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이름이 알려진 모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단 상담의 실상을 최근에 우연히 전해듣고 충격을 받은 김에 제가 생각하는 집단 상담의 조건에 대해 정리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상담자가 느끼는 난도 순으로 단순히 순서를 매겨 보면,
개인 상담 < 커플 상담 < 집단 상담 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회기에 참여하는 내담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역동이 복잡해지고 그만큼 상담자가 다루어야 하는 경우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실 집단 상담은 아무나 하면 안 됩니다. 상담자 중에서도 고수급(?)인 상담자들이 주로 이끌곤 합니다.
저는 그런 고수도 아닐 뿐 아니라 집단 상담보다는 개인 상담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집단 상담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제 경험 상 집단 상담이 잘 돌아가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게 좋습니다.
1.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homogeneity)
: 제 생각에는 이 조건이 가장 중요한데 집단 상담에 참여하는 내담자의 면면이 비슷할수록 집단 상담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물론 저와 견해를 달리하는 상담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건 그런 상이성을 control할만큼 상담자가 고수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는 다음에 설명할 집단 상담의 목적이 무엇이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도박 중독 집단 상담의 예를 들면 20~30대의 미혼 남성 도박자를 집단으로 구성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기혼자가 끼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도박자가 포함되면 누구나 체감할 정도로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더군요. 가능하면 동질성이 높은 내담자들로 집단을 구성해야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학연, 지연 등 통제 불가능 변인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상담 목표 달성을 위해 곧바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2. 상담 목표의 구체성(specificity)
: 1번 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상담 목표가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구체적이고 세밀할수록 집단 상담의 효과가 커집니다. '대인 관계를 잘 맺고 싶다' 류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5명 이상 크기의 모임에서 10분 이상 발표하면서 시선 처리를 잘 하고 싶다'는 식의 목표가 달성하기 쉽습니다. 저는 집단을 구성할 때 상담 목표를 설정하면서도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을 동시에 고려하는데 '부모의 지나친 개입이 도박 중독 치료에 해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는 미혼의 남성 도박자들로만 집단을 구성'하는 식입니다.
3. 능력있는 상담자의 적극적 개입
: 집단 상담을 진행해 본 경험이 풍부한 상담자일수록 유리하지만 최소한 집단 상담을 이끄는 상담자는 적극적인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집단원이 상처받고 있는데 역동 분석을 한답시고 뒤로 물러나 방관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회기 중 내담자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놓이면 안 됩니다.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시자(beholder)의 역할만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위의 조건들이 집단 상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충분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집단 상담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기 위한 필요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정신 병리 문제의 변별
: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많은 집단 상담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건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 충분 조건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반사회성 성격 장애를 가진 내담자와 수동-의존적 성격 장애를 가진 내담자가 동일한 집단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고 폭력 전과가 있는 남성 내담자와 가정 폭력 외상이 있는 여성 내담자가 한 집단에 속하게 된다면요?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집단 상담이 맞지 않는 내담자들이 있습니다. TCI에서 고립된-겁많은 기질의 소유자로 평가되고 평가 불안이 높은 내담자가 직면이 난무하는 집단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집단 상담에 참여하는 모든 내담자는 세심한 심리평가와 사전 선별 절차를 거쳐 이 집단 상담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지와 다른 내담자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를 세심하게 점검받은 뒤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선별 절차가 없는 집단 상담이라면 절대로 제 내담자를 의뢰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집단 상담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조건을 하나 말씀드리면 집단 상담을 받는 모든 내담자는 개인 상담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은 역동이 많이 다르지만 함께 받을 경우 시너지를 내기 쉽습니다. 특히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자가 개인 상담도 담당하면 더욱 좋지요. 예전에 제가 개인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들만 모아서 집단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상담에서 가장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담자들의 만족도 뿐 아니라 치유 정도도 가장 좋았고요. 물론 도박 중독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한 상담이어서 일반 상담 현장에서 저처럼 진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악의 집단 상담이라면 반대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겠지요. 상담자가 집단 상담의 전문가도 아니고, 집단원의 동질성도 희박하여 중구난방이며, 상담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 감정 폭발이나 상호 비방의 전쟁터가 되기 일쑤이고, 정신 병리 문제를 변별하지 못해 내담자들을 보호할 수 조차 없는.... 저는 그런 걸 상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아수라장이고 그걸 방치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라 가해 방조자입니다.
저는 가해 방조자가 되기를 원하는 상담자는 없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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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부부 갈등 해결을 위한 상담을 진행할 때 어느 배우자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깝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한다는 건 둘이서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이야기이고 대부분 상담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 변화를 강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상담자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겠다고 암만 노력해봤자 잘 되지 않습니다. 각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상담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물론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상담자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처럼 부부 상담에서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공적(公敵)을 자초'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상담자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과 이유를 들어 각 배우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공격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당사자는 아무 변명이나 반격도 할 수 없고 상대편 배우자가 이를 방어(소위 편들기)를 해야 합니다.
한 회기 내에 부부 모두에게 실시해야 하고 상담자가 공격하는 수위는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고요.
이 방법의 강점은 일반적인 부부 상담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부부 연대(또는 동맹)를 촉진한다는 겁니다. 상담자가 외부의 적을 자처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잊고 있었던 상대 배우자의 강점과 좋았던 시절을 remind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면 당장 회기 내에 배우자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친근하게 바뀝니다. 지금까지 적이었는데 과거의 동지를 소환한 것이니까요.
다만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는데,
1. 부부 상담의 목적이 이혼이 아니라 부부 갈등 해결이어야 함
: 간혹 이미 갈라서기로 결정했지만 이혼을 앞두고 재산 분할, 자녀 양육 등 산적한 문제 때문에 심리적 중재가 필요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줄여보려고 부부 상담을 받는 부부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2. 상담자가 배우자 각자에 대한 개인 상담을 충분히 진행했어야 함
: 배우자 각자에 대한 개인 상담을 충분히 진행했어야 한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불만, 악감정을 개인 상담에서 충분히 토로했다는 것과 이 과정을 통해 상담자가 부부 갈등에 영향을 준 각 배우자의 장, 단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부부 상담으로 들어갔을 때 어느 한 쪽 배우자가 아직 남아있는 비난과 험담을 하기 시작하면 이 방법을 쓸 수 없고 상담자가 부부 모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부부 상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특히 힘든 상담자라면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에는 꽤 효과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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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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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담을 받은 적이 없는 저같은 상담자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과연 제대로 상담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래도 상담 관련 서적을 꽤나 읽고 공부했기 때문에 상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대가들의 상담 시연을 담은 동영상도 열심히 복기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어느정도는 흉내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상담 동안에 내담자 뿐 아니라 상담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낱낱이 알 수는 없는 것이죠. 내담자에게 집중하는 상담자일수록 더 모르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런데 이런 제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것만 같았던(과거형이라는데 주목~) 책을 찾았습니다. 제목부터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 출판부에서 나온 이 책은 임상심리학 박사인 Paul, L. Wachtel이 썼습니다. Wachtel은 특이하게도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의 양쪽 field 모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치료자로 어찌 보면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가지 접근을 접목하여 활용하는 임상가입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심리치료의 원리와 가정들에 대한 이론적인 소개와 함께 이 책에 실린 심리치료 사례를 보는 관점인 two-person perspective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부부터 문제입니다. 1부가 너무 장황하고 산만해요. 비유하자면 양식 코스에서 전채인 샐러드를 계속 리필해주다보니 정작 스테이크를 음미할 식욕이 남지 않는거죠. 2부가 두 명의 내담자와 진행한 3 session의 심리치료를 two-person perspective에 따라 상담 중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하는 main part인데 이걸 읽기도 전에 김이 확 빠져서 동기가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부는 그야말로 각 session의 vebatim을 낱낱이 풀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서문의 거창한 발문과 달리 맥이 빠질 정도로 평범합니다. 일반적인 사례 분석집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을 모두 취한다길래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게다가 원서라는 걸 감안하면.... ㅠ.ㅠ
3부에서는 지난 회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부분인데 이 역시 2부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ㅡㅡ;;;;
번역서도 아니고 원서(현재 아마존에서 49.95$)라는 걸 감안하면 그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양가 있는 사례 관련 책을 찾기 위해 계속 try 해 볼 예정이니 찾으면 곧바로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북 크로싱을 할 예정이오니 직접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도저히 추천은 못 드립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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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상담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개인 상담보다 집단 상담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집단 상담을 하게 되면 더 긴장하고 요모조모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내담자가 한 명이라면 그 내담자만 신경쓰면 되고 저와 그 내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만 다루면 되지만 집단 상담에서는 집단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의 경우 수가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도 많이 발생합니다. 집단원의 수가 늘면 늘수록 그에 비례해 더 많아지겠지요.
오늘은 집단원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반치료적 역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6~8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 중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과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있다고 해 보죠(저는 특정 문제를 선별적으로 다루는 특수한 치료 집단이 아니라면 남녀 청소년을 한 집단 내에 배정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집단 회기가 진행되면서 동병상련의 정으로 서로 가까워진 두 학생이 서로 사귀게 됩니다(여학생이 더 좋아하는 양상). 이 두 학생은 각각 다른 상담자에게 개인 상담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학생은 품행 문제가 심각한 상태이고 여학생은 상담 동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등교 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개인/집단 상담에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문제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가출을 권유하거나 술, 담배 등을 권하는 등 기존에 아무런 품행 문제가 없었던 여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각 상담자가 개인 상담에서 이 문제를 각각 다루었으나 남학생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여학생은 강하게 반발해서 자기들 사이에 개입하면 모든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협박합니다.
집단 상담을 이끄는 상담자와 개인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상담자들이 모여서 대처 방안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단 상담은 참여하는 내담자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 모델이 되거나, 의지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치료적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장점이 역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든 경우가 대표적이죠.
상담자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점은 상담자가 모든 내담자를 구원할 수는 없으며 구원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구원자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 안타깝게도 두 청소년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의 관계는 반치유적인 관계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묵인하면 상담이라는 방패 뒤에서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개인 상담이든 집단 상담이든 목적과 치료 계약의 적용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담자가 다른 내담자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거나 심한 경우 결탁하여 반치료적으로 행동할 때 상담자는 필요하다면 과감히 치료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면서 질질 끌려가기만 하면 결국은 내담자의 치료 선택권도 보장해 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집단 상담의 경우 남은 집단원에게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담자가 개인 상담에서 각 내담자와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었다면 본인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빨리 조치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내담자끼리 파괴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만 더 커지게 되니까요.
그러니
집단 상담에서 내담자끼리 반치료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 그 관계부터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제일 좋은 건 치료 계약 조건을 꼼꼼히 점검해서 그런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만...
집단 상담에 참석한 내담자끼리 왜 사귀면 안되느냐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중 관계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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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상담은 성인 대상의 상담과 많이 다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성인과 달리 아동/청소년은 대부분 부모나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방문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본적인 신뢰감이 부족한 내담자가 많아서 성인보다 훨씬 더 라포 형성이 중요하고 또 어렵습니다.
또한 라포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심리치료 기법이나 상담 기술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기 상담의 효과가 제한적인 것도 상담자에게 꽤 큰 부담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동/청소년 상담은 시작도 라포에서 시작하고 끝도 라포에서 끝난다고 봐도 될 정도로 라포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라포 형성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 하나는
'완전하게 진실하기'입니다.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달지 않고 어떠한 순간이든 솔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성인의 경우에도 진실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 상담이 진정한 치유를 야기하는 걸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basic trust rebuilding이 중요한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완전한 진실성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상담자가 '이 정도는 숨겨도 되겠지'. '치유를 위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잖아', '모든 것을 말하는 게 내담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같은 여지를 두면서 상담한다면 라포 형성은 어림없습니다. '완전하게 진실하기'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 가능합니다.
사실 완전하게 진실하기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것만으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원칙까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내담자의 편 되기'입니다. 이 원칙도 그냥 선언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이어야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최소한 상담 내용이나 심리평가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부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내용('
부모가 아동/청소년의 심리평가 원자료를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내담자의 치유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내담자의 편에 서서 내담자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강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길은 요원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 형성의 시작은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 이를 위한 두 가지 원칙. 1) 완전하게 진실하기, 2) 내담자의 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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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할 때 부인과 남편이 상담을 받기 위해 함께 나오면 참 좋겠지만 배우자 중 어느 한 쪽만 먼저 상담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부부를 동시에 상담할 때의 장점보다 문제가 더 많을 때도 있어 일부러 따로 상담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부부가 함께 나오더라도 초기에는 따로 상담을 하고 어느 정도 개인 상담이 진행된 이후에 양쪽 모두의 동의를 받아 부부 상담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부부를 각각 상담할 때 꽤 많은 내담자가 부부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해결하고자 자신의 입장을 상담자가 잘 정리하여 상대방 배우자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때로는 그런 교통정리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교통경찰의 역할이 부부 상담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 상담자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상담자가 부부 사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 쪽 배우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담자의 견해나 주관이 개입되어 왜곡된 내용이 전달됨으로써 오해가 더 커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특히 상담자는 내담자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담자가 한 명인 개인 상담과 달리 부부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부부 관계이자 갈등 상태인 배우자 2명이므로 어느 한 쪽의 편만 들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한 배우자가 상담자가 중립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갔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렵게 생성한 rapport가 깨질 위험성이 큽니다.
게다가 부부 상담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배우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지각한 주관적인 두 현실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알 수도 없는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하다가는 정작 부부 상담의 상담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상담자는 해결사나 전략가가 아닙니다. 부부 스스로 부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어설픈 메신저나 중재역을 자처해 상담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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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내면에서부터 인정하고 치유 과정을 시작하는 도박자가 거의 없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중독이 그렇지만 도박 중독은 특히 이런 병식의 부족이 심한 편이죠. 겉으로는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있다고 시인하지만 속으로는 이를 인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이차적인 이득을 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치유가 상당히 더딘 편이죠.
저는 요새 도박 중독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상담에 푹 빠져 있는데 개인 상담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치료적 역동을 체감하면서 전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다음의 내용은 몇 주 전 집단 상담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도박자들이 치유되면서 상담에 임하게 되는 자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증언한 내용입니다.
1단계는 가족에 의해 억지로 끌려서 오는 단계입니다. 도박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극성을 부린다고 생각하며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면 도박을 끊거나 조절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진정으로 상담을 받아 치유되고픈 마음이 거의 없습니다. 상담을 받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배우자의 협박이나 노부모의 간절한 애원에 못 이기는 척 오곤 합니다. 물론 상담이 제대로 진척될리가 만무하죠.
2단계는 도박으로 인한 문제를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고 가족과의 갈등이 격화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당장 도박 빚 독촉이라든가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해져서 스트레스가 급증하고 이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담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도박 문제가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인정하지 않으며 표면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상담을 종결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다 나았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제가 볼 때 대부분의 실수(slip)나 재발(relapse)은 2단계와 3단계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 같더군요.
3단계는 상담자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고맙고 좋아서 오는 단계입니다. 도박 충동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고 가족 간 갈등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그럼에도 아직은 상담을 종결할 자신이 없는 도박자가 이 단계에 많습니다. 사실 도박자가 자신의 도박 문제를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나 사람이 주변에 없죠. 가족에게 이야기 해 봤자 가족을 걱정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핀잔이나 듣기 일쑤라서 도박자를 지지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상담자가 유일하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상담자는 항상 준비되어 있지만 이전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그런 상담자가 보이지 않을 뿐이죠. 상담자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4단계는 자신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지 상담자에게 자랑하러, 상담자의 인정을 받고 싶어 오는 단계입니다. 그동안 상담자가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삶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되돌아보게 되고 이제 자신이 상담자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구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단계이죠. 도박자가 이 단계에 이르면 상담자는 다소의 섭섭함을 느끼는 한편 상담 종결을 준비하게 됩니다.
상담을 받고 있는 도박자라면 본인이 어떤 단계에 속해 있는지 한번쯤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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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내담자의 자아 존중감(self esteem)과 상담자의 feedback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자아 존중감이 높은 내담자가 상담자로부터 부정적인 feedback을 받게 되면(평가가 낮은 경우)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하는 방법은 상담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상담자와 충분한 rapport가 형성되기 이전에 탈락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involvement가 된 상태라면 그 다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담자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rapport가 충분히 형성되고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하게 되면 상담자를 폄하하는 것으로 불일치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 시점이 되면 내담자는 상담자의 feedback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봄으로써 변화의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사실은 상담 현장에서는 이와 반대의 경우가 더 흔한데,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이 상담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내담자는 상담자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을 때 보통 자신을 폄하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겸손함(?)은 또 다른 긍정적인 평가를 더하게 됩니다. 물론 집단 상담처럼 다른 내담자들을 통해 positive feedback을 받게 되는 상황이 더 바람직하지만 개인 상담에서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자신의 일상 문제를 'here & now'의 원칙에 의거 상담 상황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상담이 진행되면서 상담에서 느낀 자신의 장점을 차츰 일상 생활에 일반화함으로써 자아 존중감이 높아질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상담자와 충분한 신뢰 관계를 쌓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확한 feedback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담자의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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