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전문가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 포스팅에서 예고한 것처럼 임상심리학의 어두운 미래 예상에도 불구하고 소위 블루 오션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대한 제 예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예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인생 진로를 이곳에 올인하시면 안 됩니다. 뭐, 하셔도 좋습니다만 제가 전혀 책임질 수 없으니 나중에 내 인생 책임지라고 연락하지 마세요~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의 블루 오션은 크게 네 가지 분야입니다.
첫째.
노인 관련 분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피할 수 없는 미래이고, 미래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향후 전체 인구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할 노년층에 대한 정신건강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가 알기로 이 분야는 거의 불모지 상태입니다. 그나마 독거 어르신의 daily care와 관련된 분야만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 치매 등 노인성 정신장애에 대한 신경심리평가, 치료, 재활, 예방 등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은 말할 것도 없고 세부 분야의 전문가 수마저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할 말로 치매, 파킨슨 병 등 노인성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신경심리평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전문가의 수는 인프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신경심리평가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대우도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어서 호화로운 실버타운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다루는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의 복지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국가 정책의 방향이 이 분야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격적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수요에 비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노인 상담에 대한 경험 축적, 노인성 장애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지식, 신경심리평가 도구의 숙달에 미리미리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둘째,
애착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 말씀드린 초고령화 사회의 대두와도 맞물려 있는데 노인층이 늘어나는 만큼 출산율은 더욱 떨어져서 가구 당 1.0의 출산율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소아과, 산부인과 등이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지요. 소아정신과도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줄어들고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 두드러지는 핵심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애착 문제입니다. 맞벌이 가정에서 태어난 독자들이 늘고 있고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주 양육자로부터 강제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몇 년 전부터 불안정 애착 문제가 아이가 보이는 다양한 증상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ADHD, Anxiety Disorder, Conduct Disorder 등의 진단이 의심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부모-자녀 관계, 특히 불안정 애착이 원인인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의 경우에도 애착 문제가 심화되어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이 많더군요.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그럼에도 경쟁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안정 애착을 하는 건강한 아이들을 점점 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애착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별로 없습니다. 애착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의 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애착 치료를 다루는 전문 서적 마저도 거의 없습니다(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검색해 보세요). 그만큼 이 문제의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죠. 아동에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애착 문제에 대한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셋째,
상실 문제입니다. 대가족 체계에서는 삶과 죽음이 그리 많이 분리되지 않았고 죽음이나 상실의 충격을 완화시켜 줄 장치가 그나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이제는 독거 가정, 비혼 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상실의 충격을 감소시켜 줄 완화 장치가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픔을 함께 나눌 형제가 없고, 친구의 수도 부족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자가 많기 때문에 배우자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반려 동물을 입양하지만 대부분의 반려 동물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아서 오히려 더 자주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물며 오랫동안 정들었던 물건을 버리는 것 마저도 상실의 서운함과 아쉬움을 주는데 가족, 가족과 같은 반려 동물을 잃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방법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상실의 문제는 단지 죽음과 관련된 것 뿐 아니라 이별의 아픔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용과 인정만을 강조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현재 상실의 문제만을 특화시켜 다루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우울증, 적응 장애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볼 때에는 역부족이고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들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지만 상실에 초점을 정확하게 맞춘 것이 아니라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려면 지금부터 자신의 specialty를 정해서 전문성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넷째,
중독 문제입니다. 그 중 한 영역은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문 분야라고 말할 때에는 딴 데 정신팔지 않고 적어도 10년 정도를 현장에서 굴러서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예전에는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나누곤 했습니다만 최근 추세는 모든 중독을 행위 중독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약을 주사하는 행위, 손에 든 담배를 입으로 빨아들이는 행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중독 메카니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쨌거나 기존의 물질 중독 뿐 아니라 도박, 인터넷, 게임, 섹스, 쇼핑, 관계 중독 등 다양한 행위 중독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어 앞으로는 여러 분야에서 중독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기존 상담 영역에서도 중독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가능한 전문가를 요구할 겁니다.
현대 사회는 삶의 폭폭함을 잊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가족 제도의 해체와 핵가족의 확대, 물질 만능주의의 만연, 개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해 중독적 삶의 확산이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중독 분야의 수요는 점차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중독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해당 분야의 지식과 전문성, 현장 경험을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 애착, 상실, 중독, 이 네 가지 키워드를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Generalist는 가고 Specialist가 온다'는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는 specialist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대우받을 수 없는 시대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을 미리미리 개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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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그래도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하고 나면 임상 현장에서 최소한 심리평가를 하면서 먹고 살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취득한 자격만으로 전문성의 인정을 받는 것이 어렵게 될 것입니다. 상담 심리 분야 뿐 아니라 수많은 인접 분야에서 심리 평가에 대한 교육과 수련 과정을 강화하고 있어 조만간 심리 평가 분야에서만큼은 차별성이 퇴색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임상심리학자의 수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인접 분야의 인력이 심리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 꽤 됩니다.
게다가 참으로 낯 뜨겁고 민망한 일이지만 임상 심리 영역에서도 주력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심리 평가의 고수라고 내세울 만한 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일반적인 심리 평가만으로는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소위 generalist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찾는 수요가 점차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심리 평가 영역만 하더라도 단순히 성인 Full Battery가 아니라 소아 ADHD 진단 Battery, 노인 치매 전문 평가, 산재 판정을 위한 평가, 병역 판정을 위한 전문적인 평가 등 특정 영역의 검사 도구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요하는 영역이 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정신 병리 영역에서도 중독, PTSD, 치매, 식이 장애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전문 영역에 대한 치료적 접근이 가능한 specialist의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는데 수련 과정에서 치료 분야에 대한 할당이 매우 부족한 임상 심리 영역의 경우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임상 심리 영역에 진출하여 전문성을 발휘하고픈 분들은 단순히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에서, 또는 수련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과 흥미 영역을 탐색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미리미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라면 '과연 나는 어떤 영역의 specialist인가'라고 자문자답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에서는 누구 선생님이 최고지'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specialist가 되어야만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죠.
덧. 이 글을 쓰면서 과연 나는 어떤 영역의 specialist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심리 평가? supervision?, 도박중독치료? 모르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자신있게 내놓지 못하겠네요.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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