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에 '상담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TCI 기질 유형 : HHH 기질'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심리평가에서 수동-공격성 기질로 분류되는 수검자가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와 함께 수동-공격성 기질을 가진 내담자의 문제 행동과 갈등 양상이 DSM 체계에서 말하는 경계선 성격 장애 환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설명한 글이었죠.
제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경계선 성격 장애처럼 보이는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실제로는 수동-공격성 성격 장애이고 정작 경계선 성격 장애는 소위 '위축형' 경계선 성격 장애여서 A군이나 C군 성격 장애와 변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TCI에서 수동-공격성 기질로 분류되는 내담자의 수가 만만치 않게 많기에 언제 마음잡고 공부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검색을 좀 해 봤는데 미국에서도 Passive-Aggressive Personality Disorder를 다루는 저서나 논문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책 두 권을 주문했는데 이 책이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Debbie Mirza인데 임상, 상담 전문가는 아니고 작가이자 가수인 일반인입니다. Passive Aggressive Personality Disorder 환자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생존자로 다른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치유 경험에 생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더해 수동-공격성 성격 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 같은 형태로 쓴 겁니다.
임상, 상담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라서 조금은 가볍게 워밍업하는 마음으로 손에 들었는데 대부분 제가 아는 내용이고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해서 별 2개로 평가했습니다. 남은 1권은 임상 전문가가 쓴 책이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볼 밖에요.
그래도 수동-공격성 성격 장애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은 거의 들어 있으니 원서에 익숙한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에서는 수동-공격성 성격 장애로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하위 유형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DSM 체계에서 본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Overt형으로, 수동-공격성 성격 장애는 Covert형으로 구분해서 은밀하고 드러나지 않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 유형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이 책은 아래의 목차만 봐도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씌여 있습니다.
* Covert Passive-Aggressive Narcissist란?
* 세 가지 단계 : Love Bombing, Devaluing, Discard
* Target의 특징
* Covert Narcissist의 특징
* Control, Manipulation 전략
* Covert Narcissist인 부모
* 일터에서 만나는 Covert Narcissist
* Covert Narcissist와 성관계하는 문제
* Covert Narcissist와 이혼하기
* 왜 그들은 정서적, 심리적으로 학대하는가?
* 그들의 가장 위험한 특징
* 당신의 몸은 안다
* 생존자들이 느끼는 것
* 치유와 회복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는 원서 리딩에 익숙한 분을 제외하고는 일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마땅한 한글책이 없기는 하지만 굳이 챙겨 읽을 정도의 정보가는 없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공부를 좀 더 꼼꼼히 하는 게 나은 수준이니까요.
닫기
* 많은 경우 그들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바로 그 때 당신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는 경향이 있다.
* 그들이 당신에게 하는 비난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당신에게 투사하는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Covert Narcissist의 특징
- They do not have a strong sense of self
- Silent Rage
- Lying
- Hoovering
- Constant Criticism
- Jealousy
- They project their own issues on to you
- Their words don't match their actions
- They are emotionally disconnected
- Flying monkeys
- They take credit for your ideas
- They withhold praise and recognition
- They sabotage birthdays, holidays, vacations, and meaningful dates
- They belittle you and "teach you lessons"
- They are self-focused and emotionally immature
- There are always strings attached
- They use people
- They are dizzying conversationalists
- They create drama
- They don't make love; they take it
- They are not protective
- They create stories in their head
- They have no desire to know you
- They have no interest in making great relationship
- Control and manipulation
* 누군가 당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당신이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 Gaslighting의 목적은 당신을 destabilize하는 것이다. 그 결과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된다.
* 대부분 희생자의 공통점은 그들이 self-reflective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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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진단받을 정도의 성격 문제를 보이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경계선 기질이라고 하면 TCI 결과에서 HHH 유형으로 구분되는 기질인데 이러한 기질을 성격이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경계선 성격 문제가 되고 심하면 경계선 성격장애로 발전하게 되는거지요.
하지만 성격 발달에 문제가 없어서 건강한 성격을 발달시킨 사람이라면 경계선 기질을 가졌다고 모두 경계선 성격장애로 이환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격으로 기질의 조절 기능에 문제가 없는 경계선 기질의 소유자는 일상 생활의 대인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할까요?
자극추구기질과 위험회피기질의 상대적 상승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계선 기질의 소유자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기질이 모두 높은 수준이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일'과 '사랑' 중 일의 영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해도 '사랑'의 영역인 대인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경계선 기질인 사람은 다가감과 물러섬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경계선 기질인 사람을 흔히 '북극에 사는 고슴도치'에 비유하는데 북극에 살기 때문에 추우니 체온을 나눌 대상을 찾지만(자극추구 기질의 작동, 다가감의 동력)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방의 가시에 찔려서 아프기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떨어지게 됩니다(위험회피 기질의 작동, 물러섬의 동력). 떨어지면 다시 추워지니 또 상대방을 찾게 되고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다가감과 물러섬을 계속 반복하게 되니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겁다는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다가가면 가시에 찔려서 아프다는 건 고슴도치인 상대방만 찾기 때문에 그런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고슴도치가 아니더라도 경계선 기질의 사람은 상대방을 고슴도치인 양 대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만든 고슴도치 이미지에 찔려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경계선 기질인 사람은 적당한 거리(너무 물러서서 춥지 않고 너무 다가가서 찔리지 않는)를 유지하는 걸 배워야 하고 다가감과 물러섬을 반복할 때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그 적당한 거리라는게 얼마나 되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게 스스로 안 되는 분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좀 더 수월하겠지요.
이 포스팅을 위해 고슴도치의 비유를 들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경계선 기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등의 혈육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왜 이런 불편한 기질을 타고났는지 자책하지 않는 겁니다.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착취하려는 '노예상인 유형'이나 자신에게 기생하려는 '기생충 유형'을 변별하고 걸러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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