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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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육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은 대개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가 쓴 육식의 위험(
'죽음의 밥상'), 철학자가 쓴 동물의 권리(
'동물권리선언'), 채식주의자가 쓴 채식 예찬론(
'채식의 유혹') 등이죠. '죽음의 밥상'은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가 썼고 '동물권리선언'은 진화생물학자인 마크 베코프가 썼으니 matching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죽음의 밥상', '동물권리선언', '채식의 유혹'은 모두 아주 좋은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제 나름의 세 분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독특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사회 심리학자인 멜라니 조이가 썼거든요.
물론 이 책에도 예의 육식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과 자연 환경에 해로운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서두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왜 육식을 고집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꽤 독특하죠? 방어 기제나 인지 부조화 등 심리학에서 차용한 개념들은 그다지 새롭지 않고 익숙했지만 '폭력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육식주의'에 대한 분석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더군요.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육식주의를 비판하는 책에는 어김없지만 이 책에도 역시나 빠짐없이 우리나라 모란 시장의 개고기 도축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 르포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제목으로 '이 역겹고 악마적인 고문'이 달려 있네요. 참 창피한 일입니다.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육식주의의 폐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분들이라도 '폭력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육식주의'에 대한 분석이나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심리적 기제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책입니다.
그건 그렇고 모멘토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에는 청소년권장도서 마크가 붙어 있던데 청소년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서 선정된 것이 아니라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선정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육식주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청소년이 읽었을 경우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 굉장히 많거든요.
닫기
* 특정 동물에 대한 우리의 느낌과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게 어떤 동물인가보다는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떠한가에 더 달려 있다.
* 우리의 가치 기준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불일치는 어느 정도의 도덕적 불편함을 불러온다. 이 불편을 완화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행동에 맞게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 가치 기준에 맞게 행동을 바꾸는 것, 아니면 행동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그것이 가치 기준에 맞는 '듯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고기에 대한 우리의 스키마는 바로 이 세 번째 선택에서 형성된다. 가장 중요한 도구는 '정신적 마비(psychic numbing)'다.
* 선택임에도 선택이 아닌 듯이 보이는 것은 육식주의의 비가시성 때문이다.
* 현실을 왜곡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정이다. 상징적 비가시성은 방어기제인 '회피(avoidance)'에 의해 가능해진다. 회피는 부정의 한 형태다.
* 2006년 제정된 동물기업테러법-위헌이라고 격렬하게 비판받았던 법-에 따르면 '동물기업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행동은 불법'이다.
* 젖을 떼는 시기는 해당 가축뿐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목장 사람에게도 가장 괴로운 때일 것이다. 송아지와 헤어진 어미 소는 몇 날이고 큰소리로 울부짖는다. 송아지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곧잘 병에 걸린다. 수의사들은 젖떼기를 가장 큰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생각한다.
* 자연 상태에서 10년까지 살 수 있는 가금류가 공장식 농장에서는 닭이 7주, 칠면조는 16주 밖에 살지 못한다.
* 인도적 도축법은 가축을 죽이기 전에 의식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가금류는 거기서 제외됐기 때문에 의식이 완전한 상태에서 도살된다.
* 17세기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질문해야 할 점은 '그들에게 이성이 있는가?'도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는가?'도 아니고,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 부자연스럽게 알을 많이 낳도록 하는 인공적 조작의 또 다른 결과는 자궁탈출 현상이다. 달걀이 자궁벽에 들러붙을 경우, 알을 낳을 때 자궁까지 같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자궁을 몸 안으로 다시 넣어주지 않으면 다른 닭들이 그걸 쪼아 결국 출혈이나 감염으로 죽는다. 이럴 경우 닭이 죽기까지 보통 이틀이 걸린다.
* 낙농산업의 '쓸모없는 부산물'인 매년 100만 마리의 수송아지가 당하는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될 때 많은 미국인이 받을 충격을 상상해 보라. 사실 낙농산업이 아니라면 송아지 고기 업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젖소가 낳은 수송아지는 낙농업자에게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버려진다.
* 바다 생물의 지능에 관한 연구에서는 물고기가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금방 잊어버리기는 커녕 최소한 3개월 동안 기억한다는 증거가 나와 있다.
* 사람보다 오래 살기도 하는 바닷가재는 더듬이에 400종류가 넘는 화학수용체가 있어서 이를 통해 다른 동물의 성별, 종, 심지어 기분까지 탐지해 낸다고 한다.
* 서울 근교 모란 야시장의 줄줄이 늘어선 가게 뒤쪽에는 먹기에 가장 좋은 나이로 치는 8개월짜리 강아지들이 서너 층으로 용접해 놓은 작은 개장들 안에 들어 있다.
* 모든 암과 심혈관 질환, 기타 퇴행성 질환의 대부분, 아마도 80% 내지 90%는, 적어도 아주 고령이 될 떄가지는 단순히 식물 위주의(채식주의) 식사를 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 콜린 캠벨(코넬대 영양생화학 명예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차이나 스터디'의 저자. 차이나 스터디는 건강과 영양에 관한 연구서 중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것이다. 3N은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에서부터 나치스의 유대인 대학살에 이르는 모든 착취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돼 왔다.
*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안다는 환상이다. - 스티븐 호킹(영국의 물리학자)
* 동물을 보는데는 내가 '인식의 트리오(cognitive trio)'라고 부르는 세 가지 방어기제가 개입한다. 인식의 트리오란 '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를 말한다.
* 운동은 증언자의 수가 임계질량이라 할 수준을 넘어설 때 성공한다. 사실 육식주의를 방어하는 메커니즘의 유일한 목적은 증언을 막는 것이다.
* 해리는 육식주의의 가장 중요한 방어기제로서 정신적 마비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 채식주의 운동가 에디 라마(Eddie Lama)가 지적하듯이 "동물들이 앞으로도 계속 고통 받고 죽어 가리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게 '나' 때문은 아니도록 해야 한다.
* 진실을 바로 보고 증언하는 데 저항감을 갖는 이유 중 마지막이자 보다 근본적인 게 있다. 우리가 이제 동물을 죽이고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우리 정체성이 문제시된다는 점이다. 증언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른바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망을 구성하는 무수한 가닥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만들지 않는가. 인간의 우월성을 믿는 우리의 의식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증언은 인간이 자연 세계 전체와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우리 종이 수천 년에 걸쳐 온갖 필설로 애써 부인해 온 그 상호 연결성을.
*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 다른 동물의 고기를 끊임없이 먹으면서도 그걸 제공한 생명체는 거의 생각지 않고, 평소 툭하면 들먹이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그때만은 어디론가 치워 버리는 '고기의 인간들'. 그 행태의 구조와 원천을 저자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육식주의'라는 키워드로 또렷이 풀어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덧2. 이 책은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제작을 후원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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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황윤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입니다. 황윤 감독은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날 그 길에서(2006)'로 이어지는 생태 다큐멘터리 연작으로 유명한데요.
이 영화는 지인이 자주 가는 고양이 카페에 소셜 펀딩 관련글이 올라와 알게 되었는데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옆지기가 깜짝 놀랄 액수의 금액을 후원한 인연으로 VIP 시사회에 초청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야생동물 수의사인 남편과 살며 돈까스를 너무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자신이 돈까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돼지를 찾아나섰는데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당연히 돼지를 보는 건 쉽지 않죠. 왜냐하면 요새 대부분의 돼지는 2천 마리 이상을 기르는 공장식 축산농에 의해 사육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산골마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를 찾아냅니다. 이 영화는 그 농가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일생을 담담하게 담아내죠.
비건 채식을 하고 있고 동물들의 사육 환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산산히 깨진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거세를 할 때 마취를 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자연적인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전통 축산농가를 처음 보여주는데 저는 그게 공장식 축산농인 줄 알았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그것도 돼지에게 가혹한 환경이었거든요. 돼지의 국내 사육 환경에 대해서는 철저히 나이브했던거죠.
실제 공장식 축산은 그냥 공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옴쭉달싹 못하는 케이지에 평생을 묶여 살면서(그런 걸 산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엄마 돼지는 평생을 강제 임신, 출산만 하고 거기에서 태어난 돼지는 평생을 갇혀 햇볕도 못 보고, 운동도 못 한채 살만 찌다가 1년도 안 되어 죽음을 맞게 되는 곳이죠.
저는 이 정도 영화로도 충분히 힘들고 괴로웠지만 잡식을 하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모든 고기가 한 때는 숨쉬고 감정을 가진 한 마리의 동물이었다는 걸 생각해 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겁니다. 온 가족이 함께 보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요.
내내 무겁지만은 않아요. 황윤 감독 특유의 유머와 위트도 있고 저절로 엄마, 아빠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장면들도 많습니다.
꼭 한번은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덧. 이건 영화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불평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번 소셜 펀딩을 할 때 후원 금액에 따라 후원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달랐죠. 제가 후원한 금액 범위 내에서 무엇을 받도록 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제가 받은 건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간 거, 포스터 한 장, 이게 전부입니다. 공치사 들으려고 후원한 것도 아니고 의미있는 도전인데다 충분히 좋은 영화였기에 기분 좋은 마음으로 쾌척했지만 기분이 영 씁쓸하네요. 시사회 당일에도 좌석 구분도 안 되어있는데다 안내도 제대로 하지 않아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진 찍는 사람, 응원 인터뷰하는 사람, 감독과 인사하는 지인들이 로비에 뒤엉켜 시장통 같았습니다. 통제하는 직원 하나 없더군요.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정식 배급사가 있는데 아마추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진행에 기분이 좀 상했습니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서비스가 그에 걸맞지 않으면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가 있다는 점도 아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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