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하면서는 그래도 제 정치 성향이 드러날 트윗을 남기기는 했어도 그동안 개인적으로 어느 정치 세력을지지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 적이 거의 없고
포스팅을 하면 계속 남게 되는 블로그에서는 더더군다나 밝히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투표 독려나 했었죠. referer log를 살펴보다 허지웅씨 블로그에서 유입된 링크가 있길래 따라가보니 작년 총선 때에도 진보신당(지금의 진보신당과는 다른)을 지지한다는
'포스팅'을 이미 한 적이 있더군요. 이 죽일 놈의 기억력~
그래서 그동안 비판적 지지를 한답시고 소위 될 놈만 찍어온 저로서는 나름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글입니다.
앞으로는 될 놈이 아닌 되어야 할 놈을 찍을 것이며 노동자라는 제 계급적 정체성에 충실한 정당과 정치세력만을 지지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트위터에서 이미 공언한 것처럼 앞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새누리당은 왜 빼느냐고 물으신다면 새누리당은 차마 정당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이익단체이니까요.
그래서 사회당과 통합한 것을 축하드리고 이번 선거를 비롯해 앞으로도 (당분간은)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사표가 되어도 좋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다행히 제가 사는 지역에도 진보신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 주셔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 좋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영선 후보는 지난 선거 때 뵙고 4년 만에 다시 얼굴을 뵙는데 진보신당의 심재옥 후보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정치에 둔감한 저도 잘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이번에 꼭 3%넘어서 김순자 여사님 꼭 원내 진출하시기 바라고 홍세화 대표님도 함께 가셨으면 좋겠네요.
덧. 제가 가진 표가 한 표라서 너무 죄송합니다. 녹색당 여러분들. 마음으로나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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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생의 글은 월덴 3에서도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2005)'와
'예수전(2009)'을 통해 두어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김규항 선생은 진보로 평가되는 인물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드리지만 김규항 선생의 글에 대한 평가는 제 높은 선호도를 어느 정도 감안하여 보셔야 합니다.
이 책은 2005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각종 매체에 실린 기고글과 일기, 각종 단상을 모아서 펴낸 것입니다. 연도 별로 글꼭지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왜냐?
출판사인 리더스하우스의 편집자도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사회적 맥락을 알고 읽어야만 글 속의 함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길게 소개할 필요가 없는 책입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읽을 때마다 저를 변화시킵니다. 제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요즘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진모씨의 화려하지만 뒷맛 쓴 글빨과는 그래서 차원을 달리한다고 평가합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곰씹어 볼수록 달고 몸에도 이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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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 상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그에게서 배우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만 혹은 위로만 흐르지 않는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도 위로도 흐른다. 그럴 때 예의는 비로소 품위가 된다. *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지배 체제와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를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런 자들은 실은 예수의 명성을 빌려 제 말을 할 뿐이다. * 회개란 교회에 안 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 지금 우리의 적은 군사 파시즘이나 그 잔재들이 아니라 새로운 파시즘, 자본의 파시즘입니다. * 세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눈, 즉 교양이다. 물론 교양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정직한 태도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 결국 세상에 대한 견해나 태도는 세상을 세로로 나누려는 세력과 가로로 나누려는 세력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 태도나 견해란 민족이나 국가로 은폐된 세상을 애써 계급으로 나누어보려는, 그 실체를 보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노력의 가장 실제적인 방해물이 이른바 '국익'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이라는 것, 인민에게 필요한 건 국익이 아니라 계급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바로 개혁 우파 세력이다. 개혁 세력은 수구 세력의 도움으로 진보로 포장할 수 있었고 개혁이 진보를 자처하니 극우파인 수구는 아주 멀쩡한 보수로 행세할 수 있었다. * 실천으로 드러낼 수 없다면 다른 게 아니다. * 지배계급은 언제나 인민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개념 흐리기'를 사용한다. *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리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 오늘 한국 사회가 미궁에 빠지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민주화가 실은 자본화(신자유주의화)였다는 것,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국가권력이 자본을 거느리는(박정희가 이병철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에서 자본이 국가권력을 거느리는(이건희가 노무현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로 변화했다. * 비폭력주의는 서재나 연구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사자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 현장의 아픔과 당사자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비폭력주의는 폭력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옹호자이자 당사자에겐 폭력보다 더 가혹한 폭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비폭력주의자가 아닙니다. * 우리가 늘 잊곤 하는 사실은,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은 보수 반동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라도 어딘데' 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 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더해질 때 비로소 그 최소한의 꼴을 갖춘다.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눔은,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 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을 대변한다. * 진실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존경이든. *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 * 듣기 싫든 좋든 그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에 집중하면 돼. 그래야 똑똑한 사람이다. *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실제 삶에 실천하는 것.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특히 친노(노빠라 부르기는 저도 참 싫군요)들께서는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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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박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이 책을 제대로 이해 못한 제 지적 능력의 부족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우선 밝혀 둡니다.
일찌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일독하는데 실패한터라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사카모토 류이치(트친님의 지적을 받고 이게 더 적절한 것 같아서 수정~)'로 불리는 가라타니 고진의 대표작인 이 책의 득을 좀 보려는 불손한 마음을 품고 독서를 시작했는데 제 사유의 얄팍함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그래도 끝까지 읽기는 읽었습니다!)
1970년대 일본의 신좌익 운동이 극적으로 붕괴되어 마르크스에 대한 회의론이 넘실대던 그 당시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한 가라타니 고진의 시도 자체도 대단하지만 마르크스에서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가능성의 중심에 두고 해석해 나간 노력도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황'을 정책 실패로 야기된 예외적인 비상사태에 불과하다고 본 고전 경제학에 맞서 오히려 공황을 자본제경제의 고유한 측면으로 본 정신분석적 접근이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하나 계급이 단지 경제적인 공통점만으로 성립하지 못하고 당파나 담론을 통해서만 계급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그러니 계급은 사실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독되어야 할 것으로 존재하겠지요.
저처럼 마르크스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추천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처럼 헤매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최소한 자본론 정도는 일독한 분들만 도전하세요. ㅠㅜ
덧. 투정아닌 투정을 좀 부려보자면 제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마르크스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절반이 안 되는 120페이지에서 끝납니다. 나머지는 '역사에 대하여 - 다케다 다이준', '계급에 대하여 - 나쓰메 소세키론I', '문학에 대하여 - 나쓰메 소세키론II'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책 한 권이 몽땅 마르크스 이야기였다고 해도 어차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겁니다만;;;;)?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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