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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검사(HTP, KFD 등) 할 때 수검자가 반응을 마치고 나면 통상적으로 PDI(Post Drawing Inquiry)라는 걸 하게 됩니다. 수검자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을 통해 수검자가 투사한 심리적 내용을 탐색(또는 확인)하는 절차이죠. 그런데 많은 임상가들이 이미 작성되어 있는 일종의 질문지를 사용합니다. 기관에 따라 간략한 몇 개의 질문으로 된 것도 있고 굉장히 많은 질문 목록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 상 절반 이상이 누군가 발로 만든 쓰레기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림 검사의 PDI를 할 때 절대로 질문지 사용하지 마세요.
상담에 계신 선생님들은 병원을 포함한 임상 장면에서 그런 질문지를 사용하는 걸 보고 표준화된 실시 절차라고 오판하시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 그런 질문지를 사용하는 건 그게 옳은 방법이어서가 아니라 개방형 질문으로 inquiry를 할 시간이 없을 만큼 검사가 많고 바빠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수련을 받은 병원은 그마저도 할 시간이 없어서 꼭 물어봐야 하는 질문 몇 개를 아예 그림 검사지에 인쇄해서 수검자가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질문에 답을 적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딴 식으로 그림 검사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 바뀌었을겁니다. 종합심리평가가 쓸 데 없으니 없애자고 주장하는 병원이니까요;;;; 근데 그걸 베껴서 쓰는 상담기관도 있더군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inquity를 제대로 하려면 개방형 질문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그리신 집이 어떤 집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겠어요?' 정도의 open question으로 시작합니다. 수검자가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거기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있는 집이냐, 근처에는 뭐가 있냐, 집에는 누가 사느냐처럼 수검자의 반응 내용에 따라 질문을 구체화하면서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림 검사는 사실 상담처럼 진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검사자가 능숙할수록 훨씬 정교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거죠. 그런데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폐쇄형 질문지로 망쳐놓으면 되겠습니까?
질문지는 대부분 폐쇄형 질문(closed question)으로 되어 있어 수검자의 투사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하고 반응을 유도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자칫하면 수검자가 뭔가 정답이 있을 지 모른다는 오해를 하게 되어 응답 내용이 왜곡될 수도 있죠.
게다가 질문지에 포함된 질문 중 reference가 있는 질문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꼭 물어봐야 하는 핵심 질문 위주로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의 개인적 호기심이 더해져서 이도 저도 아닌 괴물 같은 이상한 돌연변이 질문지가 만들어져서 나중에 쓰는 후학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림 검사 결과를 스캔하여 심리평가보고서에 붙이고 질문과 수검자의 응답도 따로 타이핑을 해서 첨부하라고 요구하는 상담 supervisor에 이르면 그냥 그 인간의 귀싸대기를 갈겨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밉니다. 이건 새디스트인건지 멍청한건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흥분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림 검사에서 사용하는 질문지는 거의 대부분 reference가 없고, 정석도 아니며, 효율적이지도 않고, 결과를 왜곡시킬 위험성만 높이고, 선생님들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백해무익한 놈이니 이 글을 보는 이후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생님들의 시간은 좀 더 유익하고 소중한 곳에 쓰여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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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할 때 내담자에게 질문하는 빈도를 최소로 줄이라고 기술한 교재도 있고 내담자에게 질문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가르치는 supervisor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건 강박적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담도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대화입니다. 대화란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인데 모든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치유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상담은 더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대화에 비해서도 당연히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잦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건 자칫하면 준비되지 않은 내담자를 취조하듯이 몰아붙임으로서 rapport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담자가 상처를 받을 위험성이 있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또는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모두 담당하는 임상 심리학자의 경우 상담을 하면서도 심리평가를 하듯이 특정 진단을 염두에 두고 진단 기준을 확인하는 질문만 해서 closed question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상담자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넘겨짚지 않으려고 상식 선에서 내담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빈도가 다소 잦다고 해도 상담에 그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상담자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질문을 안 하는 것에만 애쓴 나머지 상담자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보이거나, 자신감이 없어 보이게 되면 오히려 내담자와 rapport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상담도 결국은 대화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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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나 심리치료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질문을 할 때 폐쇄형 질문(closed question)을 하지 말고 가능한 한 개방형 질문(open question)을 하라는 말은 어느 참고 서적에나 나오는 말이고 현장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입니다. 아마 supervision을 받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으실 듯~
'예', '아니오'의 정해진 답변만 요구하는 폐쇄형 질문의 문제는 내담자의 사고 폭을 제한하거나 자발성을 침해하는 등의 문제도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상담하는 상담자의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임상 현장에서 closed question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내담자가 마음 읽기를 통해 상담자의 질문을 바람직한 가치관이나 교육 방향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자가 지난 주에는 도박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결국 일요일에 도박장에 가고 말았다는 말을 했을 때, 상담자가 "도박 대신 예배에 참석할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라고 물어본다고 가정해보죠. 전형적인 closed question입니다.
이 때 내담자는 상담자가 단순히 궁금해서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말에 도박 충동이 올라올 때는 종교적인 힘을 빌어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나마 이런 정도의 마음 읽기는 그래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데 한 발 더 나아가 '종교가 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느냐고 나무라시는구나'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는 내담자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담자는 기본적으로 상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거나 최소한 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곤 합니다. 따라서 상담자의 사소한 질문 하나도 그냥 흘려듣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경우에서 상담자는 "주말에 도박을 대신해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적인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와 같이 open question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사소한 closed question 하나로 인해 내담자가 상담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상담자의 마음 읽기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작업 자체를 못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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