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에 영화
'극한직업' 소개글을 올리면서 앞으로 한국 영화는 아주 신중하게 고르게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제가 제 발등을 제대로 찍었습니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리 구매해 둔 씨네큐 리저브관 이용권을 사용하려고 휴일을 맞아 모처럼 영화를 보러갔는데 그나마 이 영화를 제외하면 볼 수 있는 게 '반도'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나중에 이 포스팅을 하려고 제작사의 공식 소개글을 봤는데 '2013년 신세계 이후 다시 뭉친 황정민X이정재 콤비의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이라는 문구를 보고 '이마짚'을 했습니다. 왜 미리 어떤 영화인지 검색도 안 해보고 용감하게 예매를 했을까;;;;;;
일단 장점부터 말씀드리면, 황정민 배우는 묵직하게 멋있고 이정재 배우는 스타일리시하게 멋있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야 뭐 두 말하면 입 아프고 액션합도 좋습니다. 촬영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겠더라고요. 그리고 의외의 연기 다크호스는 박정민 배우입니다. 황정민, 이정재 배우는 워낙 기대치가 높아서 '역시~'라는 느낌이라면 박정민 배우는 '에? 에~엑!!' 이런 느낌입니다. 후반부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등장하는데 화면에 나올 때마다 존재감이 엄청납니다. 각종 포털사이트 댓글에서도 박정민 배우의 연기를 언급하는 분들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일본, 태국 올로케이션으로 찍은데다 색감이 아주 이국적이고 카메라 워킹도 괜찮습니다. 특히 액션씬의 스톱 모션 사용은 발군이었죠. 배우들이 홍보할 때도 액션씬은 기대해도 좋다고 하는데 이것만큼은 동감합니다.
장점은 이 정도이고 제가 느낀 단점을 말씀드리면, 일단 이런 저런 영화의 클리셰를 뒤범벅한 느낌이라서 참신성이 떨어집니다. '아저씨', '레옹', 그 밖의 할리우드 복수물들을 뒤범벅 해 놓아서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 지, 이 상황에서 누가 죽을 지 뻔하게 예상됩니다. 이 잔인한 영화를 보면서도 졸았다는 관객이 있을 정도에요.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어떻게 관객의 시선을 계속 잡고 갈 생각을 했는지 게으르기 짝이 없습니다.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 없었다면 손익분기점은 어림도 없이 애초에 폭망할 뻔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몰입을 방해하는 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끝을 보자는 식의 잔인함과 폭력성입니다. 특히 칼로 쑤시고 난자하고 피칠갑이 되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이걸 '푹', '쑥', '쑤걱' 같은 생생한 현장음과 함께 계속 듣고 있으니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더군요. 살아있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서 배를 가르고(이건 상황 묘사뿐이었지만 충분히 상상이 될 수준으로 생생했습니다), 니퍼로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내고 목의 경동맥을 찔러서 죽이는 등 마음을 놓을 만 하면 사람을 죽이는 게 하드보일드 액션이라고 한다면 다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안 보고 싶습니다. '신세계'도 이런 식일 것 같아서 걸렀는데 이 영화를 밟고 미끄러지네요.
강철 심장을 가진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배포가 없는 분들은 각오 단단히 하고 가시고요. 절대로 뒷맛이 가볍지 않은 영화입니다. 미리 경고 드립니다.
덧. 아이가 황정민 배우를 향해 팔을 뻗는 장면만큼은 정말 감동적인 (유일한) 씬이었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987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강력한 정의감으로 범죄자를 잡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 무대포 기질 때문에 좋은 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타협하고 살아가는 족속들과는 항상 충돌하고 사고치는 형사 캐릭터는 예전부터 꽤 많았죠. 거기에 버디 무비까지는 아니지만 든든한 지원군인 고참이나 선배와 아옹다옹 다투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식의 영화로는 미국의 리썰 웨폰 시리즈가 있고 우리나라만 봐도 공공의 적 시리즈가 있죠. 그만큼 많이 다뤄온 주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재미를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조합은 황정민-오달수 : 유아인-유해진이었는데요. 케릭터 선정은 좋았습니다. 각각의 케미도 폭발적이었고요. 다만 새로운 재미를 주기에는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류승완 감독의 장점인 폭발적인 액션도 부족했고요. 물론 이런 영화는 너무 코믹하게 가도 망하고 너무 심각하게 가도 망하기 때문에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황정민의 코믹함에 유아인의 과잉 연기로 돌파하려 한 것 같습니다.
시기적으로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재벌, 기득권층의 갑질때문에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한껏 올라가 있었던터라 영화에서 묘사된 재벌 2세의 안하무인 행동에 모든 관객이 일심동체가 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너무 평범한 스토리(각본을 류 감독이 썼다고 하던데), 밋밋한 액션씬, 결정적으로 유아인의 과잉 연기가 불편해서 저는 재미가 확 반감되더군요. 유아인이 앞날이 촉망되는 연기자임에는 이의가 없지만 힘을 좀 뺐으면 좋겠더군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마약쟁이 망나니가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발적인 열등감을 감춘 냉혈한 싸이코패스였다면 훨씬 더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그런 캐릭터를 바로 류 감독의 전작인
'짝패(2006)'에서 이범수가 연기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범수가 연기한 장필호와 비교되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제가 볼 때는 연기라면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유해진, 오달수, 정웅인, 정만식, 천호진, 송영창, 배성우에 김민재, 신승환에 이르는 연기파 배우진이 이 영화를 살렸습니다. 지루해질 만하면 호연으로 시선을 계속 붙잡아 둘 수 있었거든요.
2010년 부당거래와 2012년
베를린을 거쳐 2014년 베테랑으로 관객 몰이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은 어떤 영화가 될 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