대인관계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때 제시하는 주 호소 문제는 불안, 우울 등 DSM의 기초가 되는 증상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느낌의 원천을 찾아보면 대인관계적 근원이 분명해진다. <- 이 부분 진짜 공감합니다.
* TLDP의 두 가지 주요 목표
1. 환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2. 환자에게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 TLDP의 두 가지 목표가 마치 별개인 것처럼 제시하였지만, 실제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이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두 가지 목표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특정한 한 시점에 한 목표는 전경이 되고 다른 목표는 배경이 된다.
* TLDP 관점에서 보면, 병리적 증상과 역기능적 행동은 위협적인 상황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 치료 초점의 제한은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와 장기 심리치료를 구별하는 주된 개념이다. 단기치료에서는 치료자가 목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중심 주제 또는 핵심 문제가 필요하다.
* TLDP에서 치료 작업의 초점은 환자의 생활에서 역기능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 유지시키는 반복되는 대인관계 패턴으로 바로 이런 관계가 일상생활의 문제와 증상을 가져온다. 달리 표현하면, TLDP의 초점은 환자의 부적응적인 상호작용 스타일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역동적 대인관계 초점, 즉 순환적 부적응 패턴(cyclical maladaptive pattern: CMP)을 추출하는 절차를 개발하는 것이다.
* CMP는 4개의 범주를 사용하여 개인의 대인관계 정보를 체계화한다.
1. 자기의 행동(Acts of the Self) : 환자의 생각, 감정, 소망, 행동 등
2. 타인의 반응에 대한 예측(Expectation of Others’ Reactions)
: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관한 모든 추측과 예상
3. 자기를 대하는 타인의 행동(Acts of Others Toward the Self)
: 환자가 관찰하고 해석한 다른 사람의 실제 행동
4. 자기를 대하는 자기의 행동-내사(Acts of the Self Toward the Self-Introject)
: 자기 자신에 대한 행동과 태도. 환자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취급하는가
* 환자에 대한 역전이 반응이 대인관계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마 (역전이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에 맞게) 치료자가 자신의 독특한 개인사의 영향하에서 환자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 치료의 평가 단계는 맨 처음 환자와 접촉할 때부터 시작되며, 이는 전화 통화로 시작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공손하게, 조심스럽게, 또는 극적으로) 말하는가 하는 점에서도 주의를 기울인다.
* TLDP 사례개념화 및 개입의 단계
1. 환자가 자신의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2. 증상이나 문제와 관련된 대인관계 맥락을 탐색한다.
3. 정보의 수집, 분류, 조사를 위해 CMP 범주를 사용한다.
4. 환자의 말을 경청하며 환자가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 대해) 말한 내용과 치료 회기 중에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환자의 고유한 주제를 찾는다.
5. 환자에 대한 반응(역전이적 밀고 당김)을 인식한다.
6. 치료관계에 나타나는 역기능적 상호작용의 재연에 주의를 기울인다.
7. 치료자와의 관계의 발전에 대해 환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색한다.
8. 환자의 주요한 역기능적 상호작용 패턴을 기술하는 CMP 이야기를 만든다.
9. CMP로부터 치료 목표의 윤곽을 그린다.
10. 환자의 CMP에 맞게, 치료자와 더 적응적인 관계를 맺는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목표 1).
11. 환자가 다른 사람들이나 치료자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역기능적 패턴을 알아내고 이해하도록 돕는다(목표 2).
12. 환자가 자신의 상호작용 방식이 한때는 적응적이었음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13. 전체 치료 기간에 걸쳐서 CMP를 수정하고 보완한다.
* 나는 수련생들에게 초기 회기(들)에서 환자의 반응을 정보 범주(예컨대, 발달사, 학력, 병력 등)로 구조화하는 전통적인 정신과적 면담이나 임상적 접수면접 방식에 의존하지 말고,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허용하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상호작용 방식에 제약을 덜 가하면, 치료자는 환자 이야기의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예컨대, 세세한 부분을 강조하는가, 모든 책임을 외부 사건이나 사람들에게 떠넘기는가, 치료자가 지도해 주고 안심시켜 주기를 바라는가 등)을 통해서도 환자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수련생들은 역기능적 패턴의 내용과 과정 모두를 직접 접하게 된다.
* CMP의 4개 범주 중 ‘자기에 대한 행동과 태도’, 즉 내사는 가장 어려운 범주이다. 환자들은 치료가 잘 진행되어 긍정적인 치료 동맹이 확립될 때까지 그들이 어떻게, 또는 왜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지에 대해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범주로 나누는 것은 주로 치료자가 많은 양의 자료를 체계화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고, 범주들은 결국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행동, 생각, 태도, 동기를 이해하고, 이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대인관계적 역동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 과정 지향적인 TLDP의 목표는, 환자-치료자 사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인정하고 장려하도록 치료자의 자각과 민감성을 촉진한다.
* TLDP의 선별 준거
1. 정서적 불편
2. 기본적 신뢰
3. 자신의 갈등을 대인관계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는 태도
4. 자신의 감정을 검토해 보려는 태도
5. 치료자와 ‘의미 있는 방식’으로 관계 맺는 능력
* TLDP의 배제 준거
1. 환자가 치료자와의 언어적인 교류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2. 환자의 문제가 약물 치료 등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3. 환자가 불안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적극적, 해석적, 상호작용적 치료 과정을 견뎌 낼 수 없다(예; 환자가 충동조절 문제, 알코올 및 약물 남용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반복적인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
* 나는 해석의 시점에 대한 길잡이로서 다음 5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단기치료에서 치료자는 정보가 불충분해도 (해석을 포함한) 치료적 개입을 해야 한다.
2. 해석은 치료자가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니라, 환자가 말하고 행한 것에 기초해서 그럴듯한 가능성을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3. 시기적절한 해석(즉, 치료 과정을 진전시키는 해석)은 환자가 해석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4. 치료자는 치료 관계가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5. 전이 해석의 시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치료자는 가능한 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시간의 제약을 받는 치료자는 치료 과정에서 부정적 전이가 표출되는 징조가 있을 때 이를 즉시 다루어야 한다. 단기치료에서는 치료 동맹 훼손의 여파와 이에 수반되는 기능상 퇴행을 다룰 시간이 별로 없다.
* TLDP와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은 자기관여적 언급, 즉 역전이 개방이다. 치료자는 환자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환자의 CMP에 기술된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일치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만일 비슷하다면, 치료자의 반응은 개인적인 역전이가 아니라 상호작용적인 역전이일 가능성이 높다.
* 전이 해석 후에 환자가 정서적 반응을 보이면 치료 성과가 긍정적이지만, 방어적 반응을 보인다면 치료 성과가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 단기치료에서 치료자들은 환자들이 잘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환자의 강점을 강화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 촉진적인 치료 자세를 가진 치료자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대인관계 도식을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다.
* 치료자의 목표는 환자의 상호작용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치료 과정을 촉진하는 일에 이러한 얽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데 있다.
* 어떤 종류의 치료에서든지 치료자는 자신의 개입의 목적과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단기치료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단기치료에서는 치료자가 특정 개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평가해야 하고, 각각의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가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환자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환자가 있는 곳에 함께 머물라, 환자를 진지하게 대하라
* TLDP에서 종결 시기를 알기 위한 5가지 준거
1. 환자가 중요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변화를 보이는가? 환자가 이전보다 만족스러운 상호작용을 한다고 보고하는가?
2. 환자는 치료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과 치료자에 대해 새로운 경험(혹은 일련의 새로운 경험들)을 하였는가?
3.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수준이 (부모-자녀 관계에서 성인-성인의 관계로) 변화하였는가?
4. 환자에 대한 치료자의 역전이 반응이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었는가?
5. 환자가 자신의 역동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해 왔던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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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심리치료에서 저항(resistance)이라 함은 '치유 목적에 반하는 환자/내담자의 모든 행동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입니다.
통찰 지향적(insight-oriented) 심리치료에서는 증상과 행동 양식에 대한 탐색을 하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불안이 초래됩니다. 이 때 내담자는 이러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게 되죠.
저항은 모든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일찌기 Freud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를 근원에 따라 5가지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1. 억압 저항(repression resistance)
: 위협적인 충동(threatening impulse)을 의식 수준의 바깥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를 회피하려는 자아의 시도에서 유래된 저항. 모든 증상 형성의 기초가 되며 내담자는 이를 통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됨.
2. 전이 저항(transference resistance)
: 모든 유형의 전이 태도(transference attitude)로부터 발생될 수 있으며 내담자는 자신의 기본적인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단순히 상담자를 동일시 하려 하거나 반대로 경쟁적인 태도를 취하려 함. 상담자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말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모습으로 나타남.
3. 이차적 이득 저항(secondary-gain resistance)
: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에 동반된 이차적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기인하는 저항.
4. 초자아 저항(super-ego resistance)
: 스스로 처벌받고자 하는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구에 기이하는 저항. 내담자가 경험하는 증상이 분명 고통을 주지만 이를 없애는 걸 꺼려함. 우울한 내담자에게서 자주 발견됨.
5. 반복-강박 저항(repetition-compulsion resistance)
: 통찰을 획득하고 억압을 undoing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담자가 여전히 부적응적인 행동 양식을 유지하려는 식으로 저항하는 것.
출처 : '임상 실제에서의 정신과적 면담(The Psychiatric Interview in clinical practice, 1st, 1971)'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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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임상/상담심리 Job DB를 오픈합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제가 예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숙원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2014년을 넘기지 않고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임상/상담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 등 전문 자격을 소지한 임상가들께서 어떤 처우를 받고 계신지 비교 선택하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최신 정보를 수집해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포함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관명 :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일부 익명 처리해 공개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 프렌차이즈 여부
* 지역(지점명)
* 환자/수검자에게 청구하는 심리평가비(Full Battery 기준)
* 평가자가 받는 실제 금액
* 환자/내담자에게 청구하는 상담/심리치료비(회기 당)
* 치료자/상담자가 받는 실제 금액
* 급여 형태(비율, 고정급 등)
* 근무 형태(주 5일 상근, 주 2회 파트 타임 등)
* 4대 보험 적용 여부
* 특징 : 이 부분이 본 임상/상담심리 알바 DB의 핵심이자 알짜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나라합니다;;;
모든 정보는 해당 임상가들이 실제로 일을 하면서 경험한 내용만을 담았습니다. 월덴3의 임상/상담심리 Job DB는 ~카더라 통신을 지양합니다.
혹시라도 DB에 수록된 기관의 정보가 새롭게 변경되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체없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초 포스팅에서는 part-time job인 알바 정보만 포함했으나 full-time job 정보까지 포괄하도록 폭을 넓히겠습니다. 근무하고 계신 직장 또는 이직 후 이전 직장에 대한 full-time job 정보 제보도 환영합니다.
2014년 8월 4일 현재 9개의 기관이 포함되어 있으며 새로운 기관이 추가될 때마다 즉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덧. 이 포스팅은 8월 한 달 동안 유지하고 이후 공지글 영역으로 옮기겠습니다.
덧2. 나도 DB 공유에 기여하고 싶다는 임상가들께서는 연락주세요. 당연히 제보 환영합니다. 본 DB의 양식대로 채워서 제게(walden3@gmail.com) 보내주시면 됩니다. 단, 신뢰성 확보를 위해 최근 2년 이내의 정보로만 부탁드립니다.
: 2014년 8월 19일 현재(20140819 Version)
* 오O영 아카데미에서 수검자에게 청구하는 심리평가비가 3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랐답니다 :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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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로 안산 단원고에 자원봉사를 나간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 기록을 학교에 남겨두는 것에 불응하고 일제히 외부로 갖고 나간 문제로 갑론을박 말이 많습니다.
한국 심리학회 산하 재난심리 위원회를 통해 파견 나간 심리요원들은 처음부터 어떠한 자료일지라도 일체 파견된 학교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라는 교육을 받고 나갔기 때문에 다행히 염려할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신과 선생님들은 지원 체계가 갖춰지기 전에 단원고로 들어간데다 개업의이거나 개인 자격으로 봉사하신 분도 많아서 일이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원칙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는 상담, 진료 기록, 심리검사 자료를 단원고에 보관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단원고 내에 이 모든 자료를 보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나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단원고의 경우 이 자료를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연결해서 담당할 상시 전문가를 채용했습니다. 그러니 자원봉사를 나간 임상가들은 이들과 협력하여 단원고의 생존자와 유가족 및 관련자에 대한 치유와 회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이 논쟁에서는 내담자가 아예 배제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떤 기관이든 상담, 심리검사, 진료 기록 등은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의무기록이고 반드시 내담자의 동의 하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도 단원고의 내담자 중에는 자신을 상담하던 정신과 선생님을 따라 외부에서 진료를 계속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처음부터 고려되었다면 학교 내에 설립될 치유 센터로 연계될 내담자와 자원봉사를 나온 임상가를 따라 외부로 연계될 내담자를 구분해서 다르게 접근하는 방안이 마련되었겠죠.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고 그 결과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할 내담자의 의무기록이 외부로 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학교가 미덥지 못하고 관리 체계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해도 외부로 유출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입니다. 자원봉사자는 그게 언제가 되었든 결국은 떠나야 하고 그 때 남게 될 내담자와 환자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합니다. 이번에 자원봉사를 나간 정신과 선생님들은 치료의 중추를 자신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치료의 중추는 어디까지나 내담자/환자입니다. 끝까지 내담자/환자를 책임지려는 자세는 존중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핵심만 짧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불필요하게 말이 길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상담 기록 뿐 아니라 심리평가와 관련된 자료 등 모든 의무기록은 원칙 상 내담자/환자가 있는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내가 개업한 센터나 클리닉에 찾아온 내담자/환자의 기록이라면 그곳에, 이번 세월호 참사 지원처럼 자원봉사를 나간거라면 해당 학교에 보관하는게 원칙입니다. 내담자/환자의 기록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을 것 같으면 대책을 마련해야지 보관 장소를 옮겨서 외부로 유출될 위험을 감수하면 안 됩니다.
덧. 국회의원 등 비관련자가 열람을 요청하면 내담자/환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당연히 거부해야 마땅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거부 주체가 학교이지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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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뭔가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별 거 아닙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현장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에 대한 개인적인 예측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심각한 정신병리적 문제로 진단이 필요한 수검자(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임상심리실을 방문하여 심리평가를 받았습니다. 상대적으로 학교나 민간 상담센터에는 그렇게 심한 문제를 가진 수검자가 별로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병원만큼 심리평가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더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심리학의 발전(질적인 발전까지 견인하지는 못하고 있지만)과 홍보의 영향(시대의 추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으로 일반인들의 심리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다양한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져서 심리적 문제가 생겼을 때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기 이전에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특히 어떤 증상때문이 아니라 대인 관계 갈등 문제나 직무 부적응 등 사회 생활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로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수도 많이 늘었죠.
다른 한편에서는 팍팍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게 되면서 예전보다 정신과적 문제를 겪는 사람의 수 자체가 많아졌습니다. 수요 자체가 폭증하게 된 것이죠. 이 수요를 병원에서 모두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상담 센터를 방문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상담 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 심리학자들에게 심리평가 능력이 요구되고 실제로 심리평가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심리평가에 대한 강의나 supervision을 원하는 개별 상담자와 기관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할 때 접하는 케이스도 예전에는 주로 연애 실패, 학교 부적응, 부모-자녀 관계 등의 다소 mild한 문제에서 요새는 강박 장애, 섭식 장애, 성격 장애, 심지어는 조현병까지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새 입버릇처럼 상담자들에게 DSM 진단 체계와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합니다.
이와 반대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는 진단을 내리기에 애매한 문제를 가진 수검자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호소하는 증상만 보면 뭔가 변별 진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아서 종합심리평가를 해 보면 검사 sign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호소하는 증상만큼 심한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아진 거지요. 그러나 여전히 의사들은 진단을 선호(그래야 약물 치료를 편하게 할 수 있으니)하기 때문에 진단 없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임상 심리학자들은 혼란에 빠지는거지요. 게다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심리치료나 상담을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 병원 임상가들이 많다 보니 진단을 내리지 못할 때 어떤 제언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심리평가 실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병리학 공부와 함께 DSM 진단 체계에 익숙해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임상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더 이상 변별 진단에만 치중하는 심리평가 의존에서 벗어나 심리치료와 상담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러한 치료적 목표에 따른 제언을 심리평가보고서에 작성하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case formulation을 하는 틀이 지금과 다르게 바뀌는 것이죠.
사실 이건 예측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고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상담 심리학회에서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 중 5년차 이상의 임상심리전문가에게 심리평가 supervision 받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임상 심리학회에서 치료 기법에 대한 워크샵을 대대적으로 열고 전문가의 치료 사례 회의를 강화하는 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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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2011년에 소개한
'트라우마(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1997)'라는 좋은 책을 쓴 Judith Lewis Herman의 책입니다. 1981년에 나온 책이니 '트라우마'보다 16년이나 앞선 책인데 반대 순서로 읽었네요.
사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이 이름을 알린 책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바로 이 책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그녀가 임상 장면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근친 성 학대 경험을 가진 여성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 문제에 관한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것이 1975년이었고 이후 6년에 걸쳐 40명의 근친 성 학대 피해 여성에 대한 실제 임상 연구와 정신건강센터, 아동보호기관, 법 집행기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나는 가정의 복잡한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 결과가 바로 이 책입니다. 1981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후 그동안 사회가 외면하고 감춰왔던 근친 성학대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미국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죠.
이 소개 포스팅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는 근친 성 학대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은밀한 성격과 사회가 이를 다루는 태도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거의 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은 근친 성 학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제가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죠).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설문 조사 자료, 임상 자료, 인류학 문헌, 대중 잡지 그리고 포르노그래피 등에 근거한 현상을 현상학적으로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피해자 및 그들의 치료자와 나눈 면담에 근거한 임상 연구 내용을 담았습니다.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근친 성 학대가 드러난 뒤의 위기 개입, 가족 치료, 사법 처리 등의 내용을 실었고 치유와 예방의 가능성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근친 성폭력에 대해서는 이 책 한권만 읽으면 될 정도로 내용이 충실합니다. 물론 이 책부터 시작해서 좀 더 깊이있는 독서를 해야겠지만요.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아래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소개한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 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1994)'의 저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를 아주 강한 어조로 심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저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근친 성폭력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프터스는 학자의 입장에서 거짓 기억 증후군을 증명했던 것 뿐이죠. 다만 근친 성 학대 가해자와 이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연구 결과를 법정과 언론에서 악용했기 때문에 로프터스가 욕을 먹는 겁니다. 저는 근친 성폭력과 거짓 기억 증후군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상가들은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먼저 읽고
'트라우마의 치유(Coping with Trauma : Hope through Understanding, 2005)'를 읽은 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1997)'를 읽는 순서를 권장합니다.
아동 성폭력 관련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특히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임상가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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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 정당화의 심리학(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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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 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1994)
닫기
* 아동의 성적인 '권리'에 대한 뚜쟁이의 관심은 아동이 공장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공장주의 관심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거의 대부분의 증거는, 아동에게 성인, 특히 믿었던 가족, 친척과의 성적인 접촉이 장기간에 걸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 어머니의 부재라는 주제는 어떠한 형태로든 근친 성 학대 이야기의 배경에서 항상 발견된다.
* 사실 아버지의 의존 욕구는 어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자녀의 욕구를 능가해 버린다. 왜냐하면 만일 어머니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아버지를 보살피지 못하면 그녀를 대신할 누군가 다른 여성을 찾는 일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장 흔하게는 맏딸이 선택된다. 이런 가정에서 누군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아버지가 떠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어머니가 부재 상태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무능한 경우, 딸들이 성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아주 높다.
* 건강한 어머니와의 강한 친화 관계만이 최소한으로나마 성 학대로부터 딸을 보호할 수 있다.
* 생물학적 학설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짝짓기에 대한 장벽이 어머니와 아들의 짝짓기에 대한 것보다 왜 더 약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심리학적 이론 역시 금기를 준수하는 일에서 드러나는 성별상의 차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 어머니들은 자기 억제 능력이 훨씬 큰 반면, 아버지들은 성적인 착취 행동을 나타내는 경향이 더 큰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화의 심오한 차이를 낳은 노동의 성적 분화 때문이다.
* 강간, 아동 성추행, 그리고 근친 성 학대를 포함하여,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 행동 경향은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 남성 사회화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
* 어느 문화권에서든, 남성 우월주의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노동의 성적 분화는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지며, 아버지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 금기는 더 빈번하게 위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근친 성 학대를 보면 아버지와 아동이 혈연 관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관계가 의존 상태에 놓인 아동에 대해 아버지 입장에 있는 힘을 가진 성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아동에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가르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도록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동의 유대는 이미 타락한 것이다.
* 근친 성 학대를 하는 아버지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힘을 사용하여 가족들을 지배하려는 경향이다. 그런데도 많은 연구나 관찰자들에 의해 이러한 아버지들이 무력하고 의존적이며 심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들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상대적인 힘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
* 아버지의 불만은 단조로우리만큼 너무 단순하다. 가정에서 응당 받아야 할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게 아버지들의 불만이다. 아내가 돌덩이처럼 무뚝뚝하고 냉정하며 성관계를 거부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불만은 어머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딸들에게는 충분히 그럴듯하게 보인다.
* 일반적인 성폭력과 달리 근친 성 학대에서는 가해자가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힘을 사용할 필요 자체가 없다.
* 근친 성 학대 아버지들을 관찰한 일부 연구자들은 이들의 행동이 바로 충족되지 못한 의존적인 소망과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 많은 임상의들은 근친 사이에서 성 학대를 당한 아동에게서 불특정한 증상들이 관찰된다고 말하는데 피해 아동 상당수는 어렸을 때 강박적이고 의식적인 성 행동을 하여 식견이 있는 관찰자로 하여금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하기도 한다.
* 어떤 사례에서도 근친 성 학대가 아버지에 의해 끝나는 일은 없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불평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감정이었다. 많은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다르거'나,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해 보였지만 스스로는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냉담하고 믿을 수 없는 남성이나 가장 심하게는 노골적으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남성에게 빠져드는 것 같다.
* 결혼한 피해 여성의 가장 평범한 호소는 남편이 자신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성들을 과대평가하거나 이상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의 타인과의 성적인 친밀함을 추구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은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분노를 느꼈다. 이들은 어머니를 향한 쓰라린 고통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여성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 노골적인 근친 성 학대의 가장 효과적인 방패막은 아버지의 충동 조절이 아니라 어머니가 행사하는 사회적인 통제 정도이다.
* 세 가지 관점이 중요하며 모든 관련 전문가들이 이에 동의한다. 근친 성 학대 아버지의 힘을 제한하고 조절할 필요성. 어머니의 힘을 강화하고 촉진시킬 필요성. 모녀 관계를 회복할 필요성.
* 근친 성 학대 비밀의 폭로에 직면한 많은 어머니들이 필사적으로 딸의 호소를 부인하려 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만약 그녀가 딸의 말을 믿는다면 얻을 것은 하나도 없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딸은 가족 내에서 엄청난 위험에 빠지게 된다.
* 성 학대를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외부인이 아버지와 공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외부인이 딸이나 어머니, 또는 가족 전체와 맺는 관계는 근친 성 학대 범죄가 알려지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아버지를 보호하고 법률을 위반한다.
* 경험적으로 창안된 모든 체계들이 지닌 공통적 특징은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위기 개입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 비밀을 누설하고 나면, 딸은 상당한 재확인을 필요로 한다. 먼저 그녀의 말을 믿는다는 것, 둘째로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셋째로 앞으로 성 학대로부터나, 비밀을 깼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자행할지도 모르는 앙갚음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라는 내용을 그녀가 확실하게 전달받을 필요가 있다.
* 여러 가지 이유에서 딸보다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딸을 집에서 분리하는 일은 딸에게 맞서 부모가 서로 결탁하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반면, 아버지의 분리는 딸에게 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고, 어머니에게는 스스로 기능할 기회를 제공한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의 치료에서 이들이 가장 잘 배워야 하는 것은 자신을 주장하는 방법이다. 곧 다른 사람의 욕구나 감정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자신의 욕구를 말해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구타, 학대, 통제, 지배, 순종, 굴복,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한 것이다.
* 성 범죄자들을 치료하는데 비밀 유지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치료자가 환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하도록 추천하기 전에, 반드시 그 일이 가족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평가하고 이해해야 한다.
* Murray Bowen과 Salvador Minuchin 같은 이론가가 개발한 전통적인 가족 치료는 근친 성폭행 범죄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 학파의 치료적 개입은 남성의 지배성을 회복하려는 형태를 취하기 쉬운데 남성의 지배성은 근친 성폭행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전혀 회복할 필요가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 성 범죄자를 위한 가장 성공적인 치료 프로그램은 치료에 응하지 않으면 법적인 제재라는 채찍이 부가된 중독 치료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 근친 성 폭력 범죄자의 집단 치료에서 집단 내 잘 통제된 신체 접촉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들에게 성적인 관계 밖에서도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 성 학대 가해자 치료 집단은 치료자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일 때, 곧 지도자의 권위가 명확하고, 선물의 규칙을 강화하며, 자비로운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가해자의 상태가 개선되는지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사람은 가해자 자신이 아니라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어야 한다.
* 어떤 경우든 아버지들은 다음 세 조건이 합치하지 않는 한 가족들로부터 다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첫째, 아버지는 법원의 감독을 받아야 한며, 둘쨰,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셋째, 근친 성 학대 관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수용하고 모든 가족이 보는 앞에서 딸에게 용서를 청하는 차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 세 조건은 적어도 딸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편안과 안전감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 부모의 재결합을 결코 치료의 최종 지점이나 성공의 규준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가족 관계 회복을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지표는 어머니-딸 관계의 건강성이다.
* 이론상으로 아동 성 학대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격하지만 실제로 처벌은 거의 그렇게 집행되지 않는다.
* 구타나 강간과 같은 반복적인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혹시 성 학대 경험이 없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알코올이나 마약 의존 증세를 지닌 여성이나 사춘기에 남다른 방황이나 가출 경험을 지닌 여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거나 집에 계시지 않았던 여성,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른처럼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던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도 그런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들이 아동기 성 학대 경험과 너무 빈번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의 환자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치료자의 직무 태만이다.
* 여성 치료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환자가 공유하지 못하는 데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다. 이런 실수는 피해자와 자신의 극단적인 동일시로부터 나온다. 이는 거의 대부분 피해자로부터 매우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은 자주 아버지보다 어머니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느끼며, 때로는 그녀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보살핌과 애정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치료자가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환자는 치료자가 그녀로부터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관계를 빼앗으려 애를 쓴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피해자는 치료자가 악의나 질투심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곧바로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라이벌이라는 그녀의 신념을 확인시킨다.
* 치료에 도움이 되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주요한 요인은 환자로 하여금 맨 처음 도움을 찾도록 만든 것과 똑같은 문제, 곧 수치심과 전혀 희망이 없다는 감정 그리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가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 환자가 치료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그 일에 관하여 털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그 문제는 일반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여겨질 수 없다.
*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서 치유는 어머니-딸 사이의 유대 회복으로부터 시작하듯이, 근친 성 학대의 예방은 궁극적으로 딸이 절대로 근친 성 학대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지점으로까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강화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덧. 이 책은 나중에 저도 참고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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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전공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죠. 사회 심리학 전공자는 사회의 심리 현상에 끌리는 것이고, 범죄 심리학 전공자는 범죄자의 심리에 끌리는 것이죠. 조직 심리학 전공자는 조직 내의 심리 현상에 끌려야 맞겠지만 저는 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갔기 때문에 저같은 예외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무작정 일반화는 금물). ^^;;;
또한 임상 심리 전공자들에게 회자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자신의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강박 장애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이거나 평소 강박적이기 때문이고, 사회적 지지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사회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등등. 이 역시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선,후배, 동기의 논문 주제와 그들의 특성을 맞춰 봤을 때 의외로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제가 앞에서 심리학계, 임상심리학계에서 회자되는 농담을 왜 구구절절히 이야기했냐 하면 그만큼 임상, 상담 분야에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처럼 임상, 상담 심리학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때문에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도 많거든요. 전문가가 되었다고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임상가가 되었을 경우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가 없고 그로 인해 치유가 답보 상태에 이르거나 도리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환자/내담자는 건강한 임상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산술적 기회라도 있으니 환자/내담자를 신체적/정신적으로 가해하는 예외 경우가 아니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두 번째 경우인데요. 바로 그런 임상가가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임상 현장에서 supervisor로 일하는 겁니다. 수련 과정이 철저한 도제 관계 시스템을 따르는 임상, 상담 심리학의 경우 그런 병리적인 임상가를 만나는 경우 전문가가 되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추는 건 둘째치고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입어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꺾이게 됩니다.
제 경험만해도 충분히 우수하고 재능있는 임상가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훨훨 날지 못하는 걸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봤고 지금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는 임상,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많으니 좋은 학교, 좋은 시험 성적, 좋은 스펙 등만 따지지 병리적인 사람을 걸러내는 건 별로 관심도 없고 설사 사전에 알고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할 임상가들의 마음이 병들게 되고, 일단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갇혀 치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서 자신만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지도 교수나 supervisor에게 인신공격을 당했거나, 폭언을 들었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어서 우울하고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자신이 가는 길이 후회되는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당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선,후배, 동료 세 사람에게 그 지도교수내지는 supervisor에 대한 의견을 물으세요. 세 명 모두 한 입으로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당했던, 혹은 당하고 있는 것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임상, 상담 현장에는 존경스러운 선배들도 물론 계시지만 실력과 인격 모두 형편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임상가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이 길러질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세요. 그건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합니다.
수련 때는 어떻게 해도 시간이 가니 힘들더라도 중도에 그만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버텨서 전문가가 되라는 말을 들었던 저도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짜배기 전문가와 허당을 구분하는 눈은 확실히 생기니 염려하지 마시고요.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나와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할 때까지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말고 흘려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꼭 명심하세요.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덧. 내 지도교수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내 supervisor는 존경할 만한 임상가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거냐고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로또를 맞았기 때문이고 그 행운은 축하합니다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이 바닥에 병적인 임상가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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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30년 간 외과의사로 일하면서 '환자가 꼽은 외과부문 좋은 의사'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야전 의사 이시토비 고조가 2005년 도쿄의 구립 노인요양시설인 '로카홈'에서 상근 배치의로 일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일본의 경우 90% 이상의 노인들이 자신의 집이나 요양원이 아닌 병원의 차가운 침상 위에서 죽음을 맞고 있는데(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먹지 않아서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다해 먹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영양과 수분을 공급하려는 무리한 시도가 당사자와 가족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언젠가는 자신의 입으로 음식물을 먹지 못하게 됩니다. 무리해서 먹으려고 하면 음식물을 삼킬 때 잘못하여 기관지로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나 폐렴에 걸리게 되거든요. 이러한 삼킴 장애는 노화에 따른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과거에는 입으로 음식물을 넘길 수 없게 되면 생명이 다해 먹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임종을 맞을 준비를 했죠. 그런데 이제는 위에 직접 튜브를 연결하여 영양을 강제로 공급하는 위루 조성 수술(PEG)을 합니다. 하지만 위루술을 해도 직접 위에 들어간 유동식이 쉽게 식도를 역류하여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기관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폐렴이 일어나는 걸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입을 사용하지 않으니 입안이 마르고 타액의 양이 줄어들어 잡균이 번식하기 쉬우며 기도 감염을 일으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인체는 참으로 신비해서 생명력이 다하면 몸안의 노폐물을 배출하면서 죽음을 준비합니다. 병원에서 과도한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은 환자는 온 몸이 붓고 쉬이 숨이 끊기지 않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데 비해 곡기를 끊고 온몸을 비운 환자는 차분하고 안온한 상태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는다고 하죠. 그런데 끝까지 뭔가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회복을 부정하는 나쁜 보호자인 양 치부하는 상식의 허실 때문에 위루 조성 수술 등을 강제(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고령이거나 치매 환자인 경우가 많으니)하는 겁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수술이고 누구를 위한 의료일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연명치료에 반대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도록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둘 생각입니다.
사전의료의향서 양식은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02-2228-2670)'으로 신청하면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추천하는 책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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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저런 치료 워크샵에 대해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분들이 계셔서 제가 치료 관련 워크샵을 고르는 기준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강사가 매스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일 것(숨은 고수일 것)
: 많은 분들이 방송에 자주 나오고 유명하고 인기인이 진행하면 좋은 워크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반대입니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 비추고 인터뷰나 하고 다니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담자/환자를 만나 치료적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죠. 방송에 얼굴 자주 나오는 사람치고 고수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2. 국내 치료 경험이 500사례 또는 5년 이상일 것
: 외국에서 아무리 검증된 프로그램이고, 유명한 고수에 의해 창시되었고, 오래 되었든 말든 상관없이 국내에 적용한 사례가 최소 500명 또는 5년 이상 되지 않은 프로그램은 굳이 비싼 돈 내고 직접 배울 필요 없습니다. 그 치료법의 창시자가 쓴 책만 봐도 됩니다. 어차피 워크샵을 들어도 책에 있는 내용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적용하는 노하우가 소개되겠지만 적용 사례가 그 나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임상/상담 현장에 그대로 써 먹지도 못합니다.
3. 자격증(certificate)을 주는 프로그램이 아닐 것
: 자격증을 주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몇 십 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자격증을 주는 경우와 아주 비싼 수강료를 내면 주는 경우이죠. 후자는 외국에서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 창시자에게서 수련을 받거나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국내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난 뒤 도입(대개는 처음에 외국의 고수를 초빙하여)하는 경우인데 앞의 기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국내 전문가가 치료 경험이 상당히 쌓이기 전까지는 별로 쓸데없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supervisor에게 배운 내용을 그냥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 뿐이니까요. 전자는 더 별 볼일 없습니다. 그냥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초반에 물량 공세를 펴는 것 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제대로 된 경험도 없는 강사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 정도 기준을 말씀드리면 이 바닥을 좀 아는 분들의 경우 '그럼 대체 뭘 들으라는 말이냐. 이 기준을 통과하는 치료 워크샵이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국내에서 들을만한 워크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혹시 자신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런저런 자격증이나 워크샵 인증을 받으려고 비싼 돈과 없는 시간 내서 좇아다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는 치료 워크샵을 들으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자리에서 꼭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금까지 소개해 주신 치료 프로그램을 우리나라 사례에 적용한 경험을 말씀해 주시고 외국 사례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치료자는 워크샵을 진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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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미 정신분열병으로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받던 환자에게 심리평가를 실시하였더니 normal profile에 준하는 결과가 나와 당황하는 평가자가 많습니다. 심리평가 결과를 따르자니 진단을 내릴 수가 없고 과거 진단과 병력을 따르자니 이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이 도통 없으니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심리평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평가자일수록 과거 진단을 그대로 베끼고 없는 검사 결과를 쥐어짜 심리평가보고서를 씁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볼 때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첫째. 실제로 정신분열병 환자가 맞고 초발 때 증상을 잘 잡아서 완전히 관해된 상태인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 진단의 재평가가 아니라면 이런 환자는 다시 평가를 받으러 기관을 방문할 일이 없습니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잘 적응하고 살테니까요. 그러니 뭔가 문제가 있어서 재평가가 필요한 것일테고 증상이 남아 있어서 재평가가 의뢰된거라면 당연히 심리검사에서 이를 반영하는 검사 sign이 나타나야 합니다.
게다가 완전히 관해된 SPR, residual type이라고 해도 양성 증상은 잡혔어도 음성 증상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restricted affect 등이 검사 sign에서 나타납니다. 완전히 정상적인 profile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full battery에 속하는 모든 검사에서 아무런 sign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첫번째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에 속합니다.
둘째. 이전에 잘못 진단해서 말도 안되는 치료를 한 케이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의료사고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환자의 지능이 낮은 걸 간과했거나 SES가 낮거나, 재산 분배 등의 가족 갈등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secondary gain이 있거나 등등의 외부적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내지는 보호자의 증상 보고만 믿고 기계적으로 진단한 경우입니다.
두번째 경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전 진단 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임상심리학자가 심리평가를 실시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제 경우는 심리평가보고서와 원자료까지 모두 의무기록복사를 신청해서 가져오라고 보호자에게 부탁합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단순 문진만 갖고 진단해서 치료한 경우는 오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의외로 오진하는 케이스가 굉장히 많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심리평가보고서가 없는 진단은 무시하는 것이 현명하며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blinded test를 하는 것이 선입견에 의한 평가 결과 왜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심리평가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심리평가에도 잡히지 않는 SPR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 관찰할 필요는 있지만 심리평가 결과 상 SPR spectrum에 전혀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이전 치료력에만 기초해서 진단하는 건 그야말로 소설을 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럴거면 뭐하러 심리평가를 실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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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가 이 카테고리에 올린 글은 상담과 심리치료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카테고리 이름조차 '상담/심리치료'이죠. 제가 상담과 심리치료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는 이유는 현장에서는 굳이 그런 구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어 이 참에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법 상 의사에게만 치료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의사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치료', '요법'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불법이죠. 그래서 한 때 놀이치료라는 명칭을 쓰려던 학회가 치료놀이학회로 개명을 하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었죠. 어쨌거나 심리치료라는 말을 사용하는 분들은 정신과 의사가 묵인하고 있어서이지 마음놓고 써도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임상가들은 정신과 의사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 상담이라는 말을 일부러 선호하기도 합니다. 저도 좀 그런 편인데 굳이 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정신과 의사를 자극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상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더 큽니다만.
제가 상담이라는 용어를 심리치료보다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의 특성 때문입니다. 정신병, 병원, 환자, 치료라는 말을 끔찍히 싫어하는 도박자의 특성 상 굳이 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조기 탈락율을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제 경험 상 도박자는 상담, 상담자와 같은 용어를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더군요.
또한 심리치료라는 말은 듣는 사람이 시작 전부터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고 고쳐야 할 병에 걸려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와 달리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인식론적으로 좀 더 권력 위계를 높이 세우는)를 통해 치료자가 권위의 도구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굳이 하얀 가운을 입는 것, 큰 책상을 사이에 두고 명패 앞에 앉히는 것, 어려운 전문 용어를 남발하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치료에 비해 상담이 더 내담자의 치유와 행복에 도움이 되는 전인적인 용어에 가깝다고 보는데 심리치료적 기법은 상담 중에 상담자가 적절한 타이밍만 잡으면 언제든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례 발표를 들어보면 사례 개념화 후 특정 심리치료적 접근법에 따라 상담(?)을 진행하는 걸 자주 보는데 제 경험 상 특정 심리치료적 접근법을 그대로 고수해서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상담자가 그런 경직된 사고틀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내담자의 치유력을 약화시키거나 심하게는 중도 탈락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부터 상담이라는 용어가 심리치료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폄하하는 스스로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상담이 전쟁이라면 심리치료는 전투입니다. 전투의 승리는 분명히 중요하지만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죠.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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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가가 환자나 내담자를 대하는 초기에 빼놓지 않고 점검해야 하는 부분은 과거의 '치료력'입니다.
치료력을 점검할 때에는 호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치료자/상담자를 만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만났는지, 약물 치료를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약을 얼마나 오랫동안 먹었는지, 현재도 먹고 있는지, 그 밖에 다른 치료적 개입을 한 적이 있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물어보게 되는데 단순히 제도화된 접근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개인적인 방법이나 대처 방안 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보통 숙련된 임상가도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지, 어떤 약물을 복용해왔는지와 같은 것들은 꼼꼼하게 물어보지만 환자나 내담자가 나름대로 시도했던, 일종의 민간 요법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데 사실은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치료력을 점검하는 이유는 실패한 치료적 접근법을 답습하거나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환자/내담자의 문제 해결 방법을 점검하면서 문제를 유발하는 혹은 악화시키는 역기능적인 역동을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계속 재발하는 도박 중독자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방문하였다면 어떤 기관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왔는지를 물어보는 것보다 재발을 하였을 때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그 때 도박자의 반응은 어떠하였는지, 관계가 개선 또는 악화되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오히려 도박 문제에 개입하는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환자/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것도 중요한 치료적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동기가 결여되어서인지,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찾아내어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다른 치료 기관의 방문 여부, 기존의 진단, 약물 치료에 대해서만 물어본다면 오히려 이전 치료 기관의 인지도나 유명세에 압도되어 동일한 진단을 내리고 복용하는 약물만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접근을 하게 될 위험성이 커집니다. 당연히 문제가 개선되고 나아질리가 만무하지요.
그러니 호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내담자가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꼭 물어봐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치료력 점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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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병원 급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어합니다. 적절한 금전적 보상과 복리 혜택이 주어지는 유급 수련 과정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경험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종합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이라는 수련 현장의 장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업무량에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종합병원이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희귀한(?) 장애는 별로 못 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병원에서 Sleep Walking Disorder, Fugue,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환자 등을 평가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애는 몸에 밸 정도로 많이 봅니다.
제가 수련받은 병원의 경우 1년차 레지던트는 1/4분기 동안 지적 장애 판정에 투입되는데 다양한 심각도의 Mental Retardation 환자를 지겹도록 평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발달 장애 클리닉에 투입되어 몇 달동안 Communication Disorder, MR, PDD NOS, Autistic Disorder를 변별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보호 병동에서 SPR, MDD 환자를 실컷 평가하고, 다시 외래에서 ADHD, Anxiety Disorder 아동을 평가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 장애를 일정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쌓이는 노하우와 지식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특정 장애에 대한 검사 sign과 case formulation의 감을 잡을 수가 있고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는 다른 장애와 변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의 장애에 대한 감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무조건 다양하고 특이한 환자를 본다고 전문성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얄팍한 잔수만 늘게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앞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심리평가 부문에서도 최종적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증 클리닉의 집중 훈련 과정을 통해 Pain Disorder 환자에 대한 대가가 되든지, 재활 병원에서 뇌손상 환자의 손상 부위를 아주 detail하게 잡아내는 전문가가 되든지, 섭식 장애 센터에서 Eating Disorder 환자를 평가, 치료, 예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든지 말이죠.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평가하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집중'적인 훈련과 전문성의 배양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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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Paul G. Quinnett은 제가 2009년 3월에 혹평했던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Pavlov's Trout, 1998)'라는 책을 쓴 임상심리학자입니다. 못말리는 낚시광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분은 자살 관련 분야의 최고수 중 한 명입니다.
보통 자살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연예인 자살이나 생활고에 시달려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에게는 훨씬 더 자주 접하는 문제입니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니더라도 자살로 귀결되거나 자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매우 많거든요. 속된 말로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 환자나 내담자를 자살로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임상가는 초보이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환자나 내담자를 잃을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정신적 타격은 임상가를 burn-out시킬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2009년에 도박 중독이었던 내담자, 2010년에 우울 증세가 동반된 적응 장애 피검자를 각각 자살로 잃었습니다. 1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썼던 글이 바로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에서는 다행히 자살 시도를 하는 빈도가 적은 편이지만 자살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도박자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흔한 문제이고 도박 중독자들은 충동성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언제든 불행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는 임상가 중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제 나름대로 대비를 하는 차원에서 고른 책인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30년 이상 현장에서 자살 환자를 치료한 전문가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이런 책은 실제 현장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저도 이런 책을 꼭 한 번 쓰고 싶군요. ㅠ.ㅠ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은 정리해서 포스팅도 할 생각이지만 현장에서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임상가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저도 소장하면서 가끔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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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보고서는 심리검사 결과를 토대로 검사 시 관찰된 행동 양상과 면담 내용까지 종합해서 작성하게 됩니다. 심리검사 결과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행동 관찰(behavioral observation)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취급되지만 의외로 피검자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ADHD가 의심되는 아동이 왔을 때에는 검사 시 과잉 행동 등 주의력 문제가 의심되는 양상이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고 만성 정신분열병이 의심되는 환자가 왔을 때에는 hygiene care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선생님들이 정작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아무런 기준 없이 검사 또는 면담에서 눈에 띄었던 특징적인 피검자의 모습만을 나열하는데 그치곤 합니다.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의 behavioral observation 영역을 기술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의뢰 사유와 관련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해야 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ADHD 의심 아동이라면 꼼지락 거리는 행동이라든가, 충동적인 반응 양상을 확인해서 기술해야지 무슨 안경을 쓰고 있었는지, 얼굴이 하얀 지 등은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MDD가 의심되는 환자라면 면담 시 눈물을 흘린다든지, 의욕이 없어 반응 속도가 느리다든지, 얼굴 표정이 어둡다든지, 잠을 잘 수 없어서 눈이 충혈되었다든지 하는 정보가 중요하겠지요.
둘째, 의뢰 사유와 관련있는 내용이 두드러지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의 순서로 기술하되 피검자가 검사실에 들어와서 검사와 면담을 마치고 나가는 시간 순서를 따릅니다.
1) 피검자의 외양(appearances)을 기술합니다. 이 때, 피검자의 특징적인 모습만 강조하지 말고 가능한 한 피검자의 문제를 드러내는 측면에 집중합니다.
2) 평가자와 상호 작용(interaction) 양상을 기술합니다. 눈 맞춤을 잘 하는지, 평가자의 검사 지시는 잘 이해하는지, 자발적인 언어 표현은 있는지, 평가자를 향한 positive affect는 드러나는지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3) 피검자의 검사 수행 양상을 기술합니다. 반응 속도가 빠른지, 충동적인 모습은 없는지, 수행 동기는 충분한 지, 그리기 과제 수행 시 필압은 적절한지 등을 기술합니다.
각 영역을 들여쓰기해서 단락을 나누어 기술하면 보기에도 좋고 behavioral observation만 읽어도 피검자의 모습이 대충은 그려지게 됩니다.
제가 제안하는 방법이 정답은 아니지만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behavioral observation 영역에 무엇을 써야 할 지 고민이 되는 선생님들에게 대안 제시는 될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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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서 수가 문제로 많이 두들겨 맞는다고 요새 울상이지만 다른 과에 비해서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동안 비급여 수가로 잘 먹고 잘 살았지요.
약물 치료 부분은 제가 잘 모르니 심리평가 부분에서 환자/피검자를 등쳐먹는 대표적인 몇 가지 경우를 고발할까 합니다.
검사 비용을 일정 수준 맞춘다는 명목 하에 환자를 등쳐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전혀 엉뚱한 급여 검사를 추가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검사 내용이 중복된 비급여 검사를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무리하게 시킴으로써 환자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고 그러면서도 그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아주 악랄한 짓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 엉뚱한 급여 검사를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작년 4월에 포스팅 한
'전두엽 관리기능 검사(EXIT)를 모든 피검자에게 실시한다고?'에서 이미 말씀드렸는데 급여 검사이기는 하지만 그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검사를 추가하는 것이지요. EXIT의 경우는 전두엽 기능을 측정하는 검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두엽 기능을 측정해야 하는 특정 장애가 의심되지 않는 한 실시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들이야 심리검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비싼 검사비를 부담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죠. K대 병원에서 이런 짓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서 수련받고 갓 전문가가 된 supervisor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자기가 배운 그대로 검사 battery를 구성하고 있다면 무능한 supervisor일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임상가로서의 자질이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죠.
둘째, 내용이 중복된 비급여 검사를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자기 보고형 질문지를 추가하는 방식을 씁니다. 자기 보고형 질문지는 초진을 보고 검사 예약을 한 뒤 집에서 작성해 오도록 미리 줄 수 있어 환자의 불평이나 의심을 줄이는 효과도 있죠. 착취당하는 것도 모르고 심리평가비가 비싼데 이것 저것 하게 해 준다고 좋아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_-;;; 예를 들어 MMPI-2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우울 관련 질문지인 BDI, CES-D, HAM-D 질문지를 몽땅 시키는 방법(이 검사지들이 급여 검사에 추가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수련받을 때에는 모두 비급여 항목이었습니다)을 씁니다. 게다가 구조화된 면담을 실시한다고 하면서 이마저도 몽땅 검사 비용에 포함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이 방법은 연구를 많이 하는 종합병원급 병원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제약 회사의 fund나 국책 과제의 연구비를 받는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연구 자료는 자료대로 모으고 이 때 발생한 검사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하는 파렴치한 짓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두 가지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병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일반화된 방법이고 두 가지 방법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정신과도 꽤 됩니다.
심리평가에 포함된 심리검사 도구의 수가가 현실화되지 않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힘을 합쳐 정부와 싸울 일이지 그게 귀찮고 힘들다고 병들고, 돈 없는 환자의 등을 칩니까?
덧. 조만간 월덴3에 심리평가에 포함된 검사 도구와 비용의 적절성을 익명으로 심사하는 신고 센터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병원과 임상심리학자들이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소비자인 환자/피검자를 통해 단매를 치겠습니다.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당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리기 바랍니다.
덧2. 최근에 제가 자꾸 정신과와 임상심리학계의 실태를 고발하는 포스팅을 하는데 이니셜로 표시할 때 정신차리기 바랍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점점 표시하는 강도를 올릴 예정이니까요. 이미 법적 자문을 위한 변호사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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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포스팅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객관적인 실상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읽는 분이 각자 현명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정신과는 종합병원과 로컬병원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과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비나 기구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우월함을 가르는 것은 치료진의 전문성입니다.
그렇다면 로컬병원에 비해 훨씬 많은 임상 경험과 다양한 환자군이 몰리는 종합병원 치료진의 전문성이 더 우수할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취약성이 모든 장점을 다 상쇄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의 취약성이란 무엇이냐.
종합병원은 시스템상의 문제로 환자를 깊이있게 볼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종합병원은 로컬병원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환자를 진료해야 하며 그러다 보니 의사가 문진 실력을 발휘할 시간 자체가 없어 환자의 주관적인 보고에 의존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진단을 내릴 때에도 구체적인 진단보다는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안전 지향으로 갈 수 밖에 없죠.
심리평가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면담도 해야 피검자에 대한 충분한 formulation이 될텐데 워낙 검사 대상자가 밀려 있어 정해진 시간 내에 검사를 해치우듯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 피검자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routine하게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한 후 잊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면담을 하고 정보를 모을 시간이 없으니 의사의 진단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제가 만약 정신과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오히려 특화된 분야의 전문가가 운영하는 로컬병원을 찾을 겁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 뿐 아니라 임상심리학자의 면면도 살펴봐야겠지만요.
덧. 제가 supervision하는 선생님들이 대학병원 또는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에서 실시한 심리평가보고서를 의무 기록으로 들고 오는 일이 많이 늘었는데 과거에 비해 어이 없을 정도로 환자의 문제를 엉뚱하게 짚은 보고서가 늘고 있습니다. 터무니 없는 진단도 많아졌고요. 그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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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는 심리검사 + 행동 관찰 + 면담 + 전문 지식에 의한 해석 등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심리검사의 비중이 크다 보니 많은 평가자들이 심리검사의 검사 sign에만 치중해서 case formulation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형적인 검사 profile만 찾으려고 애를 쓰거나 눈에 띄는 일부 검사 sign에만 치중하게 되어 잘못된 formulation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심리검사 전에 의뢰 사유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심리검사 전 필수 점검 사항 - 의뢰 사유 확인과 가설 설정')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뢰 사유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서 의뢰 사유를 통해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아주 핵심적인 점검 사항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일단 정확한 용어는 아닙니다만 심리평가를 피검자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전제하고 문제라고 통칭해서 사용하겠습니다.
1. 문제의 진행 과정 : 수직적 접근
: 피검자의 문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어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일종의 시간 순서에 따라 확인하는 것이죠. 정신과 병원의 경우 chart를 확인해 일종의 퍼즐 맞추기를 하고 모자라는 조각을 면담을 통해 채울 수 있습니다.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지, 아니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는지, 새로운 문제는 이전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이는지, 문제를 야기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episode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겁니다.
2. 문제의 일반화 가능성 : 수평적 접근
: 현재를 기준으로 이 문제가 특정 상황에만 국한되는 지(예; 선택적 함구증처럼 학교에서만 말을 하지 않는지, 남편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만 울화가 치미는지 등), 아니면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문제인지(예; ADHD 아동이 집과 학교 모두에서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것 등)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일반화 가능성에 대해 알아야 이 문제가 상황 특정적인지, 성격 문제에 기반한 것인지, 특정 인물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인지 등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생깁니다.
3. 문제에 대한 피검자의 주관적 해석
: 문제를 피검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합니다. 이는 특히 진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검자가 문제를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편안하게 받아들이느냐(ego-syntonic), 아니면 고통스러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하느냐(ego-dystonic)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4. 문제로 인한 일상 기능의 피해 여부
: DSM-IV-TR 기준에 따른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피검자가 일상 생활에서 이 문제로 인해 장해를 경험하는지의 여부입니다. 성추행에 대한 trauma로 인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거나 왕따를 당한 뒤로 등교를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이에 속합니다.
5. 문제에 대한 과거의 대처 방법 : 치료력
: 이 부분은 치료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문제에 잘 대처했다면 치료의 결과 확인을 위해 재평가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리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고 심리평가를 받는 것이죠. 그러니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른 치료 기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 뿐 아니라 심리평가에서 가설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 기술된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니 피검자를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나름대로 추가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구축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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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임상 심리학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입니다. 한국적인 임상 심리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한국적인 접근을 찾는 시도가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임상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세력권 안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상 현장에서 DSM-IV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고 정신과나 상담 센터에서 진단이 강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용자의 특성 상 상담 심리학자가 만나는 내담자는 상대적으로 정신병리적인 수준의 문제를 동반한 경우가 적은 편이지만 상담심리전문가의 수련 과정에서도 점점 심리평가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고 실제 상담 현장에서도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내담자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상담 심리학자들도 점점 진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치료진의 장을 맡고 있는 병원 장면에서 진단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병원에서 심리평가를 수행하는 임상 심리학자들이 심리평가 보고서에 진단을 내리지 않으면 진단을 요구하는 의사와 마찰을 빚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과연 심리 치료나 상담에 진단이 꼭 필요할까요?
제 원칙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이면서도 정신과적 진단을 좋아하지 않았던 Yalom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데 치료에 정말로 필요한 임시적 분류가 아니라면 실제 치료에서는 진단이 (거의) 필요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DSM-IV의 분류 체계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으며 오히려 임상가가 내담자/환자를 보는 시각을 굉장히 협소하게 제약한다는 이유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담자/환자를 특정 진단 기준에 의해 labeling하는 것이 바로 그 내담자/환자의 자가 치유 능력을 제한하고 억누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단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게 되면 우울증이라는 원인 이외에 자신의 문제를 설명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이라는 주어진 장애를 치료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볼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저 우울증 환자의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는 그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 환자 모드로 바뀌게 되어 있던 식욕도 없어지고, 의욕도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medical student's syndrome처럼 실제로 없는 문제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집중적인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일부 정신 장애를 제외하고는 굳이 진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환자/내담자에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임상가가 하는 일은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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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평가는 흔히 이야기하는 Full Battery의 6개 심리검사도구 중 지능을 측정하는 검사를 제외한 약식 Battery를 이야기합니다. 실시하는 기관에 따라 BGT를 더 빼기도 하고 몇 가지 자기 보고형 질문지를 추가하기도 하죠.
어쨌거나 핵심은 지능검사를 제외하는 것입니다.
지능검사를 제외하는 이유는 모든 심리검사 도구 중 지능검사가 실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실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지능검사를 제외할까요? 그건 검사 시간을 줄이게 되면 남는 시간에 검사실과 평가자를 활용해 더 많은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말이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있는데 굳이 지능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과도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환자/피검자를 괴롭히는 일이다", "환자/피검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성격평가는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인도적인 차원에서 환자/피검자의 경제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성격평가를 실시하는 기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진단에 반드시 필요한 MRI가 비싸다고 X-ray로 대치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있는데 굳이 지능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임상가는 지능검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묻겠습니다.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대체 무엇인가요? 제게 알려주세요. 저도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굳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지능검사를 꼭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했던 적도 있습니다. Neurosis 계열의 환자는 빼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검사 비용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피검자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에만 치중하면 되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고 supervision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능검사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병전 인지 기능을 추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이며 장애로 인한 인지 기능 장해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중요하게 활용되는 검사 도구입니다.
단순히 IQ가 얼마인지만 확인하는 임상가에게는 돼지 발톱의 진주 격이지만 지능 검사는 언어성, 동작성 지능의 차이, 소검사 profile 분석, 그리고 (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분석을 통해 다른 검사들에게서 알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검사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성격평가를 실시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대체 성격평가는 무엇을 위한 Battery인가요? 정말 성격만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인가요? 인지가 빠진 성격과 정서만 갖고 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요? 과연 그것이 환자/피검자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제가 장담컨대 성격평가는 한정된 자원(검사실과 평가자,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평가 기관의 business friendly한 사고가 낳은 산물입니다. 거기에서 환자/피검자는 배제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지능검사가 절.대.로. 불필요한 장애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성격평가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임상심리학자가 환자/피검자가 소외되는 시장 자본주의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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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장면에서 일을 하거나 수련을 받는 선생님들은 내담자보다는 환자라는 용어에 더 익숙할겁니다. 보통 질병 모델을 따르는 의사들은 두 말 할 것 없이 환자라는 용어만 사용하죠.
그러나, 예를 들어 정신 분열병으로 진단한 사람이라면 환자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진단 기준을 충족하지는 않으나 분명 심리적인 문제가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무조건 환자라고 부르는 것은 자칫 client와 형성된 rapport를 깨기 쉽습니다. 또한 쌍방 모두 지나치게 권위에 기대거나 의존함으로써 치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수도 있습니다. 의사들이야 권위를 등에 업고 (당당하게) 환자라고 부르지만(그렇다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요) 임상 심리학자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저는 평소 상담 심리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내담자'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합니다. 사실 상담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을 치료적인 의미에서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 관계처럼 딱딱하게 들리지도 않고,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서고자 하는 의도도 함축하고 있지 않아서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중독계 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client를 내담자라고 이름 붙이고 실제 호칭은 ~님으로 통일합니다.
이것은 심리평가 보고서를 쓸 때에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나타나는데 진단이 분명하게 내려지는 경우에는 저도 '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피검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소아의 경우에는 '아동'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용어 사용의 문제이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꼼꼼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상담자(또는 치료자)는 자신도 모르게 권위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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