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를 만나기 전에 가족이 실수로 대위 변제를 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담을 시작할 때 도박 빚이 전혀 없는 상태인 중독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상담자는 채무 변제 계획을 상담에서 꼭 다뤄야 한다는 말이죠.
도박을 하는 이유를 말 할 때 너무 재미있어서, 흥분되기 때문에 도박을 한다는 도박자보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박을 한다고 말하는 도박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본인이 전자에 속한다고 해도 상담자 들으라고 이를 입 밖으로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도박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도박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도박에 빠져든다고 자신할 수는 없죠.
그래도 하여간 많은 도박자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도박 빚을 꼽습니다. 워낙 큰 스트레스 요인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도박을 계속 해서든, 열심히 일을 해서든 모두 갚아서 도박 빚이 전혀 없는 그 날이 언제인지를 말하는 중독자가 없다는거지요. 제 경험으로는 언제인지 계산해 본 도박자조차도 없었습니다.
도박 중독자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게 도박 빚이라면서도 그걸 갚을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 갚을 그 날조차도 상상하지 못하는 게 도박 중독의 무서운 점입니다. 그야말로 희망을 멸절시키는 병이에요.
그래서 상담자는 도박 빚을 갚는 과정을 챙기는 만큼 도박 빚을 완전히 털어내는 날짜, 종착점, 일명 도박 빚 제로 데이를 찾아내도록 도와야 합니다.
도박 중독 치유를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런데 결승점이 어디인지 모르고 뛰는 마라톤이라면 어떨까요? 과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요?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뜀박질은 체력 고갈에 앞서 계속 뛰고자 하는 심리적 힘을 소진시킵니다. 이게 더 무서운거에요.
가끔 생애 한번도 빚이 없었던 적이 없는 도박자를 만나곤 하는데 빚을 진 삶에 너무나 익숙해서 평생을 빚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도박 빚 제로 데이가 특히 중요합니다.
그러니
도박 빚을 갚기 위한 채무 변제 계획을 세울 때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도박 빚을 완전히 털어내는 도박 빚 제로 데이를 설정해서 중독자가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 날을 앞으로 당기기 위해 격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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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 전문기관에 상담을 받으러 온 가족들은 대부분 몇 차례의 재발을 거치면서 도박자에게 돈을 주는(도박 빚을 대신 갚는 대위 변제이건, 도박 자금을 마련해 주는 것이건 간에) 것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이미 체험하였기 때문에 돈을 주지 말라는 조언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만 도박자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족의 경우에는 한번만 기회를 달라는 도박자의 간청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 않고 빚을 갚아주면 정말 정신을 차리고 도박을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마련입니다.
현실적으로 도박 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건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을 쥐어주는 것과 같아서 도박자가 아무리 그 돈을 정말 치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겠다고 의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는 도박 중독의 특성 상 도박자가 자신이 최초 마음먹은 대로 그 돈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희박한 일입니다.
대위 변제를 할 때 도박자를 거치지 않고 채권자를 직접 만나 빚을 갚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박자들이 빚의 내역을 모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의 의도대로 모든 빚을 완전히 갚는 것조차 불가능하죠.
게다가 가족이 대신 빚을 갚아주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건 도박 중독 치유의 가장 큰 원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인데 가족이 도박자의 빚을 대신 갚으면 도박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책임질 기회를 가족들이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도박자의 무책임이 심화되며 결과적으로 도박 중독 문제가 악화됩니다.
그래서 도박 중독 치유와 관련된 모든 연구 결과와 문헌에서는 가족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행동으로 도박 빚을 대신 갚는 것을 꼽습니다. 그러니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을 마약 중독자의 손에 마약을 쥐어주는 것만큼이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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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 원칙 중 하나는
'도박중독 치료의 제 1원칙'이라는 글에서도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도박 중독자가 자신의 도박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글에서 저는 모든 도박중독 치료가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까지 강조를 했더랬습니다.
도박중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무책임이기 때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실 상 단도박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고 해도 완전한 치유가 되지 않거든요. 그만큼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박빚을 갚아주는 대위 변제를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고 가족들의 명의로 낮은 이자 대출을 내서 돌려막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두 고통스럽더라도 도박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어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가정 하에서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도박중독 치료의 원칙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 상담자라면 원칙 고수와 융통성의 경계선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년 정도 상담을 받은 도박자의 가족이 있습니다. 1년 동안 도박자와 가족 모두 열심히 상담을 받았고 그동안 도박자가 지인들에게 빌린 자잘한 돈은 스스로 모두 갚았으며(처음에는 모두 open하고 유예) 본인의 카드론 대출금 몇 백만 원만 남은 상태에서 부인이 도박자와 상의하지 않고 자신의 신용으로 낮은 이자의 대출을 받아 그 빚을 자신에게로 돌렸습니다. 치료 원칙을 어기기는 했지만 1년 동안 말없이 열심히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 남편에게 자신이 함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격려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설사 남편이 이 때문에 다시 해이해져도 자신이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치료 원칙을 어긴 것이니 이 부인의 행동은 경솔한 것일까요?
이런 부인의 행동이 도박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우리는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변화 노력에 대한 격려,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과 기대, 저는 이 세 가지가 치료의 원칙을 기계적으로 고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야단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부인을 칭찬했고요.
도박중독 치료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 원칙을 어기는 것이 필요한 순간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상담자들은 야전에서 도박 중독과 싸우는 전사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아군을 살리고 보살피는 일이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도박중독 전문 상담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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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은 열이면 열 모두 돈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도박자와 그 가족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이 도박으로 인해 생긴 빚을 갚을 때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정서적 부담입니다.
아무리 대위 변제(도박자의 도박 빚을 가족이 대신 갚아주는 것)를 하지 않고 도박자 스스로 빚을 갚게 한다고 해도 돈을 버는 사람이 도박자 혼자이거나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도박자가 자신이 번 돈을 빚을 갚는데 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으면 가족들도 결국은 재정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됩니다.
재정 관리 능력이 상실된 도박자를 대신하여 배우자나 가족이 재무 관리를 책임진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빚을 갚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특히 수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갚아야 할 빚이 많은 경우 일단 빚을 갚고 남은 돈(생활비로 하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돈)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려고 아등바등하는데 그래서는 빚을 갚기도 전에 심신이 탈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맞벌이 가정에서 부인이 200만 원을 벌고, 도박자가 3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해보죠. 도박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매달 300만 원의 고정 지출이 있었고 갚아야 할 도박 빚이 매월 250만 원이라고 한다면 많은 가정에서 도박자가 번 돈 300만 원으로 일단 도박 빚 250만 원을 갚고 남은 돈 50만 원을 부인이 번 돈 200만 원에 합쳐서 생활비로 사용하는데 그러면 기본적으로 50만 원이 부족하게 됩니다. 물론 재무 진단을 다시 받고 긴축 재정에 돌입하게 되면 50만 원을 줄이는 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채무 변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가족들(특히 배우자)의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되어 채무 변제가 끝나고 난 뒤 참았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여 오히려 더 큰 관계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빚을 갚는 기간이 3년이라고 가정하고 그 동안 화장품 하나, 옷 한벌 제대로 못 사고, 제대로 된 외식 한번 못하고 무조건 참는다면 그 3년의 기간이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빚을 갚는 기간은 분명히 짧아지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작은 것을 탐하려다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소탐대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도박 빚 갚기는 일반적인 빚 갚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긴축 재정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출 내역을 꼼꼼히 살펴서 새는 돈이 없는지 재점검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는 것이 어렵다면 일단
생활비 확보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나서 빚 갚기에 모자라는 돈은 이율이 낮은 금융 상품으로 갈아타거나 정 안 되면 도박자가 투잡을 하거나 해서 메워야 합니다.
당연히 빚을 갚는 기간은 앞서의 경우보다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야 가족들이 빚 갚는 기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잃지 않고 도박자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고 좀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도박 빚 갚기에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재정 진단을 해서 적절한 긴축 재정 방안을 마련한 뒤 기본적인 생활비를 확보하고 남은 돈으로 도박 빚을 갚아나가도록 하세요. 그것이 합리적으로 도박 빚을 갚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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