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는 26일 오전으로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났지만 오후 1시에 사회/성격 심리학회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은 예정대로 열렸습니다.
범죄심리전문가 수련과정에 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해서 그런지 꽤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저는 군 병원에서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평가 의뢰되는 사람들을 꽤 많이 접하기 때문에 어떤 평가도구가 도입되는지 궁금해서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M-FAST라는 사병 탐지 도구로 석사 논문을 쓴 연구자가 나와서 Malingering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 소개와 자신의 석사 논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M-FAST를 개발한 미국의 연구자가 직접 나와서 M-FAST에 대해 설명을 했고요.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가 요약 통역을 했습니다.
우선 한국 연구자의 발표는 제 성에 못 미쳤습니다. 일단 한국판 타당화 연구 결과의 각종 수치들이 만족할만한 수치가 전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전북대 오상우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요인 분석을 비롯한 방법론의 헛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추가적인 연구가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연구자에게 제가 했던 질문은 연구 중 수렴 타당도를 산출하기 위해 사용한 MMPI-2 타당도 척도에서 F-K와 F척도 점수만 사용하고 왜 Fp척도를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는데 Fp척도를 사용한 Malingering 연구가 없어서 F-K와 F>73T를 기준으로 사용한 연구 결과를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이건 제가 작년 4월에 포스팅한 내용(
'MMPI-II 타당도 척도를 이용한 부정왜곡(Faking-Bad)과 꾀병(Malingering) 판별하기')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2005년에 열린 MMPI-2 워크샵에서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인 M-FAST가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 2008년이니 이건 연구자가 관련 연구의 review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Malingering 의심 환자를 평가할 때에도 F-K나 F보다는 Fp를 이용한 판별 단계를 사용하는 것이 경험적으로 더 정확합니다.
다음으로 M-FAST의 개발자인 Miller교수에게 제가 한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M-FAST가 25문항으로 된 구조화된 면접 도구인데 screening tool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자기 보고형 질문지로 만들지 왜 시간과 품이 더 들어가는 구조화된 면접 도구로 개발했냐고 물으니 피검자를 관찰하려고 그렇게 했답니다. M-FAST는 면접 질문에 대한 피검자의 답과 실제 행동의 불일치성을 점검하는 문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언뜻 들으면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면접자의 주관적인 능력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는 도구라는 말도 됩니다. 게다가 면접자가 피검자를 지속 관찰할 수 없고 10분 남짓한 면담만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나라에서 Malingering을 평가하는 경우 주로 심리평가 Full Battery를 실시하는데 물론 마땅한 screening tool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검자가 반응 패턴을 조작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M-FAST의 manual이나 관련 자료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경우 25문항을 분석해서 피검자가 이 검사 도구를 빠져 나갈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면서 미국에는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고 한국판이 나왔을 때에는 어떻게 할 예정이냐(범죄심리전문가 자격자에게만 판매를 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하면서)고 물으니 제 질문이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모든 검사는 완벽한 것이 없으니 필요하면 저보고 개발해보라고 하더군요. 도구를 폄하한 것이 아니라 악용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물은 것인데 개발자가 이렇게 나오니 정말 당황스럽네요.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제가 군 복무 기피를 위해 평가 입원한 환자들이 DSM-IV를 구해서 증상을 연습하거나 MMPI 관련 서적을 읽고 들어오는 경우를 봤거든요. 때문에 분석이 가능한 단순한 평가 도구는 언제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니요. 미국에서는 M-FAST를 통과하면 Malingering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추가 평가를 안 한다는데 그렇다면 M-FAST만 분석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제 경우에는 Malingering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일차적으로 김홍근 선생님이 개발한 K-MDS를 실시하고 Bagby(2005)의 MMPI-2를 이용한 Malingering 탐지 방법도 사용하는데다가 거기에서도 빠져나갈지 모르는 Malingering을 잡아내기 위해 Full Battery에 포함된 검사들을 교차 검증합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몰라서 이 심포지엄에 참석했는데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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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Malingering)은 '물질적 이득(금전, 상품, 각종 서비스, 상해 보상 등)과 공적 의무(군 입대, 처벌, 강제적 사회봉사, 위자료 지불 등) 및 공적 책임(사법 소송과 관련된 법적 문제)의 회피 등
외부 유인(external incentives)을 얻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의도적으로 위장하거나 과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병은 외부 유인이 있는 상황이라면 어디서나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문제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외국의 연구(Greiffenstein, Baker & Gola, 1994)는 사병을 시도하는 피검자의 비율이 17~33%에 이른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연구도 없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편람(DSM-IV, 1994)에는 사병을 '임상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기타 상태'로만 분류하고 있어 소홀히 다루는 느낌인데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임상에서 좀 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병의 진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Greiffenstein et al., 1994; Slick et al., 1999)
1. 외부 유인의 존재 여부
2. 사병에 특화된 검사(예, HFCP)의 결과
3. 인지검사의 결과와 뇌검사(예. CT, MRI 등) 결과의 불일치 정도
4. 인지검사의 결과와 피검자의 일상 행동의 불일치 정도
5. 자기보고된 증상과 뇌검사 결과의 불일치 정도
6. 정신병리검사의 타당도 척도의 결과
* 사병 시도자의 특징
사병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병리적(psychopathological) 증상 보다는 주로 기억력과 주의 집중력 문제와 같은 인지적(또는 신경심리적) 증상을 위장합니다. 그런데 Full Battery에서 사용하는 MMPI의 타당도 척도 등은 정신병리적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병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민감도 면에서 상당한 제약이 있습니다. 따라서 Malingering을 전문적으로 진단하는 검사 도구가 필요합니다.
* 허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와 Malingering 구별하기
Malingering과 변별한 필요가 있는 장애로는 허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와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가 있습니다.
2가지 변별 기준을 살펴봐야 하는데, 바로
'증상의 의도성'과 '
유인의 종류'입니다. 허위성 장애 환자의 경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위장하지만 이것은 외적 보상이나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환자 역할(sick role)'을 하고 싶은 내적 동기(internal motivation)에 의해 움직입니다. 즉, 의도는 있으나 2차 이득(secondary gain)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이에 비해 전환 장애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데 이러한 증상은 환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즉 이들은 2차 이득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의도도 없습니다. 이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증상의 의도성 유인의 종류
사병(Malingering) 있음 외부
허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 있음 내부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없음 내부
* 사병을 진단하기 위한 검사
1. Wechsler 지능검사
지능검사에서 사병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소검사는 '숫자 외우기'입니다. 숫자 외우기처럼 난이도가 쉬운 검사와 어려운 검사가 짝을 이루는 검사에서는 질적 수행의 결과를 진단 준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따라 외우기의 수행이 거꾸로 따라 외우기의 수행 보다 낮다면 사병의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숫자 외우기를 사병 진단에 사용할 때에는
RDS(Reliable Digit Span)를 산출하는데 이는
'바로 따라 외우기'에서 두 시행 모두를 성공한 것 중 가장 긴 자릿수와 '거꾸로 따라 외우기'에서 두 시행 모두를 성공한 것 중 가장 긴 자릿수를 합하여 산출합니다. Greiffenstein 등(1994)은
7/8을 사병과 비사병을 변별하는 절단점으로 제시하였습니다.
2. 기억검사
AVLT 등에서는 재인 시행 결과를 사병 탐지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재인 시행은 난이도가 낮은 특성 때문에 기억 장애가 심한 환자라도 어느 정도의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사병을 시도하는 환자의 경우는 재인 시행의 수행이 오히려 낮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Greiffenstein 등(1994)은
재인 시행의 정답 수 7/8을 변별 절단점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만약
재인 시행의 수행이 회상 시행의 수행보다 낮을 경우 사병의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KMDT(K-Malingering Diagnostic Test)
경험적으로 타당도가 높은 사병 전문 진단 도구인 HFCP(Hiscock Forced-Choice Procedure)형 검사 도구 중 검사 시간이 짧아서(약 10분) 임상적 사용성이 뛰어난 Guilmette형을 모델로 제작한 전문 사병 진단 도구입니다. 난이도가 극히 낮아서 아라비아 숫자를 읽을 수만 있으면 시행할 수 있고, 심한 인지 장애만 배제한다면 매우 신뢰롭게 사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시험적으로 실시를 하면서 임상적 유용성을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KMDT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진단 영역이 사병인지라 부득이하게 생략할 수 밖에 없겠네요. 학문적으로 궁금하신 분은 제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References
* Greiffenstein, M. F., Baker, W. J., & Gola, T. (1994). Validation of malingered amnesia measures with a large clinical sample.
Psychological Assessment, 6, 218-224
* Slick, D. J., Sherman, E. M. S., & Iverson, G. L. (1999). Diagnostic criteria for malingered neurocognitive dysfunction: Proposed standards for clinical practice and research.
The Clinical Neuropsychologist, 13, 545-561
출처 : K-사병진단검사 해설서 중 일부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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