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싫은 인간들에서 성격 장애(Personality Disorder, 이하 PD)의 유형에 대한 언급을 간단히 했더니 happyalo님이 궁금해 하셔서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서 포스팅 합니다.
정신과에서 정신 장애를 분류하는 기준은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ICD-10이라는 것과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DSM-IV라는 편람을 따릅니다. 수련 받은 병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ICD-10과 DSM-IV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임상 심리학자들은 주로 DSM-IV의 진단 체계를 사용합니다.
DSM-IV는 다축 평가 체계(Multiaxial Assessment)를 사용하는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5개의 축으로 환자를 평가하는 것이죠. 다축 평가 체계를 사용하는 이유는 임상가가 환자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치료를 계획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정보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해서입니다.
Axis I. 임상적 장애
Axis II. 성격 장애와 정신 지체
Axis III.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
Axis IV. 심리 사회적, 환경적 문제
Axis V. 전반적인 기능 평가(GAF)
이제부터 설명드릴 성격 장애는 Axis. II에 속하는 것이죠.
PD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정의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 개인이 문화적 기대로부터 심하게 벗어난 지속적인 내적 경험과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것으로, 광범위하고, 결정되어 있으며, 청소년기 또는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고통과 장해가 초래되는 것"
성격 장애의 일반적인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개인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 기대에서 심하게 벗어난, 지속적인 내적 경험과 행동 양식을 보이며 이것이 다음의 영역 가운데 2개(혹은 그 이상) 영역에서 나타난다.
(1) 인지(예: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건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
(2) 정동(예: 정서 반응의 범위, 강도, 불안정성, 그리고 적절성)
(3) 대인관계 기능
(4) 충동조절
B. 고정된 행동 양식이 융통성이 없고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넓게 퍼져있다.
C. 고정된 행동 양식이 사회적, 직업적, 그리고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기능 장해를 가져온다.
D. 양식이 변하지 않고 오랜 기간 지속하여 왔으며, 발병 시기는 적어도 청소년기나 성인기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E. 고정된 행동 양식을 다른 정신 장애의 증상이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
F. 고정된 행동 양식이 물질(예: 남용 약물, 치료 약물) 혹은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예: 두뇌 손상)의 직접적 생리적 효과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현재 DSM-IV에 따르면 PD에는 10개의 장애가 있으며 이를 서술적인 유사성에 따라 3개의 군으로 나누는데 그것을 각각 A, B, C군이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특징을 살펴보면
A군 : Odd, Eccentric
-> 흔히 괴상하거나 엉뚱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B군 : Dramatic, Emotional, Erratic
->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사람들입니다.
C군 : Anxious, Fearful
-> 흔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각각의 군에 속한 장애를 살펴보면
[A군]
Paranoid(편집성)
Schizoid(분열성)
Schizotypal(분열형)
[B군]
Antisocial(반사회성)
Borderline(경계성)
Histrionic(히스테리성 혹은 연극성)
Narcissistic(자기애성)
[C군]
Avoidant(회피성)
Dependent(의존성)
Obsessive-Compulsive(강박성)
각 장애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장애 하나를 가지고도 수많은 관련 서적이 출판되어 있을 만큼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간략한 특징만 소개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도 보시면 대충 이해는 되실 겁니다.
* Paranoid PD
: 타인의 행동이 악의에 찬 동기가 있다고 해석하는 등 불신과 의심으로 점철된 성격 장애
* Schizoid PD :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고 정서 표현이 제한된 성격 장애
* Schizotypal PD
: 관계가 가까워지면 급성 불안이 일어나고, 인지 또는 지각의 왜곡, 그리고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성격 장애
* Antisocial PD :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는 성격 장애
* Borderline PD : 대인 관계, 자아상, 그리고 정동이 불안정하고 심하게 충동적인 성격 장애
* Histrionic PD :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관심을 끌려는 성격 장애
* Narcissistic PD
: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칭찬에 대한 욕구, 공감의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
* Avoidant PD
: 사회 활동의 억제, 부적합감,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과민성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
* Dependent PD
: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가 있는, 순종적이고 의존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
* Obsessive-Compulsive PD
: 정리정돈, 완벽성, 그리고 통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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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학문적인 이야기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임상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 심리학자들도 환자에 대한 취향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죠. 예를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성격 장애 환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치료하기가 어려워서는 아니고(그것도 물론 있지만... 치료자를 상당히 좌절시키는 장애 중 하나이고 성격 장애 환자를 치료하려면 이 세계에서도 상당한 내공이 쌓여야 합니다.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도 성격 장애 환자를 대면하면 심리 평가를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성격 장애 환자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죠. 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폭발력이 두렵고 그 파장의 결과가 두렵고 그 폭발에 제가 말려드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격 장애만 놓고 본다면 0점짜리 치료자입니다.
성격 장애 환자 중에서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군은 B군의 성격 장애 환자입니다. 이 군에는 정말 엄청난 성격 장애 환자들이 대거 몰려있습니다. 가히 폭발력도 엄청나죠.
B군의 성격 장애 환자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가장 무서운 성격 장애는 바로 경계성 성격 장애입니다. 영화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김혜수가 주연한 '얼굴없는 미녀'라는 영화에 등장했었죠(개인적으로 그 정도로는 Borderline PD의 진정한 모습을 묘사하는데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정신과 폐쇄 병동(혹은 보호 병동)에 Borderline PD가 입원하게 되면 초비상 태세가 됩니다. 특히 그 환자가 남자이고 지능이 높으며 잘생겼다면...... 다음은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ㅠ.ㅠ
Antisocial PD는 짐작이 가시겠지만 교도소에 가시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Histrionic PD는 '공주병', '왕자병'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의외로 많습니다. Narcissistic PD는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분들(저는 개인적으로 최소한 50% 이상의 교수들이 이 장애에 속하는 환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 중에 많이 있죠.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눈을 감고(혹은 가슴에 손을 지그시 얹고) 자신과 주위를 더듬어 보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정확한 진단이야 심리 평가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그 사람이 '꼴통', '또라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성격 장애를 의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치료자라는 사람이 무책임하군요~)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성격 장애자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시한폭탄을 발 앞에 두고 있는 시민입니다. 이 폭발물의 폭발력은 반경 1km입니다. 여러분은 폭탄 제거를 위한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고로 이 폭발물의 시한장치는 random 하게 작동합니다(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말이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만약 그 시민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1km 바깥으로 도망가겠습니다.
그 폭탄이 내 남편이거나, 내 여자친구이거나, 내 지도교수이거나 등등 아주 밀접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진심으로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전화하지 마세요.
심정적으로야 성격 장애자들은 자기들끼리 한곳에 모여서 살았으면 좋겠지만 치료자의 윤리상 그럴 수는 없고 오늘도 성격 장애자가 제 앞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덧 1. 지금까지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환자를 접했지만 성격 장애 환자를 완치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성격 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덧 2. 이 글을 보고 감정적인 댓글을 다신 분이 계셔서 말씀드리는데 그런 댓글을 달기 이전에 이 블로그의 안내 글을 천천히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분명 많이 부족한 치료자이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도 부족한 면이 많아서 따끔한 충고와 질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 블로그의 기본적인 규칙마저 무시하는 분에게까지 예의를 지켜 대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는 않습니다. 지적해주신 대로 경솔하게 적은 부분은 수정 또는 삭제했습니다. 질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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