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 싸움이 자녀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인데다 정서적인 어려움을 감당할 정도의 지적, 정서적 발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 싸움이 아이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 게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최소한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데 과연 그게 옳은 걸까요?
우선 아이들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기술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부부가 돈 문제로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한참을 싸우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일단 싸움을 중지하고 휴전합니다. 마침 학원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돌아옵니다. 현관에 들어선 아이는 본능적으로 무거운 집안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왠지 모를 답답함, 숨막힐 것 같은 이 느낌은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게 합니다. 심하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 아무래도 부모님이 싸움을 하신 것 같다 -> 혹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싸우신건가? ->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나를 야단치셨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싸우지 않으면 아이들이 모를거라고 가정하는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분위기나 느낌을 알아차리는 직감이 예민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를 뿐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부부간의 갈등을 감추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아이에게 막연한 불안감만 심어주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부부 싸움을 감추는 것의 또 다른 문제는 갈등은 감추어야만 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을 감추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함으로써 부모로부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갈등은 감추고 다루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수가 다가오는데도 고개만 땅에 묻고 포수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꿩처럼 문제에 당면해서도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없는 양 행동하게 됩니다.
부부 싸움은 문제가 아닙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죠. 아이들 앞에서 싸우더라도 나름의 규칙을 준수하고 문제의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관찰하게함으로써 부부 싸움도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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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십 년 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한 공간(물리적, 심리적) 안에 살게 된 두 남녀에게 부부 싸움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상징한 말 같기도 합니다.
부부 치료에서는 기본적으로 부부 싸움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부 싸움이 전혀 없는 것을 문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부부 싸움이 없다는 것은 갈등 없이 평안한 것이 아니라 더 한 분노와 적개심을 내면에 간직하고 드러나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거나 그보다 더 심한 상태인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인해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의 초점이 됩니다. 일정한 규칙 하에서 선을 지키면서 하는 건강한 부부 싸움은 서로의 견해 차이와 입장을 이해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그 부부의 애정 전선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 싸움에서 절대로 피해야 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볼 때 이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 배우자의 원가족 공격하기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네 집안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라든가 "장모님을 보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겠네"라는 종류의 말입니다. 비난과 같은 직접적인 공격 뿐 아니라 힐난, 비아냥 같은 것들도 파괴력이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은 불 속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아서 부부 싸움을 엄청나게 격화시키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이 왜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까요?
첫째, 나와 내 가족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이므로 본능적인 유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혈연을 공격하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싸움의 당사자인 나와 달리 내 가족은 사실 상 이 싸움과 상관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문제의 근원이라면 반성하고 고치면 되겠지만 내 가족들은 내 통제 권한 밖입니다. 따라서 일종의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을 공격당하는 것은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은 무고한 동맹국을 공격당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니
판을 깰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 만큼은 삼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부부 싸움의 규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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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치료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보고 충격을 받거나 아무래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집에서 부부싸움을 자제한다는 부부를 많이 봅니다. 일견 일리있는 말입니다. 격앙된 부부 싸움에서 험한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신체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집도 있으니까요. 분명히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과연 아이들에게 부부싸움을 감추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부치료를 받는 내담자들에게 부부싸움을 감추지 말라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 앞에서 룰을 지켜가면서 싸우라고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집안의 무겁고 숨막히는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별 거 아니다",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게다가 부모가 자꾸 부부 갈등을 숨기고 아이들에게 뻔한 앞가림만 할 경우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심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한 부모가 몰래 싸우는 가정의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은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억압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어디까지나 룰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기능적으로는 아이를 배려해 극단적인 언행을 자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때로는 감정이 상하고 싸울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부모님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해 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부부 갈등이 아이의 잘못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무조건 부부 싸움을 감추려고 애쓰지만 말고 어떻게 하면 규칙과 갈등의 수준을 조절하면서 싸울 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부 갈등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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