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모든 supervision은 대면으로 진행해 오던 것이 지극히 당연한 관례였습니다. 그러다 2019년 말에 팬데믹이 터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 주도하에 강력한 거리두기가 시행되었습니다. 모임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학회도 비대면 supervision을 한시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이 3년이나 지속되었고 올해가 되어서야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죠.
한국상담심리학회는 2023년이 되면서 지금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비대면 supervision을 50%까지만 인정하는 것으로 시행 세칙을 수정했습니다. 원래는 100% 대면만 가능했던 과거로 회귀하려고 했지만 회원들의 반발로 어쩔 수 없이 50%를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리고 1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으니 2024년부터는 다시 100% 대면 supervision만 가능하도록 제한할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작금의 상황과 관련하여 3년 간 비대면 supervision을 진행해 온 supervisor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모든 업무를 비대면으로 돌리면서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화상 프로그램 사용법도 새롭게 익혀야 했고 웹캠 등 장비도 구매하고 대규모의 동시 접속자를 소화하기 위해 유료 계정도 새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지만 결국은 적응했죠. 시스템에 적응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이게 과연 대면 supervision만큼 효과적일까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아니었습니다. 대면 supervision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걸 체험했거든요.
장점1. 엄청난 시간과 비용의 절약
예를 들어 제가 평일 저녁 7시~9시 타임에 2시간 동안 스터디 카페를 빌려서 8명 대상의 group supervision을 진행한다고 해 보죠. 저를 포함해 총 9명이 평일 퇴근길 북새통을 뚫고 스터디 카페로 모여야 합니다. 교통비와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정신적인 피로도, 거기에 대충 저녁을 떼우거나 supervision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거나 아예 굶어야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supervision 자료는 문서로 9부를 출력해야 할테고(개인 정보이니 나중에 모아서 파쇄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입니다) 스터디 카페 이용료는 덤입니다.
하지만 비대면 supervision으로 진행하면 다들 퇴근 후 자기 집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여유있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퇴근이 늦어져도 직장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할 수도 있고 정 안 되겠으면 주차된 자신의 차 안에서 접속할 수도 있죠. 각자 다른 공간에 있으니 저녁을 먹으면서 참여할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은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도 함께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자료는 온라인으로 공유하니 supervision이 끝난 후 외부에 유출될 위험 없이 안전하게 삭제할 수 있고 저장을 한다 해도 자신의 PC에 저장되니 쓸데없는 종이를 낭비할 필요 없고요. 당연히 하나의 장소로 모이기 위한 추가 비용(교통비, 스터디 카페 비용)도 전혀 없습니다.
장점2. 공간의 한계 타파로 교육 기회 확대
저는 현재 개인적으로 2주에 한 번꼴로 오픈 supervision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공개 사례 회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원래는 비대면 업무를 하는 김에 공개 supervision을 해 보면 어떨까 하여 시험적으로 실시한 것인데 그야말로 엄청난 호응에 힘입어 어느새 56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점은 의외로 지방에 계신 선생님들이 많이 들어오시더군요. 아무래도 supervisor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지방에 계신 선생님들은 supervision을 받고 싶어도 기회 자체가 없으니까요. 이제는 해외에서 시간을 맞춰 접속하는 선생님들까지 생겼습니다. 그만큼 비대면 supervision은 공간의 한계를 부숴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장점3. 좀 더 효율적인 supervision 가능
다른 supervisor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대면 supervision을 진행할 때 모든 자료를 PDF 파일로 변환하여 화상 프로그램 사용 시 공유창에 띄웁니다. 그리고 전자펜으로 자료에 직접 필기를 하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제 supervision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제가 보는 자료의 정확한 위치를 동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대면으로 supervision을 할 때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문서로 출력된 자료를 보기 때문에 제가 설명을 할 때 어디를 설명하는지 찾지 못해 헤매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죠. 전자 파일을 사용하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supervision 중 공부에 참고하라고 제 블로그의 해당 포스팅이나 관련 자료의 링크를 자주 띄워 보여줍니다. 대면으로 supervision을 하면 이렇게 즉각적인 대응이나 자료 제공이 불가능하거든요. 화상 supervision이 가지는 강력한 장점입니다.
그렇다면 비대면 superivsion의 단점은 없을까요?
없습니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대면 supervision의 단점을 못 찾겠더군요. 억지로 하나 찾아보자면 있기는 합니다. 대면/비대면 여부를 supervisee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비대면 supervision에 적응할 생각이 없는 supervisor들의 수익이 줄겠지요.
나는 새로운 걸 익히는게 귀찮고 그럴 생각도 없으니 그냥 기존에 하던대로 supervisee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야 하고 자신은 상석에 앉아서 에헴하며 권위를 누리고 싶은 supervisor들은 대면 supervision을 포기하기 싫을 겁니다. supervisee들이 지옥철에 시달리든, 추가 교통비를 지불하든, 저녁을 굶는 일이 생기든 그들은 알 바 아니겠지요.
한국상담심리학회가 합리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굳이 수련생을 위한다는 명분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면 supervision만 가능하도록 제약해서 잃게 되는 것과 비대면 supervision을 계속 허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비교해 보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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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 상담 수련 레지던트들을 위한 책은 비교적 많지만 정작 이들을 수련하는 감독자들을 위한 책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상담 수퍼비전을 하지 않지만 심리평가 수퍼비전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관련된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상담 수퍼비전에 관해 번역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로(그래서인지 원서가 2005년 판입니다. 이미 출판된 지 16년이나 된 책이죠) 방기연, 김만지 선생님이 번역하셨습니다.
수퍼바이저라면 당연히 supervisee에게 supervision을 하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체계적 노하우가 정리되어 있을 것을 기대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충족하는 책이 아닙니다. 일단 목차를 보시면,
1장. 사건 중심으로 수퍼비전 과정 이해하기
2장. 기술적 어려움과 기술 결함 다루기
3장. 다문화적 인식 높이기
4장. 역할 갈등 협상하기
5장. 수퍼비전에서 역전이 다루기
6장. 성적 이끌림 다루기
7장. 성에 관한 오해를 풀고 성에 대한 간과 교정하기
8장. 문제가 되는 감정, 태도, 행동 다루기
9장.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생각
다문화, 성적 이끌림, 성에 관한 오해 등 미국 문화에서 중요한 issue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상당한 분량을 손해보고 있고 실질적인 supervision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굉장히 많은 예가 실려 있는데 문제는 이 예가 우리 문화에 적절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의 예를 보면 미국 수련 레지던트들의 멘탈이 우리보다도 훨씬 더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supervisor의 아주 간단한 직면도 견뎌내지를 못하는 유리 멘탈들인지 supervisor가 supervisee 눈치를 보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거의 우쭈쭈 하는 수준입니다. 이건 뭐 수련을 받을 게 아니라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도 와 닿지 않고 생동감도 떨어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예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산만하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supervisee는 당연하고 supervisor에게도 자신있게 추천드릴 수 없는 책입니다. 읽는다고 나쁠 건 없지만 시간을 들여 굳이 읽어야 하나 싶은 정도입니다. 저라면 다시 안 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장하지 않고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어차피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제 책을 빌려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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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자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기(예; 자기 개방, 간간히 웃거나 울기)와 치료적으로 존재하기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균형은 쉽게 이해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 수련생의 초기 훈련 과정에서는 역전이가 치료작 관계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기술적 어려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 수퍼비전의 첫 과제는 역할 모호와 역할 갈등의 지표를 식별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기대를 명확하게 언급함으로 역할 모호는 효율적으로 수정되어질 수 있지만 역할 갈등은 좀 더 지속적인 주의를 필요로 한다. 역할 모호의 지표는 수련생이 수퍼비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혹은 수퍼비전에서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질문할 때 가장 분명해진다. 역할 갈등은 불신을 암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수퍼비전 관계의 긴장감은 역할 모호보다는 역할 갈등을 암시한다.
* 역할 갈등 사건의 과업 환경은 최소한 1) 감정 탐색하기와 2) 수퍼비전 동맹에 초점 맞추기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 수련생의 기대에 관한 한 연구(Friedlander & Snyder, 1983)에서 고급 수련생뿐만 아니라, 초보 수련생도 자신의 수퍼바이저가 '매력적인 지지자'라기보다는 '평가 전문가'처럼 행동하기를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자로서 자기 효능감이 강한 수련생일수록 수퍼바이저가 믿음직스럽고, 지지적인 전문가여야 한다고 기대했고, 수퍼비전이 자신과 내담자의 향상을 도모한다고 기대했다.
* 역전이의 한 종류로 주제 방해(theme interference)가 있다. 주제 방해는 상담자가 내담자와 비슷한 사람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내담자에 대한 객관성을 잃을 때 일어난다.
* 수퍼비전은 상담자의 외상 혹은, 발달 경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내적 딜레마나 발달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 관계 내 긴장의 원인에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해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첫 걸음이다.
* 자신을 구원자로 간주하고 내담자에게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수련생은 내담자가 이 구원자 환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쉽게 자신감을 잃는다.
* 덜 숙련되고 경험이 적은 수련생에게는 정보와 뚜렷한 피드백, 기술에 근거한 개입을 제공하는 과제 지향적 수퍼비전 스타일이 적절하다. 반면 숙련된 수련생은 평행 과정과 역전이에 포함된 의미를 이해하면서 평행 과정과 역전이에 다양한 관점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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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좋은 상담자보다 유능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포스팅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을 또 한번 드리려고 합니다. 위 포스팅에서 저는 내담자가 상처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상담자는 결과적으로 내담자를 도울 수 없게 되니 그에 따르기 마련인 불안과 고통을 감수하기 위해 애쓰라고 조언 드린 바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상담을 내담자와 함께 추는 춤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상담자도 있습니다. 내담자와 호흡을 맞춰가며 합을 이루어 조화로운 춤사위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걸 상담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저는 이걸 내담자가 상처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애쓰는 상담자와 샴 쌍둥이 같은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둘 다 상담의 고통을 피하려는 겁니다.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상담자는 그러한 고통에 공감해 내담자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가끔은 손을 잡아 주거나 해서 용기를 주고 내담자가 그러한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면 눈물을 멈추고 표정이 편안해지는 그런 영화 같은 장면이 상담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같은 상담을 하고 싶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진짜 상담은 춤이 아니라 권투 경기에 가까운 겁니다. 일단 링에 올랐다면 원치 않더라도 마주 선 내담자에게 스트레이트 강펀치를 날려서 얼굴을 뭉개놔야 하고 때로는 내담자가 날린 카운터 펀치에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껴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버텨내 경기를 끝까지 꾸역꾸역 끌고 가야 하는, 그런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는 치열한 전쟁터죠. 아무리 뛰어난 supervisor가 코치처럼 링 밖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도 결국 경기를 하는 건 상담자입니다.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담자에게 상처주는 걸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내담자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거나, 혹은 누군가 자기 대신 링 위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상담자는 상담을 하면 안 됩니다. 춤은 다른 곳에 가서 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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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담심리학회 수련 인증과 관련하여 안내 드립니다.
제게 심리평가 대면 supervision을 받을 때 당일 현장에서 인증을 받지 않고(수첩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온라인 입력을 하지 않았다며) 나중에 받겠다고 미루었던 선생님들이 6월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인증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연례행사처럼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미리미리 챙겨서 받으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건만 몇 년이 지난 뒤에 연락하는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얼 하셨기에 이제서야 연락을 하시나요? 저보다 더 바쁘게 사셨나요?
이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검사 자료를 기관에 놓고 나왔거나 분실하여 자료를 보내줄 수 없다며 무리하게 확인 요청을 하시는데 자료가 없으면 저는 supervisor 소견란에 무엇을 기록하나요?
제가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다이어리를 폐기했으니 supervision 받으신 날짜와 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배째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이런 식이면 supervision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기준을 정하겠습니다.
앞으로 2019년 12월 31일 자정까지 지금까지 제게 받은 모든 supervision의 인증 요청을 완료하시기 바랍니다. 올해가 지난 후에 요청하는 사례는 인증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사례 formulation이 불가능한 수준의 부족한 자료만으로는 인증이 불가합니다.
그러니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으시려면 supervision 당일에 반드시 수첩을 지참하시거나 온라인으로 요청을 하고 오셔서 인증을 완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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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심리평가를 주로 하는, 임상 베이스의 야매 상담자는 잘 빠지지 않지만 오히려 상담 훈련 과정을 정식으로 이수한 상담자에게 위험한 함정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상담 교과서와 실제 상담의 차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문제가 몇몇 상담자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의 상담자들이 한번쯤은 빠지는 함정이더라고요. 당연히 저도 여러번 빠진 경험이 있고요.
1.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온다
이 함정은 그나마 알아보기 쉬운 편인데 그래도 많은 상담자들이 아직도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 상담자를 찾아온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내담자 본인의 내면에 있는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께요.
"선생님, 저 요새 되게 우울해요.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내담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본인이 우울한 걸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가정하지만 정작 내담자가 호소하는 '우울'이 무엇인지 한꺼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울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불안을 우울로 믿고 있을 수도 있고, 우울 사고를 우울 정서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죠. 즉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상담자가 생각하는 문제와 전혀 다른 것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분명해 보이는 고통감을 호소한다고 해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왔다고 가정하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생각하는 게 안전한 접근입니다.
2. 내담자가 호소하는 것이 상담 목표로 삼아야 할 문제이다
제가 주로 했던 도박 중독 상담에서 내담자(또는 보호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단 하나입니다. 도박을 끊고 싶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도박을 끊는 게 어려워서 전문가의 도움을 찾아 온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작 상담에 들어가보면 도박을 끊는 것이 궁극적인 상담 목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도박 중독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흔히 얄롬이 한 말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경구인, '지도가 영토가 아니듯 증상은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을 항상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경험 상 지금까지 내담자가 대놓고 호소하는 문제를 경감시키는 것이 상담의 최종 목표였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한번도 없었던 것 같네요;;;). 내담자가 호소하는 것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신호일 뿐 상담자가 공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무엇을 호소하면 그 밑에 감추어진 원인과 이유를 좀 더 깊이 탐색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3.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다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실에 왔다고 믿는 것도 상담자의 기본적인 특성인데 그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고 다만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한 접근입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상담 장면에 가져오는 문제는 내담자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유지되어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거거든요. 그래서 많은 상담 supervisor가 싫어하고 그 존재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로 인한 이차 이득이 없다는 게 분명하지 않은 이상은 모든 내담자가 이차 이득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찾아보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사실 이차 이득은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온 시점에서 내담자의 처지와 맥락에서 부적절한 방식으로 충족하고자 하기 때문에 내담자가 이러한 이차 이득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게끔 상담자가 도와주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차 이득이 없다고 믿는 상담자는 증상 완화적인 접근을 택할 확률이 높고 그럼으로써 진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 -> 그래서 상담자가 정리해 줘야 한다
2.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 그 안에 감춰진 진짜 문제가 뭔지 찾아라
3.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이차 이득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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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근에 굉장히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상담 supervision을 받으러 가면 supervisor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formulation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한 두 명의 supervisor만 유독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뭔가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그렇게 많은걸까요? 숫자 자체는 적다고 해도 상담 장면이라는 특성 상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정말 많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다른 성격장애와 비교하여 자기애성 성격장애만 유독 많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유병률만 봐도 그렇죠) 무엇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 상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다른 성격장애(특히 C군)에 비해 오히려 적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제 경험만 따져봐도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왜 많은 상담 supervisor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제가 이해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 제 TCI 강의를 들으셨거나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아본 선생님들이라면 한번쯤 들으셨을 내용인데 제가 상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TCI 기질 유형이 뭐라고 말씀드렸죠?
바로 고립된-겁많은(MHL)과 강박성(LHL) 기질 유형입니다. 둘 다 위험회피 기질이 높고 사회적민감성 기질이 낮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성격장애 중에서는 가장 먼저 강박성 성격장애를 공부해야 하고, 또 반드시 공부하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상담 현장에서 정말 자주 보게 되는 성격장애 내담자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상담 supervisor들이 강박성 성격장애를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착각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B군이고 강박성 성격장애는 C군이니 많이 다른데 왜 이런 착각이 일어나는걸까요? 그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강박성 성격장애 내담자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대개 자율성, 연대감(특히 자율성)이 낮아 미성숙한(LLM), 침울한(LLL) 성격 유형으로 분류되는 분들이 특히 많기 때문입니다. LLM, LLL 유형의 특징은 내면 아이 성숙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 중심성(egocentrism)이 살아있고 이러한 자기 중심성이 대인 관계 맥락에서 노출될 경우 나르시시즘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상담 supervisor의 상당수가 TCI를 아예 모르거나 사용하는 분들이 아주 적은 것을 감안하면 강박성 성격장애를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 supervision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의심해보라는 comment를 들은 경우 반드시 TCI를 실시하여 오히려 강박성 성격장애가 아닌지를 확인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만약 강박성 성격장애가 맞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개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항상 TCI를 사용하는 임상가가 아니라면 TCI 추가 실시를 고려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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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분야에서 상담 supervision은 필수 불가결한 수련 과정입니다. 그러니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 중인 분들이라면 상담 supervision의 장, 단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후 곧바로 상담 현장에 뛰어들어 작년에 독립할 때까지 15년 동안을 일했지만 한번도 상담 supervision을 받은 적이 없는 저는 상담 supervision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이라고는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흉내만 내는 게 전부였던 제게 초기 3년 정도의 상담 일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맨땅에 헤딩했던 시행착오의 혼란기였습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상담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물론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들어가지는 않았고(그 때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상담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심리평가 supervision은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 수련을 받는 선생님들의 다양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죠.
그래서 상담 supervision에는 장, 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3년의 기간 동안 저는 나름 정말 치열하게 상담을 독학했습니다. 상담과 관련된 중요한 텍스트는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렇게 배운 걸 실제 상담에 적용하고자 항상 애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유명한 텍스트라고 해도 실제 상담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엄청 많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시대 배경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유명한 고수가 쓴 내용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상담의 근본이 없는 무자격 파이터에게는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필요했는데 실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내용이 의외로 꽤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무리 대단해보이는 심리치료나 상담 기법을 접하게 되어도 실제 내담자와 상담할 때 적용해서 유용하다는 걸 체감하기 전까지는 극도의 회의주의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반대로 기존 이론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supervision을 받을 때의 장점은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받아본 적도 없는 것의 장점을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아마도 실전 고수의 현장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게 무조건 장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어깨 너머로 엿본 상담 supervision은 뭔가 정석 틀을 알려준다기보다는 supervisor의 치료 사조, 그 supervisor의 supervisor가 누구인지, 심하게는 supervisor의 가치관과 인품이 오히려 supervision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상담 supervision을 다른 supervisor에게 여러 번 받은 케이스를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제각각 다른 supervisor의 comment(때로는 정반대의 접근인)로 supervisee 선생님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니까 심리평가 결과로는 상당히 분명하게 formulation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누구를 supervisor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제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접근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느낀 거지만 상담도 임상만큼 수련 환경과 양적, 질적 경험에 따라 내공의 차이가 크더군요.
배움의 장이 늘 그렇듯이 상담 supervision에서도(당연히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도) 항상 회의주의적인 시각에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뒤집어보고, 실제로 사례에 적용했을 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comment, 접근, 시각, 조언만 신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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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supervisor들은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지만 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시작할 때 항상 supervision point를 물어봅니다.
사례를 준비한 supervisee가 발표의 대부분을 맡는 일반적인 supervision과 달리 저는 formulation을 제가 혼자 다 하기 때문에 좋게 보자면 발표자가 아주 편하지만 사례만 준비하면 아무 것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 있게 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는 매번 새로운 사례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formulation해야 하기 때문에 supervision 시간 자체가 제게는 엄청난 도전과 공부의 장이 되지만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무언가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거라고 하지요.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매 supervision 시간이 새로운 가설을 검증하고 결과물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시험장이 되었습니다.
제 supervision이 아니더라도 심리평가이든 상담이든 대개 사례를 준비하는 선생님은 굉장한 압박을 받지만 참관만 하는 선생님들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참석할텐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항상 본인이 발표를 하듯이 각 사례를 살펴볼 때 하나라도 확실하게 가져가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게 사례 발표에 동의한 수검자에게도 보답하는 길이고요.
그러려면 항상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수검자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어려움의 원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진단이 필요한 사례일까, 나라면 어떻게 상담 방향을 잡고 들어갈까 등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가설을 세우고 물어봐야 합니다.
상담자가 심리평가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임상에 비해 사례 수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주력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동성의 영향도 있습니다.
임상이든 상담이든 지금 내 일 네 일 가릴 때가 아닙니다. 심리평가, 상담, 심리치료, 센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해야 한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평가 supervision부터라도 항상 point를 찾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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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과 공급의 법칙에 따라 상담자의 공급이 수요 폭증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담 현장은 점차 단기 상담이 기본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도 이미 체계화된 상담 현장(대학, 청소년 등)에서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죠.
단기 상담의 시간적 한계(내담자의 심리적 상태와 특성을 알아내기 위한 최소 회기 수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심리평가를 도입할 수 밖에 없고 심리평가의 실시 시기를 결정하는 상담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임상 현장처럼 무조건 초기에 실시하는 routine system의 도입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은 대학의 학생상담센터에서 내담자가 방문하면 접수 시 선별심리평가(MMPI-2, SCT)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담자를 배정하는 시스템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기계적으로 MMPI-2에서 상승한 임상 척도가 많을수록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정해 supervisor급 상담자에게 배정하고 상승한 임상 척도가 별로 없으면 문제가 경미하다고 잘못 판정해 인턴 supervisee에게 배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나 통하는 판정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상담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정신장애로 진단받을 정도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보다 기질/성격 상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가 더 많이 방문하고 자아 동질성이 강한 성격 장애일수록 MMPI-2와 같은 구조화된 검사에서 심리적 불편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MMPI-2의 임상 척도만 높게 상승한 경우는 심리적 불편감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예후도 좋은 편입니다. 결코 지도 교수급 상담자의 능력이 뛰어나서 쉽게 호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MMPI-2에서 별다른 척도 상승이 없는데 상담자가 강렬한 전이-역전이를 경험하거나 투사, 반동형성, 조종 등의 방어 기제에 노출됨으로써 정서적 소진을 경험하고 상담이 조기 종결되는 건 이 내담자가 기질/성격 상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큰 것이지 인턴 선생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선별심리평가를 routine하게 실시하는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겠으면 최소한 선별심리평가에 TCI라도 추가하기 바랍니다. 적어도 상담자 배정이 반대로 되는 것만이라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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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
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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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 Allstetter Neufeldt의 '상담/심리치료 실습과 수련감독 전략(3rd, 2007)'을 북 크로싱합니다.
수련 감독을 책임지는 supervisor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입니다만 너무 딱딱한데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수련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기 어려운 책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략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에 어떤 내용을 수련받는지 참고하기 위해서 훑어보는 정도로 보시는게 좋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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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Susan Allstetter Neufeldt가 썼는데 (제게는) 저자의 약력을 꼼꼼히 훑어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골랐기 때문에 망한 대표적인 책이 되겠습니다. 저자 소개를 보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15년 간 개인상담소에서 근무하다가 대학원생 훈련과 지역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Hosford Clinic을 담당하게 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2004년에 그만두었고 지금은 미국 적십자사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 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Hosford Clinic을 그만둔 지 3년이 지난 후 나온 책입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Hosford Clinic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는 건데 그마저도 그만둔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놓은 책이라는 말이죠. 뭔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해 쌓인 노하우를 가장 열정적인 시기에 풀어놓은 느낌이 아닌데 실제로 읽어보면 책 내용이 그렇습니다.
이 책은 현장에서 상담, 심리치료를 지도하는 supervisor를 대상으로 쓰인 지침서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supervisor는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인턴, 레지던트들을 지도할 수 있기를 기대할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흡사 syllabus 같은 느낌의 책이고 좋게 평가하면 'what'에 대해서만 충실하게 다룬 책입니다.
상담/심리치료 supervision을 할 때 어떤 내용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꼼꼼하게 일별하고 있지만 'how'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는 바가 없습니다. 물론 친절하게도 각 절마다 실제 수련 레지던트와 수퍼바이저의 상호작용 예시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수련 현장의 문화와 맞지도 않고 우리나라에는 드문 다문화 개입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 supervisor인 제 입장에서는 상담/심리치료 supervision 때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구나에 대한 감은 잡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상당히 답답한 독서였습니다.
게다가 기승전결 없이 똑같은 구조의 나열이어서 흡사 DSM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지루하기까지 하더군요.
목차를 한번 보여드릴께요.
제 1부. 서론 및 윤리적 체제
제 1장. 수련감독과 상담자 발달
제 2장. 윤리적 수련감독과 초심 상담자 평가
제 2부. 수련감독 전략 및 사례개념화
제 3장. 초급 수련감독 전략
제 4장. 고급 수련감독 전략 및 사례개념화
제 3부. 실습과정 및 수련감독 모듈
제 5장. 실습 1학기: 탐색을 통한 실습생의 상담관계 구축
제 6장. 실습 2학기: 학생들의 사례개념화 기술개발
보시는 것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게다가 너무 번역투 문장 투성이라서 매끄럽게 읽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끝으로 supervision 관련 번역서(미리 구매해 놓은 것 제외)는 더 이상 구해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책은 현장에서 일하시는 supervisor들께도 별로 추천하기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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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심리치료자들은 왕성한 학습 의욕, 반성과 자각, 복잡성과 모호성에 대한 편안함, 개방성과 비방어성, 정서적 성숙, 탁월한 대인관계 기술, 그리고 자신의 정서건강이 자신의 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의식을 가지고 자기 돌봄(Self-care)을 실천한다는 특징이 있다.
* 초급 수련감독 전략
1. 교사 기능
- 전략 1. 관찰된 상담회기의 상호작용을 평가한다.
- 전략 2. 상담자에게 내담자에 관한 가설을 제공하도록 한다.
- 전략 3. 적절한 개입방법을 확인한다.
- 전략 4. 개입기법을 가르치거나, 시범을 보이거나, 모델 역할을 한다.
- 전략 5. 구체적인 전략과 개입방법 이면의 근거를 설명한다.
- 전략 6. 상담회기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해석한다.
2. 상담자 기능
- 전략 7. 상담회기 동안 실습생의 감정을 탐색한다.
- 전략 8. 수련감독 회기 동안 실습생의 감정을 탐색한다.
- 전략 9. 구체적인 기법이나 개입방법에 관한 실습생의 감정을 탐색한다.
- 전략 10. 상담회기에서의 자신감 및 불안에 대한 실습생의 자기탐색을 격려한다.
- 전략 11. 실습생이 개인 역량과 성장을 위한 영역을 설정하는 것을 돕는다.
- 전략 12. 실습생에게서 자신의 정동과 방어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3. 자문자 기능
- 전략 13. 실습생용 대안적 개입방법이나 사례개념화를 제공한다.
- 전략 14. 실습생이 전략과 개입방법에 대해 브레인스토밍하도록 격려한다.
- 전략 15. 실습생이 내담자의 문제와 동기에 대해 논의하도록 격려한다.
- 전략 16. 수련감독 회기 중 실습생의 욕구 충족을 추구하고 시도한다.
- 전략 17. 실습생이 수련감독 회기를 구조화하게 한다.
* 고급 수련감독 전략
- 전략 18. 변화이론에 대한 실습생의 탐색을 격려한다.
- 전략 19. 실습생의 사례개념화를 돕는다.
a.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대인 패턴을 탐색한다.
b. 내담자의 문제에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탐색한다.
c. 내담자의 강점과 자원을 평가한다.
d. 가설을 설정한다.
e. 목표를 설정하고, 접근법을 선택하며, 계약을 체결한다.
- 전략 20. 내담자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실습생의 감정을 탐색한다.
- 전략 21. 실습생이 내담자와 치료자의 행동에서 단서를 확인하고 사용하도록 격려한다.
- 전략 22. 한 회기 내에서 실습생의 의도를 탐색한다.
- 전략 23. 발달상의 도전거리를 제시한다.
- 전략 24. 실습생, 내담자의 경계 문제를 탐색한다.
- 전략 25. 내담자를 다루기 위한 적절한 전략을 모델링할 수 있도록 평행과정을 사용한다.
- 전략 26. 실습생의 아이디어와 행동을 긍정적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그 위에 구축한다.
- 전략 27. 내담자의 경험에 의해 발생한 실습생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처리하도록 돕는다.
* 감정 단어(feeling word)를 사용하면, 감정에 대한 상담자의 가설이 틀리더라도 내담자가 수정해 주기 때문에 정확한 감정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반영은 감정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사건에 대해서만 너무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내담자에게 사용하면 되며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내담자에게 알리고 싶을 때에도 사용한다.
* 사례 개념화 모형의 개요
I. 내담자 이야기
A. 주요 호소문제
B. 내담자의 대인관계 세계(시간제한 역동치료의 순환적 부적응 패턴을 수정한 범주들)
1. 내담자가 자신의 세계 속의 사람들을 지각, 경험, 활동하는 방식
2. 다른 사람의 반응 방식에 대한 내담자의 기대
3. 내담자에 대한 다른 사람의 행위 혹은 행위에 대한 지각방식
4. 내담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대우방식
C. 회기 중, 치료자가 내담자를 경험하는 방식(감정, 직감)
II. 인구통계학적 변인: 연령, 성별, 직업, 학력, 인종, 민족, 기타 주거 형태, 의뢰 자원
III. 문제와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사회적, 역사적 영향
A. 현안과 관련된 가족사
B. 사회적 요인들
1. 내담자 가치관 및 혈통
2. 문화적 요인
3. 교육 배경
4. 자기 및 가족의 경제 상태
5. 문제발생 맥락
IV. 내담자의 자원: 개인/사회적 강점, 통상적인 대처기술, 익숙하지 않은 생활기술
V. 내담자 문제의 성격에 대한 치료자의 가설
VI. 초기 접촉
A. 동의된 치료목표
B. 치료적 접근
C. 정해지거나 정해지지 않은 상담기간, 구체적인 진행 속도, 상담료에 대한 동의
D. 치료자 책임
E. 내담자 책임
VII. 위기관리
A. 위기의 성격
B. 위기 언급 계획
VIII. 예견되는 어려움
A. 내담자의 통상적 유형 때문에 발생하는 내적 어려움
B. 장면의 한계(클리닉 일정, 내담자 근무 일정)때문에 발생하는 외적 어려움
C. 예측 가능한 어려움에 대한 계획적 반응
* 내담자는 자신을 안심시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이해받고 싶어 한다.
* 재진술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점검하는 방법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명료화 기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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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2/A의 결과 profile에는 결정적 문항(Critical Items)이라는 영역이 있습니다.
MMPI-2의 결정적 문항은 Koss-Butcher의 6개 영역과 Lachar-Wrobel의 11개 영역을 합한 17개 영역(MMPI-A의 경우 15개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결정적 문항은 정신과 환자를 대상으로 이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과 문제들을 list up한 뒤 그 리스트에 따라 MMPI에서 관련성이 높아 보이는 문항들을 임상가들이 골라내고 의견 일치가 많이 된 문항을 환자 집단과 통제 집단에 적용하여 비교한 뒤 이 두 집단을 잘 구분하면 확정하는 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결정적 문항의 장점은 안면 타당도가 높다는 것인데 임상가들이 현장에서 많이 접하는 증상을 중심으로 문항을 골라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죠. 다만 이는 미국 문화에 한합니다. 문화적 배경에 따른 해석 가능성의 차이가 큰 편이죠.
최근에 supervisor급 상담 전문가들이 수련을 받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결정적 문항을 꼼꼼히 챙겨보라고 강조하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결정적 문항을 특별히 챙겨 볼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별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아서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크다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정적 문항은 17개 영역에 달합니다. 수검자가 그렇다고 응답한 해당 문항이 하나만 있어도 결정적 문항 영역에 표시됩니다. 오히려 결정적 문항으로 잡히지 않는 영역이 적을 정도로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에 결정적 문항의 내용을 갖고 추가적인 면담을 진행하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2. 정신병리학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잘못된 해석을 할 위험성이 너무 크다
: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그래도 민감도가 높은 문항들이니 활용하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정적 문항은 현장 임상가들이 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정신 질환의 증상을 토대로 골라낸 것들이라서 정신병리학(내지는 정신장애진단편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다면 잘못된 해석을 할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3.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에 점점 더 결정적 문항에 의존하게 된다
: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결정적 문항에만 의지해 구조화된 면담을 진행하게 되면 결정적 문항에 포함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놓치게 됩니다. 즉 시야가 좁아져서 수검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틀이 고정되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더 결정적 문항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상담을 전공한 선생님들은 MMPI-2/A의 각종 척도와 수치 등을 조합해서 해석하는 것보다는 결정적 문항의 내용을 토대로 추가적인 탐색과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익숙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정적 문항이 유용해보일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얻는 이득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소위 가성비가 좋지 않죠.
실제로
결정적 문항의 제작자들은 단일 문항 반응의 제한된 신뢰도와 타당도 때문에 문항 수준에서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으며 검사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거나 follow-up을 위한 가설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라고 권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2005년에 MMPI-2가 표준화되어 출시했을 때 초기에 몇 번 사용해 본 이후로는 아예 안 봅니다. 결과지 출력할 때도 결정적 문항을 빼고 출력할 정도에요. 그래도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결정적 문항을 사용하면서도 '이거 너무 시간 낭비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선생님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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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상담심리학회의 자격증인 상담심리사 자격 인정 기간입니다. 수련 수첩을 제출해서 그동안 수련받은 내용을 점검받는 기간이죠.
제대로 된 수련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그 자격의 전문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의 인기 과열과 맞물려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수가 급증하면서 심사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 것도, 그래서 학회의 고충이 커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련 인정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정을 안 해 주거나 '트집'을 잡아 그렇지 않아도 수련 받느라 힘든 선생님들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올해는 그런 '트집'들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로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고자 제보를 받겠습니다.
제보할 내용은 간단합니다.
본인이 수련 인정과 관련해서 직접 경험한 내용 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주관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면 됩니다.
이 포스팅에 댓글(비밀 댓글도 괜찮습니다)로 남겨 주시거나 walden3@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여러 supervisor에게 받지 않고 한 명에게 몰아서 받았다고 문제삼음
: 대체 이게 왜 시비거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이 바닥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심리평가 supervisor를 일일이 찾아서 제각기 다른 supervision fee를 내고 자기랑 맞지 않거나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든 말든 supervisor의 수만 늘려서 수첩을 채우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건 supervisee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월권 행위입니다. 그런 강요를 할거면 supervision fee를 학회에서 지원이라도 해 주면서 오지랖을 떨든지....
* supervisor의 사인이 아닌 도장이 찍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배짱
: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바로 전의 수첩에는 '서명'으로 인쇄되어 있지만 구 버전의 수련 수첩에는 엄연히 '인'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하였을 때 임상심리학회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 전문가 자격 번호까지 각인된, 비교적 quality가 괜찮은 전문가용 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전에 제대로 공지하지도 않고 갑자기 서명이 아닌 도장은 인정할 수 없다니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무엇보다 왜 도장을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가 없습니다.
-> 상담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재차 문의한 결과 전문가용 도장은 일단 인정하는 걸로 일단락 되었으나 차후에 도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검증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저보고 도장을 갖고 학회로 출석하라고 소환장이라도 발부하려나 봅니다.
* supervisor의 자격 번호가 앞 번호가 아닌 경우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박사 학위가 없는 경우 1급 자격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최근에 제보 받은 내용인데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지만 직접 경험한 내용은 아니라고 해서 일단 잠정 포스팅합니다. 이와 관련해 불이익을 직접 당한 선생님께서는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용 확정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신 것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딴지'를 위한 '딴지 걸기' 행태를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황당 사례들은 정리해서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덧. 이번에 자격 취득을 목표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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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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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vision을 하면 할수록 좀 더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있습니다.
Carol Falender와 Edward Shafranske가 함께 쓴 이 책은 임상 현장의 supervision을 받으려는 인턴들을 위한 가이드 북입니다.
이전에 소개한
'Guidebook for Clinical Psychology Interns(1995)'가 너무 오래된 구닥다리 책이라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이 책은 2012년에 나와서 그래도 따끈따끈한 편입니다.
10개의 chapter들이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제시되고 있는데
I. Becoming a Competent Supervisee
1장. Beginning Clinical Practice Under Supervision
2장. Entering Competency-Based Supervision
3장. Expectations and the Path to Good Supervision
II. Developing Clinical Competence Through Supervision
4장. Developing Competence to Practice in a Diverse World
5장. Developing the Therapeutic Alliance and Managing Strain and Ruptures
6장. The Use of the Self in Psychotherapy
7장. Case Conceptualization: The Practice of Clinical Understanding
8장. Practicing Ethically
III. Advancing Reflective Practice in Supervision
9장. Transforming Supervision to Be More Successful
10장. Becoming a Reflective Clinician
목차만 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이드 북이라고는 해도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실질적인 tip이나 기술적인 부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인 조언을 원하는 분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supervisor의 입장에서 알아둬야 할 내용이 많지 않아서 다소 실망한 독서였습니다. 책 내용 상 그럴 수 밖에 없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대상은 임상, 상담 대학원생이지만 수련 환경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면 과연 바쁜 시간을 쪼개 이 책까지 읽는 게 수련을 받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이니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굳이 구입하지 마시고 북 크로싱 포스팅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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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학회에서 전격적으로 온라인 수련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최근에 수련을 시작했거나 그동안 사용하던 오프라인 수첩을 온라인으로 갱신하려고 하는 분들은 온라인에서 상담과 심리평가 수련 과정 일체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수련 기관과 수련 감독자가 자주 바뀌고 수련 인정을 위해 수련 수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수련 특성 상 만에 하나라도 수련 수첩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입증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기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수련 수첩 도입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이고 임상심리학회에서도 벤치마킹해야 하는, 수련 레지던트를 위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관리하는 것에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아서 최근에 심리평가 supervision한 내역이 상담 supervisor에게 발송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다시 심리평가 supervisor에게 전달되었는데요. 수련 레지던트나 학회 차원의 실수가 아니고 시스템 오류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업 초기라서 시스템이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따라서 당분간은 상담심리학회에서 권고하는 아래의 사항을 꼼꼼히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1. 상담, 심리평가 supervision 내역이 각 supervisor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 및 supervision 단계 체크
2. 수련 근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수련 내역을 인쇄하여 보관
인쇄하여 보관해야 한다는 건 온라인 수련 시스템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이기는 하나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상담심리학회의 온라인 수련 시스템을 이용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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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그동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느낀 것인데요. 하나는 전공, 출신 학교, 수련 과정의 차이 없이 대부분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겁니다. 돌려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supervisee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아마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똑같았겠지요)
formulation도 잘 되었고 작성한 심리평가보고서도 훌륭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하거나 감탄을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운이 좋은거지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멀었는데요 뭐"라는 반응이 나와서 맥이 풀립니다.
하도 답답해서 2010년에는 관련 포스팅('supervisee를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착각하는 supervisor')을 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supervisee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를 저는 수련 과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처벌 위주의 도제 중심이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명감과 겸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임상가가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자기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supervisor가 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자신이 supervisor가 되면 그저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첫 번째 문제와도 연결될텐데 많은 supervisee 선생님들이 자신이 제대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는지, 채점은 틀리지 않았는지, 터무니 없는 진단 가설을 세운 건 아닌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쓴 건지 등등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저도 흔히 하는 실수라서 지적하면 제가 놀랄 정도로 미안해 하거나 심하게 주눅이 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굉장히 불리합니다. 그 불리함은 심리평가를 진행할 때 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자신감이 없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고 불안 수준이 높으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라포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상담 회기를 늘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북돋고,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불안을 애써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임상가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내담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불안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절대로 훌륭한 임상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진주라도 시궁창 깊숙이 쳐박아 놓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자신감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가 과연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 수준은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기 전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하세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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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아마존
Applied Clinical Psychology 시리즈에서 나온 책으로 내용은 책 제목 그대로 임상 심리 인턴을 위한 지침들을 모아놓은 겁니다.
대표 저자인 Zammit와 Hull을 포함해 8명의 저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이고 주된 내용은 선발 과정, 인턴십 과정의 세팅, 관련 전문가에 대한 소개 및 관계 맺기, 수련 과정 적응하기, 실습하기, DSM-IV를 이용해 진단하기, 심리평가하기, 심리치료하기, 차트 기록하고 심리평가보고서 작성하기, 정신약물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 등입니다.
저야 수련을 다시 받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련을 앞두고 있거나 현재 수련 중인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까 하여 읽기 시작했으나 다 읽고 나서 1995년 발간된 책이란 건 알게 되었습니다(역시나 별 내용이 없더라니;;;). 20년이나 된 오래된 지식이라 별로 건질 건 없었습니다. 너무 구태의연한 내용들 뿐이에요.
게다가 그 당시 기준으로도 심리학과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 과정 입문 지침서 정도의 책이라서 우리나라 대학원생 수준에서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오히려 놀라운 건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아마존에서 135불이라는 가히 엽기적인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는 점!!
그래도 다음과 같은 (당연한) 수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하나의 수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APPIC 인턴십 프로그램의 요구 조건
1. 최소한 두 명 이상의 supervisor가 supervision을 제공해야 함.
2. 인턴 수련 과정 중 최소한 25% 이상의 시간이 직접 환자를 만나는 데 사용되어야 함.
3. 일주일에 각각 최소 2시간 이상의 면 대면 supervision과 seminar/case conference가 제공되어야 함.
4. 인턴십 프로그램은 최소 1,500시간, 24개월 연속으로 진행되어야 함.
5. 인턴에게는 급료가 제공되어야 함(무급 인턴 불허).
일부 조건만 가져왔지만 우리나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는 저 조건이라도 모두 충족하는 수련 기관이 거의 없을 겁니다. 두 명 이상의 supervisor로부터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기관 자체가 전무하니까요. 첫 번째 조건만 적용해도 우리나라 수련 기관의 99% 이상이 탈락할겁니다. 게다가 20년 전에도 미국에서는 불허했던 무급 수련생 제도를 떡하니 악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지침서 자체가 아예 없죠. 임상심리학의 역사가 반 백년이 넘는데도 말이죠.
마음만 답답해진 독서였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혹시라도 책 내용을 궁금해 하실 분이 계실까 싶어 북 크로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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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하면서 예전에 제가 올린 학술대회 참석 후기글들을 좀 읽어봤는데 하나같이 전문가 연수 평점이 미달되거나 부족해서 경고를 받은 뒤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는 내용이네요;;;;; 저도 참 어지간히 학회 참석을 싫어하는 듯. ㅡㅡ;;;;
역시나 작년에도 전문가 연수 평점 부족으로 경고를 받은지라 올해는 supervisor 자격 유지를 위해서라도 연수 평점을 채워야했는데 임상심리학회 봄 학회를 놓친데다 가을 학회까지 놓치면 정말로 답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차학술대회 장소는 홍제동에 있는 그랜드 힐튼 호텔이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강남에서 한다고 교통 편이성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셔틀 버스가 9시 55분 부터인가 운행을 시작해서 오전 10시 워크샵을 들어야 하는 저로서는 홍제역에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첫날 시작부터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을 수 있었지만.
심리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비 할인 서비스도 좋지만 10시에 시작하는 워크샵이 그렇게 많은데 셔틀 버스를 일찍 운행하도록 호텔측과 미리 협의했으면 더 좋았겠지요. 좀 아쉽네요. 택시 타고 오면서 보니 다들 홍제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올라오시는 것 같더군요. 오전이라도 날씨가 더운데... ㅠ.ㅠ
그랜드 힐튼 호텔은 오래된 호텔이라 시설이 첨단은 아니지만 오래된 호텔만이 가지는 중후함과 품격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래된 호텔을 좋아라합니다(깨끗하기만 하다면). 특히 워크샵들이 열리는 conference room들이 대부분 천정이 높아서 답답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냉방 시설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덥지도 춥지도 않게 잘 조절되더라고요.
별도로 지어진 conference center 뿐 아니라 호텔에서도 분산되어 열리기 때문에 장소를 찾느라 이동 중에 staff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는데 하나같이 친절하게 답해주었을 뿐 아니라 장소, 화장실 위치까지 잘 숙지하고 있더군요. 꼼꼼한 운영 좋았습니다.
도착해서 등록을 하려고 가니 등록 데스크가 넓고 가나다 순으로 이름이 정리되어 있어 이름을 이야기하면 한쪽에서는 명찰과 자료를 챙겨주고, 다른 staff이 단말기로 제 이름을 검색해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효율적으로 잘 분업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예전처럼 무거운 자료집을 주지 않는 건 좋지만 뜬금없이 칫솔, 치약, 가글액, 빠리바게뜨 단팥빵 1개를 함께 주네요(이건 뭥미). 아마도 어디에서 donation을 받은 것 같은데 심리학회 기념품이라고 보기에는 좀 뜬금없네요. 설명문이라도 좀 붙여놓든지... 저는 칫솔 하나 빼고는 다 필요 없어서 그냥 등록 데스크에 반납했습니다.
남자 화장실이 부족한 건 여성 수가 압도적인 심리학회의 특성 상 불편하더라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점심 식사였죠. 3일치 식권을 미리 나눠주는데 어제는 비빔밥이어서 제가 먹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갈비탕이라서 저는 식권만 내고 한 숟가락도 못 먹었습니다. 결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내고 파스타를 사 먹을 수 밖에 없었죠. 내일도 불고기 정식이라니 미리 준비를 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채식인을 위한 별도 메뉴까지 고민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샐러드 바 정도라도 준비를 해 주었으면 좋았겠습니다. 휴~
21일에 첫 번째 참석한 워크샵은 측정 평가 분야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레시피(Cole et al., 2008)로 배우는 조절된 매개효과 검증방법'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대부분 대학원생이나 관련 분야 교수인 듯), 경희대 경영학과의 정선호 선생님이 강의하셨고요. 원래 매개, 조절 효과 검증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다 조절된 매개 효과 검증에 대한 방법론 강의는 꼭 듣고 싶었기 때문에 기대를 했죠. 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수학적인 수식보다는 개념적인 설명에 치중된 강의라서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만큼은 아니지만 정선호 선생님이 말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도 2시간의 강의 시간 중 1시간 30분을 개념 설명에 사용하셔서 SPSS 실습은 시간에 좀 쫓기는 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spd 파일을 설치할 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SPSS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겨 어차피 결과물은 못 봤지만요. 마지막 부분에 질문에도 나왔지만 매개, 조절 효과를 검증하는 많은 연구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단계를 밟지 않는 것 같더군요. 여전히 제 블로그의 referer log를 보면 매개, 조절 효과에 대한 검색어로 들어오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말이죠. 구조 방정식 모형을 이용해 잠재 변인을 포함하는 모형 검증을 하지 않고 측정 변인만을 대상으로 매개, 조절, 조절된 매개 효과를 검증하려면 제대로 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내용은 중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두 번째 워크샵으로는 점심 식사 후 1시 20분부터 시작된 일반 분야의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적 개입 : 애착관계의 조망,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들었습니다. Complex PTSD, 특히 애착 외상의 DBT 치료가 메인인데 1부에서는 애착 외상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compact하게 잘 정리하셨는데 아쉬운 점은 강연하신 선생님의 목소리의 tone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약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들렸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얼핏 든 생각은 발달 심리학 전공자인가? 였습니다;;; 어쨌든 내용이 충실해서 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2부였죠. 마인드플니스 심리상담연구소의 김도연 선생님이 나오셔서 DBT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1부의 Complext PTSD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그냥 DBT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셔서 나중에는 흥미와 학습 동기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DBT 안에 포함된 기술들을 직접 체험한 시연은 좋았지만요. 그래서 DBT를 국내 Complex PTSD에 적용했을 때 외국의 경우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물 건너 갔습니다.
심리치료 워크샵을 들을 때마다 불만스러웠던 점은 그냥 개념적인 내용만 다루거나 시연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내담자에게 적용했을 때 외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어떤 기법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인지, 유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처럼 정작 궁금한 내용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거지요. 적용 사례가 그만큼 없거나, 아님 노하우 유출을 염려해 감추는 것일텐데 어느 쪽이든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김도연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module 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장점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시던데 저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기법은 외과의사가 수술 중에 사용하는 칼과 같아서 다양한 칼은 다양한 환부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각각의 칼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외과 의사가 사용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낼 수도 있는거니까요. 게다가 이것저것 고르다가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기법이 많은 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simplicity is the best니까요.
오후의 마지막 순서로는 3시 30분부터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심포지엄에 들어갔습니다. 서울대 임정묵 선생님이 첫 연자셨는데 그래도 명색이 서울대인데 연구 단계에서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씀을 하셔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설 설정은 과학적 접근법의 기본 중 기본인데 그걸 안 한다면 대체 어떻게 연구를 해 온 것인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학부 때부터 실험 심리학과 실험 디자인을 스터디하면서 배웠던 기초적인 내용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솔직히 좀 멘붕이었습니다.
중간에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듣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던 분이 있는데 연구 윤리를 떠나서 저는 그런 연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 대상이 대학생 모집단이 아니라면 말이죠. 연구의 질이 문제가 되는 연구를 돈이 없어서, sample을 구하기 어렵다면서 IRB의 피험자 윤리 규정이 엄격하다고 징징대면 안 됩니다. 그걸 왜 IRB에 호소합니까? 연구자로서의 자기 양심에 물어봐야죠. 두 번째 연자인 조선대 생물교육과의 조은희 선생님은 논문 출간 이후의 후속 조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논문 출판 게재 철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들었습니다. 요새는 직접 인용(출처를 제대로 밝힌)의 경우도 상당히 엄격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즉, 다른 연구의 내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출판물에서 직접 인용하면 출처를 밝혀도 문제가 되는거지요. 자기가 쓴 선행 연구의 직접 인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최대한 보수적으로(직접 인용은 절대 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위 논문을 revision해서 학술지에 내는 것도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석사 때는 학위 받고 난 뒤 지도 교수 피해서 요리조리 숨던 사람들이 박사 학위 받고 난 뒤에는 어떻게든 여러 개의 논문으로 쪼개서 저널에 내려고 혈안이 되는 걸 보면(업적 점수를 채워야 하니) 참 추해 보여요.
덧. 현장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사진을 첨부하려고 보니 초상권을 보호하려면 손을 대야 하는 사람 얼굴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텍스트 위주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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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으면 좀 복잡해 보이지만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임상,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는 지인으로부터 상담을 해 달라거나 심리평가를 해 달라는 의뢰를 드물지 않게 받습니다. 당연히 본인이 해서는 안 되죠(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후배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해 주는 것도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는 심리검사에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고, 선배는 수련 과정의 심리검사 requirement를 충족할 수 있어 win-win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이중 관계입니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평가받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supervisor나 선배에게 지인을 심리평가, 상담해 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의뢰를 받은 임상가가 그냥 진행하면 될 것 같지만 이 역시 다중 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supervisor-supervisee 관계에 임상가-의뢰인의 관계가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supervisee 선생님이 지인을 평가, 상담 의뢰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다중 관계를 피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됩니다.
1.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말고 의뢰하려는 지인이 직접 contact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이메일 주소, 소속 기관의 유선 번호 등)만 제공합니다.
2. 이 때 연결하고자 하는 임상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지인에게 제공하면 안 됩니다. 연락을 받은 임상가가 무심결에 누구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인지 client에게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의뢰된 것인지를 아는 순간 실질적인 이중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좀 더 엄중하게 하려면 의뢰받은 임상가가 자신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가르쳐 주지 말라고 지인에게 당부를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3.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 대한 연락처 정보를 지인에게 알려주는 순간 이후 과정과 내용에 대한 모든 호기심을 내려놔야 합니다. 심리평가 결과나 상담 내용에 대한 feedback을 지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 지인의 심리평가나 심리치료/상담을 아는 임상가에게 맡길 때,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중 관계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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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핵심 요소와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심리평가보고서를 잘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작성의 금과옥조라고 할 수 있는 작성 기준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생각만큼 쉬워지지 않고 매번 새로운 작품을 고민하는 소설가의 산고와 같은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열심히만 쓰면 언젠가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잘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팁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보통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많은 평가자들이 심리검사의 결과 자료에서부터 시작을 하게 됩니다. MMPI-2/A라면 결과 프로파일을 보고 code type을 뽑아내고 해석집을 뒤져서 그 code type에 맞는 해설을 베껴서 보고서의 성격 및 정서 영역에 옮겨 적습니다. HTP의 예를 하나 더 들면 집 그림의 특징적인 부분을 뽑아낸 뒤 역시 해석집이나 사례집을 뒤져서 해당되는 해석을 모두 기록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심리검사 결과의 해석을 정리해 놓은 뒤 수검자와 맞지 않는 부분을 빼는 식으로 문장을 다듬으면서 완성하려고 합니다.
저도 수련을 받던 초기에 주로 이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매우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이런 식으로만 보고서를 작성하면 실력이 거의 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하면 천편일률적인 보고서를 쓰게 되는 고질적인 습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검자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제대로 그리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 결과 해석만을 덕지덕지 붙여놨기 때문에 무엇이 수검자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뭘 빼야 좋을 지 선택하기 어렵고 수검자를 묘사하는데 불필요한 정보를 놓쳐서 남기게 되거나 반대로 수검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최종본을 보게 되면 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인지 구분할 길이 없게 된 보고서가 많습니다.
빼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쓰려면 수검자의 심리적 모습이 머릿속에 확실한 그림으로 그려져야만 가능한데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면 굳이 빼는 방식을 쓸 일 자체가 없으니 결론적으로 정보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쓰는 작성법은 어떤 식으로든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느냐 하면,...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넣는 방식으로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MMPI-2에서 D척도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RC2 재구성 임상척도도 상승하는지, 임상 소척도 중 어떤 것이 뜨는지, DEP 내용척도도 유의미한 수준인지, 내용 소척도는 무엇이 유의미한지 등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수검자가 우울하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sign이 어떤 검사에서 확인되는지 뒤져봅니다. HTP를 살펴보고, 문장완성검사에서 우울하다는 주관적인 보고가 있는지, cognitive triad가 발견되는지, 로샤에서는 이를 입증하는 검사 sign이 뭐가 있는지 등등을 찾아보는 것이죠. 이렇게 교차 검증을 통과한 경우에만 비로소 수검자가 우울하다고 쓰는 겁니다(초심자는 괄호 안에 우울을 지지하는 검사 sign을 나열하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면
일단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고 보고서의 일정 분량을 채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넣어진 내용은 교차 검증을 통과했기 때문에 수검자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내용들이고 그런 기술들을 반복해서 읽게 되면 수검자를 case formulation하는데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 좀 더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빼는 방식이 아닌 넣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쓰는 연습은 하면 할수록 시간이 단축되고 각 검사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로 익숙하게 됩니다. 경험많은 supervisor들이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듯이 심리검사의 원자료만 뒤적거리면서도 그 자리에서 수검자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내는 이유는 반복 연습에 의해 이런 과정이 이미 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결과를 해석한 내용을 나열하고 수검자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빼는 방식 말고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교차 검증을 통해 수검자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내용만을 집어 넣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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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전공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죠. 사회 심리학 전공자는 사회의 심리 현상에 끌리는 것이고, 범죄 심리학 전공자는 범죄자의 심리에 끌리는 것이죠. 조직 심리학 전공자는 조직 내의 심리 현상에 끌려야 맞겠지만 저는 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갔기 때문에 저같은 예외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무작정 일반화는 금물). ^^;;;
또한 임상 심리 전공자들에게 회자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자신의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강박 장애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이거나 평소 강박적이기 때문이고, 사회적 지지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사회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등등. 이 역시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선,후배, 동기의 논문 주제와 그들의 특성을 맞춰 봤을 때 의외로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제가 앞에서 심리학계, 임상심리학계에서 회자되는 농담을 왜 구구절절히 이야기했냐 하면 그만큼 임상, 상담 분야에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처럼 임상, 상담 심리학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때문에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도 많거든요. 전문가가 되었다고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임상가가 되었을 경우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가 없고 그로 인해 치유가 답보 상태에 이르거나 도리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환자/내담자는 건강한 임상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산술적 기회라도 있으니 환자/내담자를 신체적/정신적으로 가해하는 예외 경우가 아니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두 번째 경우인데요. 바로 그런 임상가가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임상 현장에서 supervisor로 일하는 겁니다. 수련 과정이 철저한 도제 관계 시스템을 따르는 임상, 상담 심리학의 경우 그런 병리적인 임상가를 만나는 경우 전문가가 되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추는 건 둘째치고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입어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꺾이게 됩니다.
제 경험만해도 충분히 우수하고 재능있는 임상가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훨훨 날지 못하는 걸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봤고 지금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는 임상,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많으니 좋은 학교, 좋은 시험 성적, 좋은 스펙 등만 따지지 병리적인 사람을 걸러내는 건 별로 관심도 없고 설사 사전에 알고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할 임상가들의 마음이 병들게 되고, 일단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갇혀 치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서 자신만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지도 교수나 supervisor에게 인신공격을 당했거나, 폭언을 들었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어서 우울하고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자신이 가는 길이 후회되는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당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선,후배, 동료 세 사람에게 그 지도교수내지는 supervisor에 대한 의견을 물으세요. 세 명 모두 한 입으로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당했던, 혹은 당하고 있는 것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임상, 상담 현장에는 존경스러운 선배들도 물론 계시지만 실력과 인격 모두 형편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임상가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이 길러질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세요. 그건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합니다.
수련 때는 어떻게 해도 시간이 가니 힘들더라도 중도에 그만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버텨서 전문가가 되라는 말을 들었던 저도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짜배기 전문가와 허당을 구분하는 눈은 확실히 생기니 염려하지 마시고요.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나와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할 때까지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말고 흘려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꼭 명심하세요.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덧. 내 지도교수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내 supervisor는 존경할 만한 임상가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거냐고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로또를 맞았기 때문이고 그 행운은 축하합니다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이 바닥에 병적인 임상가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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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상담 불문하고 최소한 supervisor라면 이 정도의 역할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정확한 지식 전달
임상가들이 수련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지식과 정보를 그동안 학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면 이미 현장 supervisor들의 애로사항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만 제가 10년 이상 학회를 지켜본 결과 난망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각개격파, 구명도생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수련 현장에 따른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인데 그나마 많은 환자가 몰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과 접점이 많아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밖에 없는 종합병원급 기관은 일이 많아서 힘들어 죽을지언정 실력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or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니까요(물론 그런 기관에서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만 죽이고 앉아 있는 무능한 supervisor도 있습니다만 그건 개인적인 문제이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고요). 예를 들어 최근에 DSM-5가 출시되었는데 번역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눈치만 보는 건 supervisor의 자세가 아닙니다. DSM-5는 도입 시점이 문제이지 DSM-IV를 계속 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당장 원판을 구입해서 읽고 정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북 세미나 한답시고 엄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에게 번역, 정리 맡기는 짓 하지 마시고요.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reference가 있는 지식과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지식을 구분해서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윗 supervisor에게 배웠던 지식만 알음알음 끌어모아서 울궈먹을 수 있거든요. 제가 최근에 제 supervisee 선생님들께 reference를 자주 물어보는데 제대로 답변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supervisor들께서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그 지식이 항상 업데이트되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2. 동기 부여
첫 번째 역할로 말씀드린 정확한 지식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 부여이며,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확한 지식 전달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임상, 상담 현장의 일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샘솟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야 계속 하고 싶고 그래야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련 과정에서 동기마저 충천하지 않다면 수련 과정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에 빠지거나 쉽게 질려서 무력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건 supervisor 스스로가 동기 부여가 안 되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 없거나 무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진 supervisor라면 이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supervisee들까지 함정에 빠뜨려 공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가능하면 동기 부여는 사명감보다는 흥미 유발과 재미 찾기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임상, 상담 현장은 사명감과 소명 의식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내담자/피검자의 문제를 다룰 때 진지해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임상가들에게 엄숙주의를 강요하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도제식 수련제도 때문에 힘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이상한 교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3. 핵우산 기능
이건 다른 직능 영역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는 supervisor에게만 해당됩니다만 개업 상담센터나 대학 교수가 아닌 이상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supervisor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맞을 겁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들과 일을 하거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의 선생님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관에 속한 supervisor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핵우산 기능합니다. 여러 직종이나 직능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는 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사전달과정이 모호하거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때로는 똥물이 튀는 것이 싫어서 희생양을 찾아서 떠넘기는 일도 생기게 되고, 업무 진행 상 약한 부서나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죠. 그런데 그럴 때 자기 하나 살자고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옆으로 비켜서거나 의사를 비롯한 다른 직능 전문가의 뒤에 숨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서서 나 하나만 믿고 의지하는 supervisee들을 위해 산화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뭐 그런다고 supervisor가 잘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엄살 부리지 마시고요). 유능한 중재자가 못 된다면 최소한 싸움닭이 되는 것 만큼은 피하면 안 됩니다.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론조사하면 supervisor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만 내빼거나 쏟아지는 압력을 몸으로 막아내기는 커녕 완장찬 마름처럼 되려 횡포를 부릴 때가 당당히 1위가 될거라는데 제 금쪽같은 돈 500원을 걸겠습니다.
존경받는 supervisor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력과 성품을 겸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쓰며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랫사람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supervisor의 역할이고요.
오늘도 현장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계신 수많은 supervisor 선생님들 힘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장래의 동반자가 될 supervisee 선생님들이 모두 잠재적인 우군이니까요. 그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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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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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amentals of Clincal Supervision'이라는 원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심리치료/상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supervision의 근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담 심리학 분야 뿐 아니라 임상 심리학에서도 supervision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supervisor들이 읽으면 좋은 책일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실망한 책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내용입니다. supervisor들이 supervision을 위한 입문서로 필요한 건 comprehensive handbook이 아니라 field manual입니다(이건 이견이 있을 수가 있는데 저는 comprehensive handbook은 그 다음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흡사 MMPI-2를 공부하기 위한 입문자에게
'MMPI-2 : 성격 및 정신병리 평가(2006)'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목차를 보시면
제 1 장 임상 수퍼비전 개론
제 2 장 평가
제 3 장 윤리적·법적 고려사항
제 4 장 수퍼비전 모델
제 5 장 수퍼비전 관계 - 개인차와 발달차의 영향
제 6 장 수퍼비전 관계 - 수퍼비전 삼자 혹은 양자 관계의 과정과 문제
제 7 장 수퍼비전 관계 - 상담수련생과 수퍼바이저의 요인
제 8 장 수퍼비전 경험을 조직화하기
제 9 장 수퍼비전 개입 - 개인 수퍼비전
제 10 장 수퍼비전 개입 - 집단 수퍼비전
제 11 장 수퍼비전 개입 - 라이브 수퍼비전
제 12 장 수퍼비전의 교수와 연구
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clinical supervision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치우쳐 있어 분량 자체에도 압도되기 쉽고 끝까지 읽기에 지루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현장 사례는 하나도 안 나와요. 그래서 다 읽어도 실제 supervision을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문입니다. 비용, 시간 대비 지나치게 상세한 책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너무 오래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3판 원서가 2004년에 나왔는데 이미 올해 5판이 새롭게 출판된 상태입니다. 그동안에 판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굳이 이 책을 읽겠다는 분들은 5판 원서를 읽으시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가격이 16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건 아시고요;;;;;
세 번째 이유이자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번역의 질입니다. 상담 분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유영권, 방기연 선생님이 번역하셨는데 죄송하지만 직접 하신 것이 맞나 싶은 정도의 수준입니다.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도록 쉽게 읽히지 않는데 이런 류의 이론서는 그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제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upervisor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현장 중심이 아닌 이론 중심의 내용에다, 이미 한 물 간(죄송!) 책이고, 게다가 번역의 질도 썩 훌륭한 책이 아니어서 누구에게도 추천하기가 힘든 책입니다.
요새 supervisor에게 추천할 만한 supervision 관련 책을 계속 찾고 있는데 찾는대로 곧바로 소개하겠습니다.
덧.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역자 소개는 상세하게 하면서 정작 원 저자 소개는 빠뜨린 전공서적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역사 저문에도 저자들이 어떤 supervisor인지, 어떤 경력을 가진 분인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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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나 상담 supervision을 받고자 할 때 정작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supervisee들이 많습니다.
한 회기의 verbatim을 몽땅 풀어 가야 하는지,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을 회기 별로 묶어서 요약해야 하는지, 염두에 두고 있는 심리치료 기법에 대해 정리를 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쉬운데 supervision을 받을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guideline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래의 질문들에 차근차근 답을 하다 보면 뭘 준비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 A : 내담자의 현재 문제를 간단히 설명하라
B : 이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 회기에서 역동(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당신과 내담자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라
* A : 배경 정보를 포함하여 회기 중 알게 된 다른 중요한 정보를 설명하라
B : 회기 중 논의된 주요 문제들을 요약하라
* 현재 문제(들)와 관련된 문화적 또는 발달 정보를 설명하라
* A : 내담자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처음 했던 개념적인 해석은 무엇인가
B :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한 개념적 해석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DSM 체계를 고려할 때 당신의 진단적 인상을 나열하라
* A : 이 내담자에 대한 최초 치료(상담) 계획을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하라
B : 이 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을 바탕으로, 다음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 이 회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당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는가
* 이 사례의 어떤 양상이 당신에게 윤리적 염려를 불러일으키는가
* 회기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무엇이든 공유하라
* 당신의 supervisor에게 어떤 구체적인 질문이 있는가
A : 최초의 상담 회기
B : 현재 상담 회기
출처 : 'Fundamentals of Clinical Supervision, 3rd(by Janine M. Bernard & Rodney K. Goodyear, 2004)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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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뭘까요?
바로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술이 아직 무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는 지식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정보의 무더기에 불과합니다.
대학 교수든 학원 강사든 간에 그들의 강의가 훌륭한 것은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물론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만) 반복된 강의로 인해 그들의 지식이 매우 정교하게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무술의 고수가 된 것이지요.
강의 기술만 연마해도 될 것 같지만 결국은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고수는 자신이 고수라도 결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면서 폼만 재는 고수는 결국 더 뛰어난 고수의 칼날에 스러지게 되죠.
임상이든, 상담이든 3년차 이하의 전문가 선생님들은 잘 들으세요. 전문가가 되고 난 뒤 3년이 지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심리평가, 심리치료, 상담 supervision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supervisor에게 supervision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뭘 알아야 하지’,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야지’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세요.
supervision은 supervisee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지식을 통합해 진짜 전문가, 진짜 고수가 되기 위해 하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supervisee도 함께 성장하게 되지만요.
본인이 supervision을 해도 괜찮다고 자평하게 되는 그런 전문가가 되는 그 날은 지금 당장 supervision을 시작해야 비로소 오는 겁니다.
고수가 되고 나서 supervision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에요. supervision을 시작해야 고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된 지 3년이 지나고 사람들이 선생님을 senior로 평가하게 되면 실력과 상관없이 그 때 가서는 supervision을 시작할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게 되니까요.
물론 나중에라도 학교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된 후 교수라는 타이틀의 힘으로 supervision을 시작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supervision이 과연 제대로 된 supervision일까요?
내가 뭘 알아야 supervision을 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본인이 아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하세요. 어디에 정리하건 상관없습니다. 저처럼 블로그에 정리하건, 녹음을 하건, 워딩해서 파일에 모아두건. 자신이 아는 것들을 꾸준히 정리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깁니다. 그걸 supervision의 재료로 사용하면 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분들은 더 이상 늦기 전에 어떤 영역에서든 supervision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supervision은 능력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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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상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제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왜곡된 supervisor-supervisee 도제 제도의 정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지도 교수의 권위에 굴종하고 비합리적인 처사에 굴복하는 걸 습성화했던 패턴이 전문가 수련제도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supervisor는 어디까지나 supervisee가 향후 적절히 기능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support하는 사람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심한 경우 수련 과정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학회가 방임해왔죠.
결국 그 결과로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임상가들의 자존감이 처음부터 바닥인데다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자신감이 올라갈 생각을 안 합니다. 저는 이게 다 무조건 혼내기만 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학문적으로 토론하고 임상적으로 숙의하기는 커녕 무조건 깔아뭉개기만 하는 못된 supervisor들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수련 제도의 시스템 문제라고 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많이 빠졌습니다만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상담자들이 상담을 하게 되면 상담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내담자가 좋아지는 것 같고, 상담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고, 명절이 되면 간단한 선물이라도 챙겨오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상담에 자꾸 빠지고, 연락이 잘 되지 않고, 그러다가 임의 종결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의 무능을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우울에 빠집니다.
내담자의 회복과 치유,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모두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일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에요. 밝게 웃으면서 꼬박꼬박 상담 시간에 참석하는 내담자의 모습이 자기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의 발동일 수도 있고 말없이 상담에 불참한 내담자가 사실은 상담의 효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상담자에게 종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 차마 연락을 못하는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담자가 진정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회복하고 성장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되겠지요.
그럴 때까지
상담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내담자의 회복이 곧 나의 실력이라는 식의 단선적인 결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고 내담자를 통해 배운다는 겸허함입니다.
그러니 상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담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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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 심리평가보고서를 절대로 먼저 보지 않습니다. supervision point를 물어보고 대략적인 배경 정보를 확인(이것도 생략하고 blinded supervision을 할 때가 많음)한 뒤 곧바로 검사 원자료를 살펴봅니다.
검사 실시 순서대로 원자료를 살펴보면서 가설을 검증하고 case formulation을 하고 난 뒤 맨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함께 보면서 진단이 틀린 곳은 없는지, 해석이 잘못된 부분을 찾고 피검자를 기술하는데 더 필요한 내용은 없는지 등을 점검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면 supervisee가 피검자를 보는 인식틀에 자신도 모르게 갇혀서 다른 조망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supervisee가 MDD 진단을 내려왔다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 범주 내에서만 피검자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문구나 수정하고 몇 가지 다른 표현이나 추가하는 선에서 그치고 맙니다. 그건 제 기준에서는 supervision이 아니라 심리평가보고서 교정입니다. 아시겠지만 supervisee가 보고서 교정이나 하자고 supervision을 청하는 것이 아니죠.
물론 심리평가보고서를 보지 않고 원자료 만으로 소위 피검자의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꾹 참고 반복하면 실력이 그야말로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촉'도 날카로워지고요.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고 나면 아무리 어려운 케이스를 가져와도 당황하지 않게 됩니다.
이 내공이 부족한 supervisor일수록 예전에 실시한 보고서, 의사의 진단, chart에 기록된 정보, 피검자의 주관적 호소에만 목을 매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안전지향으로 가게 되죠. 그거야 말로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믿고 온몸으로 버티세요. 심리평가보고서는 맨 나중에 보시고요.
덧. 실력을 더 빨리 늘게 하고 싶다면 원자료도 미리 받지 말고 현장에서 supervisee와 함께 보세요. 온라인으로 미리 전송받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 supervisor로서의 자세는 바람직하지만 그만큼 실력은 더디 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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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저런 치료 워크샵에 대해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분들이 계셔서 제가 치료 관련 워크샵을 고르는 기준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강사가 매스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일 것(숨은 고수일 것)
: 많은 분들이 방송에 자주 나오고 유명하고 인기인이 진행하면 좋은 워크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반대입니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 비추고 인터뷰나 하고 다니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담자/환자를 만나 치료적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죠. 방송에 얼굴 자주 나오는 사람치고 고수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2. 국내 치료 경험이 500사례 또는 5년 이상일 것
: 외국에서 아무리 검증된 프로그램이고, 유명한 고수에 의해 창시되었고, 오래 되었든 말든 상관없이 국내에 적용한 사례가 최소 500명 또는 5년 이상 되지 않은 프로그램은 굳이 비싼 돈 내고 직접 배울 필요 없습니다. 그 치료법의 창시자가 쓴 책만 봐도 됩니다. 어차피 워크샵을 들어도 책에 있는 내용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적용하는 노하우가 소개되겠지만 적용 사례가 그 나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임상/상담 현장에 그대로 써 먹지도 못합니다.
3. 자격증(certificate)을 주는 프로그램이 아닐 것
: 자격증을 주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몇 십 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자격증을 주는 경우와 아주 비싼 수강료를 내면 주는 경우이죠. 후자는 외국에서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 창시자에게서 수련을 받거나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국내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난 뒤 도입(대개는 처음에 외국의 고수를 초빙하여)하는 경우인데 앞의 기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국내 전문가가 치료 경험이 상당히 쌓이기 전까지는 별로 쓸데없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supervisor에게 배운 내용을 그냥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 뿐이니까요. 전자는 더 별 볼일 없습니다. 그냥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초반에 물량 공세를 펴는 것 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제대로 된 경험도 없는 강사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 정도 기준을 말씀드리면 이 바닥을 좀 아는 분들의 경우 '그럼 대체 뭘 들으라는 말이냐. 이 기준을 통과하는 치료 워크샵이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국내에서 들을만한 워크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혹시 자신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런저런 자격증이나 워크샵 인증을 받으려고 비싼 돈과 없는 시간 내서 좇아다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는 치료 워크샵을 들으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자리에서 꼭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금까지 소개해 주신 치료 프로그램을 우리나라 사례에 적용한 경험을 말씀해 주시고 외국 사례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치료자는 워크샵을 진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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