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심리평가/심리치료의 supervision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supervisee 선생님의 수가 어느새 30명이 넘었습니다. 거의 40명에 육박하는군요.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제가 6년 째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고 있지만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는 소리를 여전히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수님들은 대체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건지...
그나마 supervisor랍시고 supervision을 제공하는 전문가들도 자질 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제 얼굴에 침뱉기에 해당하는 이런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런 전문가들에게 주제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저도 언제든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글로 남겨 미리 제게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면 supervision을 한 뒤 원하는 분들에 한해 수정한 내용을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점검하는 소위 '첨삭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워낙 손 볼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잘 써온 분도 계시고 대면 supervision이 끝난 뒤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게 되어(이제와서 생각을 해 보면 보고서에 들이는 정성과 고민은 저보다 나은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감을 잡고 키워드를 찾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을 도와드리는 것 뿐이죠) 첨삭 지도를 해도 문구를 매끄럽게 다듬거나 오, 탈자를 점검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comment를 한 보고서를 발송하면서 formulation이 잘 되었다는 솔직한 평을 보내면 '너무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우울한 일상에 힘을 얻었다'는 식의 어리둥절한 답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positive feedback마저도 인색한 harsh한 supervisor가 천지라는 사실을 말이죠. 대면 supervision에서도 온통 '네가 준비해 온 만큼만 supervision을 봐 준다', '어떻게 레지던트가 이런 것도 모르냐', '이 용어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썼냐,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어떻게 건방지게 다른 superviser에게 supervision을 받겠다는 말을 하냐'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고 상처를 주는 supervisor가 얼마나 많은 지 알게 되었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가 주로 군 생활 할 때 많이 들은 말인데 살상을 목적으로 한 조직에서 듣던 말을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는 전문가 조직에서 또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하게 키워야 강군이 된다는 말도 군대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전쟁이 나면 그 상사부터 쏴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적개심 가득한 사람들만 양산하지 군 전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과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무기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전 학교에 있을 때에도, 군에 있을 때에도, 수련을 받을 때에도 혼이 나면서, 면박을 당하면서 배웠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밉기만 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던 기억만 있습니다.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는 supervisor들에게 진심으로 묻습니다. 정말 그렇게 면박주고 모욕하고 혼을 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실력자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열등감을 supervisee에게 투사하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acting out하는 히스테리 supervisor에 대해서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말해봤자 제 입만 아프고 그 사람의 인생에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임상 분야가 얼마나 좁은데 그렇게 평판 관리를 안 하십니까? 저처럼 사람 가리고 외곽에서 은둔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온 정보만 모아도 당장 퇴출되어야 할 전문가(명칭이 아깝습니다)가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제가 편하게 대해도 명색이 제가 superviser인데 supervisee들이 실상을 모두 말 할리가 없을텐데도 남 부끄러워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책으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미 몇 차례 비슷한 포스팅을 했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supervisee들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고 미래의 내 동료입니다. 어려운 길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들이고요. 그리고 야단치고, 화내고, 혼 낸다고 실력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더 격려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읽어보라고 참고 자료를 주세요. 화만 내지 말고요.
제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잣대로 삼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supervisee가 못 돼고 글러먹었어도 이들이 약자입니다. 그러니 저는 앞으로도 이들의 편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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