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관련 입문 서적을 보면 어떤 책이든 간에 상담 회기 동안에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상담은 단순한 조언을 하는 자리가 아니며 그러한 조언이 효과적이었다면 내담자가 상담자를 찾아올 리가 만무했을 것이기에 내담자가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내담자의 문제와 그 원인이 파악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는 것이죠. 그래서 초기 정신분석의 흐름을 따르는 임상가들은 중립을 깨뜨리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중립을 깨고 내담자의 심리적 장(psychological field)에 함부로 뛰어드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져 무조건적인 중립을 고수하는 건 반치유적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기계적 중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상담자도 나름의 가치관과 도덕 관념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며 상담 회기 중에도 그런 가치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상담자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이와 역전이 분석을 통해 비중립적인 사유와 감정들로부터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끌어내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중립이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중립이 대체 무엇입니까? 내담자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 관찰하고, 분석하고, 공감하되 개입하지 않는 것?
상담 회기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연결됨으로써 시작됩니다. 연결과 해체는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누구에게서 끝이 납니까? 상담자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상담자가 의도적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과연 내담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으로는 치유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립이 과연 치유적인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죠. 이 글의 앞 부분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중립을 유지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때까지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는 게 과연 꼭 필요한 일일까요? 약간 과장해서 비약해 보자면 상담자가 중립만 지키면 내담자가 스스로 해답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게 효과적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진정한 상담자의 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내담자에게 이로울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중립은 전이-역전이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자가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제안을 함부로 조언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심리적 브레이크 정도의 기능입니다.
내담자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들과 함께 허우적대면서 헤엄치는 법을 돕는(모방하든, 창조하든 간에) 상담자가 될 것인지, 안전한 배 위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내담자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상담자가 될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립의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엄정한 중립을 끝까지 유지했기 때문에 비로소 내담자가 통찰에 이르게 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섣불리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제 내담자가 제 중립 고수로 인해 받게 될 상처로 아파하기보다는 제 섣부른 개입으로 인해 함께 허우적거리는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라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자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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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치료적 접근법을 사용하든 간에
상담자가 매 회기 상담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멘트는 아마도 "지난 주에는 어떠셨나요?"일 것입니다.
가장 무난하게 사용하는 멘트입니다만 이 멘트는 두 가지 제한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멘트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내담자가 지난 주 상담 회기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일주일을 생활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주일을 지냈던 내담자라면 매 상담 회기 때 상담자가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자신이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매 상담 때마다 단순히 상기해서 상담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이 멘트를 사용하는 상담자는 지난 번 상담 회기 때 다루었던 내용을 일상 생활에서 한번쯤 곰씹어 보거나 적용해 볼 의지와 에너지가 있는 내담자에게 주로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제한점은 내담자라면 누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자를 찾아왔기 때문에 상담 초반에는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다소 상투적으로 들리는 "지난 주에는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고민하는 문제가 표면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해결되거나 stable한 상태가 되면 실제로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담자가 "이번 주는 별다른 일이 없었네요", "평범한 한 주였어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상담을 시작하는 멘트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 때
제가 선호하는 멘트는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볼까요?"입니다.
이 멘트는 문제 해결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상담에서 특히 효과적인데 자칫 매 상담 회기의 초반이 신변잡기나 근황에 대한 수다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고 동시에 지난 주 상담 내용과 연결성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물론 상담자가 이 멘트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면 상담할 내용을 미리 생각해와야 한다는 내담자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충분한 rapport가 형성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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