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중 관계(또는 다중 관계)에 대해서는 몇 차례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이중 관계와 관련해 영화 두 편을 소개하기도 했네요.
* [영화]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2012)
예전부터 아래와 같은 경우 이중 관계로 규정하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담자를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던 차에 한번 정리를 해 두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자녀를 상담하는 상담자가 그 부모를 개인 상담하는 경우'
'오빠를 상담하는 상담자가 동생도 추가로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
'부부 상담을 진행하다 필요에 의해 남편이나 아내를 개인 상담하는 상담자'
많은 기관에서 이를 이중 관계로 규정하고 상담을 금지하거나 다른 기관으로 의뢰해야 하는 규칙을 갖고 있습니만 이 경우들은 모두 이중 관계와 상관이 없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boundary에 관한 문제이고 상담자가 기준을 잘 지키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해를 끼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boundary violation이 아니라 boundary crossing의 문제입니다. 물론 상담자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고민할 부분이 있지만 저는 이것도 오히려 상담자가 내담자를 더 잘 돕기 위해서 감수해야 한다고 보는 편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다중 관계 중 하나인 이중 관계는 상담자-내담자의 관계에 새로운 관계가 추가되어 동시에 두 종류의 관계를 맺을 때 고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경우 중 청소년 자녀를 상담하는 상담자가 부모를 상담하려고 보니 자신의 후배나 친구 또는 지인인 경우 두 개의 관계가 중첩되기 때문에 이중 관계에 해당되어 가능한 한 이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상담자를 중심으로 각각 연결되는 상담자-내담자 관계는 이중 관계가 아닙니다. 이는 상담자가 설정한 경계를 잘 지킨다면 오히려 상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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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으면 좀 복잡해 보이지만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임상,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는 지인으로부터 상담을 해 달라거나 심리평가를 해 달라는 의뢰를 드물지 않게 받습니다. 당연히 본인이 해서는 안 되죠(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후배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해 주는 것도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는 심리검사에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고, 선배는 수련 과정의 심리검사 requirement를 충족할 수 있어 win-win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이중 관계입니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평가받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supervisor나 선배에게 지인을 심리평가, 상담해 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의뢰를 받은 임상가가 그냥 진행하면 될 것 같지만 이 역시 다중 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supervisor-supervisee 관계에 임상가-의뢰인의 관계가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supervisee 선생님이 지인을 평가, 상담 의뢰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다중 관계를 피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됩니다.
1.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말고 의뢰하려는 지인이 직접 contact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이메일 주소, 소속 기관의 유선 번호 등)만 제공합니다.
2. 이 때 연결하고자 하는 임상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지인에게 제공하면 안 됩니다. 연락을 받은 임상가가 무심결에 누구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인지 client에게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의뢰된 것인지를 아는 순간 실질적인 이중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좀 더 엄중하게 하려면 의뢰받은 임상가가 자신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가르쳐 주지 말라고 지인에게 당부를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3.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 대한 연락처 정보를 지인에게 알려주는 순간 이후 과정과 내용에 대한 모든 호기심을 내려놔야 합니다. 심리평가 결과나 상담 내용에 대한 feedback을 지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 지인의 심리평가나 심리치료/상담을 아는 임상가에게 맡길 때,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중 관계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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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P 상담은 생각보다 포괄하는 영역이 넓어서 단순히 노동자 본인의 직무 스트레스만 다루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 예를 들어 부부 갈등, 자녀 양육 문제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일반 상담 영역에서 다루는 문제는 모두 다루면서도 조직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과 그로 인한 문제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한층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상담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 상담 현장이나 전통적인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수련을 받은 임상가들은 상담/임상 뿐 아니라 조직 심리학이나 집단 역학 등의 공부를 추가로 더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EAP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건 어느 상담/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최우선되지만 EAP 상담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개인 정보의 노출이 단순한 명예 훼손이나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직업적인 피해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생산성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인적 자원은 가장 손쉽게 손대고 싶은 영역입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내담자의 인적 사항과 상담 내용을 요구하는 가장 노골적인 수준에서부터 상담자와 안면이 있는 직원을 통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은밀한 접근에 이르기까지 EAP 상담을 받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특히 EAP 상담을 진행하는 부서가 독립되어 있지 않아 특정 부서의 감독, 감사를 받을 수 있고 상담 실적 보고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EAP 상담 부서의 독립적 운용이고 그게 어렵다면
실적 보고 시 실적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로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담 내용 입력을 전산화했다면 별도 서버 운용, 접근 권한의 철저한 관리, 이중 시건 장치를 통한 문서 보관은 기본입니다. 특히
상담자 간에도 담당하는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공석 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다중 관계 문제
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라는 글에서도 다중 관계의 문제에 대해 강조했지만 EAP 상담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바로 다중 관계입니다.
EAP 상담자는 상담자이면서 동시에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자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담하는 내담자의 인사 고과 평가를 받는 직원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조직이 작거나 혹은 크더라도 자신이 속한 EAP 상담센터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지원부서의 직원과는 안면을 틀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죠. 이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EAP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잠재적인 내담자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내담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니 가능하면 조직 내의 구성원들과 사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조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조회, 회식, 워크샵, 집체 교육 등)는 가능하면 불참하는 것이 낫고 이런 조치가 조직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요.
3.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문제
조직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가능성은 급격히 커집니다. 인트라넷을 운용하는 회사에서 상담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일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담자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지 몰라도 EAP 상담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자녀 상담을 진행하는데 갑작스레 예약을 바꾸려고 할 때 직원을 통해 상담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직접 연락하는 걸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라면 사소한 불편함 정도일 수 있으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직원을 상담할 때 시시때때로 상담자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으니 의존 문제도 그렇고 상담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
인트라넷에서도 휴대폰 번호나 개인 이메일 주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꼭 필요한 인원에게만 알리는 식으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EAP 전문 상담자가 상담자이자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이런 예상 문제들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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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이 영화로 김민희씨가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지요. 요즘의 연애 실태를 현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고 코믹한 요소도 적잖이 배치되어 있어 내 이야기가 아닌 이상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꽤 재미있게 봤고요.
개인적인 감상을 좀 말씀드리면,
연애란 건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거라지만 김민희와 이민기가 연기한 두 사람의 연애는 잘 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영화에서는 다시 한번 잘 해보는 걸로 해피엔딩 처리했지만 개인적으로 결국은 다시 헤어질 수 밖에 없을거라 예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두 사람은 사내 커플입니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지점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은행원이죠. 예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해롭다'는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내 커플은 사이가 좋을 때에는 상관없지만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파괴력이 훨씬 더 큽니다. 온갖 구설수때문에도 그렇고 연애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충시켜줄 자기만의 안전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50점을 깔고 들어가는 불리한 연애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 연애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게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그러면서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다고 둘러대기만 하죠) 뒤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느라 온갖 방법(페이스북 감시, 미행, 전화 확인 등등)을 동원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가 싹틀 틈이 없습니다. 신뢰를 쌓아둔 것이 없으니 갈등이 생겼을 때 인출한 애정 자금이 없는거지요.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기대를 합니다. 연애란 이럴 것이라고까지 기대하기 때문에 매번 그 기대를 충족하는지 확인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슬퍼합니다. 자신이 만든 기대의 덫에 스스로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거지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집착과 희생 밖에 없습니다. 그래봤자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 뿐이지만요.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예후를 보여주는 건 동희(이민기 분)의 주사와 두 사람의 통제불능증과 기본 예의 부족입니다. 주량 통제가 잘 안되고 일단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제맘대로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요절복통 야단법석이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이런 주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항상 맘졸여야 하지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도 박계장이라는 후배가 남자 주인공 때문에 개고생합니다. 그리고 이 커플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쌍욕을 하거나 몸싸움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 역시 연애 동안에는 화끈하고 열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존중과 매너를 지키지 않는 커플의 미래는 아주 어둡죠.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연애는 결실을 맺기도 어렵고 설사 결실을 맺는다고 해도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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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나 상담을 하는 임상가들에게 특히 강조되는 윤리 규정 중 하나가 다중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하나만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상담을 하는 내담자와 잠자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연인 관계가 추가되기 때문에 치료적 경계를 침범하게 되어 내담자에게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금하는 행동이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치료나 상담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중 관계는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든 대인 관계 갈등과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가 이런 다중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고까지 생각하는 편입니다. 뒤집어서 말씀드리면
애초부터 다중 관계를 맺지 않거나 이미 맺고 있는 다중 관계를 정리해서 하나의 관계만 남기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걸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주로 다루고 있는 도박 중독 문제만 해도 도박자와 배우자, 도박자와 원가족의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도박 때문에, 혹은 도박으로 파생된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로 다중 관계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만 유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도박자인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줌으로써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추가되게 됩니다. 또는 도박자 남편이 저지른 일을 아내가 돌아다니면서 일일히 변명, 거짓말, 해결함으로써 엄마-아들의 관계가 추가되는 것이죠.
물론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 없는 상태'에서 맺은 다중 관계는 안정된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다중 관계는 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흔들려도 균형이 깨지고 결국은 갈등을 가져오게 됩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말도 다중 관계를 경계하는 말이죠. 너무 각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중 관계를 맺는 순간 얇은 얼음판 위에 올라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동료와는 일만 함께 하고, 친구와는 우정만 나누고, 연인과는 사랑만 하세요.
거리 두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분들일수록 다중 관계를 맺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다중 관계도 빨리 정리하세요.
덧. 이중 관계도 다중 관계이니 관계는 하나만 국한하도록 애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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