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supervision을 하면서 진로 적성 코칭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참 많이 드렸습니다. 저도 과거에 그런 실수를 자주 했지만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들이 가져오는 문제가 대부분 대인 관계 갈등에 기반한다고 전제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랑만이 문제일까'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외로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일'부터 안 되기에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진로 적성 코칭이라는 게 결국은 당사자의 기질, 흥미, 적성, 능력,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일 수 밖에 없어서 이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고 바로 극단적인 선택 질문을 통해 이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질문은 요새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과 비슷합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개의 극단적인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밸런스 게임과 차이점은 단순히 고르는 것이 아니라 왜 그걸 골랐는지, 생각해봄으로써 그 선택에 투영된 자신의 기질과 가치관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빠르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친구가 하나도 없는 억만장자 VS. 만인의 사랑을 받는 거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지가 있다고 해 보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억만장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지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예시에서는 경제적 여유를 통한 안정감이 더 중요한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 게 더 중요한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린 보통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면, '매뉴얼대로 일해야 하지만 책임질 필요가 전혀 없는 공무원 VS.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모든 걸 내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프리랜서'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전자는 안정감과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자유로움과 흥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죠.
이처럼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자신도 잘 몰랐던 기질, 흥미, 가치관이 드러나게 됩니다. 공통점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 질문은 진로 적성 코칭에서 빠른 가지치기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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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적성 코칭이 어려운 이유는 일반적인 상담 훈련 과정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아무래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일테지만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상담자 스스로도 자신의 진로 적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심리학이 재미있어서 전공했을 뿐 그게 제 적성에 잘 맞는지, 기질에 부합하는지 등을 따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공부하면서 저랑 맞는 분야가 있고 맞지 않는 분야가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느꼈고 그래서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학을 전공할 때 의외로 공부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보다는 경영학에 더 가까운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처음에 희망했던 임상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저랑 맞는 분야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되었죠. 역시나 개인 단위에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 제 기질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담자가 아닌 supervisor와 강사의 identity가 저랑 가장 잘 맞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합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잠깐 샜는데 진로 적성 코칭을 하려는 상담자라면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제로 진로 적성 코칭을 해 봐야 합니다. 그런다고 지금의 길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담자를 도울 방법에 대한 힌트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진로 적성 코칭의 모든 것 : 상담자용' 포스팅에 충분히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진로 적성 코칭을 할 때 '현실성', 다시 말해 실현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게 상담자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는 이미 부모님, 친구, 선배, 진로 상담 교사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실성을 토대로 이런저런 조언을 지겹게 들었을 겁니다. 그게 효과적이었다면 상담자에게 안 왔을거에요. 그러니 누구나 했을 법한, 뻔한 조언은 그만두세요.
두 번째 이유는 현실성을 고려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적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실성이라는 건 결국 먹고 사는 문제, 그것의 지속 가능성, 안정성 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이걸 먼저 고려하면 그 다음에는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집니다. 예를 들어 예체능 적성을 가진 내담자가 있다고 해 보죠.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은데 유명한 화가가 되는 건 현실성이 없어 보이니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진학하고 그림을 취미로 그리자고 타협을 하게 되죠. 그러니 그림으로 성공해야 하는 현실 따위는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으려면 꿈과 가치관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현실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투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성은 '어떻게?'를 묻습니다.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냐? 등등이죠. 하지만 꿈과 가치관은 '왜?'를 묻습니다. 왜 그걸 하고 싶은데?, 그게 왜 너에게 의미가 있는데?라고 묻게 되죠. 꿈과 가치관을 탐색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적성 및 기질과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성은 진로 적성 코칭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미세 조정을 할 때 고려하면 충분하고 그건 내담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등산이 내 적성이라는 걸 찾았다고 해 보죠. 어떤 산을 오를 지, 어떤 방법으로 오를지를 고르는 것이 바로 현실성을 고려하는 겁니다. 등산을 할 것도 아닌데 에베레스트를 오를지, 지리산을 오를지를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 상담자는 진로 적성 코칭을 할 때 의도적으로 '현실성', '실현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담자까지 그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내담자의 적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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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재테크에 넣어야 할 지, 도박 중독에 넣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심리학 일반 카테고리에 넣습니다(응?).
돈을 버는 것, 돈을 쓰는 것은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겠지만 저보다 오랫동안 돈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해 본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돈 문제라면 신물나게 경험하는 도박 중독자들을 15년 동안 상담하면서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돈 생각, 돈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그래서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걸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는데 요새는 얼마나 많이 버는가 보다 얼마나 빨리 벌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파이어족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하지만 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순서가 있습니다.
중요한 순서대로 이야기해 보자면,
1. 나에게 돈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 돈의 의미
: 당연히 돈은 가치 저장 및 교환 수단인데 중요한 건 자신에게 어떤 (주관적인) 가치가 있느냐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패의 가치인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수단인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나에게 돈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으면 다음 단계부터 무너지게 됩니다. 안 무너질 도리가 없어요. 자신에게 돈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아무리 빨리 모아도 자신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돈은 독이 됩니다. 이 건 제가 상담했던 도박 중독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담으로 해 준 말인데 100% 동의합니다. 당신에게 돈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요?
2. 돈을 버는 목표가 무엇인가
: 당연히 돈의 가치와 관련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안전판이라면 자신의 기대 수명과 씀씀이를 계산해 보면 목표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래도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겁니다. 도박 중독자들은 돈을 따기 위해 도박을 하지만 왜 돈을 따려는지 구체적인 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박의 끝이 없죠. 이러한 무한루프에 갇히면 답이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돈을 벌지 마세요. 내가 돈을 버는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3.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 돈을 버는 수단
: 나에게 돈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고 있고 돈을 버는 목표가 구체적이라면 그 다음은 방법론입니다.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돈을 벌겠다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불법적이거나 위험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겠지요. 당연히 돈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생각 없이 돈을 벌고자 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면 돈의 가치를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4. 돈을 얼마나 많이 벌 것인가 : 돈의 양
: 드디어 얼마나 많이 벌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제일 먼저 생각하는데 가장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나에게 돈이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떤 목표를 갖고 돈을 벌 것인지 생각이 정리되었다면 어떻게 벌 것인지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고, 이제 얼마나 벌 것인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그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벌어서 그릇이 넘치면 그 돈은 썩게 됩니다. 역시나 독이 되죠.
그럼 돈을 얼마나 빨리 버는가는 안 중요하냐 하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4단계까지 정리가 되었다면 돈을 빨리 벌든 천천히 벌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목표 단계에 맞춰 적당한 속도로 돈이 모일 거라서 생각보다 늦게 모인다고 조바심이 날 일이 없고 빨리 모인다고 들떠서 목표가 흔들리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됩니다.
저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이런 저런 생각과 시도를 많이 해 봤지만 이 순서가 뒤바뀌면 결국 쓰라린 댓가를 치르게 되더군요. 가치관 정립 -> 목표 설정 -> 수단 정하기 -> 양 정하기 순으로 진행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이미 사회 생활을 한 지 오래 되었고 실수도 많이 해서 늦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돈에 대한 고민에 빠르고 늦은 것 따위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하시는 게 건강하게 돈 버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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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거창한데 이건 상담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저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로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자격을 취득한 새내기 전문가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은 듯한 벅찬 뿌듯함과 함께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 실력이 어떠하든,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내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뭔가 몸에 맞지 않는 과분한 옷을 걸친 것 같은 생경함은 덤이죠.
이 때 이러한 과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채우는 데 집중하는 상담자가 가장 많습니다. 수련 기간 동안에 못 읽었던 전공 서적을 탐독하기도 하고, 실전 워크샵에 집중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예 학교로 돌아가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상담자도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총 쏘는 기술보다 전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참전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죠.
전문가 자격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신에게 상담/심리치료란 무엇인지, 임상가로 살아간다면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지, 윤리적인 규정과 별개로 내담자/환자와 치료적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가치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중 관계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 등등.
수련 중에는 내담자/환자를 돕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고 그 기술이 완성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노력은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초보 전문가일때가 아니면 다지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현실과 타협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나서 1년 안에 마무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는 2003년 초에 전문가가 되고 나서 8월에 취업하기 전까지 약 6개월을 실업 급여를 받으며 쉬었습니다. 가치관을 정립하겠다는 구체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수련받느라고 미친 듯이 일만 하다 갑자기 쉬게 되면 할 일이 없거든요. 결국 자신과 대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일이나 공부를 시작하지 말고 충분히 쉬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게 임상가로서의 평생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런 가치관을 정립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상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내담자를 우선하겠다는 저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2018년 제가 속한 조직에서 순환 근무를 위한 지방 파견을 가라는 명령이 갑자기 내려왔습니다. 지방 센터에도 상근 상담자를 충원해야 한다는 건의를 이미 수년 전부터 했지만 회사는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다가 그 사업장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정부에서 근로 감독을 나온다고 하니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서울의 상담자를 긴급 파견해 보여주기를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6개월 또는 1년 간격으로 서울 센터에 근무하는 3명의 전문가를 계속 순환 파견 보내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제대로 상담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신규 내담자를 받아서 상담을 하더라도 내년에 제가 파견 명령을 받으면 저나 내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저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거기에서 상담을 시작해도 1년이 지나면 또 거기에서 진행하던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야말로 상담자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인거죠. 그래서 회사에 상담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가라는 것이죠. 이런 회사의 몰상식보다 더 역겨운 건 함께 일하던 다른 상담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조직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냐는 겁니다. 이 좋은 조직에서 잘리지 않고 정년퇴직을 하려면 내담자를 희생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상담자가 되면 안 되는 사람' 포스팅 참조).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제 가치관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6년 동안 일해온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8년 독립을 했습니다(
'인생 Season 2를 시작합니다' 포스팅 참조). 그리고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자평합니다.
제가 다니던 직장은 임상/상담 통틀어서 가장 일 적게 하면서도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무기 계약직이기 때문에 입 다물고 회사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그야말로 꿀 빠는 직장이죠. 그걸 제 발로 차버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았다면 저도 현실과 타협했을 지 모릅니다.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흔들릴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시점이 저처럼 늦게 오는 행운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현실과 타협하기 전에, 임상가의 가치관을 정립해 두시기 바랍니다. 저는 실력보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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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 결과를 눈여겨 보기 시작하면 자율성이 낮은 내담자들이 매우 많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자율성이 기질 조절 기능의 핵심 부품에 해당된다는 걸 감안하면 상담에서 자율성을 높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고요.
자율성의 하위차원분석을 했을 때 자기일치가 낮은 경우 문맥 상의 해석은 '유혹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행동을 하지 못함'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치관이 아예 정립되지 않은 내담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가치관 탐색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고 맨 땅에 헤딩하듯이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이럴 때 저는 극단적 비유를 사용하는 게 내담자 가치관 탐색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야 이해가 쉬울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내담자가 MHL(고립된-겁 많은) 기질의 소유자이고 위험회피기질이 높은 만큼 사회적 민감성도 매우 낮은 전형적인 유형인데도 친구랑 잘 지내고 싶다, 관계를 잘 맺고 싶다고 호소한다면 다음과 같은 극단적 비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00억의 재산이 있지만 친구가 한 명도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삶과 언제든 달려와 주는 1,000명의 친구가 있지만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삶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사회적 민감성이 매우 낮아서 독립적인 삶을 선호하고 거리두기를 하는 기질인데도 대인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은 사실 친화 욕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위험회피기질을 충족시킬 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에 매달릴 수 밖에 없죠. 그걸 확인하기 위해 극단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면 위에서 예를 든 전형적인 MHL 기질의 내담자는 자신이 그동안 대인 관계에 집착한 이유가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이후에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탐색할 수 있겠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돈도 중요하고 사람도 중요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가치관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선명한 구분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 차이를 벌리는 방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가치관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르는 것 같을 때, 특히 중요한 가치 몇 개를 두고 선택하지 못해 갈등하는 상황에서는 위에서 제가 사용한 것처럼 극단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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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의 모토 중 하나는 '최대한 남들과 다르게 살아라'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최대한 모난 돌이 되어라' 정도로 바꿀 수 있겠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튀지마라", "중간만 해라", "남들하는대로만 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건 우리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던 시대에나 효과적인 적응 전략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튀면 가장 먼저 맹수의 습격을 받거나 무리에서 배제되어 생존의 위협을 받았으니까요. 그러한 무리짓기 본능이 DNA로 각인되어 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현대인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분쟁 사회가 아니라면요.
더 이상 안전 지향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들과 비슷하게 살수록 더 위험해집니다. 배에 구멍이 뚫렸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몰려 가면 하중이 쏠려 배가 더 빨리 침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남들이 이게 새로운 투자처라고 우 몰려갈 때 절대로 그리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때 집단 지성을 신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인공 지능의 시대, Know-where의 시대입니다. 사실 그 당시는 집단 지성이 아니라 집단 체력의 시대, 집단 압력의 시대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섞여 살면 안 되는 이유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걔중 앞서 가는 누군가(현명한지는 아무도 모르는)의 판단과 시야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어찌 보면 집단주의의 대표적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는 한 줌도 안 되는 위정자의 판단에 그동안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도박을 해 왔죠.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요?
또한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비교 기준이 내 옆에 서 있는, 내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는 사람에 국한되어 하향 평준화 됩니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냐가 어느 지역 아파트에 살고 있냐로, 어떤 급의 자동차를 타고 있냐로,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로 바뀌었을 뿐 다른 삶의 기준을 고려하지 못하게 됩니다. 직급이 어느 수준이냐로 따진다는 건 조직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것인데도 이후를 고려하지 못하고 충성에 목을 매게 됩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거지요.
그럼 불확실성의 시대에 남들과 최대한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각자 도생의 시대가 도래하면 어차피 남들과 비슷하게 가는 전략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워집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르게 살면 블루 오션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레드 오션은 정보력, 자금을 가진 소수에게만 유리하지만 블루 오션은 아닙니다. 틈새 시장을 선점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죠. 제가 이 블로그를 만든 게 2004년 7월입니다. 그냥 제가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 제가 공부했던 자료를 올려서 다른 사람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만들었죠. 그 당시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니 노하우인데 그걸 왜 공유하냐, 왜 남 좋은 일을 시키는거냐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 블로그 때문에 책도 썼고, 강의도 많이 하고 있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때 남들처럼 나만 알고 있거나 유료 폐쇄 사이트를 만들었거나 했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겁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비교 대상이 없으니 실패해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차라면 남들보다 작은 경차를 타는 것이 창피할 수 있으나 차를 원하지 않아 차 없이 사는 삶은 비교 대상 자체가 없으니까요. 자신의 차보다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치 않는 차 대신 다른 것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죠.
이 글의 제목이 '최대한' 남들과 다르게 살라는 것인데 그럼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남들과 반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양육과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남들처럼 살도록 세뇌되었기 때문에 관성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남들처럼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일부러 남들과 반대로 살도록 노력하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터널 속을 달릴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터널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려면 가속이 줄어들고 관성이 깨질 때까지는 일부러 다른 사람과 달리 살아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 애쓴 결과로 제 삶이 어떻게 되었냐 하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집을 사지 않기로 했고(기회가 되면 아예 제 집을 지을 생각이지만),
차도 안 사고, TV도 안 사고,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입양했고,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비건 채식인이 되었고, 네
세 곳의 정기후원을 하고 있고,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이건 노력 중입니다만). 그리고 여전히 남들과 다른 삶은 진행 중이죠.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제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사는 인생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도 남들과 똑같은데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남들과 똑같다면 재미 없잖아요. 제가 누군가의 아바타나 클론도 아니고.
그렇게 많이 다른 것도 아닌데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참 좋더라고요. 행복하고요. 초반의 거리낌만 극복하고 나면 마음의 평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참 편해요.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기대보다 훨씬 더 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과 다른 삶,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한번 살아보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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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한눈에 봐도 딱 나와 비슷한 취향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관계의 사람도 있고, 주는 거 없이 미워서 가능하면 안 보려고 애서 피하게 되는 사람도 있죠.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1.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뿐이고 그들 모두를 좋아하며 내 생활이 만족스럽다 -> 이 포스팅 미대상자. 통과!
2. 나와 굉장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 뿐이고 그들 모두가 비슷한데 나는 그들이 별로이다. -> 혹시 착취당하고 있나요?
3.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도 서로서로 굉장히 다르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듯 하지만 난 여전히 외롭다. -> 마저 읽어주세요.
이 포스팅은 3번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나와 맞지 않는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은 이유가 혹시 내가 나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이야기하지 못하고 카멜레온처럼 만나는 사람의 취향과 스타일, 분위기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세요.
그렇게 사는게 재미있고 활기차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져서 혼자가 되었을 때 금방 외롭다고 느끼고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며 자신의 생활이 뭔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적으로 든다면 당신은 자신의 색깔을 아직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색깔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에너지를 방전시키기만 할 뿐 입니다(당신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인간형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나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색깔이 다른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호기심이 생긴다고 해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죠. 접점을 찾아야 하니까요. 반면에 무채색인 사람에게는 의도가 어찌되었든 일단 접근하기 쉽고 결과는 지금의 그런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면 나와 색깔이 같은,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클럽에 놀러가면, 야구장에 관람을 하러 가면, 한강변에서 나처럼 자전거 출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금방 말문이 트이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서로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색깔이 무엇일지만 탐색합니다. 왜냐하면 무리 속에서 괴짜라고 불리거나 그로 인해 따돌림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이 집단 속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는 있어도 삶의 재미와 행복을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안전을 지향하는 삶은 호기심과 활력을 억누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은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색깔은 그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 성품 등을 반영하는데 그걸 극명하게 드러낼수록 서로를 충전시킬 수 있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달라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과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있을 뿐이니까요. 당신이 먼저 내면의 색깔을 드러내면 그들도 호응할겁니다.
마음 읽기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색깔을 펼쳐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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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포함한 couple therapy를 할 때 가만히 지켜보면 현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는 건 대화의 패턴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계속 겉돌고 있다고 서로가 느끼고 있다면 상담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하는데 하나는 가치관의 차이고 다른 하나는 접점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가치관은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고 싶다면 가치관 탐색을 하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담자가 자신의 선택과 결과의 현실적 괴리를 이해하는데도 필수적이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인 관계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만 이는 대인 관계 영역에서 다루기보다는 개인 수준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필요하다면 원가족 관계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깊이 내려갈 수도 있거든요.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2자 관계의 각 구성원을 개별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것이 가치관에 대한 접근이라면 이와 달리 접점의 여부는 두 사람의 상호작용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고집이 세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있다고 해 보죠.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욕구에 최대한 귀를 기울임으로써 현실적인 요구에 맞추려고 아이를 닥달하지 않는 여유로운 양육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체벌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행동 변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또래나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아빠는 내 자식이 그렇게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도 못마땅하고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정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곧바로 따르지 않고 떼를 부려 집안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체벌의 도입 여부로 항상 부부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남편은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으니 체벌을 가해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남편이 아이의 말을 귀 기울일 생각은 안 하고 자기 편하자고 손쉬운 체벌을 고집한다고 맞섭니다. 그리고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라도 찾아보고 그러는거냐며 남편을 몰아세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부부는 대화의 접점이 없습니다. 남편은 체벌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체벌 무용론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설사 남편이 때로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찾아내 들이민다고 해도 아내는 절대로 체벌을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접점이 없으면 대화가 계속 제자리를 맴돌며 감정만 격화시키다가 누구 하나가 말실수를 하는 순간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무익한 대화를 계속하는 부부나 couple을 상담하는 상담자는 전형적인 episode를 찾아 최소한의 접점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위에서 예를 든 부부의 경우 접점은 체벌의 도입 여부가 아닙니다. 아이가 떼를 써서 일이 지연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의 행동 전략이 하나의 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침에 옷을 입는 것을 거부해 유치원에 가는 게 늦어질 것 같고 남편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회사에 지각하고 싶지 않은 남편을 배려해 먼저 출근시키고 비용이 들더라도 아내가 택시를 이용해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거지요.
물론 모든 갈등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작은 접점이라도 먼저 만드는 겁니다. 접점이 없다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일단 접점이 만들어지면 그 접점 영역을 넓혀가는 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상담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 갈등에서도 가능한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고 소통하고 싶다면 작은 접점부터 만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나중에 다시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접점이 없는 이유는 쌍방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경우도 있으니 상담자는 처음부터 가치관 문제도 함께 고려하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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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담자가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를 확인하려고 상담자를 찾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이 문제인가를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무턱대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막연하기는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왠지 끌리지만 겁이 나서 저지르지를 못하겠다'라는 정도의 느낌은 갖고 있죠.
내담자가 갖고 오는 모든 문제는 그것이 '일'에 대한 것이든, '관계'에 대한 것이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고 보면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마음을 따를 수 없거나 반대로 현실적인 이득을 따르고 싶으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기도 하고, 정답을 모르지만 그 정답으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고 이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다면 언제 열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내담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건 선택 결과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이해득실에 따라 결정토록 돕는 겁니다. 그런 도움을 원했다면 내담자는 상담자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이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장점이 있는 대신, 이런 단점이 있고, 저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있지만 이런 좋은 점도 있다는 식의 결정 저울(decisional balance)을 암만 정교하게 만들고 양쪽 저울에 심리적인 무게추를 열심히 달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그 저울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가치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제도화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 세뇌, 강요, 설득된 전형적인 가치관을 대충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을 따름이지요.
물론 그런 가치관으로도 사회 생활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가치관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갈등이 발생하고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막연히 그동안 존재감을 몰랐던 자신만의 가치관의 존재나 필요성을 느끼고 탐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비건(vegan)입니다. 비건이 되기 바로 전까지 고기를 잘도 먹다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완전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경우이죠. 평소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저항이 별로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가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고기를 먹을 때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 모르는 찝찝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몰랐지만요. 환경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도 많았기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동물 권리에 대한 책까지 읽게 되었고 그 때서야 마음 한 구석에 스물거리던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죠. 동물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어요. 우연이었지만 제가 몰랐던 제 가치관 하나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건이 되었고 지금은 비건이 되기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제 가치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죠.
가치관은 그런 겁니다. 원래부터 꼭 맞는 맞춤옷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야 행복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담자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찾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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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내담자들이 이야기하는 어려움과 문제는 내담자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로 묶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 관계 갈등이고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좋은 사람과 연애했으면 좋겠다. 상사가 또라이인데 어떻게 해야 하냐, 남편이 마마보이다, 아들이 날 홀대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동료의 잘난 척을 참을 수가 없다 등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모두 대인 관계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관계 갈등의 양상을 파악하고 내담자가 느끼는 고통감의 정도를 탐색하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하지만 그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거의 예외없이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담자의 관계 갈등 대상이 상담 장면에 없는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해야 하니 저도 모르게 fact finding을 하는 함정에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지각 왜곡이나 역기능적 신념, 자동적 사고 등을 찾아내는 수확을 거두기도 하지만 그걸 교정하려고 해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 중독자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의미의
'지금은 각자의 성을 돌볼 때다'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할 때는 내담자의 내면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내담자의 숨겨진 욕구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좌절되었는지, 그 욕구 좌절의 결과로 어떤 대처 방략 또는 방어 기제가 형성되었는지, 내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관 또는 삶은 무엇인지 등등
내담자의 내면 탐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야 관계의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경험이 많은 상담자들은 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부족하다면 먼저 내담자 개인의 내면 탐색을 하고, 그 다음에 관계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제 경험으로는 꽤 효율적이었습니다.
특히 부부 상담, 커플 상담 등 상담의 유형 자체가 관계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상담에서는 관계 갈등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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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제가 아동/청소년 심리평가를 할 때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수검 아동/청소년의 부모 모두 MMPI-2와 SCT와 같은 자기 보고형 검사지를 작성토록 하는 겁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많은 기관에서 부모 심리검사를 생략하거나 실시한다고 해도 엄마만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엄마만큼 아빠도 아동/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거든요. 부모, 특히 아빠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제 평소 소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주는 책입니다. 누다심 심리학 아카데미로 유명한 심리학 전도사 강현식 선생님이 쓰셨고요. 그동안 꽤 많은 책을 내셨는데 사실 이 책이 제가 읽은 이분의 첫 책입니다. 심리학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분이라 독자 대상이 일반인이겠거니하고 생각해서 그동안 굳이 찾아서 읽어볼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소울메이트 출판사에서 선물로 보내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으로 기대 이상의 책이고 일반인 뿐 아니라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 임상가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특히 예비 아빠를 포함해 아빠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 책은 자녀 양육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또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가 하는 것이 맞고,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이라는 일반 대중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자 고정관념이라는 전복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생계를 부양하고 엄마는 자녀를 양육한다는 이분법적 구도는 산업화 때문에 생겨난 20세기 패러다임이고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패러다임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아빠들이 양육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건 생물학적으로 부족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아빠는 준비된 양육자이며 오히려 엄마보다 자녀에게 더 큰 영향(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이고 게다가 자녀 양육을 통해 아빠 자신도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인들을 위해 쓴 책임에도 이 책은 196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합니다. 당연히 참고 문헌을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도록 책 뒤에 싣고 있고요.
제가 읽으면서 인상깊게 생각했던 내용을 아래에 정리해 두었으니 일단 그걸 읽어보시면 강현식 선생님이 이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쓴 책임에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는데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편한 책입니다. 글을 참 읽기 쉽게 쓰시네요.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닫기
* 사실 아빠가 자녀 양육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저 아이와 행복하고 즐겁게 함께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남편의 호르몬은 아내의 출산이 아닌, 아내의 호르몬에 따라 변화한다. 이는 남편이 아내를 통해 임신과 출산을 간접적이지만 실제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 태교는 아이에게 좋은 성격과 똑똑한 머리를 준비시키는 일종의 선행학습이 아니라 '부부'를 '부모'로 준비시키는 예비교육인 셈이다.
* 20세기 대부분 동안 행동과학 분야에서는 아빠를 연구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연구 자체가 드물었다.
* 자녀를 돌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성별이 아니다. 부모 자체의 특성이다.
* 아빠가 친부이든 계부이든, 인종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아빠가 양육에 많이 참여할수록 자녀의 문제행동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
* 비행 청소년이 경험했던 아빠와의 분리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인 측면, 즉 아빠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 자녀의 정신병리 중 겉으로 드러나는 외현화 문제(ADHD, 품행장애, 비행 등)가 심리적으로 겪는 내현화 문제(우울, 불안 등)보다 아빠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 자존감은 아빠와의 친밀감과는 상관이 없었고, 엄마와의 친밀감과 상관이 있었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어린 시절 타인의 반응에 근거한다. 따라서 자존감은 아이에게 칭찬하거나 혼을 냈던 엄마, 그리고 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던 엄마의 영향일 수 있다.
*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아빠들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예 집을 떠나버린 아빠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 아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자녀 양육에 관심이 없는 아빠라면 오히려 집에 없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 http://walden3.kr/1932 참고
* 아빠 양육의 양적 측면이 아닌 질적 측면이 자녀의 적응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즉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보냈는지의 질이 더 중요하다.
* 엄마가 직장에 나감으로써 야기되는 자녀에 대한 시간적 소홀함은 아동 발달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 3~5세 아동은 부모가 자신 때문에 이혼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상 연령의 아동들은 부모의 성격차이 같은 요인이 이혼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 부부 관계는 엄마-아이 관계보다 아빠-아이 관계에 더 체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아빠와 달리 엄마는 부부 관계에서 부정적 변화를 경험할수록 아이에게 보다 긍정적이 되며, 아이 역시 긍정적으로 엄마에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엄마가 아빠의 부정적 영향력을 상쇄하고자 보상적으로 아이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 엄마가 아빠의 양육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아빠의 양육 참여에 대해서 만족할수록 아빠들의 양육 참여가 높았다. -> 이거 중요!
* 아빠의 따뜻함은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엄마의 따뜻함은 자녀를 가족의 의사결정에 보다 많이 참여하게 만듦으로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의 싸움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으며, 아이들 앞에서 싸웠다면 아이들 앞에서 화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http://walden3.kr/2492 참고
* 아빠가 아들과 따뜻하고 온화한 관계를 맺을수록 그들의 문화가 가지는 표준적인 성역할에 순응하게 된다.
* 아빠가 양육에 참여할수록 아들의 인지적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전체적으로나, 사회계층별로 구분했을 때 관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 품행 장애 아동 중 아들은 아빠와, 딸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말러는 대략 만 2세가 되어야 유아가 한 인격체로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폭식증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거절(특히 방임과 거부)을 당했다고 더 크게 지각하고 있었다.
* 부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아들은 부모 모두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낮아지지만, 딸의 경우는 이런 경향이 엄마보다는 아빠에 대해 더 많이 나타났다. 이는 부모의 부부 갈등으로 아빠-딸의 관계는 심하게 손상되기 쉽지만 엄마-딸의 관계는 회복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 중요한 것은 '활동'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다. -> 이거 중요!
* 남편으로서나 아빠로서 만족한다면, 직장에서 만족하지 않아도 심리적 어려움을 상당히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으로 새 책으로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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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에게 도박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나름의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든가, 잃어버린 돈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든가, 한번만 크게 따서 자신이 가족들에게 입힌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싶어서라든가 등등.
그런데 도박의 목표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하는 도박 중독자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10억을 모으려고 한다든가, 우리나라 바카라 최대 승률 기록을 세우려고 한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도박을 하는 도박자는 없죠. 왜냐하면 도박이라는 게임 자체가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세우려고 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승부의 결과에 돈을 걸게 되면서 목표가 흐려진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겁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도박 중독자는 목표 중심적으로 도박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과정 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물론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니고 순간 순간의 목표 달성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그 순간 순간을 연결해 보면 과정 지향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하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임상가들은 목표 지향적인 부분보다 과정 지향적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12주 동안 CBT를 활용해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교정하겠다는 식의 목표 중심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오히려 치유 과정에서 그동안 한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무장해제를 시키고 도박 및 도박과 관련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고 좀 더 나아가 사는 의미, 자신이 꼭 지키고 싶은 가치관, 이런 의미와 가치관에 도박이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도박에 빠졌던 과정과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도박 중독 치료는 목표 지향적인 것보다는 과정 지향적인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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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것이 해롭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교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비교한다는 건 서열을 매긴다는 것이고 일단 서열을 매기게 되면 어느 누구도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서열의 계단에서 아래에 속한 사람은 위를 올려다보며 박탈감을 느낄테고 위에 속한 사람은 아래에 있는 사람이 언제 밀고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나도 언제든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항상 긴장해야 할테니까요.
그러니 애시당초 비교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일텐데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뭘 해. 나는 앞으로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겠어'라고 아무리 결심해봤자 언론과 대중매체,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애정, 시샘, 의혹어린 오지랖의 폭격을 받으면 단단히 먹었던 마음도 금방 흐물거리게 마련입니다.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거라면 고민하는 사람 하나도 없겠죠.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주변을 곁눈질하지 않고 당당히 살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명상을 하든, 올레길 걷기를 하든, 칩거하면서 며칠을 고민하든 간에 사람을 피하고, 대중매체와 접촉을 피하고, 오로지 자신과만 대화해야 합니다.
한정되고 유한한 삶을 살면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지,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진심을 다해 묻고 거기에 진지하게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의응답의 끝에서 삶의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떳떳하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진실되게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겁니다.
그런 일련의 원칙들이 세워지고 나면 내 삶의 가치를 지키는 원칙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사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다른 사람과 말, 행동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삶의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원칙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럴싸해 보이는 세상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똑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비교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죠.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으면 자신의 내면에 품은 진정한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 원칙부터 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이 아닌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해야 하고요. 거기에 소모되는 시간은 얼마가 되었든 간에 꼭 필요한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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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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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늘 남들과 비교하는 말을 듣으며 살아 왔죠. 그래서 엄친아, 엄친딸만 봐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질투와 비교로 스스로를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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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보면 혼동되는 것 중 하나가 뭘 위해 소비를 하는지 잊기 쉽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욕구가 먼저 있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일텐데 어느새 욕구가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광고와 주변 압력의 폭격, 자기 합리화로 인해 그냥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남도 가졌다는 이유로, 혹은 반대로 남들은 못 가졌으니 나만 갖고 싶다는 이유로 닥치는대로 사들이게 됩니다. 가난한 부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 책은 E.F 슈마허를 비롯해 에크하르트, 장 자크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가 한 말들을 '자발적 가난'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엮은 책입니다. 2003년 4월에 출판된 책의 보급판으로 재생 종이에 인쇄해서 그랬겠지만 좀 더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가격도 좀 내렸고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빈곤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목차를 한번 보시죠.
1. 자발적 가난을 위하여
2. 가난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3. 가만히 욕망을 들여다보기
4.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
5. 생산의 논리는 생명의 논리가 아니다
6. 생명의 논리
7.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자로 살아가라
8.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다
9. 단순하게 살아라
10. 자발적 가난과 현대 사회
이 책의 권두언을 쓴 안드레 밴던브뤼크의 마지막 말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이 책은 가난한 부자들, 필요 이상의 부를 소유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소비 지향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숨막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닫기
* 부가 가져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단순히 소유를 포기하는 것 보다는 그것을 추구하게끔 하는 가치관의 재정립이 중요하다.
* 조금이라도 과잉의 기미가 보이는 곳에서, 즉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고 난 후 불필요한 것들이 삶을 어지럽히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 사람들은 보통 빈곤과 가난을 혼동한다. 이러한 실수는 빈곤과 가난이 서로 이웃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 나는 세상의 어떤 부자도 인간애의 진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발전에 헌신한다는 소수의 부자들조차 마찬가지다. 오직 위대하고 순수한 인격만이 고귀한 관념과 고귀한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돈은 이기주의를 부르고 불가피한 남용을 끌어들인다. 카네기의 지갑으로 무장한 모세나 예수 또는 간디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알버트 아인슈타인-
(프린스턴 대학의 수표를 책갈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문명의 진정한 의미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욕구를 축소하는 것이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의 축소만이 오로지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간디 -
* 우리의 소비 습관과 낭비, 우리의 취향과 우리의 방탕한 생활 수준, 그리고 우리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진행되는 가난에 대한 토론은 위선이다. 도덕적 질문에 대한 기술적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 테오도르 로자크 -
* 처음에는 심술궂은 의지에서 탐욕이 솟아나지만, 채워짐에 따라 탐욕은 습관이 된다. 그리고 저항하지 않는 습관은 필수가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 -
* 자연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우리 손닿는 곳에 마련해 두었다는 것은 놀라운 섭리이다. 하지만 자연은 철과 금, 은 등은(모두 피와 학살의 도구이며 그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닌) 지구 밑바닥에 깊숙이 숨겨 두었다. - 세네카 -
* 모든 낭비 중에서도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이다. - 러스킨 -
* 난파되어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들만 소유하라. - 알가잘리 -
* 노동은 자유 시간의 반대말이다. 그러나 여가의 반대말은 아니다. 여가란 다른 세계에 속한 자유 시간이다. 우리는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 누구든지 자유 시간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여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 시간은 특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특정한 방법을 가리킨다. 여가는 존재의 차원을 가리킨다. - 세바스티안 데 그라지아 -
* 특정한 목표나 돈, 명성이나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조차 일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 스와미 비베카난다 -
*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미묘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요, 학파를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혜로움이 시키는 대로 단순한 삶을 살며, 그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 소로 -
* 위대한 사회는 값을 묻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가치 또한 물으며, 부를 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쓸지도 묻는다. - 린든 잭슨 -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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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는 단계'라는 글에서 도박을 그만두어야 할 내면의 이유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도박을 그만두고자 하는 도박자가 단계에 따라 다른 이유를 찾는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는데 있어 밟아나가는 단계를 안다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좀 더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탈도박 단계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탈도박을 하는 단계는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단계: 도박이 하고 싶지만 억지로 참는 단계
: 모든 도박 중독자가 1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었을 때 다양한 금단 증상을 경험하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돈이 필요하거나 하면 도박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일시적이나마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참는 것이죠. 이 단계에 있는 도박자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서 도박을 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도박 자금 마련, 갑작스럽게 여유 시간이 생김, 도박 장소에 근접하게 됨, 감시하는 가족의 부재 등)에 따라 다시 도박에 손을 대게 될 위험성이 큽니다.
이 단계는 사실 도박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도박자가 충동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2단계: 도박이 두려워서 차마 못하는 단계
: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거나 치료를 시작하는 도박 중독자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속하게 되는 단계가 바로 도박을 두려워하는 단계입니다. 도박의 부정적인 결과를 몇 차례 반복해서 경험하였기 때문에 다시 도박에 손을 대게 되면 결과가 어떠할 지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가 너무도 두렵기 때문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이전에 '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는 단계' 글에서 설명드린 2단계와 일치하는데 특정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도박을 못하는 것이죠. 물론 이 단계를 안정화시키면 평생 도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만 도박 충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단도박을 하고 계시나 여전히 자신감이 없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다고 생각). 또한
목표가 사라지면 봉인이 풀린 것처럼 더 없이 강해진 도박 충동에 다시 시달리게 될 위험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의 평안을 위해 도박을 참고 있는 도박자가 다른 이유로 이혼하게 되면 탈도박의 목표를 상실하게 된 것이므로 도박에 다시 손을 대고 싶은 욕구에 저항할 힘을 잃게 되는 것이죠.
* 3단계: 도박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단계
: 이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도박을 하지 않는 이유가 외부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는 단계' 글에서 말씀드린 3단계인 내면에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관과 어긋나기 때문에 도박을 다시 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혐오감을 느끼게 됩니다. 도박에 중독되지 않은 일반인처럼 도박에 대한 흥미 자체를 느끼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도박 중독자에게 그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박에 대한 혐오감을 갖는 것은 훌륭한 대안 중 하나입니다.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대상에게 다가가려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도박을 혐오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도박과 관련된 자극(장소, 사람, 시간 등)을 피하게 되어 도박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됩니다.
도박에 중독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현재 자신이 어떤 단계에 속해 있는지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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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를 만나는 상담자는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기간을 계속 연장하는 것이 도박 중독 치유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 걸 결국은 깨닫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도박을 계속 하면서 도박 중독이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결국 도박 중독 치유의 목표는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치유된 도박 중독자는 도박을 그만둬야 합니다.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그만두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속칭 '바닥 치기'를 통해 도박 중독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감하고 두려워서 도박을 끊는 것입니다. 이 경로는 탈도박이 아닌 단도박이기 때문에 도박자는 평생 도박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고 두려움이 어떤 이유로든 감소하면 다시 도박에 손을 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경우는 진정한 치유가 일어났다고 보지 않습니다.
두 번째 경로는 도박 중독으로 인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잊었던 의미를 찾으며,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도박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연스레 도박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전자가 수동적으로 도박을 끊는 것(단도박)이라면 후자는 능동적으로 도박을 내려놓는 것(탈도박)입니다.
당연히 상담자는 단도박이 아닌 탈도박을 목표로 해야 하며 도박 중독으로 야기되는 제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는 반드시 도박자의 미래 삶과 의미, 가치관에 대해 다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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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신건강과 관련된 현장의 실태는 이렇습니다.
정신과 의사들 이외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 심리치료를 허락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에 발목이 묶여 있는 동안 정작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만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심리치료 및 상담 영역은 퇴보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작금의 실태에 대한 정신의학계 원로들의 개탄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자성의 목소리로 인해 변화의 낌새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회의적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작 중요한 내담자의 권리와 사생활 보호, 상담자의 윤리관, 가치관 문제 등이 소홀하게 취급될 수 밖에 없습니다. 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임상 심리학회만 하더라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session이 한번도 없었으며 최근에서야 겨우 치료자의 직접 윤리에 대해 routine한 교육 과정을 개설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윤리 문제가 적절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임상가들은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필요한 지침서를 읽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척박한 우리나라 임상 윤리 분야의 황무지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제대로 된 윤리 관련 서적이 전무합니다).
심리치료 분야에 발 좀 담궜다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접했을, 그 유명한 Corey 부부가 쓴 이 책은 2007년에 발행된 7판입니다. 그걸 서경현, 정성진 두 분이 번역을 했고요.
그래도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간이기 때문에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윤리적 문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종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이와 역전이 문제 뿐 아니라 상담자의 가치관, 종교관 문제, 다문화적 관점과 다양성의 문제, 비밀 보장 및 사생활 보호 문제, 다중관계 문제, 치료자의 자격과 수련 문제, supervision 문제,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 부부 및 가족 치료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 집단 상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 등 현장에서 심리치료와 상담을 하는 임상가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윤리 문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개 방식이 참 마음에 드는데 우선 각 장의 맨 처음에 Likert 형 척도를 이용한 자기 점검 문항이 제시됩니다. 이 문항에 나름대로 답을 하면서 앞으로 소개될 내용의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예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윤리적 딜레마를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 사례 제시가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무릎을 칠 정도로 안성맞춤입니다. 그리고 말미에는 각 장의 내용 요약과 함께 role playing을 통해 그 장에서 다룬 내용을 실습할 수 있도록 '추천 활동'을 소개해 놓아서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윤리 문제에 대한 맥을 잡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의료관리체계(managed care system)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공개 문제와 다문화적 관점을 다룬 부분은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25,000 원이라는, 학생들은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책값 뿐입니다.
소장까지는 권장하지 않지만 현장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을 담당하는 전문가라면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읽어보셔야 하는 책입니다. 빌려서라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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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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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차별을 애써 부정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차별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로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책을 한번 쯤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차별은 얼핏 보기에는 색깔도 옅고,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안개와 같이 은근하고 끈적거리며 그래서 더 추악하게 느껴집니다.
이 소설은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사회의 차별과 고정관념에 맞선 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곁에서 바라보는 딸의 정신적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저자인 '하퍼 리'가 1960년에 쓴 책으로 하퍼 리는 평생 이 책 한 권만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출간 이후 하퍼 리에게 퓰리쳐 상을 안겨 주었으며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진 뒤에는 아카데미 상까지 석권을 하였고 지금까지 3,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미국 사회에서 차별이 가장 일상화되어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차별을 인식하고 싸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강변하는 듯 합니다.
이 책은 서강대의 김욱동 교수가 다시 번역해 내놓은 개정판인데 철저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번역 의도는 좋지만 흑인들의 말투를 우리나라 사투리에 빗대어 번역한 투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꼭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읽을수록 입맛이 영 깔깔하거든요.
꽤 두꺼운 책이고 주제도 상당히 무겁지만 쉽게 빨리 읽히는 장점이 있으니 부담없이 도전해봄직 합니다.
덧1. 앵무새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그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 흑인들, 더 나아가서 차별받는 모든 대상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덧2.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mockingbird는 사실 앵무새가 아니라 '흉내쟁이지빠귀'라는 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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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총선 투표일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낙후된 지역에 속하는 곳입니다. 강남이든 강북이든 어느 쪽으로도 30분 안에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인데다, 20분 거리에 대학교가 4개나 있는 고등 교육의 중심지이고 서울 권역 최저 체감 물가에, 공기도 맑아 (제게는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지만 땅값이 가장 안 오르는 지역 중 하나인데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평소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지난 총선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열풍에 힘입어 민주당 의원이 탄생했고 이번에는 한나라당 의원 탄생이 점쳐지는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종부세 대상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이곳의 지역구민 대부분은 그야말로 액면가나 속사정이 모두 골수 서민입니다. 그런데도 4번째 도전하는 한나라당 출신이 안타까워 이번에는 찍어줘야겠다는 민심이 스물스물 안개처럼 퍼진 곳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서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으며, 그 비스무리한 정책 실현을 위해 노력한 적 조차 없는데도 뻔뻔하게 서민을 위한다며 침도 안 바르고 또 다시 더러운 거짓말을 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요새 혈압이 도무지 떨어지지를 않는군요)
그래도 저는 한나라당 싹쓸이 저지를 위한 견제론을 들고 나온 민주당에 제 한 표를 던지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제 양심이 시키는대로, 제 가치관이 시키는대로 진보신당에 표를 던질 겁니다. 진보신당이 공천한 후보자가 '듣보잡'이라고 할지라도 서슴없이 제 한표를 던질겁니다. 그래서 그 후보자가 조금이라도 더 힘을 얻고 심기일전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듣보잡' 후보에게 표를 던질겁니다.
왜냐하면 제 양심과 제 가치관은 저를 '서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는 서민을 위한 정당인 진보신당에 표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진보신당을 지지한 결과로 표가 분산되고 견제가 실패해서 대운하 공사가 시작되고 의보 민영화가 도래한다면 그것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고난이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당할 고난이라면 차라리 뼈와 살이 산산히 부서지는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고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가 잊더라도 온몸에 각인되어 다시는 잊지 못할 교훈이 되도록.... 그리고 그 교훈을 잊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도래하는지를 국민 모두가 몸서리치게 깨닫는 계기가 되도록... 어설프게 고생하니까 금새 잊고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겁니다.
어쩌겠습니까.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게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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