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는 자녀의 자존감과 성인이 된 후의 관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부모님이 정서적으로 미성숙한지 가능하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향한 부적절한 죄책감, 수치심, 분노 폭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TCI를 실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의 성인 자녀를 대상으로 한 개인 심리 치료 전문가 Lindsay Gibson이 제시하는 평가 문항을 통해 부모의 정서적 미숙도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인 감을 잡아 보겠습니다.
1. 우리 부모님은 비교적 사소한 일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2. 우리 부모님은 공감이나 정서적인 인식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3. 우리 부모님은 정서적 친밀감과 감정을 불편해하는 듯했고 잘 표현하지 않았다
4. 우리 부모님은 개인차나 자신과 다른 관점에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 중요
5. 내가 자랄 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당신의 친구처럼 대했지만 내 친구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 중요
6. 우리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 중요
7. 나는 정말 심하게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님에게 많은 관심과 동정을 받지 못했다 <- 중요
8. 우리 부모님은 일관성이 없었다. 때로는 현명했지만 때로는 비이성적이었다 <- 중요
9. 내가 속상해하면 우리 부모님은 피상적이고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하거나 화를 내며 빈정거렸다 <- 중요
10. 대화는 주로 부모님의 관심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 중요
11. 공손하게 의견 차이를 말해도 부모님은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12. 내가 거둔 성공을 부모님에게 말해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가 꺾이곤 했다
13. 사실과 논리를 들어 이야기해보아도 부모님의 의견을 이길 수가 없었다
14. 우리 부모님은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일이 드물다 <- 중요
15. 우리 부모님은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 중요
무려 하나의 항목만 체크해도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항목이 겹칠 겁니다. 경험적으로 봐도 상당히 일리 있는 문항들입니다. 대부분의 문항 내용에 동의하지만 제가 우리나라 문화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항에는 별도로 표시를 해 두었으니 참고하세요.
부모-자녀 관계 갈등을 겪는 일반인에게도, 그런 성인 자녀 내담자를 만나는 임상가에게도 유용한 문항이라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출처 : '감정이 서툰 어른들 때문에 아팠던 당신을 위한 책(Adult Children of Emotionally Immature Parents)'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536
MMPI-2/A에는 '가정 불화'로 이름 붙은 척도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4번 임상 척도의 소척도인 Pd1이고 다른 하나는 FAM 내용 척도의 첫 번째 소척도인 fam1(MMPI-A에서는 A-fam1)입니다.
둘 다 척도의 원 이름은 'Family Discord'입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두 척도는 상관이 꽤 높은 편이고요.
그렇다면 두 척도의 차이는 무엇이냐 하면, rough하게 구분할 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 Pd1 : 원 가족 갈등
* fam1(A-fam1) : 현 가정 갈등
보통은 두 척도 모두 유의미하게 상승하지만 자신의 가정을 꾸린 성인 내담자라면 유의미하게 상승한 척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원 가족 문제인지 현 가정의 문제인지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fam1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은데 Pd1 소척도만 유의미하다면 이 수검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의 근원은 현 가정이 아닌 원 가족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거지요.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해 자신의 가정이 없는 청소년 내담자라면 현 가정이 곧 원 가족이니 두 척도 모두 상승하거나 상승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내담자인데 Pd1이나 A-fam1 소척도 하나만 유의미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예를 들어 Pd1 소척도는 70T인데 A-fam1 소척도는 57T라면요. 그럴 때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 Pd1 : 부모-자녀의 직접적인 갈등
* A-fam1 : 자신과 상관없는 가족 구성원(어머니-아버지, 부모님-다른 형제자매)의 갈등
위의 예라면 청소년과 부모님 중 한 분과 직접적인 갈등이 있지만 그 밖에 다른 갈등 요소는 없을 수 있죠. 이런 경우 오히려 A-fam2(가족 내 소외) 소척도가 상승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청소년만 집안 내 왕따이거나 문제덩어리로 인식되고 있을 수 있거든요.
반대로 Pd1 소척도는 정상 범위 내에 있는데 A-fam1 소척도만 유의미하게 상승했다면 부모님 사이의 부부 갈등이나 부모님과 다른 형제 자매와 갈등때문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듯이 수검 청소년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일 수 있으므로 개입 대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성인의 경우 Pd1과 fam1을 원 가족, 현 가정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정도는 알고 계시지만 원 가족과 분리되지 않아서 현 가정을 특정할 수 없는 청소년의 경우 두 척도가 동시에 유의미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리해 봤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849
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 현장에서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없는 경우를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동/청소년이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는 그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방법이 없거나 아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증상 호소이건 파괴적 관심 끌기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는 가정의 부모님들 중 다행스럽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항상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드립니다.
"시간을 내세요"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니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더군요.
하나는 '채찍질에는 능하나 당근은 줄 줄 모른다'는 겁니다. 본인들부터 억압받으며 성장해서 그런지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억압 기술에는 매우 능하지만 무엇으로 강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한데 항상 채찍질만 하다보니 자녀들이 더 이상 뛰는 걸 거부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당근을 줄 줄 모른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당근으로 돈 이외에는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박탈이 심한 부모님일수록 돈과 물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웬만큼 누리고 자란 요즘 세대 아이들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는 방법이고 효과가 있다고 해도 단발성입니다. 왜냐하면 돈에는 마음이 없거든요. '마음은 필요없고 차라리 돈이나 내놔'라고 말하는 건 그만큼 마음을 담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냉소가 깔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당근으로 사용해야 하냐하면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원입니다. 물론 부자라면 일정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자는 시간 단위 벌 수 있는 돈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더 더욱 시간을 내기가 어렵죠.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남는거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에게 마음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내는 겁니다. 시간 대신 돈을 주는 건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모든 걸 돈으로 때우는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혐오와 냉소만 불러일으키죠.
제가 시간을 내라는 조언을 드리면 자녀가 거부한다는 핑계를 대시는데 그건 자녀가 부모가 시간 내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시간을 내려면 1) 진정성을 담아서, 2) 자녀가 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3) 자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자녀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몇 번 시도해보다 지레 안 된다고 포기하면서, 부모가 원하는 걸 자녀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스펙 쌓기로 많은 시간을 요구받아온 우리 아이들이야말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자 선물인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부모가 정말 그걸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믿을 수 없어 시험하는 것이죠. 그러니 자녀를 위해 그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시겠다면 우선 신뢰성 시험부터 통과하셔야 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771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자녀 관계가 건강하기 때문에 아무런 개입도 필요없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순한 부모 교육이나 당부 등으로 개입 수준을 한정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심하면 현재 가정의 부모-자녀 문제 뿐 아니라 부모 각자의 원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있고 그것이 현재 가정에 대물림되어 재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도 없이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너무 심하게 악화되어 있어서 상담자가 곧바로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자는 일단 아동/청소년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부모-자녀 관계 갈등도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없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지요.
많은 경우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까지 나타나면 심각도는 높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현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건 대화가 단절되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보고가 상반되기 때문에 상담자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상담 초기부터 아동/청소년에게는 실시 가능한 범위 내에서 JTCI, MMPI-A, SCT를, 부모에게도 각자 TCI, MMPI-2, SCT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부모-자녀 관계 역동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곤 합니다. 이 작업만 충실하게 해도 상담 회기의 수를 많이 줄이고 실제 개입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심리평가를 통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기질/성격, 정서 상태, 대인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건 당연히 도움이 되는데 그 밖에 부모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아동/청소년을 대하는 언행 패턴을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상담을 받으러 부모가 자녀를 끌고 상담실로 오는 경우라면 이미 자녀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인적인 결론을 내린 경우가 많고 MMPI-2 등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자신의 문제를 faking good하거나 방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모의 변화를 유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왔는지 그 패턴을 알게 되면 상담자는 그 잘못된 패턴을 피할 수 있고 아동/청소년과 조금 더 쉽게 라포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상담자가 부모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부모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아니라 상담자가 부모와 달리 행동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그 -
JTCI,
MMPI-2,
MMPI-A,
SCT,
기질,
대인 관계,
부모 교육,
부모-자녀 관계,
부모-자녀 관계 갈등,
상담,
상담자,
성격,
심리평가,
아동,
정서,
청소년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