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내담자들이 이야기하는 어려움과 문제는 내담자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로 묶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 관계 갈등이고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좋은 사람과 연애했으면 좋겠다. 상사가 또라이인데 어떻게 해야 하냐, 남편이 마마보이다, 아들이 날 홀대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동료의 잘난 척을 참을 수가 없다 등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모두 대인 관계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관계 갈등의 양상을 파악하고 내담자가 느끼는 고통감의 정도를 탐색하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하지만 그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거의 예외없이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담자의 관계 갈등 대상이 상담 장면에 없는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해야 하니 저도 모르게 fact finding을 하는 함정에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지각 왜곡이나 역기능적 신념, 자동적 사고 등을 찾아내는 수확을 거두기도 하지만 그걸 교정하려고 해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 중독자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의미의
'지금은 각자의 성을 돌볼 때다'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할 때는 내담자의 내면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내담자의 숨겨진 욕구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좌절되었는지, 그 욕구 좌절의 결과로 어떤 대처 방략 또는 방어 기제가 형성되었는지, 내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관 또는 삶은 무엇인지 등등
내담자의 내면 탐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야 관계의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경험이 많은 상담자들은 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부족하다면 먼저 내담자 개인의 내면 탐색을 하고, 그 다음에 관계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제 경험으로는 꽤 효율적이었습니다.
특히 부부 상담, 커플 상담 등 상담의 유형 자체가 관계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상담에서는 관계 갈등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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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만나는 상담자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고 또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립니다.
부부 상담을 할 때 상담자가 상담 초반에 부부 모두에게 반드시 orientation해야 하는 내용이죠.
부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상대방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며 비난하고 상담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받고자 합니다.
물론 자신에게는 별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방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배우자일수록 문제가 악화되는데 일조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어쨌거나 초보 상담자는 그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부부 사이를 중재하려고 시도하거나 사실 찾기(fact finding)에 매달리곤 합니다. 조금 더 경험이 있는 상담자라면 일단 부부를 각자 상담하면서 같은 상황에 대한 배우자 각자의 시각 차이를 확인하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부부 상담은 누가 잘못했느냐의 책임 여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의 방법을 찾는 자리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저는 다음과 같은 예를 자주 듭니다(좀 지저분하기는 합니다만 효과는 좋습니다)
"두 분의 집 거실에 탁자만한 크기의 엄청난 똥무더기가 있습니다. 냄새가 진동할 뿐 아니라 파리가 꼬이기 시작하는 심각한 단계이죠. 두 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상담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이 똥을 누가 쌌느냐, 누가 더 많이 쌌느냐 혹은 누가 이것을 치워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치울 것이냐입니다. 이 똥은 반드시 두 분이 힘을 합쳐야만 치울 수 있습니다. 제가 대신 치워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이 순간부터 범인 찾기, 책임자 찾기, 치울 사람 찾기는 그만두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부부 상담은 누가 얼마나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부가 협력하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담 초기에 이 초점 맞추기에 실패하면 상담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부부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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