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쳐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한낮의 우울'로 유명한, 앤드루 솔로몬의 역작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Far from the Tree, 2012)'를 북 크로싱합니다.
10년에 걸쳐 300가구가 넘는 가족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고 그 범위도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조현병', '장애', '신동', '강간', '범죄', '트랜스젠더'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다름'을 다룬 책 중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건 1,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 뿐입니다. 그래도 번역이 워낙 뛰어나 읽기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사전 압도되지 마시고 한번쯤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강력 추천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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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한데다 충분히 길지도 않아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 다독가라고 해도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들 중 평생동안 만날 수 있는 수가 극히 한정적입니다. 그러니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아주 큰 행운이자 행복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의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은 퓰리쳐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한낮의 우울'로 더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데 저는 이 책을 먼저 읽고 감명을 받아 한낮의 우울을 추가로 구매했죠.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기쁜 일인데 그것이 인생의 역작 수준의 책이라면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올 2월 초에 소개한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1985)' 포스팅에서 2018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 두 권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한 권이 읽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였고, 다른 한 권이 바로 이 책(정확하게는 두 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입니다.
무려 1,600페이지에 달하는 44,000 원짜리 하드커버 시리즈가 어떻게 제 책 구매 리스트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인생 책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무려 10년에 걸쳐 300가구가 넘는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4만 페이지의 인터뷰 내용의 집대성입니다.
내용은 책 제목대로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와 당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다름'의 범위가 '청각 장애', '소인증','다운증후군', '자폐증', '조현병', '장애', '신동', '강간', '범죄', '트랜스젠더'에 이릅니다.
그 '다름'은 거의 대부분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당사자와 부모 상당수는 때로는 용기로, 때로는 체념으로, 때로는 운명으로, 때로는 신의 시험으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그 운명을 선택하고 용감하게 살아나갑니다.
제 전공과 관련하여 평소 익숙한 주제도 있었지만 상상도 못했던 내용이 많아서 읽으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와 관련해서는 농문화를 지키기 위해 인공 와우 수술에 반대하는 청각 장애 커뮤니티의 입장이라든가, 자신과 같은 장애아를 갖기 위해 유전적 취약성을 가진 대리모를 일부러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제가 얼마나 생각이 좁은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일의 특성 상 나름 '다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깨인사람이라고 자평하고 있었는데 그런 오만함을 산산히 부숴주는 고마운 책이었네요.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심리학 전공자 뿐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하는 좋은 책입니다. 일단 읽어보시면 출판사가 띠지에 '인류에 대한 관점을 바꿀 21세기 심리학적 권리장전'이라고 인쇄해 놓은 것을 보고 코웃음을 치기 어려울 겁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닫기* 가족은 차이를 둘러싼 관용과 불관용의 시험대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이런 과정이 강조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시급한 장소이다. *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부모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에 우울해한다.
* 이례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오히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다.
* 자녀가 행복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보다 불행하더라도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을 더 바랄 정도로 우리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수평적 정체성을 증오한다.
* 가끔은 그 다양성 때문에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다양성이 감소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다. 특별히 누군가 게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게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나 자신이 그리워진다.
*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인지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더욱 힘들어한다.
* 고치려는 태도는 질병 모델이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정체성 모델이다.
* 나는 차이의 범주를 탐구하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이나 부족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느 면에서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 다양한 문제를 안고 태어난 아동들을 관찰한 연구에 의하면, 명백하게 ‘의미를 찾으려고 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어머니의 아이들이 보다 나은 발달 결과를 보였다’
* 위계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조차 그들 사이에 또 다른 위계를 세우고자 하는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들어온다.
* 수화는 대개 좌뇌(언어를 관장하는 영역이며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 영역에서 소리와 문자화된 정보를 처리한다)의 영향을 받는다. 우뇌(시각적인 정보와 몸짓의 감정적인 내용을 처리한다)의 영향력은 훨씬 미미한 수준이다.
* 청각 장애 아동은 건청인 아이가 제1언어를 습득할 때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수화를 배운다.
* 수화를 금지한다고 청각 장애 아동이 발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 능력을 저하시킬 뿐이다.
-> 2장 '청각 장애'까지만 줄을 치면서 읽었고 줄을 쳐야 할 곳이 너무 많다고 느껴져서 이후에는 줄치며 읽는 걸 포기했습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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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소개한
'트라우마(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1997)'라는 좋은 책을 쓴 Judith Lewis Herman의 책입니다. 1981년에 나온 책이니 '트라우마'보다 16년이나 앞선 책인데 반대 순서로 읽었네요.
사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이 이름을 알린 책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바로 이 책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그녀가 임상 장면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근친 성 학대 경험을 가진 여성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 문제에 관한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것이 1975년이었고 이후 6년에 걸쳐 40명의 근친 성 학대 피해 여성에 대한 실제 임상 연구와 정신건강센터, 아동보호기관, 법 집행기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나는 가정의 복잡한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 결과가 바로 이 책입니다. 1981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후 그동안 사회가 외면하고 감춰왔던 근친 성학대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미국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죠.
이 소개 포스팅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는 근친 성 학대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은밀한 성격과 사회가 이를 다루는 태도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거의 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은 근친 성 학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제가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죠).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설문 조사 자료, 임상 자료, 인류학 문헌, 대중 잡지 그리고 포르노그래피 등에 근거한 현상을 현상학적으로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피해자 및 그들의 치료자와 나눈 면담에 근거한 임상 연구 내용을 담았습니다.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근친 성 학대가 드러난 뒤의 위기 개입, 가족 치료, 사법 처리 등의 내용을 실었고 치유와 예방의 가능성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근친 성폭력에 대해서는 이 책 한권만 읽으면 될 정도로 내용이 충실합니다. 물론 이 책부터 시작해서 좀 더 깊이있는 독서를 해야겠지만요.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아래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소개한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 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1994)'의 저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를 아주 강한 어조로 심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저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근친 성폭력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프터스는 학자의 입장에서 거짓 기억 증후군을 증명했던 것 뿐이죠. 다만 근친 성 학대 가해자와 이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연구 결과를 법정과 언론에서 악용했기 때문에 로프터스가 욕을 먹는 겁니다. 저는 근친 성폭력과 거짓 기억 증후군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상가들은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먼저 읽고
'트라우마의 치유(Coping with Trauma : Hope through Understanding, 2005)'를 읽은 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1997)'를 읽는 순서를 권장합니다.
아동 성폭력 관련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특히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임상가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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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 정당화의 심리학(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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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 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1994)
닫기
* 아동의 성적인 '권리'에 대한 뚜쟁이의 관심은 아동이 공장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공장주의 관심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거의 대부분의 증거는, 아동에게 성인, 특히 믿었던 가족, 친척과의 성적인 접촉이 장기간에 걸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 어머니의 부재라는 주제는 어떠한 형태로든 근친 성 학대 이야기의 배경에서 항상 발견된다.
* 사실 아버지의 의존 욕구는 어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자녀의 욕구를 능가해 버린다. 왜냐하면 만일 어머니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아버지를 보살피지 못하면 그녀를 대신할 누군가 다른 여성을 찾는 일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장 흔하게는 맏딸이 선택된다. 이런 가정에서 누군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아버지가 떠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어머니가 부재 상태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무능한 경우, 딸들이 성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아주 높다.
* 건강한 어머니와의 강한 친화 관계만이 최소한으로나마 성 학대로부터 딸을 보호할 수 있다.
* 생물학적 학설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짝짓기에 대한 장벽이 어머니와 아들의 짝짓기에 대한 것보다 왜 더 약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심리학적 이론 역시 금기를 준수하는 일에서 드러나는 성별상의 차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 어머니들은 자기 억제 능력이 훨씬 큰 반면, 아버지들은 성적인 착취 행동을 나타내는 경향이 더 큰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화의 심오한 차이를 낳은 노동의 성적 분화 때문이다.
* 강간, 아동 성추행, 그리고 근친 성 학대를 포함하여,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 행동 경향은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 남성 사회화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
* 어느 문화권에서든, 남성 우월주의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노동의 성적 분화는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지며, 아버지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 금기는 더 빈번하게 위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근친 성 학대를 보면 아버지와 아동이 혈연 관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관계가 의존 상태에 놓인 아동에 대해 아버지 입장에 있는 힘을 가진 성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아동에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가르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도록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동의 유대는 이미 타락한 것이다.
* 근친 성 학대를 하는 아버지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힘을 사용하여 가족들을 지배하려는 경향이다. 그런데도 많은 연구나 관찰자들에 의해 이러한 아버지들이 무력하고 의존적이며 심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들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상대적인 힘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
* 아버지의 불만은 단조로우리만큼 너무 단순하다. 가정에서 응당 받아야 할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게 아버지들의 불만이다. 아내가 돌덩이처럼 무뚝뚝하고 냉정하며 성관계를 거부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불만은 어머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딸들에게는 충분히 그럴듯하게 보인다.
* 일반적인 성폭력과 달리 근친 성 학대에서는 가해자가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힘을 사용할 필요 자체가 없다.
* 근친 성 학대 아버지들을 관찰한 일부 연구자들은 이들의 행동이 바로 충족되지 못한 의존적인 소망과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 많은 임상의들은 근친 사이에서 성 학대를 당한 아동에게서 불특정한 증상들이 관찰된다고 말하는데 피해 아동 상당수는 어렸을 때 강박적이고 의식적인 성 행동을 하여 식견이 있는 관찰자로 하여금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하기도 한다.
* 어떤 사례에서도 근친 성 학대가 아버지에 의해 끝나는 일은 없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불평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감정이었다. 많은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다르거'나,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해 보였지만 스스로는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냉담하고 믿을 수 없는 남성이나 가장 심하게는 노골적으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남성에게 빠져드는 것 같다.
* 결혼한 피해 여성의 가장 평범한 호소는 남편이 자신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성들을 과대평가하거나 이상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의 타인과의 성적인 친밀함을 추구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은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분노를 느꼈다. 이들은 어머니를 향한 쓰라린 고통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여성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 노골적인 근친 성 학대의 가장 효과적인 방패막은 아버지의 충동 조절이 아니라 어머니가 행사하는 사회적인 통제 정도이다.
* 세 가지 관점이 중요하며 모든 관련 전문가들이 이에 동의한다. 근친 성 학대 아버지의 힘을 제한하고 조절할 필요성. 어머니의 힘을 강화하고 촉진시킬 필요성. 모녀 관계를 회복할 필요성.
* 근친 성 학대 비밀의 폭로에 직면한 많은 어머니들이 필사적으로 딸의 호소를 부인하려 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만약 그녀가 딸의 말을 믿는다면 얻을 것은 하나도 없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딸은 가족 내에서 엄청난 위험에 빠지게 된다.
* 성 학대를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외부인이 아버지와 공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외부인이 딸이나 어머니, 또는 가족 전체와 맺는 관계는 근친 성 학대 범죄가 알려지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아버지를 보호하고 법률을 위반한다.
* 경험적으로 창안된 모든 체계들이 지닌 공통적 특징은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위기 개입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 비밀을 누설하고 나면, 딸은 상당한 재확인을 필요로 한다. 먼저 그녀의 말을 믿는다는 것, 둘째로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셋째로 앞으로 성 학대로부터나, 비밀을 깼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자행할지도 모르는 앙갚음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라는 내용을 그녀가 확실하게 전달받을 필요가 있다.
* 여러 가지 이유에서 딸보다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딸을 집에서 분리하는 일은 딸에게 맞서 부모가 서로 결탁하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반면, 아버지의 분리는 딸에게 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고, 어머니에게는 스스로 기능할 기회를 제공한다.
* 근친 성 학대 피해자의 치료에서 이들이 가장 잘 배워야 하는 것은 자신을 주장하는 방법이다. 곧 다른 사람의 욕구나 감정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자신의 욕구를 말해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구타, 학대, 통제, 지배, 순종, 굴복,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한 것이다.
* 성 범죄자들을 치료하는데 비밀 유지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치료자가 환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하도록 추천하기 전에, 반드시 그 일이 가족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평가하고 이해해야 한다.
* Murray Bowen과 Salvador Minuchin 같은 이론가가 개발한 전통적인 가족 치료는 근친 성폭행 범죄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 학파의 치료적 개입은 남성의 지배성을 회복하려는 형태를 취하기 쉬운데 남성의 지배성은 근친 성폭행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전혀 회복할 필요가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 성 범죄자를 위한 가장 성공적인 치료 프로그램은 치료에 응하지 않으면 법적인 제재라는 채찍이 부가된 중독 치료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 근친 성 폭력 범죄자의 집단 치료에서 집단 내 잘 통제된 신체 접촉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들에게 성적인 관계 밖에서도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 성 학대 가해자 치료 집단은 치료자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일 때, 곧 지도자의 권위가 명확하고, 선물의 규칙을 강화하며, 자비로운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가해자의 상태가 개선되는지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사람은 가해자 자신이 아니라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어야 한다.
* 어떤 경우든 아버지들은 다음 세 조건이 합치하지 않는 한 가족들로부터 다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첫째, 아버지는 법원의 감독을 받아야 한며, 둘쨰,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셋째, 근친 성 학대 관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수용하고 모든 가족이 보는 앞에서 딸에게 용서를 청하는 차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 세 조건은 적어도 딸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편안과 안전감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 부모의 재결합을 결코 치료의 최종 지점이나 성공의 규준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가족 관계 회복을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지표는 어머니-딸 관계의 건강성이다.
* 이론상으로 아동 성 학대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격하지만 실제로 처벌은 거의 그렇게 집행되지 않는다.
* 구타나 강간과 같은 반복적인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혹시 성 학대 경험이 없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알코올이나 마약 의존 증세를 지닌 여성이나 사춘기에 남다른 방황이나 가출 경험을 지닌 여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거나 집에 계시지 않았던 여성,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른처럼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던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도 그런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들이 아동기 성 학대 경험과 너무 빈번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의 환자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치료자의 직무 태만이다.
* 여성 치료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환자가 공유하지 못하는 데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다. 이런 실수는 피해자와 자신의 극단적인 동일시로부터 나온다. 이는 거의 대부분 피해자로부터 매우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은 자주 아버지보다 어머니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느끼며, 때로는 그녀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보살핌과 애정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치료자가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환자는 치료자가 그녀로부터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관계를 빼앗으려 애를 쓴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피해자는 치료자가 악의나 질투심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곧바로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라이벌이라는 그녀의 신념을 확인시킨다.
* 치료에 도움이 되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주요한 요인은 환자로 하여금 맨 처음 도움을 찾도록 만든 것과 똑같은 문제, 곧 수치심과 전혀 희망이 없다는 감정 그리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가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 환자가 치료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그 일에 관하여 털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그 문제는 일반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여겨질 수 없다.
*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서 치유는 어머니-딸 사이의 유대 회복으로부터 시작하듯이, 근친 성 학대의 예방은 궁극적으로 딸이 절대로 근친 성 학대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지점으로까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강화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덧. 이 책은 나중에 저도 참고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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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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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이매진 출판사를 통해 2011년에 내놓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자기 치유서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여성운동 단체로 1991년에 문을 연 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6만 7천 회 이상의 상담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온 곳입니다.
이 책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5명의 전문가가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낸 책으로 피해자(요새는 생존자라는 말을 더 많이 쓰죠)의 입장에서 성폭력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목표 설정, 개인적인 해결, 사법 제도를 통한 해결, 소속 집단 안에서 해결하는 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데이트 성폭력, 친족 성폭력, 대학 내 성폭력, 아동 성폭력 등 유형별로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4부에서 치유에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정리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피해자의 이미지를 넘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리더십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결하라고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냥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담 전문가가 옆에서 차근차근 하나씩 일러주는 것처럼 꼼꼼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든든합니다.
이 책이 원래 목표했던 것처럼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자기 치유서로도 손색이 없고 성폭력 생존자를 만나는 현장 전문가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사소한 단점 몇 가지를 지적하자면 그냥 책 뒤에 추천사 몇 줄만 수록하면 될 것을 서론처럼 본문에 수록했기에 읽기도 전에 김이 좀 빠집니다. 이건 서설이 긴 걸 아주 싫어하는 제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글에서 혹평한 적이 있는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가 함께 쓴 '결혼제국'을 추천하고 있는 것에 실망해서 별을 하나 뺐습니다. 아무리 자기네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책을 추천하다니 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까지 읽은 성폭력 서적 중 단연코 최고의 책입니다.
닫기
* 많은 피해 경험자들은 적어도 가해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은 일의 가장 확실한 목격자는 바로 나라는 점을 스스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자신이 겪은 성폭력 경험을 묻어두지 않고 꺼내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고통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입니다. 최종 법정에서 상대방이 높은 형을 받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사건 해결을 통해 내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기쁨과 해방감을 되찾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죠.
* 가해자, 경찰 수사관, 검사, 법정의 판사, 가해자 측 변호인은 흔히 성폭력 피해자는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무기력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강간, 추행, 성폭행 등으로 불리던 것을 묶어 '성폭력'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폭력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성폭력의 원인이나 발생 구조를 탐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자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 변치 않는 중심의 핵심은 '내가 원하는 건 뭐지?'라는 질문의 답입니다.
* 사과문은 가해자 측에서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받아들여야' 효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 합의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공증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 가해자 교육은 가해자에게 성찰과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에게 변화의 기회를 줬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과 불균형하던 힘을 회복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 2009년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형사 재판에서도 성폭력 피해 사건에서 배상 명령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배상 명령을 받을 경우 민사 소송을 따로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 여러 번 진술을 반복하지 않도록 16세 미만 어린이와 장애인의 경우 반드시 진술을 비디오로 녹화해야 하고, 청소년이나 성인도 진술 녹화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 수사 절차 상 다음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신뢰하는 사람의 동석이 의무화되었습니다.
- 특수 강도 강간이나 특수 강간
- 친족이 가해자인 강간
- 장애인이 피해자인 강간
- 13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강간, 강제 추행
- 강간 등의 가해 때문에 상해, 치상을 입은 경우
- 업무상 위력을 이용한 추행, 추행 미수인 경우
* 민사 소송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안 날부터 3년 안에 제기해야 합니다.
* 공판 절차에서 피해자의 심경과 의견을 담은 탄원서나 진정서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가해 사실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하면 오히려 무고죄 등 역고소를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가해자와 합의할 때는 반드시 가해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 더 유의할 것은 가해자가 여러 명일 때 1명과 합의를 하고 고소 취하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고소할 수 없게 됩니다. 반면 비친고죄 범죄는 합의를 하더라도 수사가 계속 진행됩니다.
* 직접적인 강제 추행이 없거나 가벼운 정도의 신체적 추행, 언어적 성희롱 등은 아직 성폭력 관련 형사법에 포함되지 않아 사법적 해결이 어려우니 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 성희롱이나 스토킹은 형사적인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 나에게 위해를 가한 남자친구나 애인 등을 '가해자'라고 명명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꼭 필요한 일입니다.
* 친족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 피해를 입은 경우,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도 전학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전학'이라고 부르며, 학교 담임 교사, 교장, 보호 시설의 동의를 받고 절차를 밟아 학교를 옮길 수 있습니다.
* 아동 성폭력에서 보통 아동이라고 하면 13세 미만을 가리키며, 6세까지를 유아로, 13세까지를 아동으로 봅니다.
* 언론 보도에서 아동 성폭력 가해자는 소아 성기호자이거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묘사가 되지만, 실제로 소아 성기호증 등 정신 질환 때문에 아동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전체 아동 성폭력 범죄자 중 10% 미만에 불과합니다.
* 가해자가 14세 미만이라면 형사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 아동과 19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피해 사실을 수사 기관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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