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포스팅에서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평생 할 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포스팅과 연결됩니다. 맥락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포스팅에서 저는 아무리 재미있고 흥분되고 즐거운 일을 한다고 해도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그 안에서 다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 때의 내용이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제는 선택한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00% 괴로운 일도 없고 100% 즐겁기만 한 일도 없고 모든 일에는 좋아하는 부분과 싫어하는 부분이 포함되고 결국은 비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좋아하는 부분을 많이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부분을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정서가(emotional value)가 다르기 때문인데 당연히 부정적인 것의 심리적 무게감이 훨씬 더 큽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의 양이 비슷하다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죠. 몸에 묻은 오물의 양과 동일한 양의 향수를 뿌린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싸고 향이 좋은 향수를 뿌리는 것보다 오물이 묻지 않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옥같은 회사에서 6개월 일을 하고 그 다음 6개월을 천국같은 휴양지에서 쉴 수 있다면 어떨까요? 휴양지에서의 휴식을 기대하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회사 생활이 더 지옥같이 느껴질 겁니다. 사람들이 일 하기 좋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구글을 꼽으면서 다양한 복지를 꼽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부분일 뿐입니다. 구글이 동일한 복지를 제공하면서 삼성처럼 일을 시킨다고 해도 과연 일 하기 좋은 기업의 선두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돈을 버는 일을 하든, 집안 일을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부정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려고 해도 부정적인 부분이 그 장점을 손쉽게 상쇄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싫어하는 일을 적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이게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사람이 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냐?', '누구나 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하기 싫은 일은 누가 하는데?'라는 집단적 사고가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모두 함께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덜 불행을 느끼자는(실제로는 너만 행복한 꼴을 못 보겠다는) 식의 압력을 행사하는거죠.
이 오해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란 게 대동소이하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창의력을 발휘해 뭔가를 창조하는 일을 좋아하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싫어한다는 선입견이 대표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없는데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기존에 있는 것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물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일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일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난 뒤 아무도 선택하지 않아 남은 일이 구체화되었을 때 기계화, 자동화로 최소화하고 그래도 남은 게 있다면 그 때 나누어도 됩니다.
잊지 마세요. 싫어하는 일을 참고 하면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그 때란 건 결코 당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계속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될 겁니다. 게다가 점점 더 싫어하는 일만 많이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싫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싫어하는 일이 점점 더 몰리게 되는데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만만하게 보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싫어하는 일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효과 없습니다. 일시적인 회피일 뿐이니까요.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거나 늘어납니다. 결국은 해야 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적극적으로 줄이고 없애세요.
그제서야 좋아하는 일을 (양을 늘려) 할 수 있고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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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검사의 반응을 통해 임상 장면에서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주된 방어기제 4가지를 평가하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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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반응에서 분열은 기본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해 양극단적인 감정을 설명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1)
구체적인 정서적 차원에서 설명한 인간 지각에 뒤이어 이전 반응에 대한 설명과 정반대의 정서적 묘사를 하는 경우로 다음과 같은 보기가 해당됩니다. "총을 가진 추악한 범죄자 같이 보여요. 그리고 볼을 서로 맞대고 앉아 있는 다정한 부부도 보이네요"
2)
하나의 전체 인간 모습을 묘사할 때, 어느 한 부분을 다른 부분과 정반대의 정서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경우로 다음과 같은 보기가 해당됩니다. "거인인데 하체는 위험한 인물로 느껴지지만 상반신은 자상하게 보이는군요"
3)
하나의 반응에 분명히 구분되는 두 사람이 포함되어 있고 두 인물을 상반된 정서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경우로 다음과 같은 보기가 해당됩니다. "남자와 여자 2명이군요. 남자는 비열하고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여자는 천사처럼 묵묵히 참고 있네요"
5)
암묵적으로 이상화한 인물에게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특징을 덧붙여서 손상시키거나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로 다음과 같은 보기가 해당됩니다. "머리가 없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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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반응에서 평가절하는 개인의 내적/외적 대상의 가치와 중요성을 떨어뜨리고, 손상시키며, 약화시키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혹은 선망하는 대상에 달성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면 대상의 선함을 손상시키고 선망의 원천을 제거하려는 내용을 보고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평가절하에는 다음과 같은 세 차원이 있습니다.
1.
인간다움의 정도 : 왜곡된 인물이나 신화적 대상을 보고할수록 평가절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2.
시공간적인 측면 : 과거나 미래, 원거리에 있다고 지각하는 대상일수록 평가절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3.
정서적 기술에서 표현되는 정도
: 대상을 노골적,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설명할수록 평가절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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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반응에서 이상화는 그 대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리비도나 전능함을 대상에 투사하는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이상화의 목적은 어느 한 대상을 박해하는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함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대상을 위해와 파멸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구체적인 차원은 평가절하와 동일합니다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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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반응에서 부인도 상위/중간/하위의 3수준으로 내용이 나뉘어 나타나는데 각각의 양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위 수준의 부인
1) 부정(negation)으로 충동의 거부(disavowal)를 의미합니다. 로샤 반응에서는 보기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처녀", "천사", "이 사람들은 절대로 화가 나지 않았어요"
2)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로 지나치게 기계적, 과학적, 문학적, 지적인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로샤 반응에서는 보기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두 명의 호모 사피엔스"
3) 최소화(minimization)로 반응에 추동이 부여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축소되거나 비위협적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풍자만화, 시사만화같은 인물로 변화시키는 것도 포합니다.
4) 거절(repudiation)로 거절을 통해 반응을 철회하거나 이미 했던 반응을 부인하게 됩니다.
2. 중간 수준의 부인: 기본적으로 모순이 포함된 반응입니다. 모순의 근거는 감정적, 논리적, 그리고 현실적 이유일 수 있습니다. 로샤 반응에서는 보기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섹시한 산타클로스", "싸우고 있는 두 명의 수녀", "자면서 책을 읽는 남자"
3. 하위 수준의 부인: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양립이 불가능한 묘사를 하는 반응이 포함됩니다. 로샤 반응에서는 보기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두 사람인데 상체는 여성이고 하체는 남성이군요", "사람인데 입 대신에 새의 부리가 있군요"
출처 : "로샤 검사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 중 일부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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