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에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좀 말라는 의미의
'박사 학위는 대체 왜 그렇게 따라고 난리인가'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근 5년이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왜 계속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셔서 심심한 김에 국내 심리학 박사 학위 무용론 포스팅 2탄이나 써 보렵니다.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소위 말하는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부 출신이 아니거나,
당신이 SKY 출신이 아닌 경우 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거나,
하다 못해 당신이 지원하려는 그 학교 학부 출신이 아니라면,
당신이 국내 심리학과의 교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한번 디벼 보겠습니다.
일단 한국 심리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심리학 혹은 심리학 관련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대학 정보를 싹 긁었습니다. 그 다음에 학교 별로 교수 명단을 확보하여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분류하였습니다.
* 분류기준
1. 학부가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인지 여부
2. 학부가 SKY가 아닌 경우 외국 박사인지 여부
3. 교수로 재직 중인 그 학교 학부 출신인지 여부
자 그럼 이 세 가지 분류 기준을 통과하여 학부가 SKY 출신이 아니고 외국 박사도 아니며 그 학교 학부 출신도 아닌 국내 박사 교수가 국내 심리학과에 몇 %나 있는지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대학을 다 조사 못한 이유는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 입맛에 맞는 대학만 임의로 뽑은 것이 아닙니다. 리스트의 위에서부터 차례로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말이죠. 이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은 여기 제시한 대학 명단에서 빠진 대학을 하나 선택해서 본인이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별로 큰 차이가 없을거라고 장담합니다.
* 서울대학교(12) : 서울대11, 전북대(Rutgers대) :
전멸
* 고려대학교(14) : 서울대3, 고려대9, 연세대. 서강대(Massachusetts 주립대) :
전멸
* 연세대학교(15) : 서울대4, 연세대8, 고려대, South Florida대, Smith대 :
전멸
보시다시피 SKY 심리학과는 세 기준을 통과하는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고려대는 자대 학부 출신 교수가 60% 이상, 연세대는 자대 학부 출신 교수가 50% 이상입니다. 서울대는 압도적인 90% 이상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성주 교수 정말 대단하군요(저랑 대학원을 같이 다녔다능~). 보시다시피 SKY 출신이 아닌 국내 박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이제 그 밖의 수도권 심리학과 개설 대학을 살펴보죠. 최근 3년 사이에 신규 임용된 교수들의 경우 학부를 확인하는 것이 아주 어렵더군요. 감안해 주세요.
* 성균관대학교(6) : 서울대3, 성균관대2(Nebraska대, Pitsburgh대), 장혜인(Pittsburgh대) :
전멸
* 성신여자대학교(7) : 서울대3, 고려대, 연세대, 이대(Georgia대), 성균관대(California대) :
전멸
* 서강대학교(7) : 서울대3, 연세대2, 고려대, Boston대 :
전멸
* 이화여자대학교(9) : 서울대, 이대2(Iowa대, Massachusetts 주립대), 이대, 양윤(Kansas 주립대), 안현의(Wisconsin대), 이승연(Iowa대), 설경옥(Minnesota대), 김수영(Wisconsin대) :
전멸
* 중앙대학교(8) : 서울대, 연세대2, 중앙대2, 중앙대3(Western Michigan, 동경대, Duke대) :
전멸
* 덕성여자대학교(7) : 고려대2, 이종숙(Iowa대), 오영희(Wisconsin대), 주은선(Chicago대), 김미리혜(New York 주립대), 김제중(Vanderbilt대) :
전멸
* 아주대학교(8) : 서울대3, 고려대3, 신강현(Kansas 주립대), 단국대(서울대박사) :
1명
보시는 것처럼 성균관대, 성신여대, 서강대, 이화여대, 중앙대, 덕성여대 모두 전멸이고 아주대학교에서 단국대 학부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박사를 하신 교수님이 딱 한 분 계십니다. 그게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1% 교수로 불리는 100만 부 베스트셀러의 작가인 이민규 교수님입니다. ㅡㅡ;;;
말 나온 김에 더 보죠. 수도권 이하 지방에 위치한 대학들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한림대학교(8) : 서울대6, 연세대, 이대(Michigan 주립대) :
전멸
* 광운대학교(7)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3, 성균관대2(Iowa주립대, Kansas 주립대) :
전멸
* 부산대학교(7) : 서울대4, 고려대, 부산대(서울대), 부산대 :
전멸
* 호서대학교 산업심리학과(6) : 서울대4, 이대(Texas Austin대), 호서대 :
전멸
* 전남대학교(9) : 서울대2, 한규석(Ohio대), 윤가현(Georgia대), 노안영(Kentucky대), 김문수(California대), 강영신(Northeastern대), 박형인(Central Michigan대), 이혜진(Wisconsin대) :
전멸
* 우석대학교(4)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박영주(프랑스 리용 2대학) :
전멸
*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4) : 고려대, 연세대2 , 성균관대 유전공학과(고대) :
1명
* 충북대학교(10) : 서울대4, 고려대, 연세대, 이대2(Brown대, Purdue대), 박광배(Illinois대), 부산대 :
1명
* 강원대학교(5)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2 :
2명
* 경북대학교(7) : 서울대, 경북대(Florida 주립대), 이대(Purdue대), 경북대, 충남대(New Mexico 주립대), 서강대, 중앙대 :
2명
* 가톨릭대학교(13) : 서울대6, 고려대, 성심여대(Ohio대), 전북대(Arkansas 주립대), 정승철(프랑스파리제10대학), 최은실(이대), 한양대2 :
3명
* 대구 가톨릭대학교(4) : 서울대, 성균관대, 영남대, 아주대 :
3명
* 계명대학교(7) : 고려대2, 박권생(Texas Austin대), 김남균(Connecticut대), 성균관대, 중앙대, 손은정(이대) :
3명
보시는 것처럼 지방으로 내려가면 완전 전멸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 전체 교수 중 비 SKY, 비 외국 박사, 비 자대 출신 교수의 비중이 50%를 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찾아본 곳 중에서는 대구 가톨릭대학교가 유일했습니다. 지방대를 목표로 한다고 해도 절대로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버대학교를 살펴보겠습니다. 간혹 사이버대학교를 국내 심리학 박사의 탈출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 고려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18) : 연세대7, 고려대2, 강원대(뉴욕주립대), 부산대(Florida대), Western Ontario대, 이대, 가톨릭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성결대 :
5명
*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2) : 영남대(계명대), 서강대(고려대) :
2명
* 한양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9) : 서울대3,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Maryland대), 전북대(George Washington대), 이대, 숭실대 :
2명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를 제외하고는 비율이 오히려 더 떨어집니다. 한양사이버대학교의 경우는 20%도 안 되고 고려사이버대학교의 경우도 30%를 넘지 못합니다.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의 경우 100% 비 SKY, 비 유학파, 비 자대 출신 교수인데 그 2명이 누구냐 하면 영화치료로 유명한 심영섭 선생님하고 심리학 개론 및 카운피아로 유명한 전종국 선생님이에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본인이 SKY 학부 출신이 아니고, 국내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데 자대 출신 교수 지망을 할 게 아니라면 국내 심리학과 교수가 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이제 아시겠지요? 죄송하지만 꿈 깨세요.
아, 물론 심리학과가 아닌 유사 학과까지 외연을 넓히면 가능성은 조금은 더 커지겠지만 저는 희망을 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낮은 확률을 바라보고, 이 늦은(?) 나이에 국내 박사 학위 취득에 도전한다는 건 솔직히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로또도 아니고 말이죠. 게다가 저처럼 인맥 관리 못하는 사람은 더 어렵죠.
그런 의미에서 박사 학위 과정에 기웃거릴 시간에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지금이라도 박사 과정에 들어가라는 되도 않는 오지랖 좀 그만 부리셨으면 좋겠네요.
덧.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순수하게 공부가 좋아서, 개업하려고,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하려고, 기타 등등 그 밖의 다른 목표를 위해 박사 학위에 도전하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포스팅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박사 학위만 있으면 어떻게든 심리학과 교수가 될 수 있겠지 하고 막연하게 감 떨어지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과 제 자신에게 경고하기 위한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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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전공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죠. 사회 심리학 전공자는 사회의 심리 현상에 끌리는 것이고, 범죄 심리학 전공자는 범죄자의 심리에 끌리는 것이죠. 조직 심리학 전공자는 조직 내의 심리 현상에 끌려야 맞겠지만 저는 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갔기 때문에 저같은 예외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무작정 일반화는 금물). ^^;;;
또한 임상 심리 전공자들에게 회자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자신의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강박 장애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이거나 평소 강박적이기 때문이고, 사회적 지지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사회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등등. 이 역시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선,후배, 동기의 논문 주제와 그들의 특성을 맞춰 봤을 때 의외로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제가 앞에서 심리학계, 임상심리학계에서 회자되는 농담을 왜 구구절절히 이야기했냐 하면 그만큼 임상, 상담 분야에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처럼 임상, 상담 심리학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때문에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도 많거든요. 전문가가 되었다고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임상가가 되었을 경우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가 없고 그로 인해 치유가 답보 상태에 이르거나 도리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환자/내담자는 건강한 임상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산술적 기회라도 있으니 환자/내담자를 신체적/정신적으로 가해하는 예외 경우가 아니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두 번째 경우인데요. 바로 그런 임상가가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임상 현장에서 supervisor로 일하는 겁니다. 수련 과정이 철저한 도제 관계 시스템을 따르는 임상, 상담 심리학의 경우 그런 병리적인 임상가를 만나는 경우 전문가가 되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추는 건 둘째치고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입어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꺾이게 됩니다.
제 경험만해도 충분히 우수하고 재능있는 임상가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훨훨 날지 못하는 걸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봤고 지금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는 임상,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많으니 좋은 학교, 좋은 시험 성적, 좋은 스펙 등만 따지지 병리적인 사람을 걸러내는 건 별로 관심도 없고 설사 사전에 알고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할 임상가들의 마음이 병들게 되고, 일단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갇혀 치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서 자신만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지도 교수나 supervisor에게 인신공격을 당했거나, 폭언을 들었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어서 우울하고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자신이 가는 길이 후회되는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당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선,후배, 동료 세 사람에게 그 지도교수내지는 supervisor에 대한 의견을 물으세요. 세 명 모두 한 입으로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당했던, 혹은 당하고 있는 것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임상, 상담 현장에는 존경스러운 선배들도 물론 계시지만 실력과 인격 모두 형편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임상가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이 길러질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세요. 그건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합니다.
수련 때는 어떻게 해도 시간이 가니 힘들더라도 중도에 그만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버텨서 전문가가 되라는 말을 들었던 저도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짜배기 전문가와 허당을 구분하는 눈은 확실히 생기니 염려하지 마시고요.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나와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할 때까지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말고 흘려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꼭 명심하세요.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덧. 내 지도교수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내 supervisor는 존경할 만한 임상가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거냐고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로또를 맞았기 때문이고 그 행운은 축하합니다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이 바닥에 병적인 임상가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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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상담 불문하고 최소한 supervisor라면 이 정도의 역할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정확한 지식 전달
임상가들이 수련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지식과 정보를 그동안 학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면 이미 현장 supervisor들의 애로사항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만 제가 10년 이상 학회를 지켜본 결과 난망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각개격파, 구명도생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수련 현장에 따른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인데 그나마 많은 환자가 몰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과 접점이 많아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밖에 없는 종합병원급 기관은 일이 많아서 힘들어 죽을지언정 실력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or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니까요(물론 그런 기관에서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만 죽이고 앉아 있는 무능한 supervisor도 있습니다만 그건 개인적인 문제이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고요). 예를 들어 최근에 DSM-5가 출시되었는데 번역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눈치만 보는 건 supervisor의 자세가 아닙니다. DSM-5는 도입 시점이 문제이지 DSM-IV를 계속 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당장 원판을 구입해서 읽고 정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북 세미나 한답시고 엄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에게 번역, 정리 맡기는 짓 하지 마시고요.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reference가 있는 지식과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지식을 구분해서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윗 supervisor에게 배웠던 지식만 알음알음 끌어모아서 울궈먹을 수 있거든요. 제가 최근에 제 supervisee 선생님들께 reference를 자주 물어보는데 제대로 답변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supervisor들께서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그 지식이 항상 업데이트되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2. 동기 부여
첫 번째 역할로 말씀드린 정확한 지식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 부여이며,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확한 지식 전달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임상, 상담 현장의 일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샘솟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야 계속 하고 싶고 그래야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련 과정에서 동기마저 충천하지 않다면 수련 과정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에 빠지거나 쉽게 질려서 무력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건 supervisor 스스로가 동기 부여가 안 되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 없거나 무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진 supervisor라면 이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supervisee들까지 함정에 빠뜨려 공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가능하면 동기 부여는 사명감보다는 흥미 유발과 재미 찾기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임상, 상담 현장은 사명감과 소명 의식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내담자/피검자의 문제를 다룰 때 진지해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임상가들에게 엄숙주의를 강요하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도제식 수련제도 때문에 힘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이상한 교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3. 핵우산 기능
이건 다른 직능 영역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는 supervisor에게만 해당됩니다만 개업 상담센터나 대학 교수가 아닌 이상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supervisor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맞을 겁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들과 일을 하거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의 선생님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관에 속한 supervisor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핵우산 기능합니다. 여러 직종이나 직능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는 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사전달과정이 모호하거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때로는 똥물이 튀는 것이 싫어서 희생양을 찾아서 떠넘기는 일도 생기게 되고, 업무 진행 상 약한 부서나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죠. 그런데 그럴 때 자기 하나 살자고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옆으로 비켜서거나 의사를 비롯한 다른 직능 전문가의 뒤에 숨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서서 나 하나만 믿고 의지하는 supervisee들을 위해 산화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뭐 그런다고 supervisor가 잘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엄살 부리지 마시고요). 유능한 중재자가 못 된다면 최소한 싸움닭이 되는 것 만큼은 피하면 안 됩니다.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론조사하면 supervisor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만 내빼거나 쏟아지는 압력을 몸으로 막아내기는 커녕 완장찬 마름처럼 되려 횡포를 부릴 때가 당당히 1위가 될거라는데 제 금쪽같은 돈 500원을 걸겠습니다.
존경받는 supervisor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력과 성품을 겸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쓰며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랫사람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supervisor의 역할이고요.
오늘도 현장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계신 수많은 supervisor 선생님들 힘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장래의 동반자가 될 supervisee 선생님들이 모두 잠재적인 우군이니까요. 그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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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책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장애인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 입문서로 더 없이 좋은 훌륭한 책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내용이 그리 밝지 않은데다 출판사가 책 디자인에 별로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더군요. 추천을 받은 책이 아니었다면 저도 선뜻 집어들기 어려웠을 겁니다. 책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 또한 중요한(어찌보면 내용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요.
이 책은 장애와 관련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공부하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장애와 관련있는 학과의 교수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계시는 분도 있고 NGO에서 일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 중에는 실제 장애인도 있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소설가도 있습니다.
내용도 장애인 정책에 대한 내용, 장애 문화사, 장애와 인권의 관계, 차별과 배제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장애를 다루고 있어요.
이 책은 크게 4부로 내용을 나누어 놨습니다. 1부에서는 장애와 차별이라는 제목으로 장애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장애의 사회사, 사회 속의 장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신체 장애, 3부 에서는 정신 장애, 4부에서는 여성과 장애를 다루고 있는데 어찌 보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거리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김형수 씨의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글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이 글 꼭지를 좀 더 진지하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장애(신체 장애, 정신 장애)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서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추천드립니다.
닫기
* 공식적인 장애인 실태 조사에서도 전체의 89.4%가 후천적 장애(2000)일 정도로 장애는 우리 가까이 있다.
* 다양함 혹은 '다름'에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다.
* 국가가 인구를 정상/비정상의 틀에서 보기 시작하면, 다음 순서는 비표준을 규범화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곧 우생학의 목표가 된다. 장애인에 대한 근대 과학주의의 대응이 바로 이 우생학이었다.
* 우생학에 입각한 사회 운동은 1890년대에 미국에서 태동했다.
* 인간의 사회 행동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 형질이 결정한다는 우생학적 명제는 사회 개혁가들의 실패를 정당화해 주었다.
*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대대적으로 유전적 질병이나 장애인들에 대하여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다. 스웨덴의 경우 이 기간에 6만 여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당해야 했다.
* 운동회는 체육의 종목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전시장이면서 마을 공동체를 국가에 끌어들이는 접점이었다. 학교 운동회는 대부분 전쟁 동원에 필요한 육체적 단련을 체육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 1980년대 중반 이후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국내에 정착되었다.
*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WTO 국제장애분류시안'에는 의학적 측면에서의 기능 장애(impairment), 개인 생활적 측면에서의 능력 장애(disability), 그리고 사회 생활적 측면에서의 사회적 불리(handicap)로 분류하고 있다.
* 미국에서 1960년대까지의 장애인 삶의 역사를 시혜의 역사라고 이름 붙인다면, 1970년대 이후는 권리의 역사라고 이름지을 수 있다.
* 자립 생활 운동이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장애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장벽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상이한 취급 금지의 법리'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별하여 명백하게 다른 취급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작업 능률이 떨어지고 결근이 잦다'는 등의 일반적인 통념을 기준으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이는 '상이한 취급'으로 간주된다. 장애인의 결근율이나 산재율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들이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접 차별 금지'란 형식상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별하여 상이한 취급을 하지는 않지만 비장애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현저하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간접 차별에는 본인이 직접 차별하지는 않지만 차별 행위를 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에 의하면 차별적 성향이 강한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것도 차별이다. '적절한 배려의 법리'란 합리적인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이 또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미국의 ADA는 정상화와 차별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특한 것이 있다.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이 된다. 즉 현재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현재에는 장애가 나타나지 않지만 과거에 장애가 나타났던 경우, 그리고 장애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모두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 온전한 평등이란 것은 누군가에게 상대적으로 우월한 관념과 가치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과 그 가치관까지도 이렇듯 평등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되는 것이다.
* 장애인에게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고, 봉사와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 국가나 사회가 우리 나라처럼 편견과 차별에 대한 해답으로 사랑과 봉사를 강조할수록, 그만큼 국가와 사회의 실질적 책임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징벌의 문제를 사랑과 봉사의 이데올로기로 풀려고 하면 할수록 본질에서는 멀어진다. 사랑과 희생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국가와 사회는 임금을 줘야 하는 '프로'의 기용을 그만큼 피할 수 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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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3를 자주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학회와 교수에 대한 제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학회와 교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건강분야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교육 과정의 체계가 하나도 없어 막상 전문가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학회가 정신을 못 차리고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못하고 있고 교수라는 사람들은 기득권에 취한 나머지 이러한 학회의 무능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 과정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당연히 그보다 더 중요한 임상가의 윤리에 대해서는 두 말 할 것도 없겠죠. 임상심리전문가만 해도 자격을 취득한 뒤에 의무적으로 듣게 되어 있는 윤리 교육 달랑 한 번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요새는 분위기가 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만 제 기준으로는 아직 멀었습니다)입니다. 현장에서 부닥칠 수 있는 수많은 윤리 문제들은? "그건 니가 알아서 해" 수준입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개인적인 문제이니 "니가 알아서 책임지고" 물의를 일으킨 수준이 심하면 학회에서 제명하고 땡입니다.
현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윤리적 문제(내담자와의 사적 관계, 개인 정보 보호의 한계, 비용 문제, 종교적인 문제와 가치관 등)와 만나면서 윤리 문제야말로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이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박터지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 전무합니다. 국내 서적은 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실정에 딱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년 9월에 소개한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Issues and Ethics in The Helping Professionals, 2007)'이 있어서 다행인 수준이죠.
서론이 길었는데 그렇다면 2010년 5월에 나온 이 책은 어떨까요?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별 한개도 아까운 책입니다. 장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풀어서 쓰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1. 2010년에 번역이 되었지만 원서는 1994년에 출판된 것이라서 무려 16년이나 된 책입니다. 당연히 그동안 변화해 온 윤리 규정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의 적절성은 둘째치고 아주 구태의연합니다. 이것만 익혀서는 어림도 없는 수준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위에 링크한 Corey의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중독전문가의 윤리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내용이 온통 알코올과 약물의존 분야에만 치우쳐져 있습니다. 도박 중독, 쇼핑 중독, 섹스 중독 등 행위 중독에 대한 부분은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용어 자체가 거의 안 나옵니다. 이 책의 원 저자인 두 사람 모두 알코올 및 약물의존 분야 전문가이니 당연할 수 밖에 없겠지요. 이 분들의 약력을 보면 행위 중독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습니다.
3. 우리나라와 미국의 현실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에 대해 번역자의 각주 하나 안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예전에 중독자였던 사람이 치료자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우 드물죠. 도박 중독 분야만 따지면 제가 알기로 전국에 단 한 명의 상담자만 있을 뿐 입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는 소송이 난무하는 국가이기때문에 임상가가 윤리 규정을 준수하느냐 법적 소송의 가능성을 줄이느냐의 딜레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법 상 책임을 의사가 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별로 없죠. 그게 다행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안 해놨습니다.
4. 게다가 번역 실력이 뛰어난 신성만 선생님이 역자 중 한 명인데도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번역부터가 엉망입니다. 아무리 공동 번역이라고 해도 대표 역자가 원서와 일일이 번역을 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당연하거늘 그런 작업 자체를 안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번역의 질이 형편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중독전문가 협회의 교육 과정을 위해 급조해 번역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5. 이건 학지사의 잘못인데 138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에 13,000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을 책정해 놓았습니다. 협회의 중독전문가 자격을 따려는 수강생들은 이 책을 반드시 사야할테니 그걸 이용해 장사하시려는 건가요?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가격 책정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알코올, 약물의존 분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도박 중독 분야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수준입니다. 미국 등은 지금 알코올, 마약과 전쟁을 치르느라고 도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SCI 등재 journal에도 도박 관련 논문은 거의 올라오지 않고요. 당연히 현장에서 일하는 도박 중독 전문가가 거의 없고 수준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약물 중독과 행위 중독을 하나로 묶어서 중독 전문가로 다루는 것 자체를 반대합니다만 통합한다고 해도 윤리 규정부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게 안 될까요? 무엇보다도 책을 써야 할 수준의 사람들이 더 이상 현장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네 분의 선생님이 일주일에 중독자를 과연 얼마나 만나고 있을까요?
도박 중독 분야는 더 말 할 것도 없고 알코올, 약물의존 분야에서 일할 전문가들에게도 이 책은 꼭 피하라고 권하고 싶은 수준입니다. 읽으면서 시간이 아깝더군요. 차라리 좀 비싸더라도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2007)'를 읽으세요!
덧. 이 책의 뒷면에는 '중독전문가의 윤리에 관해 가장 인정받고 있는 책'이라는 문구가 선명한데 비웃음 밖에 안 나옵니다. 이 정도의 책이 가장 인정받는 책이라면 미국 중독 분야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덧2. 한국중독전문가협회 회장이신 이미형 선생님이 추천사에서 중독전문가 자격증 보급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고 하셨던데 알코올 약물 상담 분야에서 도박 등의 행위 중독을 포함하려고 협회 명칭을 개정한 것이 제가 알기로 작년인가 재작년입니다. 그 전까지 이 협회에서는 도박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신뢰감을 준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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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출판업에 종사하는 분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요새는 심리학이 출판 시장의 대세라고 하네요. 자기 개발(이거 계발이 맞나요? 당췌 헷갈려서 -_-;;;)서와 재테크 서적의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심리학 서적의 세상이 온 겁니다.
그런데 정작 졸업하면 미아리에 돗자리 까는거냐는 비아냥과 조소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고 선배들로부터 10년만 참으면 심리학이 대우받는 세상이 온다는 격려같은 한탄을 들으며 살아온 제게 이런 세태는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거든요.
그래도 나름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서적이라면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고 자부합니다만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심리학 서적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궁금하시면 심리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서적 코너에 가셔서 제가 별 다섯개로 평가한 책이 몇 권이나 있는 지 세어보시면 당장 아실 수 있을겁니다. 그나마도 제가 높게 평가한 책은 현장의 임상가를 위한 전공서적, 그것도 거의 번역서입니다. 일반인들을 위한 책은 제 기억으로 한 권도 없습니다.
이것은 심리학 분야가 일반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큼 여전히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당의정처럼 달달하게만 쓴 책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책 팔아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물론 강력히 후자를 의심하고 있고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2009년~2010년에 쏟아져 나온 '~심리학', '심리학 어쩌고 저쩌고로 살펴본 ~'류의 책 중에서 정말 좋은 심리학 책이 있나요? 몇 번 책 소개를 하면서 뻔한 사회 심리학 개념을 재탕하는 것을 한탄한 적이 있는데 사회 심리학의 개념들이 무슨 사골입니까? 재탕하게.
자신들만의 상아탑에 갖혀 상호소통을 하지 못하는 심리학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심리학이야 오해를 받든 말든 자본주의 파도의 서핑을 즐기는 얼치기 심리학자들은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
얼치기 심리학자들이나 제대로 안 파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넘들입니다.
당장 심리학과의 경쟁률이 폭등하여 어느 학교는 의대 다음으로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제 블로그만 해도 최근 들어 임상심리전문가, 상담심리전문가를 꿈꾸는 분들의 방문 수가 월등히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수련 기관이 모자라 수련을 받기 위한 재수는 필수요, 삼수도 필수라는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해줍니다. 선택받은 몇 몇을 제외하면 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비정규직의 길을 걸어야 하거나(특히 박사급 전문가는 길이 없습니다) 프리랜서로 평생 심리평가만 하면서 치료자의 길을 접어야 하는데도 아무도 심리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심리치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심리평가만 해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하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아무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지 않습니다.
미팅에 나가 심리학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기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만날 때 심리학을 했다고 하면 관심을 보이는 게 기분 좋아요?
언제까지 관심에 취해서 헤롱헤롱거리면서 살 겁니까?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것과 모자란 것을 점검하고 함께 나누고 쌓아서 제대로 된 전문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심리학과를 들어갔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한 번 좌절하고 수련 기관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두 번 좌절하고, 가까스로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마지막으로 좌절해서 치료자의 꿈은 어디로 갔는지 프리랜서로 아둥바둥 일하다가 그냥 모교 대학원에 박사 과정으로 들어가서 주저앉는 걸 이제는 그만해야 합니다. 모두 다 교수가 될 수도 없지만 교수가 되고 난 이후에 심리평가도 심리치료도 supervision도 모두 내려놓고 그냥 대학생들에게 사기치면서 띵까띵까 정년만 보장받으려는 보신주의도 이제는 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별 것도 아닌 심리학 개념을 사골 우려먹듯이 재탕하면서 사람들에게 팔아먹는 짓거리부터 때려치워야 합니다.
책 좀 팔리고 인세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 된 듯 으쓱하겠지만 나중에 나이 먹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신차리세요. 그 때 가서 물릴 수도 없어요.
요새는 사기치는 것이 쉬운 만큼이나 물리기가 어렵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인간으로 살기는 참으로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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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그렇게 교수와 박사를 미워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조만간 포스팅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또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김에 정리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어느 정도 상통하는 점은 있지만 제 생각은 심리학, 그 중에서도 임상 심리학 분야에 국한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분야의 사정에 대해서는 관심 자체가 없으며 다른 심리학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은 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 다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리학 하위 분야 중에서도 임상 심리학은 임상심리전문가라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때문에 영역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즉 사회 심리학 교수와 임상 심리학 교수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교수와 박사에 대해 각각 갖고 있는 감정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현재의 제 입장은 임상 심리학 박사 무용론에 가깝기 때문에 제가 박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정심이나 안쓰러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임상 심리학 교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혐오감'에 가깝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왜 임상 심리학 교수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느냐...
이유를 대자면 뭐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파렴치하기 때문입니다. 파렴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임상 심리학 분야에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범하고 있는 직무유기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 개선 노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혹 인식 자체가 없다면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임상 심리학 교수들은 그런 멍청한 인간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득권에 안착한 존재들이며 대개 지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인지 결함으로 면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개는 임상 심리 분야의 현실을 잘 아는 전문가 출신들이지요. 그러니 전혀 면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혐오하지 않는 임상 심리학 교수가 현재 있느냐....
아주 드물게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희망적인 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가 혐오하지 않을 수준의 역할을 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의 기준은 뭘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임상 심리학 분야는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기 때문에 교수들도 이를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자격입니다.
모든 임상 심리학 교수는 최소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대학원이 있는 학교의 경우 부속병원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 개설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거나 부속병원에 연결된 수련 과정을 개설하지 못한 임상 심리학 교수는 부끄러워 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참고로 바로 이 조건의 희생자가 바로 접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지만요.
둘째, 역할입니다. 이건 자격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조건이야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만 역할은 곧 교수의 실력이고 지도 학생의 실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명색이 임상 심리학 교수라면
심리평가/치료/연구 및 supervision의 세 핵심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심리평가의 경우 1주일에 최소 1case의 Full Battery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며(연 52회/비교를 위해 제 경우 연 평균 150여 회를 실시합니다), 심리치료의 경우 역시 1주일에 최소 2case의 치료를 실시해야 하며(연 104시간/제 경우 연 평균 750시간),supervision의 경우에도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각각 최소 주 1회 대면 supervision을 실시해야 합니다(각각 연 52회/제 경우 심리치료와 심리평가 supervision 각각 연 평균 150여 회)연구의 경우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A급 학술지에 단독 저자로 최소 2년에 1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의를 많이 하고 보직을 맡아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와 비교해 볼 때 최소한 1/3의 심리평가/심리치료/supervision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수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현장과 유리되어 심리평가와 심리치료의 감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론에만 경도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전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수련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얼뜨기 수련 레지던트만을 양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담이 수련 기관에 그대로 전달되게 되는데 문제는 현재의 수련 기관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능력 부족의 supervisor로 점차 채워지고 있는데다 그나마 숫자 자체가 태부족이라서 점차 임상 현장으로 나오는 전문가의 quality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 심리평가를 못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 심리치료를 못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가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게 당연한 것으로 용인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교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대체 당신들이 일반 강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요새는 오히려 강사가 정교수보다 더 강의를 잘 하지 않습니까? 강의만 잘하면 된다고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임상 심리학 교수 자리는 그 정도로 대충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제시한 기준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충족하지 못하면 욕을 먹어야 하는 수준이지 충족했다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서 대접해 달라고 에헴하는 교수들은 현재 임상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전문가들과 수련 레지던트들이 속으로 얼마나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는지 똑똑히 파악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수련 기관의 정신빠진 supervisor들에게도 경고합니다. 수련 레지던트는 당신의 심리평가 일을 줄여주기 위해 부려먹는 노예가 아니며 미래에 당신의 자리를 이어나갈 동료이자 후배입니다. 무능한 당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유망한 supervisee들이 혹독한 수련 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소속된 수련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사비를 털어 유료 supervision을 받으러 헤매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언젠가 당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며 성격적으로 문제있는 supervisor였는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해 주겠습니다. 그 때에는 어느 누구도 당신을 동정하지 않으며 침을 뱉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한 저주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나 supervisor가 있다면 그는 임상 심리학계의 현실을 모르는 바보이거나 알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무능력자이거나 그도 아니면 바로 저주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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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학은 scientist-practitioner model을 따른다고 흔히 말합니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scientist로서 이론을 정립하고 practitioner로서 그것을 현장에 활용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뒤돌아 생각을 해 보면 대학원에 다닐 때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전문가 수련을 위해 병원에서 일을 할 때에도 진정한 practitioner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들을 소화해내기도 바빠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생각하고 적용하고 feedback을 받고 수정하는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practitioner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자위하던 시기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소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field에서 일을 하게 되니 아무도 저를 간섭하지 않으며 말과 행동에 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더군요. 이렇게 되고 나니 드디어 scientist-practitioner model이 무엇인지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교나 수련 장면에서 공부를 할 때에는 내가 공부하는 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 지, 그 궁금함이 도무지 풀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공부해왔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모양으로 효과를 나타내는지 실제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니 그야말로 공부를 하는 맛이 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지식과 전문성에 대한 갈증이 강해지나 봅니다.
이론적인 지식을 현장에 직접 적용하고 그로 인해 더 큰 배움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보다도 제가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좋은 점으로 꼽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이비'들을 가려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점이죠.
현장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대학 교수, 책을 많이 번역한(혹은 쓴) 사람, 방송 출연 많이 한 사람, 학회에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고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 그런 분들 중 상당수가 허당이고 사이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수면 무엇합니까? 심리치료/상담도 하지 않으며 심리평가도 하지 않는데다 supervision도 하지 않는 교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구마저도 현장과 유리된 상태에서 손쉬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junk article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수랍시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구토가 나올 지경입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도박 중독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교수랍시고 써 먹지도 못할 엉터리 이론을 들이대면서 현장을 망가뜨리고 도박 중독자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짐작도 못했던 사실이지요.
그래서 저는 임상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가장 좋은 점이 사이비 전문가를 가려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을 걷지 않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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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가라는 압력을 도처에서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의 사생활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건 매우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하신 말씀은 아닐테니 그건 넘어가고요.
대체 박사 학위는 왜 따려고 하는 겁니까? 실질적으로 박사 학위가 필수 요건인 교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박사를 따야 할 이유가 정말 있나요? 혹시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나도 불안한 마음에 혹은 덩달아 하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두 번 사는 인생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그저 박사 학위가 있어야 어느 위치에 있던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막연한 기대로 너도나도 박사 과정에 들어가는데 대체 그 좋은 기회라는 것이 뭡니까? 결국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연봉 좀 더 받고 그 댓가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어서 충분히 행복하고 돈도 더 벌 생각이 없고, 더 많은 일을 하느라 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뭐하러 지금의 행복한 인생을 희생하면서 필요도 없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수 년의 시간과 수 천 만원의 돈, 그리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현장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교수에게 굽실거려야 한답니까?
학회의 supervisor들은 언제나 의사처럼 전문가 자격만 있으면 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의 제자, 수련 레지던트들에게는 박사 학위를 따도록 종용합니다. 자신만의 라인만을 구축하려고 혈안이 된 자격 미달의 supervisor들도 있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후학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full time 박사가 된 이들이 교수가 될 수 없다면(대개는 나이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없죠)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요? 학교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프로젝트가 생기면 투입되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허울좋은 인생이 아닌지요.
박사도 박사 나름이고 박사 학위가 그 사람의 실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막말로 말해서 박사 학위를 따면 논문을 더 잘 쓰게 된답니까? 연구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아니면 치료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현장에서 겪어 보면 학위에 따른 차이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박사는 이론에 경도되다보니 현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앞으로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치료자를 뽑을 때에도 박사는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어차피 교수의 꿈을 접은 저로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할 아무런 이유와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박사를 못 따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다든지 하는. -_-;;;)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엄한 짓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제가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정말 박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큰 일이 생긴 줄 아시면 됩니다).
그러니 저를 아는 분들은 제발 제 앞에서 박사 학위 이야기를 꺼내지 말기 바랍니다. 행복한 제 인생에 똥물 튀기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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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2MB가 노동유연성 문제를 올해 안으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국정 과제라고 이야기한 모양입니다.
2MB의 망언이야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니 새로울 것이 없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부화뇌동해 맞장구 치는 조중동문을 비롯해 매일경제,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등 경제 신문의 낯 뜨거운 찬양 기사는 참으로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되고 비정규직을 늘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정환닷컴의 이정환님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 반대 논리도 가능하거든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처우가 너무 형편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정규직 자리를 사수하는데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거지요. 당장 제 주변만 해도 정규직 자리에서 잘리고 나면 나이 제한, 성별 제한 등으로 유사 직종, 유사 급여로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하지요. 다시 고용 시장으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파견직 회사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어요.
조중동문이나 경제지들의 작태도 분노를 일으키지만 거기에 힘을 보태는 교수들도 만만치 않아요.
이런 기자, 교수 나부랑이들에게 항상 해 주고 싶은 말이 이겁니다.
"고용 유연화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니네부터 솔선수범해서 도입하지 그러냐?"
그래야 기사의 질도 올라가고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차마 자기에게는 적용할 수도 없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들을 보면 뻔뻔해서 그런 건지, 멍청해서 그런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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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공식적인 명칭이 임상심리 레지던트였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에도 그렇게 기술했고 병원 가운에도 '임상심리 레지던트'라고 새겨 있었고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 현장에 나와 '임상심리 수련생'이라는 명칭을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수련생이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수련을 받는 학생이라는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수련생'이라는 말은 착취를 정당화하는 용어입니다.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전문 기술과 지식을 사사받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족쇄같은 명칭입니다. 실제로 정당한 급여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수련 병원에 가운, 식대 비용으로 일정한 금액을 내고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수련생 협의회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명칭을 쓰자는 말이 나왔고 임상심리학회 게시판을 통해 건의도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여전히 수련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요.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학교에 계신 교수님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supervisor로 있는 전문가들도 심각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경우 '전공의'라고 하지 절대로 '전공의 수련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의사들의 인턴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십 과정에 들어온 사람들이 학생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더 큰 문제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마저 스스로를 '수련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 교수의 절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임상심리 레지던트는 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 고급 수련 과정에 있는 준 전문가이며 이미 검사 수가, 치료, 연구 등 충분한 공헌을 수련 기관에 하고 있습니다. 수련생이라고 폄하될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임상심리학회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부터 지켜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들 스스로도 자기를 낮추는 이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용어를 추천하고 지금도 제게 supervision을 받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어떤 쪽으로 정리가 되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부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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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제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발신 번호를 보니 유선 전화이더군요. 받지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습니다.
경찰청 인사과의 경감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 분이 제가 익히 아는 어떤 교수님의 이름을 말하기까지 제가 얼마나 긴장했을까요? 아무리 죄 지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기관에서 전화를 받으면 긴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왜 그 교수님은 제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게다가 그 교수님이 제가 얼마나 협조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해 놓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경감님은 상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노골적으로 물어보시더군요. 솔직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제 전문성을 인정해주시는 것은 좋은데 그 경찰의 태도로 보건데 제가 언제든 교수님을 위해 몸바치는 떔빵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거나 하면 그 사람의 연락처를 주기 이전에 반드시 제가 먼저 통화를 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연락처를 줘도 되는지를 묻고, 감사를 표하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게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그 교수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일수도 있는 이번 일로 많이 실망했습니다.
교수에 대한 제 선입견도 다시 한번 확인했고요.
앞으로 제 양해를 먼저 구하지 않고 저를 영문도 모르는 사람과 연계하는 경우 상당히 무례하게 대꾸해 줄 겁니다.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은 못 되지만 그렇다고 언제든 스텐바이 하고 있다가 자문을 하는 5분 대기조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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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어느 정도 아는 분들은 제가 매우 싫어하는 몇몇 직종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싫어하는 정도를 굳이 순위로 매기라면 기자라든가, 정치인이 상위권으로 랭크되겠지만, 제가 속해 있는 영역에만 국한해서 골라보자면 단연코 교수를 첫손 꼽을 수 있겠습니다. 재수없는 순서로요~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경험에만 입각해서 교수라는 작자들의 흉을 본다면...
제가 교수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만큼 이중적인 인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정을 안하기는 성직자에 버금가며, 모든 기준은 자신을 제외하고 적용되죠.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인 면이든, 개인적인 면이든 간에 내가 틀렸다,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아주 교만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입니다.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돈 이야기는 학자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처럼 터부시하면서 뒷돈과 공돈 밝히는 것은 어느 부패 직업군 못지 않습니다. 게다가 죄책감과 거리낌이라는 것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게다가 고고하고 깨끗한 척하면서도 술자리에서 가장 지저분하게 망가지는게 교수죠. 술집의 아가씨들이 가장 싫어하는 진상 트로이카에 당당히 들어가는 직업군입니다. 제가 같이 어울려 본 교수 중, 접대부가 있는 술집 싫어하는 교수는 한 명도 못 봤고, 일단 그런 술집에 가면 정말 교수 맞나 싶게 막되게 놉니다. 아, 포스팅하면서 또 짜증이 밀려오네요. 대체 가고 싶지도 않은 그런 술집 끌고 가면서 더치페이를 강요하는 건 뭐냐고요~ 여자끼고 놀고는 싶고, 돈은 아깝다 이겁니까?
사실 학문을 탐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좋아서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들이 교수를 선택하는 이유는 일단 뽀대가 나고, 일단 자리만 확고하게 차지하면 다른 사람에게 굽신거릴 일이 없고, 대부분 신분과 급여가 보장되기 때문이죠(그래서 교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바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도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죠. 재수없는 것은 변함 없습니다.
교수는 변화와 적응을 싫어하기 때문에 퇴직하고서도 ~씨라고 불리면 발끈하고 기분 상해하고, 교수님이나 박사님으로 불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퇴직후에는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을 평생 즐기면서 가정을 방치해 놓고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뼈빠지게 일한 것처럼 위세 떨기가 일쑤요, 왕따를 자처하고서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지레 야단인 족속들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도 한 때 교수의 꿈이 있었습니다만, 자질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잠깐 맛본 교수 사회의 썩은내에 온몸이 썩어버릴까봐 지금은 깔끔하게 접었습니다. 교수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교수는 전체 교수 사회의
극히 일부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학문 탐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며, 언행이 일치하고, 실사구시하나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며, 그렇다고 명예욕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않는 가히 스승과 같은 교수 밑에서 배우고 있다면 전생에 큰 덕을 쌓아서 그러려니 하시기 바랍니다. 부럽습니다~ ㅠ.ㅠ
교수라는 사람들 정말 알면 알수록 짜증나는 인간들입니다.
그래도 실컷 흉을 보고 나니 속은 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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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온 이후 몇 년간 박사 학위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의 자격으로도 현장에서 일을 하기에는 충분했으니까요. 그런데 사회는 그 사람의 실력보다는 학위를 전문성의 척도로 보더군요(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군요. 일반인에게는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없으니). 심리학의 경우, 교수 임용 시, 여전히 외국 박사 학위 소지자를 선호합니다. 교수라는 자리에 대한 미련도, 사실상의 능력도 없는 저로서는 현장에서 일을 하는 데 있어 제 전문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박사 학위가 필요해서 일 년 전부터 박사 과정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박사가 공부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배움에는 당연히 끝이 없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순간부터 교만해지고 배움을 게을리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숱하게 보았기에, 그리고 박사라는 명함만 가지고 석사보다 못한 실력으로 행세하는 사람도 꽤 보았기에 박사라는 이름은 그만큼 큰 무게감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결혼해야 하는 것처럼(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문에 대한 쉼 없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된 사람만이 박사 학위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사 과정에 들어가려고 정보를 모으다 보니 많은 학교에서 교수들이 full-time 박사를 원한다고 하더군요. 서울대 같은 경우는 내규로 정해졌다는 소문도 있고. 물론 교수의 입장에서는 학업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임상 심리학의 경우 남자라면 병원 수련을 마치고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 나이가 최소 31살에서 그 이상이 됩니다. 대체로 그 무렵에 결혼을 하게 되어 당장 가정을 책임져야 되고요. 그 상황에서 full-time 박사과정생으로 들어가는 것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학생생활연구소에서 상담을 하거나 시간 강사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하는 임상 심리학 박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의 임상 현장의 현실을 보면 그들에게 희망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교수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고, 현장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높은 학력과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 됩니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등록금 전액 보조와 한 달에 60만 원 지급이라는 조건은 석사 때라면 솔깃할 제안(이것도 특정 대학의 소수 박사과정생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박사과정생들은 한 학기에 5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자비로 내야 합니다)이겠지만 가정을 책임지고, 미래를 저울질해야 하는 박사과정생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돈 많은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나 박사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제가 박사 과정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어서 삐딱하게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학교의 교수들은 학업에만 매진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full-time 박사 선발을 고집하는 걸까요? 혹시 교양 과목의 강의라든가, project 연구원으로서의 인력 동원이라든가, 논문 작성을 위해 몸바쳐 일하는 데 있어 full-time 박사과정생이 부려 먹기가 용이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왜 심리학계에는 자신을 first author로 내세운 논문을 내는 교수의 수가 그렇게 적을까요? 정말 후학들을 위해 first author의 자리를 양보하는 선의의 교수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요? 수많은 논문을 내면서도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 7년이나 걸린 full-time 박사 선배는 과연 머리가 나빠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요?
이것도 음모론의 일종일까요? 아니면 제 피해 사고(persecutory idea)의 일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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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평소에 입이 근질거렸던 부분이 많았는데 이참에 happyalo님의 글에 트랙백을 겁니다.
episode I.
얼마 전에 제가 아는 분이 서울 모 대학의 교수 임용에 도전을 했습니다.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얼마 뒤 느닷없이 예고에도 없던 영어 공개 강의 능력을 테스트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이분,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발표 자료도 영어로 준비하고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를 해서(물론 영어로 준비했겠지요.) 갔더랍니다. 20분 동안 땀을 삐질 흘리면서 안 되는 영어로 강의를 마친 후 심사위원으로 들어와 있던 교수들(그 과의 교수들은 두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행정을 담당한 보직 교수랍니다)이 질문을 쏟아 붇는데 전공이나 발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변잡기의 이야기였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한국말로 했다는데 대체 왜 영어 강의를 시킨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랍니다. 물론 결국 이분은 임용에서 탈락했지요. 아직도 이분은 왜 그 학교에서 영어 강의를 테스트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episode II.
episode I.에서 등장한 제가 아는 그 분(이분은 제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학자인데)이 외국 저널에 논문을 제출하려고 심리학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교수(당연히 미국 유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에게 원문은 자기가 다 쓰고 번역을 하는 대가로 공동 저자로 넣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그 교수가 번역한 논문으로 게재를 신청했는데 1차 심사에서 탈락해서 도착한 평가서를 보니 내용을 논하기 이전에 논문에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유치한 문장이 너무 많아(고등학생들도 사용하지 않는 콩글리쉬였다는...) 논문으로 고려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게 제가 제안한 대로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었더라면 이런 낯뜨거운 꼴은 당하지 않았으련만... 게다가 이 교수는 상의도 없이 자기 맘대로 다른 저널에도 동시에 apply를 했더군요. 대체 도덕심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episode III.
제가 학부생이었던 당시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교수 한 분이 새로 오셨는데 이분은 교포 2세라서 한국말보다 영어가 익숙한 분이었습니다. 당시 국제화니, 대학의 경쟁력 강화니 하면서 영어 강의를 하는 것이 붐이었고 학교는 신이 나서 전공 영어 강의(4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방법론이었습니다.)를 개설했습니다. 강의 중 모든 의사소통방법은 영어를 사용해야 하고 보고서도 영어로 써서 내야하는 난이도가 높은 수업이었습니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지요. 저야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만 제가 우수해서라기보다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강의와 학생들 때문에 제가 어부지리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이런 영어 강의는 몇 년 동안 꾸준히 개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는 영어로, 학생은 한국말로 하다가 보고서도 한글로, 나중에는 교수가 답답해서 그냥 한국말로 하다가, 학생들이 교수의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면서 그냥 영어로 해달라고 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전공 필수가 아닌 이상 누가 그 힘든 강의를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강의만 영어로 개설하면 뭐 할까요? 학생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과 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박사 학위를 외국에서 취득했다고 수업도 영어로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happyalo님도 언급을 하셨지만 영어 강의 가능자라는 조건을 다는 이유는 영어 강의를 실제로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을 뽑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서울대 심리학과의 교수진만 보아도 거의 대부분(확인은 안 해보았지만 아마 90%이상일겁니다)이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고 거의 대부분이 서울대 학부 출신들이죠. 임용 조건에 특별히 서울대 학부 출신, 외국 박사 학위자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참으로 이상하죠?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외국에서 한 공부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직 심리학 분야가 그것입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들어와서 조직 생활은 해 보지도 않은 채 교수 자리를 꿰차고 미국의 최신 조직 이론을 들먹이면서 국내 조직 문화가 어쩌네 저쩌네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참으로 의심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당시 저랑 같이 수업을 듣던 박사과정생(이분은 국내 유수 기업의 인사팀에서 과장으로 7년을 근무한 베테랑이었습니다)이 잘 골라서 배우지 않으면 기업에 들어가서 개망신당하거나 왕따 당하기 쉽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닫기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라는 직업 자체를 상당히 경멸하는 사람입니다(제 아버지도 교수입니다만). 저는 대학교수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는데 가장 많은 부류는 '지식도둑놈'입니다. 박사 학위를 어디에서 했건 간에 상관없이 일단 교수자리를 꿰차고 나서는 자기 밑의 석, 박사를 쥐어짜 연구 실적을 가로채는데 혈안이 되어있죠. 국내 학회지(외국 학술지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에 교수 단독 연구 논문이 거의 없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공동 저자가 있는 경우 그중에 하나라도 석, 박사과정생이 포함되어 있다면 아마도 그 논문은 그 과정생이 대부분 썼거나 준비중인 학위 논문이라고 장담합니다. 사실 저는 교수가 단독으로 제출한 논문이라도 그 교수가 정말 혼자서 연구를 했을까 하고 상당히 의심하는 편입니다. 교수들이 국내의 유수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우려먹을 자원이 우수하기 때문이죠. 둘째 부류는 '돈 도둑놈'입니다. 교수가 되면 아무래도 산학 협동 연구니 어쩌니 하면서 기업에서 project를 따내 연구를 하게 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수석 연구자인 교수는 대개 실적물의 저작권이나 명예를 얻게 되므로 인건비가 상당히 적게 책정이 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석, 박사과정생들의 인건비가 더 많습니다. 문제는 교수가 전횡을 부려 이 인건비를 가로채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죠. 학술진흥재단에서 하도 이런 일들이 많아 인건비를 직접 연구원들의 통장으로 입금을 시켜주니 얼마씩 다시 상납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이 정도면 교수라고 부르기에도 아깝습니다만 제가 아주 잘 아는 교수랍니다. ㅠ.,ㅠ) 경우도 있습니다.
적어도 교수는 자기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탐구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하고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양심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는 면에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직업임에도 언제부터인가 그런 치열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하찮은 직업(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권위를 인정하지만)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외국에서 학위만 따고(돈으로 따든 뭐로 따든 상관없이) 같은 학교 출신 라인에 줄서고, 필요에 따라 학자로서의 양심만 팔아먹으면 개나 소나 다 교수가 되니 제 교수 혐오증을 고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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