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ptic'을 창간한 회의주의계 대부(?)인 Michael Shermer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1997)'를 북 크로싱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의주의로 무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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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작년 이맘 때
'집단 지성을 믿을 수 없는 이유'라는 포스팅에서 밝힌 것처럼 저는 기본적으로 회의주의자이고 가능한 한 지독한 회의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만이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혼란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회의주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가 힘주어 이야기하듯이 회의주의도 무오류의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의주의마저도 끝까지 검증을 해 봐야 하지요.
작년 5월에 소개한 Thomas Kida의
'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2006)'이라는 책에서도 회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뭐니뭐니해도 회의주의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은 바로 회의주의 학회의 설립자이자 과학 저널 'Skeptic'을 창간한 Michael Shermer가 쓴 이 책입니다.
마이클 셔머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고) 스티븐 제이 굴드와 함께 회의주의자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으로 과학과 이성을 수호하기 위해 각종 사이비 과학을 비롯한 '이상한 것들'과 맞서 싸우는 이 시대의 심리학자입니다.
회의주의(Skepticism)이라는 말은 대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회의적'이라는 말이 무엇이든 부정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의 선입견일 뿐이고 사실 상 회의주의는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것이 과연 사실인지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방법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사실 회의주의자의 자세는 아주 쉽습니다. 어떤 그럴듯하고 굉장한 의견이나 주장을 접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멋진데!!, 그렇다면 이제 그걸 증명해 봐"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화적으로 잘못된 부정(예; 방울소리를 내는 뱀은 해롭지 않다)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지만 잘못된 긍정(예;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은 시간과 기력만을 허비할 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여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죠.
이 책은 초능력, 임사체험, 외계인 납치, 창조과학, 홀로코스트 부정론 등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사이비 과학과 유사 과학이 소개됩니다. 저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570페이지나 되는 분량의 책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마이클 셔머가 이상한 것을 믿는 사람들과 싸웠던 에피소드가 많이 소개되기 때문에 책장은 쉽게 넘어가는 편이거든요.
회의주의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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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희망을 주는 많은 증거들과 낙관적인 여러 예측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집단 지성을 믿지 않습니다.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요.
그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로는 절대 해결되지 못할 취약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단 지성의 대표 주자로 위키피디아를 듭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위키피디아는 집단 지성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어느 한 사람의 악의에 의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위키피디아 내의 수많은 정보가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으며 수정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간동안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 대중의 의식과 행동을 움직이는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구글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만 해도 어떤 정보가 필요할 때 구글링에 의존합니다만 구글링은 제가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는 통로에 불과할 뿐 그 통로의 끝에 있는 정보의 신뢰도를 보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블로그도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제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임상 심리학, 심리치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악의적으로 교묘히 왜곡해 포스팅한다면 정화될 수 있을까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이건 어찌 보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성선설 VS. 성악설의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99명의 선한 사람이 집단 지성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단 한 명의 악인이(똑똑한 악인이라면 더더욱) 집단 지성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불신의 벽을 손쉽게 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집단 지성의 가능성만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회의주의(skepticism)로 단단히 무장해야 하고 모든 정보의 source는 크로스 체킹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정보의 진흙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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