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표 선생님의 책, '심리학의 다섯 가지 질문(2016)'을 북 크로싱합니다.
전작인 '사람은 왜 아픈가(2012)'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날리신 것 같네요.
'사람은 왜 아픈가'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의 흐름을 진솔하게 다루었다면 이 책에서는 대체 사람은 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지, 그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리학과 인문학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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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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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
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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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은 도박 중독이라는 병의 가장 큰 증상 중 하나이기도 하고 치유의 관건이기도 합니다. 도박 중독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책임진다는 건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 중 하나니까요.
그래서 상담자는 도박자가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지에 관심이 많고 항상 눈여겨 봅니다. 그런데 도박 중독자는 어떻게 책임지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소위 '바닥치기' 단계를 지나야만 가능한 걸로 생각하지만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많은 요인들이 있거든요.
다만 분명한 건 자기를 대신할 사람이 있는 한 도박 중독자는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거지요.
그게 도박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람이든, 거짓말이나 변명을 대신 해 줄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심하게는 실제로는 대신 책임져 줄 사람이 없는데도 도박 중독자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기만 해도 이 무책임 기제가 작동합니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도박 중독자는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박 중독자가 '바닥을 치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나설 때까지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박 중독자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push하는 대신 도박 중독과 관련된 문제만큼은 심할 정도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죠. 일종의 '방관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죠.
도박자가 도박에 빠져 생긴 문제를 '똥'으로 비유한다면 냄새난다고 어서 치우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똥'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듯 행동하는 것이죠. 분명히 냄새가 나고 보기에도 더러운데 말이죠. 처음에 도박자는 '똥'의 존재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치워줄 것을 직, 간접으로 요구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똥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면 결국 본인이 치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때가 되면 도박자의 손을 살짝 거들어 주기만 해도 문제가 한결 쉽게 해결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도박 중독자는 자기를 대신할 사람이 있는 한 절대로 책임지기 위해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책임 질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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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선별심리평가를 할 때 문장완성검사(SCT)를 추천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 설명드린 바가 있고 앞으로는 MMPI-2/A, TCI/JTCI 조합으로 점차 대체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MMPI-2/A, SCT 조합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 두 가지 검사의 해석 순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늘
검사 실시 순서와 해석 순서를 일치시키는 것이 해석 노하우를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리는데 종합심리평가를 기준으로 설명드리면,
TCI/JTCI -> MMPI-2/A -> SCT -> BGT -> 지능 검사 -> HTP(KFD) -> 로샤(TAT/CAT)
의 순으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실시 시간도 가장 절약되고 해석도 용이합니다. 이렇게 조합해서 배열하는 기준으로는,
1) 자기 보고형 검사 -> 대면 검사
2) 구조화된 검사(객관적 검사) -> 비구조화된 검사(투사 검사)
3) 의식 수준 -> 무의식 수준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별심리평가를 실시할 때는 MMPI-2/A를 먼저, SCT를 나중에 해석하는 것이 좋은데 상담 현장에 계시는 임상가 선생님들의 경우는 상담 업무에 익숙하기 때문에 내담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문장완성검사의 내용을 통해 먼저 파악하고 그 다음에 MMPI-2/A 결과로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각종 척도와 수치가 난무하는 MMPI-2/A보다는 언어적 반응이 주를 이루는 SCT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고 해석하기에도 부담이 덜하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됩니다.
문장완성검사는 각 문항에 검사자의 질문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반투사 검사이기 때문에 수검자가 얼마든지 반응 내용을 왜곡, 윤색, 조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입각해 수검자의 문제를 가설로 만들면 MMPI-2/A의 결과를 교차 검증할 때도 이미 갖고 있는 해석틀에 맞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틀린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타당도 척도를 통해 수검자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고 평가자의 주관적 해석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MMPI-2/A 결과를 통해 우선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SCT를 통해 교차 검증하는 편이 오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물론 MMPI-2/A의 수많은 척도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항상 구조화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를 교차 검증하는 편이 주관적 해석 오류의 가능성(때로는 수검자 이해에 치명적일 수 있는)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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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이미 예전에 몇 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가능한 한 평가자가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수검자의 장점과 심리적 자원을 찾기 위해서 평가자가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렸고,
*
'심리평가, 심리평가보고서, 해석 상담은 한 세트이다'에서는 업무의 편의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수검자를 위해 평가자가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담자가 접수 뿐 아니라 후속 상담까지 원 스탑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전 포스팅에 접수와 후속 상담이 앞 뒤로 추가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우선
접수하는 사람이 상담자와 다르면 의뢰 사유에 맞는 심리검사 도구를 선택할 수 없어서 미리 정해놓은 검사(주로 질문지형 검사)만 기계적으로 실시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각 상담 기관에서 접수 업무를 담당하는 임상가를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상담자가 접수까지 담당하면 내방 사유에 따라 상담 목적에 따른 배정, 심리검사의 실시 타이밍과 필요한 검사 도구의 선정까지 할 수 있어 내담자에게 맞춤식 접근이 가능한데 현재 상황은 내담자가 방문하면 자기보고형 검사를 routine하게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문제의 심각도를 기계적으로 평정해 다른 상담자에게 배정하는 한숨나오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냐 하면, 내담자가 자기보고형 검사를 실시하였으나 배정이 늦어지거나 배정된 상담자가 상담이 많아 내담자가 오래 대기하는 경우 정작 상담을 시작했을 때 기존에 실시한 심리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게 되고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대기자가 많은 상담 기관에는 이런 문제가 자주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
심리평가를 담당한 평가자가 후속 상담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하면,
상담을 본인이 하지 않으니 심리평가를 할 때에도 자신이 상담을 하게 될 내담자가 아니므로 검사 도중 추가 질문이 현저히 줄고(궁금하지 않으니),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진단이나 예후, 개입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심리평가를 받은 내담자에게 큰 손해이고 이 내담자를 상담하게 될 상담자에게도 손해가 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해 해석 상담을 진행한다고 해도 접수와 후속 상담까지 담당하지 않으면 많은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많은 상담 기관이나 센터가 supervisee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안배하는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이 시스템은 제대로 된 훈련을 제공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나쁜 시스템입니다.
제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임상가는 언젠가 개업해서 1인 상담실을 운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수련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접수, 상담의 배정, 심리검사 도구의 선택, 심리검사의 실시, 심리평가보고서의 작성, 해석 상담, 후속 상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특히 그 과정이 앞뒤 과정과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꼭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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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중독된 내담자라면 누구나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박을 그만두고 싶어하죠. 하지만 초기에 상담을 하다 보면 다들 대놓고 말을 안 하지만 도박자의 첫 마음이 대체로 아래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더 이상 큰 피해 없이 도박을 조절하면서 게속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담이 진행되면서 도박에 중독된 이상 도박을 조절하면서 즐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도박자는 드디어 도박을 끊을 마음을 먹지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도박은 끊어야 하고 또 끊고 싶지만 고통스러운 건 싫다'
이게 무슨 소리죠? 도박 때문에 이미 많은 재산과, 가족의 신뢰와, 주변의 평판까지 잃고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데 내가 고통을 피하려 한다고요?
도박 중독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기까지 엄청난 고통을 받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그건 도박을 함으로써, 도박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수동적인 고통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고통은 도박을 그만두기 위해 받아야 하는 고통입니다. 나는 도박을 그만두고 싶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박만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도박자가 많은데 절대로 일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몸 안의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통증도 감당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피를 흘려야 하는 것처럼 도박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래서 내 삶을 구하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팔 다리마저도 잘라버릴 수 있다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가끔 도박 중독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도박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까지 버리실 수 있나요?" 혹은 "절대로 버릴 수 없는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우리는 중독자가 도박을 그만두기 위한 마음이 어느 정도로 절실한지,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상담자는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 그래서 어디까지 준비가 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박자를 push할 것인지, encourage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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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상담에서 도박을 끊어야 한다는 건 절대 명제에 가깝습니다. 도박을 조절하며 즐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상담자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상담자는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도록 결정,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상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박을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 물어보는 상담자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상담 초기에 도박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명쾌하게 답하는 도박자의 수가 의외로 적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뭔가 도박에 빠져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가족들이 걱정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계속 가면 큰 문제가 생기겠구나 싶어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은 도박 중독자가 아닌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황당하기도 하고 잠시 운이 없어서 돈을 좀 잃었을 뿐 곧 다시 기회가 오면 잃어버린 돈을 다 찾을 수 있을텐데 왜들 이렇게 부산을 떠나 싶은 생각을 하는 것이 도박 중독자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큰소리 탕탕 치기에는 재정적인 손실이 발생한 것만큼은 명백하니 가족들 마음이라도 달래줄까 싶어 못 이기는 척 하고 따라온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기관이 사실상 도박 중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데도 불구하고 도박자는 겉으로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도박을 그만둘 생각까지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상담자가 도박자에게 왜 도박을 그만두려고 하는지 묻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도박을 끊을 생각이 전혀 없는 도박자라면 대부분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피상적으로만 답을 할텐데 그래도 도박을 왜 끊으려고 하는지 도박자 스스로 생각해보고 답을 하게끔 하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저는 보통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도박자의 역할을 할테니 상담자의 입장에서 도박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해보라고 주문합니다.
도박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도박자일수록 도박을 끊으라고 상담자를 설득할 무기가 없습니다. 금방 말문이 막히는데 그러고 나면 자신이 사실은 상담자가 반박한 바로 그 논리에 매달리면서 도박을 계속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채게 됩니다.
그 생각의 틈을 상담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상담의 향방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상담자가 도박에 중독되면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게 되고, 당신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고, 도박을 그만두지 않으면 얼마나 더 큰 일이 발생하게 되는지를 설득하거나 강변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소용이 없습니다. 도박자의 방어를 더욱 공고히 만드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죠.
그러니 도박자에게 도박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도록 요구하고 가끔은 입장을 바꾸어 도박을 끊으라고 상담자를 설득해보는 작업을 해 보기 바랍니다.
도박자의 마음을 흔들어 도박 중독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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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들을 위한 맞춤형 글입니다.
대형 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으면서 상담이라고는 수련 요구 조건을 충족할 정도의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접했는데 전문가가 되자마자 덜렁 중독 상담이라는 하드코어 영역으로 떨어져 맨 땅에 헤딩하면서 상담을 몸으로 익힌 제가 상담, 심리치료를 익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같잖게 보일 수 있지만 병원 장면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가들은 사실 상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본격적인 supervision이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매우 부족하기에 제 경험이라도 도움이 되실까 하여 정리해 봅니다.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기본적인 방법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이 상담 내지는 개인 분석을 받는다. 이건 상담 전공을 하신 임상가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데 정작 임상 전공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본인이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상태가 아니라면 경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게슈탈트 집단상담을 30시간 받았지만 개인 상담이나 교육 분석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집단 상담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당시에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련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담자가 반드시 상담을 받을 필요는 없겠다는 선입견만 잔뜩 생긴 것이 아닌가 후회합니다.
2)
supervisor의 지도 하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내담자를 상담한다. 이것 역시 상담 전공자라면 당연한 수련 과정이겠지만 임상 영역에 계신 분들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임상의 supervisor들도 대부분 임상 전공자라서 본인이 상담 supervision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무엇보다 상담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담 supervision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저도 제 supervisor가 상담 supervision을 해 줄 능력이 안 되기에 외부 상담 기관의 supervisor를 찾아가 supervision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었지만 제가 상담한 케이스의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죠.
3)
관심 분야를 찾아서 좀 더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 기법이나 상담 접근법의 자격을 취득하거나 학회, 연구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EMDR, ACT, MBSR, MBCT, 사이코드라마 등이 있는데 전문성을 배가하고 자신의 상담/심리치료 내공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죠. 저는 단체나 조직, 집단으로 뭘 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병리연구회에 회비를 냄으로써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관심과 여력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면 좋습니다.
문제는 임상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순서와 방식으로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환경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국 저처럼 self-help training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했냐 하면,
우선 상담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을 읽었습니다. 임상 전공은 상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없기 때문에 춤으로 말하자면 소위 기본 스텝을 익히는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이 때 대학원 등에서 주로 보는 상담 이론서, 치료 이론서를 읽으면 안 됩니다. 그건 나중에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추가로 읽어도 됩니다. 지금은 춤의 원리와 이론을 익힐 때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책은 클라라 힐과 캐런 오브라이언이 공저한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스캇 마이어와 수잔 데이비스가 공저한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김환,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상담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Interview)'입니다. 이 3권의 책만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반대로 이 3권의 책만큼은 꼭 읽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도 안 읽고 상담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약간은 무식하게도 무조건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본 스텝을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보지 않으면 춤을 익힐 수 없듯이 어설프고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어도 내담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못할 짓 하는게 아니냐고 비판하실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경우는 supervisor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상담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내담자의 치유가 최우선이죠. 하지만 임상도 그렇고 상담도 그렇고 수련 과정의 특성 상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상태란 건 노선이 바뀌어 더 이상 오지 않는 버스와 같은 겁니다. 어찌 되었든 상담을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내담자부터 상담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임상 전공자라면 이 때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익숙한 심리평가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상담을 하다보면 당연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중요한 건 실수에서 배우는 겁니다. 모든 상담을 철저히 복기하고, 놓친 부분을 챙기고,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좌절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밀려드는 내담자를 기계적으로 만나는 것만큼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안무가는 없으니까 좌절할 시간에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세요.
예약한 상담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내담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상담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중요한 건 깊이를 추구하는 겁니다. 춤으로 따지자면 익히기 쉬운 스윙으로 시작했지만 탭 댄스로 갈 것인지, 탱고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상담에서도 generalist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문제에 좀 더 전문적으로, 좀 더 깊이,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로 상담하는 내담자의 유형이 대상 관계 이론의 틀로 접근할 때 잘 보인다면, 그리고 그러한 틀이 본인에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본격적으로 대상관계이론과 그에 따른 기술을 공부하는 겁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회나 모임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제가 드린 설명이 임상 전공이면서 상담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선험자 입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조언이니 가끔은 유용한 조언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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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가들은 의뢰 사유(Reasons for Referral)를 확인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또 절차에도 익숙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의뢰 사유가 변별 진단이기도 하고 병원 장면에서 의뢰 사유를 충족하지 못하는 심리평가보고서는 사실 상 쓸모없는 취급을 받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기상담 체제로 바뀌면서 상담자 배정 전에 routine하게 심리평가를 실시하거나 상담자가 상담 도중 필요에 의해 내담자와 상의 하에 심리평가를 self 의뢰하는 상담 현장에서는 의뢰 사유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시하는 심리검사 battery가 검사 수가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고 평가자의 재량권이 별로 없는 병원 장면보다 상담 현장에서 의뢰 사유 파악의 중요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 이유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의뢰 사유 파악 -> 정확한 가설 설정 -> 최적화 된 검사 도구 선택
의뢰 사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그에 따른 적합한 가설을 설정할 수 있고 가설이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최적의 검사도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등교 거부를 하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있다고 해 보죠.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서적 문제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온통 게임에만 몰두해 있고 오프라인의 또래 관계도 좋지 않으며 수업 태도가 불량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급우들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적은 중학교 생활 내내 바닥이었고요.
학교 부적응 양상을 보이는 전형적인 청소년인데 의뢰 사유가 상급 학교 진학 및 성적 향상 가능성 타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의뢰 사유가 학업 수행에 대한 것이니 당연히 가설은 지적 제한이 있느냐, 지적 장애 가능성이 있느냐일테고요.
그러니 필요한 검사 도구는 지적 제한을 확인할 수 있는 지능검사와 BGT, 사회성숙도 검사 등이 될 겁니다. 정서적 문제가 보고된 적도 없고 의뢰 사유에서도 적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상 로르샤하 검사나 그림 검사와 같은 투사법 검사는 굳이 실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보고되지 않은 심리적 문제가 의심된다면 MMPI-A 정도만 추가하면 되겠지요.
이처럼 의뢰 사유를 명확하게 파악하면 그만큼 가설을 세부적으로 세울 수 있고 그러면 꼭 필요한 검사 도구만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수검자를 불필요하게 괴롭히는 일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의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 도구만 사용했기 때문에 결과를 해석할 때에도 불필요한 정보 과잉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수검자 뿐 아니라 평가자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심리평가에서 반드시 의뢰 사유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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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정신과 의사인 Roger MacKinnon과 Robert Michels가 함께 쓴 'The Psychiatric Interview in Clinical Practice(1971)'의 번역판입니다.
2012년에 2판이 번역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에 굳이 1판을 어렵게 구하실 필요 없고 보고 싶은 분은 2판을 구해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1판에 비해 장애군도 보강되었고 1판 당시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이메일 상담에 대한 내용도 추가되었습니다.
번역의 질은 그다지 우수한 편이 아닙니다만 거의 모든 용어 뒤에 원어를 병기했기 때문에 많이 거슬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제목 그대로 임상 현장에서 정신과적 면담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룬 책인데 이 책의 장점은 임상가라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은 짚으면서도 너무 전문적이지 않아서 읽기가 편하다는 겁니다.
1부에서는 면담과 정신역동의 일반 원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2부에서는 강박성 성격 장애, 연극성 성격 장애, 공포증, 우울 장애, 정신분열병, 편집성 성격 장애, 반사회성 성격 장애, 인지기능장애 환자를 면담할 때 유념해야 할 주의 사항과 정신병리 및 정신역동, 방어기제, 면담 기법 등에 대해 꼼꼼히 다루고 있어서 꽤 유용합니다. 왜냐하면
각 장애의 역동과 면담 기법을 상세하게 연결하면서 풀어서 설명하는 (한글)책이 시중에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분히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보는 시선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임상심리학자나 사회복지전문가, 간호전문가 등 유관 전문가의 경우는 각자의 직능에 따라 적당히 가감하면서 보셔야 합니다.
책 디자인만큼은 정말 심할 정도로 무신경한 하나의학사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상당히 기분이 상합니다만 내용 만큼은 한 권 소장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기를 권할 정도로 좋은 책입니다.
닫기
* 성공적인 상담이었는지 여부를 말해주는 한가지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담자와 상담자가 서로 이해한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정도'일 것이다.
* '내담자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상담'이 '정신병리를 도출해내려는 상담'보다 훨씬 더 진단적으로 값진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 노련한 상담이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건강한 측면을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내담자가 가학적인 태도로 상담자를 대하는 것을 그냥 묵인해버리는 상담자 또한 역전이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 "걱정 마세요, 다 잘 해결될 겁니다"와 같은 일반적인 안심시키기는 대부분의 내담자에게 효과가 없다. 내담자의 문제에 대한 specific formulation에 바탕을 둔 이해의 형태로 지지를 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 내담자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거나 혹은 부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상담자는 항상 상담실에서의 행동에 대해 내담자에게 제한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화가 난 내담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협적인 태도로 상담자에게 다가온다면, 이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군요"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목소리를 높여 "당장 앉으세요" 또는 "이렇게 저를 위협하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종종 내담자의 증상은 중요한 인물(important figure)과의 동일시 문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내담자에게 '아는 사람 중에 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 내담자가 상담에 많이 늦은 경우에 처음으로 늦었다면,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늦은 이유를 설명할 때 상담자는 그 이유를 들어줄 수 있지만, "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 상담자가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대신에 '상담자가 듣고 싶어하는 것'에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 반면, 상담자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들게 될 것이다.
* 내담자의 결혼 상태, 직업 등(프로이트의 일과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한 채로 첫 상담을 끝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감정(deeper feeling)을 발견해내기 위한 목적의 모든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기법이다.
* 구조화(formulation)는 주된 어려움에 대해서만 국한시켜야 한다.
* 정신역동적인 기본틀의 관점에서 보면, 행동은 가설적인 정신의 힘, 즉 동기나 충동, 그리고 이들을 조절, 억제, 분출시키는 심리적 과정의 산물의 산물로 간주된다.
< 강박성 성격 >
* 강박적인 사람에게는 '복종과 반항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계속해서 교차된다.
* 강박적 인격에서 전통적으로 정의되어온 대부분의 성격적 경향들이 이러한 핵심 갈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의 정확함, 양심적임, 꼼꼼함, 정리 정연함, 그리고 확실함 등은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들이다. 또 다른 일련의 강박적 경향들은 갈등의 분노 부분으로부터 유래된다. 단정치 못함, 태만, 고집스러움, 인색함 그리고 가학성 등은 반항적 분노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제 이러한 경향들에는 상반된 면들이 포함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 강박성 환자의 면담 상황에서는 세 가지 핵심적인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관여되는데 더러움, 시간, 그리고 돈이다.
* 강박성 환자에서 보이는 과장된 예절성은 자신의 극심한 적대적 충동을 통제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 강박성 환자는 상충되는 감정과 모든 진실한 감정들을 가능한 한 비밀로 하려한다. 이는 가장 특징적인 방어 기제 중 하나인 감정적 격리를 의미한다. 강박성 환자에서의 사고는 동기와 감정을 인식하지 않고 적응적 행동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다.
* 지루함은 환자의 사소한 것에의 몰두, 정확한 단어를 찾기 위한 노력, 관련이 없는 세부사항을 강조하는 것 등에 대한 흔한 반응이다. 의사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환자가 성공적으로 감정을 회피하고 있으며 면담자는 이러한 방어적인 행동에 대해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 강박성 환자는 미래의 행복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매우 능률적이지만, 마침내 그 시기가 왔을 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장을 풀지 못한다.
* 감정을 회피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환자는 회피적이고 의심이 많아지게 된다. 실제 감정은 종종 정반대의 가장된 표현 뒤로 숨는다.
* 그는 타인과의 감정적 접촉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를 회피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 모든 강박성 환자들은 어느 정도는 편집증적이다.
*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강박성 환자들은 대신에 존경과 안정감을 추구한다.
* 자기 주장성과 공격성의 억제에 뒤따르는 자기 존중감과 자존심의 감소로 인해 이들은 우울해진다.
* 의존성 만족이 포기된 상태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부가되어, 강박성 환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주관적 느낌을 거짓으로 꾸며내게 된다.
* 남들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서 강박성 환자의 보상적 과대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 강박성 환자는 면담자에게 다가갈 때 역할을 역전시키려 한다. 이때에는 "오히려 당신이 저를 면담하려는 것을 보니 환자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신가 보군요"라는 보편적인 언급을 해주며 공감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좋다.
* 강박성 환자의 면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진정한 감정적 접촉을 성립하는 것이다. 이를 성공시키는 데에는 면담자의 감정적 반응이 가장 훌륭한 지침이 된다.
* 강박성 환자는 면담에 오기는 하지만 면담자를 바라보지 않고, 본다 하더라도 슬쩍 엿보기만 한다.
* 강박성 환자는 동일한 목적 하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어들을 사용한다. 면담자는 이런 모든 방어들을 해석해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면 환자는 공격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 침묵은 감정적 라포를 피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강박성 환자는 심한 정신병 환자와 심한 우울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환자들보다 긴 침묵을 훨씬 더 잘 견뎌낼 수 있다.
* 환자의 회피성을 수용해주어서는 안 되며, 대신 그의 자발적인 감정 과정에 대해 탐색해 보아야 한다. 치료자가 침묵을 깨는 경우에는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기보다는 침묵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환자가 흥정을 통해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사항이 면담비와 면담시간이다. 강박성 환자는 '협잡꾼'이다. 면담비를 내려주게 되면 환자는 의사가 처음에 과잉청구를 했다고 느끼거나 또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증가하게 된다. 잦은 면담시간 변경 요청을 들어줌으로서 의사를 귀찮고 성가시게 만들도록 내버려두는 것 역시도 똑같이 파괴적인 것이다.
*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환자의 기술적인 용어는 일상적인 용어로 바꿔주어야 한다.
* 주지화를 사용하려는 환자의 경향은 의사가 생각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질문을 피함으로써 최소화될 수 있다. 또한 의사는 환자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질문은 주지화 방어의 의심하는 기제를 촉발시키기 때문이다.
* 느낌을 감추는 또 다른 방법은 부정을 사용하는 것이다. 강박성 환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을 할 때 긍정문보다는 부정문으로 이야기를 한다. 무의식에는 부정형이 없다는 것을 기억할 것.
* 흔히 발견되는 부정의 구체적인 형태는 "사실대로 말하면...", "제 진짜 감정은...", "솔직히 말씀드리면..."과 같은 서두어나 삽입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 환자들은 분노를 통제하고 감추기 위해 다른 기법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환자는 매번 면담이 끝날 때마다 면담자와 악수를 나누는데, 이는 '친한 사이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이고 자신의 공격성이 면담 동안에 해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한 것이다.
* 환자의 감정은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환자가 겉으로 보여주는 감정에 따라서 면담자가 행동을 보인다면, 그는 환자를 크게 오판하게 될 것이다.
* 모든 자발성은 강박적인 사람에게는 혼란스러운 것이다.
* 면담자는 자발성을 유도해내도록 노력해야 하며, 환자가 자발성을 보일 때마다 그 자발성을 쫓아가야 한다. 환자가 자발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특정 질문에 대한 특정 대답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 초심자들은 종종 규칙이나 표준 공식을 찾는다. 강박적 환자에게는 표준 공식을 피하는 것이 규칙이다.
* 면담자는 환자와 논쟁을 벌이거나 힘겨루기를 재창출하는 것에 공모해서는 안 된다.
* 환자가 노골적으로 화가 나서 의사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수도 있다. 이때는 "화가 나신 것 같군요"라고 말해선 안 된다. 대신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분노를 환기시킬 수 있도록 내버려둔 뒤, "제가 당신을 무시했다고 느끼시나보군요" 또는 "저에게 실망하셨나봐요"라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반응은 환자의 분노는 정당하다는 식의 동의는 해 주지 않으면서 방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환자의 분노감을 수용해주는 것이다.
* 환자의 분노에 대해 보복을 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그의 죄책감을 용서해주는 것 역시도 똑같이 부적절한 것이다.
< 히스테리성 성격 >
* 히스테리와 강박성 성격은 동일 연속선 상의 반대편 양끝에 놓여있다.
* 이들의 언어에서는 최상급이 매우 많이 사용된다. 강조하는 말은 너무 많이 반복되다 못해 정형적으로까지 된다.
* 강박성 환자는 감정적 접촉을 회피하려하는데 반해, 히스테리성 환자는 사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감정적 접촉이 없다고 느껴지는 모든 관계에서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실패감을 경험하며, 종종 상대방을 지루하고, 차가우며, 목석 같은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 히스테리성 환자는 "왜 항상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불평하면서,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한 책임을 부정한다.
* 의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 전형적으로 이들은 화를 내고 요구가 많아지며 강요적이 된다. 그러나 어떤 한 방법이 의존적 보호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적이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이들은 즉시 그 방법을 포기하고서 갑자기 다른 접근법으로 바꿔버린다.
* 전형적으로 여성 히스테리 환자의 남편은 강한 수동-의존적 성향을 가진 강박적인 사람들이다.
* 히스테리성 성격 경향과 증상은 대부분의 다른 방어 양상들보다 이차 이득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 히스테리성 증상은 억압된 불안이 다시 깨어나는 것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감정 폭발은 성적 느낌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극적인 감정 진열은 또한 공격적인 부모와의 동일시와 연관되어 있다. 연기를 하고 당시에 맞는 역할을 하려는 것은 진짜로 생활에 참여하게 될 때 초래될 수밖에 없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 여자 히스테리의 전형적인 어머니는 경쟁적이고 차가우며 지나치게 논쟁적이거나 또는 미묘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이 어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화가 나 있으며, 남성적인 역할을 부러워하고 있다. 자기 딸에 대한 과잉보호나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보상하기 위한 행동이다.
* 히스테리성 환자와의 첫 면담에서는 방어를 해석해주기보다는 각각의 상황에서 환자 자신은 무엇이라고 말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라는 단순한 질문만을 던지는 것이 좋다.
*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 반응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치료자의 시간을 침범한다.
*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끊임없이 면담자로 하여금 관대한 부모와 박탈적이고 처벌적인 부모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듦으로써 면담자에게 죄책감을 유발시키곤 한다.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이내, 직접적으로든 아니면 간접적으로든 특별 대우를 바라게 된다. 일반적으로 면담자는 이러한 요청들을 허락해주기보다는 그 밑에 깔려 있는 동기를 탐색해야 한다.
< 공포증 >
* 공포증 환자들은 의사에 대한 마술적인 기대를 빠르게 형성하며 이는 저항의 주된 요인이 된다.
* 방어로서 회피를 사용한다는 점이 공포증 환자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상징화, 전치, 합리화 등은 회피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부수적인 방어들이다.
* 공포증 환자들은 대화를 보다 편안한 주제로 전환시키는 데에 귀재들이며, 따라서 면담자의 과제는 질문을 구조화하여 환자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는 경우, 회피 기제가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 공포증 환자들은 종종 자신이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며, 따라서 공포증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유용하다.
* 이차 이득을 확인하기 위해 "증상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무엇이 있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
* 공포증 환자의 첫 개입 목표는 환자에게 증상에 대한 통찰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신경증적 억제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는 것이다.
* 투사는 대개 다른 방어 기제들이 완전히 분석되고 난 뒤에 해석되어진다.
< 우울증 >
* 대부분의 자살 행동들은 자기 파괴적인 목적과 의사소통적인 목적을 둘 다 가지고 있다.
* 환자의 자살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일반적인 충동성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우울한 환자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원하며,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건강했던 상태를 조사하기 전에 먼저 환자에게 이런 불행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울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어낸 다음, 의사는 우울해지기 전에는 어떠셨습니까? 또는 예전의 당신은 어떠셨죠? 라고 물을 수 있다.
* 우울증 환자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며, 따라서 면담 초기에 이에 대해서 탐색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러한 관계의 붕괴는 우울증상의 흔한 유발인자이며, 이들이 보여왔던 관계 양상은 이 환자에서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이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 정신분열병 >
* 다른 증상들과 마찬가지로 기이한 증상 역시도 추동의 표현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려는 부적응적인 시도이며, 이는 부분적인 만족을 제공해줌과 동시에 그 결과 건강한 기능들은 억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증상은 환자의 정신병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대해 잠재적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의사소통적 행동인 것이다.
*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다른 사람과 공생적 결합체로 통합되는 것에 대한 소망과 두려움을 모두 갖고 있다.
* 정신분열병 환자와 감정적 라포를 형성하는 일은 힘들다. 거절에 대한 강한 민감성 때문에 이들은 고립과 철수를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하게 된다.
* 의사는 자신의 감정 반응을 드러내 보이거나, 환자의 욕구에 대해 상징적 만족을 제공해줌으로써, 환자에게 이해한다는 뜻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 면담자는 대부분의 사회적 상황에서처럼, 이해하는 척 하며 지루함을 숨긴 채, 그 만남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해줘야 한다. 환자를 꾸짖는 투의 말이나 이해가 안되는 것은 환자 때문이다 라는 의미의 언급을 피함으로써 면담자는 환자를 지지해줄 수 있다.
* 환자가 면담자의 개방형 질문에 모호하게만 대답하는 경우엔,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기로 결정한 것은 환자의 생각이었는지를 묻는 것이 유용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다고 대답한다면 면담자는 "그럼 그 사람은 왜 환자가 정신과의사를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를 조사해볼 수 있다.
* 환자의 눈을 통해 보이는 것과 같은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할 때, 면담자는 더욱 성공적일 수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외로움, 고독감, 절망감 등을 공유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혼란감과 강한 좌절감을 유발시킨다. 이때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지금 이러한 감정들이 느껴지는데, 당신도 그러한가 라고 묻는 것이 종종 도움이 된다.
< 편집증 >
* 면담자가 환자의 망상을 믿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도록 환자를 내버려두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되므로 면담자는 면담자의 재산이나 병원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환자를 중단시켜야 한다. 이러한 행동을 제지받지 않은 환자들은 나중에 정신병적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그 일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며, 그 당시 필요했던 통제력을 가하지 않은 의사에게 당연히 화를 내게 된다.
* 편집증적인 사람들에게 정직과 봉사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은 자신의 숨겨진 분노를 감추려는 얄팍한 위장수단이다.
* 편집증적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감정적으로 부족한 것들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권과 만족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
* 편집증 역시도 우울증에 대한 방어로 간주된다.
* 편집증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의 성공보다 남들의 불행과 실패를 관찰하는 것이다.
* Freud는 편집증 환자에 의해 투사되는 기본 추동은 무의식적 동성애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 원초적 부정이 모든 편집증적인 사람들의 주된 방어이다. 이는 심하게 망상적인 환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덜 심한 편집증 환자들은 반동 형성과 투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 대부분의 망상들이 비판적이거나 위협적이라는 점은 초자아가 투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이 편집증적 기제들은 종종 강한 죄책감에 의해 촉발되곤 한다.
* 모든 편집증 환자들에 의해 투사되는 기본 감정은 부적절하고 무가치한 자기상이다.
* 면담을 수행하는데 있어 환자의 불신과 적개심을 다루어주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환자의 적개심 그 깊은 이면에는 밀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소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
* 모든 초심자들은 논리를 사용하여 환자의 망상 체계를 반박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대신 환자에게 이런 박해의 이유-사람들이 환자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해 환자는 어떤 행동을 취해왔는지-를 묻는 것이 더 유용하다. 면담자는 망상에 동의하지도, 반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대개 면담자의 관심을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인다. 면담자가 일시적으로 환자의 믿음과 신뢰를 얻기 위한 기만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이후 두 사람간의 관계를 위해 필수적이다.
* 면담자는 편집증 환자에게 언젠가는 치료자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할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충고해 줄 수 있다.
* 면담자는 편집증 환자에게 위트나 유머를 피해야 하며 반어법과 비유법 또한 위험한데, 왜냐하면 사고 방식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환자는 그 원래의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곤 하기 때문이다.
* 거짓된 대답이라도 해달라는 강압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위선된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 환자를 더욱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 저를 분석하고 싶으면 그러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 동기에 대해 결론부터 내리기 전에 먼저 그 사건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에 대해 알아보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인다.
< 정신병질자 >
* 정신병질적 행동의 일차적인 목표는 충동이 충족되지 않을 때 초래되는 긴장감을 피하고, 좌절이 임박했을 때 나타나는 불안을 피하며, 더욱이 자아가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 정신병질자들이 보이는 대인관계의 기본적인 양상은 비위를 맞추고 무언가를 얻어내며 착취적인 스타일이다.
* 정신병질자들은 대인 관계에서의 수동성을 두려워한다. 이들의 공격적 행동 중 많은 것들이 복종감을 피하기 위한 것이며 수동성을 느끼게 만드는 직접적인 또는 상징적인 위협에 의해 난폭한 범죄 행위가 촉발될 수 있다.
* 정신병질 환자들은 종종 비교적 구체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이를 얻어내는 일에 의사가 도움을 주길 바란다. 이런 모든 상황하에서 환자는 고통스러운 내적 감정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이러한 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사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외부세계와의 싸움에 대한 도움만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자는 전이 대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인물로 지각되는 것이다.
* 면담자의 역할은 행동의 외적 표출 행동을 기저의 감정에 연결시켜주고 전치를 지적해주는 것이다.
* 병리적 행동에 기저하는 정신역동적 기제에 대한 지적 통찰은 정신병질 환자에게는 거의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 정신병질 환자들의 사고 과정은 조리 있고 적절하지만 이들의 감정 생활과 주요 대상 관계 양상은 신경증 환자보다는 정신분열병 환자에 가깝다. 추상적인 해석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치료자와는 현실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 뇌 기질성 환자 >
* 만성 뇌 질환 환자에게는 그의 자존심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과거의 그의 성취와 능력에 대해 회상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 적개심, 위기감 그리고 의존감을 의사가 받아주는 것이 이러한 환자를 치료하는데 필수적이다. 기질성 환자가 지배권을 가질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 치료자에게 어느 정도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해주는 것이 환자에게는 중요한 만족감을 제공해준다.
< 정신신체장애 >
* 정신신체장애 환자에게는 의존적 관계를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흔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 부정은 이러한 모든 일련의 심리학적 사건들에 있어 가장 핵심적으로 가동되는 방어기제이다.
* 흔히 환자에게 아는 사람 중에 자신과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에 대한 대답이 자기 병에 대한 환자의 무의식적 태도를 드러내주며, 병의 근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 의사는 당신의 병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일은 무엇입니까? 또는 좋아진다면 지금 못하고 있는 일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생각이십니까? 라고 물을 수 있다. 환자의 답변은 증상의 정신역동적 의미 및 이와 연관된 이차 이득에 관한 소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 증상의 핵심적 의미와 이차 이득, 양자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환자의 질병에 대한 주요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신의 질병에 대해 환자가 어떻게 이해하며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사항이다. 여기에는 질병의 원인, 예후, 그리고 병으로 인해 초래된 제약 등에 대한 환자의 생각들이 포함된다.
* 내적 갈등을 갑자기 많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 종종 방어 기제가 너무 빨리 붕괴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 환자들은 노출될 우려가 있는 대화 내용 자체보다는 자신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에 대한 의사의 태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 종종 전공의들은 경험이 없는 젊은 의사가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로부터 지도를 받는다는 사실에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 안심을 하는지 알게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또 다른 경우에선 환자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이며, 이때 이 환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미천하다는 점에 대한 치료자의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에 안도감을 느끼며 깊은 인상을 받곤 한다.
덧. 이 책은 소장하면서 두고두고 볼 책이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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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자녀 관계가 건강하기 때문에 아무런 개입도 필요없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순한 부모 교육이나 당부 등으로 개입 수준을 한정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심하면 현재 가정의 부모-자녀 문제 뿐 아니라 부모 각자의 원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있고 그것이 현재 가정에 대물림되어 재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도 없이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너무 심하게 악화되어 있어서 상담자가 곧바로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자는 일단 아동/청소년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부모-자녀 관계 갈등도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없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지요.
많은 경우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까지 나타나면 심각도는 높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현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건 대화가 단절되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보고가 상반되기 때문에 상담자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상담 초기부터 아동/청소년에게는 실시 가능한 범위 내에서 JTCI, MMPI-A, SCT를, 부모에게도 각자 TCI, MMPI-2, SCT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부모-자녀 관계 역동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곤 합니다. 이 작업만 충실하게 해도 상담 회기의 수를 많이 줄이고 실제 개입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심리평가를 통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기질/성격, 정서 상태, 대인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건 당연히 도움이 되는데 그 밖에 부모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아동/청소년을 대하는 언행 패턴을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상담을 받으러 부모가 자녀를 끌고 상담실로 오는 경우라면 이미 자녀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인적인 결론을 내린 경우가 많고 MMPI-2 등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자신의 문제를 faking good하거나 방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모의 변화를 유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왔는지 그 패턴을 알게 되면 상담자는 그 잘못된 패턴을 피할 수 있고 아동/청소년과 조금 더 쉽게 라포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상담자가 부모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부모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아니라 상담자가 부모와 달리 행동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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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는 도중 어떤 회기에 이르자 갑자기 내담자가 봇물 터지듯이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상담자는 한편으로는 전환점에 이르렀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무거운 주제를 회기 내에 모두 다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결정적 순간에 상담자는 자신이 상담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담자가 키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아닌 상담자가 상담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는 회기 중 제한된 시간 내에 내담자가 이야기한 모든 내용을 반드시 다뤄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어떤 내용은, 어떤 감정은, 어떤 역동은 회기 중에 다룰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그 회기가 지나면 그 때의 생생함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다시금 내담자가 그 내용을 이야기할 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버스를 놓쳤다고 해서 다음 버스가 안 오는 것이 아니듯 대부분의 경우 내담자에게 중요한 주제라면 반복되게 마련이고 이번 회기가 아니라고 해도 대개는 다른 회기에 다시 나타납니다.
괜히 반드시 그 회기 내에 다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내담자가 충분히 머무르도록 여유를 주지 못하고 조급한 나머지 push 하게 되면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좀 더 여유를 갖고 이번 시간에 모두 다루지 못하면 다음 회기에 이어서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라도 마음을 느긋하게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은 한 회기에 끝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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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에게 자기 반성과 자아 성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도박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그로 인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을 꼼꼼히 살펴봐야만 도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어떠한 즐거움도 느껴서는 안 되고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간혹 도박(또는 재발) 사실을 고백하고 난 후 얼굴이 편안해진 도박자에게 울화가 치밀어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가족들이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도 치유 효과는 별로 없기 때문에 상담자는 이를 만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도박자가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사소한 즐거움마져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가족의 눈치 때문이라면 그런 자학은 가족을 편안하게 만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박자 스스로에게 치유의 희망을 불어넣지도 않습니다.
그건 시쳇말로 피해자 코스프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도박자가 자신을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짐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고 희망을 엿볼 수 있도록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도박자가 잠시 행복해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울컥하는 가족도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그 가족 구성원의 문제이지 도박자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 중독 치유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고 완주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급수대에서 목도 축이고 열이 오른 몸도 식혀야 합니다. 그래야 퍼지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겁니다.
대신 달릴 때 곁눈질하거나 뒤를 돌아보며 눈치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면 됩니다. 가족들에게는 그걸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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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면서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아 나가겠다고 할 때 상담자가 분명히 취해야 할 입장은 이것입니다.
"도박을 그만두지 않고 도박빚을 갚는 것은 처음에는 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치료적 측면에서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력을 통해 도박의 무익함과 도박을 하면서 빚 갚기가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찬성한다"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면서 빚을 갚는다고 할 때 상담자가 제시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박은 도박이고 빚 갚기는 빚 갚기이다. 절대로 도박을 해서 번 돈으로 빚을 갚아서는 안 된다"
즉 도박과 도박 빚을 분리하는 겁니다. 설사 초반에 돈을 따더라도 그건 다른 곳에 써야지 빚을 갚는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잃더라도 더 이상의 빚을 내지 말도록 권고도 해야 하지만 대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도박으로 딴 돈으로 빚을 갚지 않도록만 신경쓰세요. 어차피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지 않으면 빚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딴 돈으로 빚을 갚는 경험을 하게 하면 도박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됩니다. 나중에 도박 빚을 갚기는 커녕 빚의 액수가 더 늘어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조금이지만 어쨌거나 갚았던 적도 있다면서 도박을 하면서 빚을 갚지 못한 이유는 도박 자금이 부족했다거나 운이 안 따랐다거나 하는 등 이전과 동일한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그걸 막으려면 도박과 도박 빚을 분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도박을 계속 하든 말든 빚 만큼은 반드시 일을 해서 갚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도박을 지속하면 지속적인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채무 변제 계획을 세워서 기간과 금액을 정해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돈이 생기는 대로 갚겠다는 도박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도박을 하겠다는 걸 그냥 방치하는 꼴 밖에 안 됩니다. 간헐적인 빚 갚기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도박을 그만둬야 합니다. 도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간헐적으로 빚을 갚을 수가 없거든요.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당장 도박을 끊을 생각은 없으나 상담을 하면서 빚은 갚아나가기를 원하는 도박자가 있을 때 무조건 도박을 끊으라고 강권하지 말고 스스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도박으로 번 돈을 빚 갚는데 사용하면 안 되고 반드시 일해서 번 돈으로만 빚을 갚도록 하는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도박을 계속하는 한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걸 도박자가 깨닫게 되는데 그 기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면서 손실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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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소
심리평가 3종 세트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심리검사의 실시, 심리평가보고서의 작성, 그리고 해석 상담입니다.
이 세 가지를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심리평가를 했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니 불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검자를 위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죠.
이 중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자가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수련 과정에서 심리평가보고서 작성 방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심리평가보고서 작성에서도 가장 힘든 건 당연히 검사 결과(test results) 부분입니다. 심리평가보고서의 핵심 영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시한 심리검사 결과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추출하여 수검자의 심리상태를 formulation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죠.
또한 검사 결과 부분은 유의미한 검사 sign들을 추려내어 어떻게든 엮어서 쓰겠는데 이제 '요약 및 제언(Summary & Recommendation)'은 또 어떻게 써야 하냐며 난감해 하는 상담자들이 많습니다.
'검사 결과'와 '요약 및 제언'을 연결해서 기술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유의미한 검사 sign들을 토대로 검사 결과 부분을 공들여 formulation한 뒤 핵심적인 개념들을 추려내고 검사 sign을 뺀 뒤 요약 및 제언 부분을 짧게 기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위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방법의 단점은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겁니다. 많은 검사 sign들 중 핵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 원인이 되는 것과 결과가 되는 것을 구분하는 눈이 필요한데 이게 단기간에 생기지 않거든요. 많은 경험과 공부, 고민이 요구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상담을 주 업무로 하는 임상가들께 권하는 방법입니다.
'요약 및 제언'에 해당하는 내용을 먼저 구성하는 겁니다. 즉, 수검자의 핵심 문제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먼저 떠올리고, 예후가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고, 제언을 한다면 어떤 개입 방법을 권고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 때 '검사 결과'에서처럼 이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을 굳이 떠올리지 말고 상담을 할 때 내담자가 하는 말을 따라가면서 꼭 다뤄야겠다는 느낌이 드는 말을 잡아채듯이 검사 sign들을 순서대로 훑으면서 감을 잡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수검자의 핵심 심리 상태가 떠오르면 이를 바탕으로 해당하는 검사 sign을 찾아서 배치하고 살을 붙여 나가면서 '검사 결과' 부분을 써 나가는 겁니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방법은 '검사 결과'의 검사 sign들을 생략함으로써 압축해서 '요약 및 제언'을 써 나가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반대로 '요약 및 제언'의 핵심 내용에 검사 sign들을 찾아서 살을 붙여 '검사 결과'를 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이 정통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상담에 익숙한 임상가들에게는 두 번째 방법이 좀 더 수월하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일 수도 있어 소개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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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심리평가를 하는 임상심리학자들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문제지만 상담 현장에 있는 임상가들은 심리평가를 언제(타이밍이 아닌) 해야 하는지가 상당히 고민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상담 시스템에서는 심리평가를 위한 별도의 시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상담 업무가 주가 되는 시스템 상의 문제 때문인데 어쨌거나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하려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상담 회기를 쪼개어 심리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나마 자기 보고형 검사처럼 실시할 수 있는 TCI, MMPI-2/A, SCT 등은 상담을 마치고 옆 검사실에서 작성하고 가도록 하거나 집에서 작성한 뒤 가져오도록 편법을 동원해 실시하고 있으나 문제는 대면 검사입니다.
그래도 HTP, KFD, BGT 정도의 검사들은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상담 시간 내에 충분히 실시 가능하죠. 하지만 상담 1회기 내에 끝내기 어려운 검사들이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능 검사이고 로샤나 TAT도 검사 실시에 익숙하지 않은 상담자에게는 1회기 내에 끝내기에는 만만치 않은 부담을 줍니다.
가뜩이나 단기 상담 위주로 재편되는 상담 시스템 내에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상담 회기를 심리검사 실시에 할애한다는 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리평가를 활용하는 것이 상담에 큰 도움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가능한 한 검사 실시를 꺼리거나 미루게 되고 정작 심리검사 도구를 선택할 때도 상담 회기 내에 실시 가능한 것들에 국한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지능, 로샤, TAT 처럼 중요도가 높은 검사를 실시하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인 종합심리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종합심리평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게 되고 자기 보고형 검사로 구성된 선별심리평가에만 의존하게 되어 상담자 입장에서는 큰 무기를 잃게 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각 회기 내에 소수의 검사만 실시가 가능하다보니 여러 검사를 시행해야 하는 경우 여러 번의 상담 회기를 잡아먹게 되어 깊이 있는 상담을 진행하기 어려운데다 검사를 실시하는 interval도 늘어나게 되어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 맨 처음에 실시한 검사 결과(예를 들어 MMPI-2/A)와 맨 마지막에 실시한 검사 결과(예; HTP, KFD 등)가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평가를 위한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많은 상담 기관에서 심리평가 실시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구조화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리평가 후 해석 상담은 상담 회기 중에 할 수도 있지만 심리검사의 실시 만큼은 반드시 충분한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여 평가자와 내담자 모두 심리검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공간도 상담실과 구분되는 별개의 검사실로 확보해야 하고요.
가장 최적화된 상담 시스템은 상담자가 상담 회기 수와 심리평가의 실시 시점, 검사 도구의 종류 등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최소한 상담 회기 중에 시간에 쫓기어 부랴부랴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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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심리치료자나 상담자를 꿈꾸는 예비 임상가들께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던 책이
'사람은 왜 아픈가'입니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상담자가 겪게 되는 온갖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어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상담자로서도 울림이 참 컸는데요.
그 책의 저자인 이흥표 선생님이 이번에 로르샤하 검사 워크샵을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 주제 : 의식 이하, 마음의 건널목 : 로르샤하 검사 워크샵
* 일시 : 2016년 10월 29일(토)~30일(일) 10:00~17:30 (양일 간)
* 장소 : 대구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신림역 5번 출구)
* 강사 : 이흥표(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Ph.D)
* 인원 : 30명 이내
* 대상 : 임상, 상담심리 수련생, 상담 및 심리치료를 공부하는 재학생 및 졸업생, 로르샤하 검사에 관심있는 분
* 연락처 및 문의사항 : 간사 박소윤(010-4589-5296), 심리성장센터-디엠(02-6101-3404)
* 입금처 : 우리은행 1002-890-008979(이은지, 디엠 대표)
* 순서
1. 간사에게 전화나 메일(ssaemy00@naver.com)로 비용 및 기타 사항 문의
2. 참여하기로 결정하시면 성함, 연락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3. 본인 성함으로 입금 후 간사에게 문자주세요(신청 및 입금 순)
# 자료집 및 중식(김밥) 제공
# 환불 요청 시 20일 이전 전액 환불, 25일 이전 50% 환불
* 내용
- 10월 29일(토) : 로르샤하 검사의 이론적 배경, 실시방법 배우기, 검사 실시, 양적 채점의 개념 이해
- 10월 30일(일) : 질적/개념적 분석의 이해, 사례 공부(신경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병 등) 및 개인 사례 분석/수퍼비전, 질의 및 응답
* 찾아오시는 길
1. 대중교통 : 지하철 2호선 신림역 5번 출구(한 정거장, 700미터 직진, 봉림교 -> 와이렌터 카 -> 창일교회 -> 세븐일레븐 -> 대구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
2.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531
동일한 정보는 이흥표 선생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youbefree/)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흥표 선생님의 다른 워크샵 정보는 저도 알고 있었지만 로르샤하 워크샵 소식은 처음 들었네요. 예전에 소개한 D.K. Academy의 워크샵이 몇 주에 걸친 장거리 레이스라면 이흥표 선생님의 이번 워크샵은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운영하는 Full-day Workshop의 형태입니다.
로르샤하 검사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로르샤하 검사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강조('기승전로샤')해 왔는지는 다들 아시죠?
로르샤하 검사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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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담을 할 때 도박 중독자에게 왜 도박을 끊으려고 하는지 자주 물어보는 편인데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도박 중독자가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도박을 끊으려고 전문적인 상담까지 받는 것이니 왜 도박을 끊으려고 하냐는 질문은 왜 암에서 나으려고 하나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데 도박을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도박자는 도박을 끊어야 할 외부 원인만 찾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가족(아내, 부모님)이 싫어하고 끊으라고 하기 때문에, 도박을 계속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재산도 탕진하게 되니까 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은 상담을 하다보면 도박자가 심각하게 고려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게 금방 밝혀지게 됩니다. 즉,
스스로 도박을 그만둬야 할 이유(그 이유가 무엇이든,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하찮더라도 상관 없습니다)가 분명하지 않다면 외부 요인에 의해 도박을 끊으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을 할 때 역설적으로 상담자가 도박 중독자의 역할을 할테니 상담자의 역할에서 왜 도박을 그만둬야 하는지 나를 설득해보라고 주문합니다. 상담자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건 자신도 설득당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거니까요. 스스로 도박을 그만둬야 할 강력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도박 중독 치유가 어려울 것은 안 봐도 뻔합니다.
이렇게 역할 바꾸기를 해 보면 많은 도박자들이 도박을 계속 하면 재산을 잃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도박을 하면 안된다는 논리로 설득을 시도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믿으세요?"라고 되물으면 대답이 금방 군색해집니다. 왜냐하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돈 문제(도박을 계속 하면 결국은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는 생각)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큰 문제 같고 그것 때문에 도박을 끊으려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돈은 도박을 끊어야 할 이유로는 아주 약한 요인입니다.
그래서 설사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고 해도 도박을 끊어야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상담자를 설득할 수 없다면, 자신에게도 확신을 심어줄 수 없다면 도박을 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특히 그 변화가 중독과 관련된 문제라면 그 변화에는 강력한 계기와 이유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중독자들께서는 내가 도박을 그만둬야 할 돈 문제가 아닌 이유, 상담자가 설득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고 그 과정에서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은 두려움과 당당히 맞서야 하겠지요.
두렵지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 두려움과 맞설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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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19년 간 관리자로 일하다 뒤늦게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상담자로 개업한 고코로야 진노스케 선생이 쓴 치유 에세이집인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2014)'를 북 크로싱합니다.
'이노우에 히로유키' 선생이 쓴 '너무 애쓰지 말아요(2012)'와 세트로 출판된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애쓰지 말아요'보다 이 책이 좀 더 좋았습니다. 그야말로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운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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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 이득(secondary gain)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쉽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호소하는 증상이 궁극적으로 내담자에게 유,무형의 이득을 가져올 때 이러한 이득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흔히 이차 이득을 반드시 탐색해봐야 하는 장애로 신체화 장애를 들곤 합니다. 신체화 장애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차 이득의 형태로는 참석하고 싶지 않은 모임 약속이 생길 때마다 두통이 생겨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있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두통은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결코 원치 않으나 모임을 빠질 수 있다는 강렬한 이차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이차 이득은 대부분 심리적인 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상담자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무의식적인 부분도 많아서 당사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차 이득은 신체화 장애와 같은 특정한 문제에서만 나타나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모든 심리적 문제에는 어떤 종류이든, 어떤 정도이든 이차 이득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호소할 때 그 문제가 야기하는 고통의 정도와 부정적 영향 이면에 그로 인해 내담자가 얻게 되는 이차 이득이 무엇이 있는지를 항상 탐색합니다. 왜냐하면
내담자의 무의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해결하고 싶지 않은' 양가 갈등 상태인데 해결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차 이득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차 이득을 염두에 두고 탐색을 하다 보면 상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항상 내담자의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있는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차 이득은 상담자만 관심을 가지면 충분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내담자라도, 내담자가 아닌 누구라고 자신의 이차 이득을 스스로 탐색해 보는 게 유익한데 특히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고 나름 노력해 봤지만 소용이 없으며, 어딘가 꼬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이런 상태로 인해 내가 얻는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이차 이득이 자리잡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본론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이차 이득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자신을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도리어 나에게 불리하게 되고 내가 손해보는 점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죠?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아지는 점을 찾는 게 아닙니다. 그건 일차 이득과 관련있고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도리어 나빠지는 것, 그것이 바로 문제를 지속시키는 이차 이득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5년 째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년 목표하고 있는 시험날이 가까워 올 때마다 눈앞이 흐릿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 증상이 시작됩니다.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해 봐도 모두 정상이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합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이 문제로 매년 시험을 망쳤고 아무래도 올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대체 이 사람의 이차 이득은 무엇일까요?
눈앞이 흐릿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 증상이 말끔히 사라진다면 이 사람이 나빠지는 건 무엇일까요?
시험에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독립을 해야 하고 더 이상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나 동료들이 사회에 진출해 이미 적응한 상태이고 자신은 이제서야 뒤쳐진 상태에서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초조함과 직면해야 합니다. 혼자의 힘만으로 가정을 꾸려야 하며 본인의 능력으로 가정 부양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이차 이득입니다.
가상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차 이득을 확인하지 못하고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증상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상담이나 심리치료만 받으면 결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차 이득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 열등감 등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물어보세요. 이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내가 볼 손해는 무엇인지, 나빠지는 면은, 악화되는 면은 무엇인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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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빠지기 쉬운 착각 중의 하나는 모든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러 왔을거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어딘가 고통스러우며(모든 내담자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만), 대개는 그 고통을 덜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곧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담자가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살 맛이 안 나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통 때문에 독립할 필요 없이 부모님 슬하에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안정되게 살 수 있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심리적 고통을 상쇄할 수 있다면 내담자가 우울하다고 상담자를 찾아왔을 때 우울감 자체를 해소하고 싶어할 수는 있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해지는 경우 우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리어 피하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도박 중독의 문제로 끌어오면 그림이 좀 더 분명해지는데 도박 중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자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고 싶어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도박이 야기하는 고통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주관적인 이득이 있다면 결국은 도박을 그만두지 않을테니까요.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도박 중독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득을 계속 누리는 것이지 도박을 끊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말해 도박을 그만둬야지만 그 이득이 역설적으로 충족된다는 것을 도박자가 깨달을 때 비로소 도박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박 중독자가 당연히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전제하지 마세요. 이건 흔히 도박 중독 치료 교재에 나오는 양가 갈등(나는 도박을 그만두고도 계속하고도 싶다)과도 같지 않습니다.
도박을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상담하는 것이 먼저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할 때(상담자가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말하는 도박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흥미롭죠) 왜 끊으려고 하는지 꼼꼼히 물어봐야 합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간혹 도박을 계속 하게 만들려는 도박 충동의 입장에 서서 도박을 계속 하라고 유혹하고 정말 그만두고 싶다면 그 유혹에 반박해 보라고 도박자를 push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박 중독자는 당연히 도박은 끊어야 하는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과연 도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상담자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박을 해도 되지 않느냐며 선택의 결정권을 도박자에게 넘길 때 드디어 도박자는 자신의 도박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도박 중독자가 당연히 도박을 끊으러 왔을 거라고 함부로 전제하지 마세요. 도박을 그만두려는 것이 확실한지, 왜 그만두려는지를 충분히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도박을 그만두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을 살펴보는 것은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겠다고 확실히 결정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그 다음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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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의 여건 상 장기 상담 대신 20회기 미만의 단기 상담이 주력 접근 방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라서 심리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번 되지도 않는 상담 회기를 심리평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낭비할 수가 없으니까요.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건 당위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모호하기도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냐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는 임상가들 중 상당수는 대체 내담자의 문제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심리평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보다 더 심하게는 내담자에 대한 감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일종의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심리평가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일단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되기도 하고 의미있게 나온 결과에 따라 어떻게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거니까요.
가설을 설정하려고 심리평가에 의존하는 게 몸에 익으면 내담자에 대한 고민이 멈추게 됩니다. 내담자를 궁금해 하지도 않게 되고 내담자를 분석해야 할 기계처럼 생각하게 되어 나중에는 공감도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심리검사 도구부터 들이미는 버릇을 들이면 안 됩니다. 자신이 속한 기관의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끊임없이 건의하고 문제 제기를 해서 바꿔야 합니다.
내담자의 호소 문제를 경청하고, 충분히 공감하고, 깊이 고민하고, 가설을 설정한 뒤에야 그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심리검사 도구를 선정해서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실시해야 합니다. 가설을 검증한 뒤에는 그 결과에 따라 상담 목표와 방향을 수정하고 이를 내담자와 공유하고 상의해야 합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겁니다.
그러니 심리평가의 도움 없이 가설을 세울 수 있도록 실력을 배양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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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임상 전공자는 심리평가, 상담 전공자는 상담에만 주력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수련을 받았던 전문가들은 자신의 identity가 무엇이냐에 따라 지금도 그것만 중요하다고 고집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정신 질환으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정신과 병원을 찾았고, 대인 관계 갈등이나 진로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다소 경미한 문제(제가 써 놓고도 웃기기는 합니다....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인 고통의 경중도를 따지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를 가진 사람은 상담소를 방문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경계가 점점 무의미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심각한 정신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도 상담센터를 방문하고 사람이 힘든 사람도 병원을 찾아 약을 달라면서도 심리치료까지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임상 전공자는 심리치료와 상담을 배워야 하고 상담 전공자는 심리평가를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담자에게 심리평가가 특히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지만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익히면 큰 메리트가 있습니다. 로샤 검사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임상 전공자가 로샤 검사를 잘 하는 건 큰 장점이 아닙니다. 임상 수련을 받았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다 하는거니까요. 하지만 상담 전공자는 다릅니다. 임상 전공만큼 로샤를 아는 건 엄청난 강점이 됩니다. 상담 전공자가 임상 전공자만큼 로샤를 익히고 다양한 내담자에게 로샤를 실시한 경험과 결과 profile을 10년 이상 정리해놓았다면 그 노하우는 아무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제가 상담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평가 강의 때마다 강조하는거지만 그처럼 앞선 시각으로 준비한 상담자는 로샤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상담자를 대상으로 한 로샤 강의나 워크샵, 사례집이나 워크북 인세로 말이죠.
누구나 잘하는 걸 나도 잘하는 건 별로 메리트가 없습니다. 남들은 따라잡을 수 없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시대니까요.
심리평가를 잘 하면 상담자 본연의 업무인 상담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임상 전공의 경우 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이 평가한 수검자를 상담하거나 심리치료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평가 의뢰를 받으면 의뢰 사유에 맞게 심리평가를 실시(이것도 병원에서 의사가 정해놓은 수가 체계에 맞게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평가자의 자율성이란 게 거의 없죠)해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한 뒤 넘기면 끝입니다. 그 뒤를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상담 전공의 경우는 자신이 심리평가하는 수검자가 곧 자신이 상담하는 내담자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즉 심리평가 결과를 곧바로 내담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심리평가를 잘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심리평가 도구를 선별해서 실시할 수도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고,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할 지 여부도 결정할 수 있으며, 예후가 어떻게 될 지 까지도 예측하는 등 훨씬 더 긴 조망 하에서 내담자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충분한 상담 회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과거라면 굳이 심리평가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상담을 통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상담자의 공급 대비 내담자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추세를 보면 앞으로 대부분의 상담은 단기 상담 위주로 갈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짧은 회기 내에 내담자를 파악하고 전체적인 상담의 틀을 구성해야 하고 그러자면 심리평가의 도움이 필수라고 할 수 있죠.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앞으로 심리평가를 모르는 상담자는 본연의 업무인 상담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심리평가를 익혀야 할 수 밖에 없고 어차피 익힐 수 밖에 없다면 제대로 배워서 상담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상담을 잘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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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한 거라서 굳이 포스팅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최근 제목과 같은 말을 내담자에게 하는 상담자에 대한 제보를 여러 차례 받고 충격을 받은 김에 정리해 봤습니다.
치료적 접근법에 따라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상담자가 내담자의 '편', '지지자'여야 한다는 걸 모르는 상담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자신이 생각해 볼 때 내담자가 호소하는 어려움이 일정 부분 내담자 때문에 발생한다고 느낄 때, 그걸 다루는 것이 내담자를 위해 필요하겠다고 착각할 때 생각보다 큰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 심리적 저항을 불러 일으킴
저항 또한 치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저항이 나쁜 것은 아니나 상담자가 자신을 탓한다고 내담자가 받아들였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저항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관계를 손상시키고 신뢰를 약화 시킵니다. 즉,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게 되고 그 뒤로 어떤 말이든 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 자기 파괴적 내부 귀인을 하게 됨
내담자를 탓하는 이런 언급은 자존감이 약하고 자기 회의가 강한 내담자에게는 더욱 치명적인데 이런 내담자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의 원인이 평소에도 자기 때문이라고 귀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원인의 탐색을 외부에서 하지 못하게 됩니다.
*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동기를 찾을 기회를 상실하게 됨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책임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담자에게 확인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설사 내담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 중 더 많은 부분이 내담자 때문이라고 해도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상담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리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내담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자원을 동원하고 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함께 찾기 위해 하는 것인데 내담자를 탓하는 언급은 이러한 노력을 위해 필요한 동기를 저하시킵니다. 내담자를 무력하게 만들어서 치유적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란 건 없습니다.
* 상담자에 대한 의존만 강화될 위험이 있음
상담자를 징벌자, 판관과 같은 위치에 두게 되는 경우 내담자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상담자의 입만 바라보게 됩니다. 상담자가 전문가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상담자의 말이 맞을 것이고 상담자가 시키는 것만 해야지 하는 의존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전지전능함의 오류에 빠진 교주형 상담자라면 이러한 내담자의 순응성을 좋아라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내담자의 치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 불필요한 전이를 유발할 수 있음
불필요한 전이라는 말이 좀 어폐가 있기는 합니다만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지 않니? 라는 언급을 하는 상담자는 내담자로 인해 강한 역전이를 느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가 생기면 내담자 탓을 했던 부모, 형제, 친지, 친구, 지인들의 역할을 상담 공간에서 재연하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행하게도 이는 내담자에게서 불필요한 전이를 유발하고 자기 충족적 예언을 달성함으로써 점점 더 문제를 고착하는 방향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내담자를 탓하는 방식의 언급이 내적 성찰을 촉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설사 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상담자-내담자 사이에서도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지지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상담자라면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쓰세요.
상담자라면 절대로 내담자에게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와 같은 언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유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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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뿐 아니라 단순한 행동 습관의 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변화의 다짐을 밖으로 알리는 공표를 하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표하지 않은 다짐은 절대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다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박 중독자들은 대부분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에 도박을 그만 하겠노라며 각서도 쓰고 가족들에게 여러차례 약속을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공표가 아닙니다. 그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둘러댄 핑계, 거짓말일 뿐입니다. 정말로 도박을 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각서를 쓰는 도박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바닥을 치고 가족에 이끌려 상담을 받으러 전문기관에 나온 도박자들은 그 때부터 자신이 도박을 그만둘 것임을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습니다. 상담자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이제부터 도박은 당연히 안 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정작 도박자는 스스로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소리내어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대던 그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교육과 상담을 통해 도박 중독의 폐해와 무서움은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나는 다르다, 통제력만 회복하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달리는데다 도박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고 나면 자신이 도박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지와 다른 행동이라도 일단 행하고 나면 인지 부조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에는 가치관이나 의지를 수정한다는 것이죠. 그 어려운 마음의 변화를 먼저 행동을 저지름으로써 이루어내는겁니다.
도박 중독 치료의 효과는 도박을 끊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공표할 때에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증폭됩니다.
아무리 골방에서 혼자서 머리띠 두르고 혈서를 쓰고 일기장에 각오를 정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탈도박 의지를 밖으로 공표해야만 합니다.
배우자, 부모님, 가족 친지, 친구, 동료에게 탈도박하겠다는 말을 도저히 못 하겠다면 과연 도박을 끊을 준비가 된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아마 아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탈도박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1) 정말 도박을 그만두고 싶은지 내면의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고
2) 도박을 그만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뒤
3) 그 결심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공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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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일본의 치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이노우에 히로유키의 치유 에세이집인 '너무 애쓰지 말아요'입니다.
저자인 이노우에 히로유키는 본업이 치과의사지만 환자의 마음을 세심하게 읽는 의사로 더 유명해서 치아 통증 뿐 아니라 마음의 통증까지 치유한다고 해외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오는 독특한 의사지요. 심리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월덴 3를 오랫동안 방문해오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자기의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뢰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자 소개글을 본 순간 이 책을 읽을까 말까를 살짝 고민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상했던대로 뻔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지적 자극이 되는 독서는 아니었지만 너무 힘들게 자신을 몰아부치면서 사는 분들에게는 따스한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저자의 공감이 잘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전반적인 내용은 긍정심리학이 기반이 되고 거기에 수용(acceptance)의 양념을 뿌린 느낌입니다.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자신을 탓하지 말고 긍정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라는거죠.
어떻게 자신을 탓하지 않을 것인지,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침입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초점화를 어떻게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기술과 대처 전략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저는 오히려 그 정도에서 그친 절제가 좋았습니다. 어설프게 치료 기법을 나열했으면 저자에 대한 실망만 컸을 것 같네요. 어쨌든 이 책은 치료 서적이 아니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대상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분들입니다.
상담자를 비롯한 심리 치료분야 종사자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닫기
* 당신은 상대방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행복해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니까요.
* 영혼은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행복과 기쁨도 성장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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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얼마전에 포스팅한
'주로 병원에서만 수련받은 임상심리전문가를 위한 조언'과 댓구를 이루는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가지를 말씀드리겠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상담자도 과학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임상/상담의 현장 모델을 흔히 scientist-practitioner model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담 전문가들은 practice에 초점을 맞춘 수련을 집중적으로 받는 반면 scientist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흔히 scientist-practitioner model에서 scientist를 탐정으로, practitioner를 성직자로 비유하곤 하는데 내담자와 동고동락하고 내담자의 편에서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애쓰는 건 잘합니다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때로는 회의주의자의 자세로 객관적인 근거를 비판적으로 살피는 탐정의 역할은 간과되거나 때로는 폄하되기까지 합니다.
저는 3년을 병원에서 수련받고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자마자 상담 현장에서 지금까지 practice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심리전문가 수련을 받고 계신 선생님들께 이 말씀을 꼭 한번쯤 드리고 싶었습니다.
1. 회의주의자의 시각을 추가할 것
: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공감적으로 경청하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담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감추거나 방어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담자를 조종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담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상담자가 너무 많은 것에 굉장히 놀랐고 사실 지금도 놀라고 있습니다. 심리평가 수퍼비전을 하다보면 자신이 상담했던 내담자의 모습과 심리평가를 통해 드러난 모습이 다른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지는 상담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믿는 것을 치유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믿는다고 치유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상담자는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판정하기 위한 fact finding 자체가 아닙니다. 내담자도 (당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상담에 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내담자가 그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내담자의 주관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할 수 있게 됩니다.
2. 심리평가에 입각한 formulation을 연습할 것
: 내담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상담을 하게 되면 무엇이 객관적 진실이고 무엇이 주관적 거짓말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므로 상담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담은 fact finding을 해서 옳고 그름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내담자가 한 말과 호소하는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고 심리평가가 그러한 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상담의 다양한 모델과 접근법에 의해 내담자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심리평가를 통해 심리검사 도구가 측정하는 심리적 속성과 개념을 중심으로 내담자를 이해해 보는 것이죠. 심리검사는 분석적이고 계량화된 자료를 다루므로 내담자를 계량화하여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다룬다며 거부감을 느끼는 상담자도 있지만 그건 검사 도구 나름입니다. 어떤 심리검사도구(특히 투사 검사와 기질/성격 검사)는 상담자에게 익숙한 story telling을 통해 내담자의 모습을 드러내주기도 하니까요. 심리평가는 굉장히 용도가 다양한 칼과 같습니다. 그 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상담자가 도축자가 될 것이냐 검객이 될 것이냐의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그러니 심리검사를 공부하고 활용에 익숙해질수록 굉장히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됨을 아시게 될 겁니다.
3. 가설을 설정하고 접근하는 법을 익힐 것
: 상담자 중 상당수는 상담 중에 느끼는 막막함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만 심리검사를 사용하지만 그건 심리평가를 반쪽만 활용하는 겁니다. 심리평가는 일단 던져서 뭐가 걸렸는지 살펴보는 그물로만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도구니까요. 심리평가는 상담의 초기에 상담의 목표와 접근법, 과정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주된 문제와 증상, 어려움 등의 초기 정보를 토대로 가설을 설정(이를 위해서는 정신병리학이나 다양한 임상 관련 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겁니다. 가설을 설정할 때는 특정한 이론적 접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만 하면 항상 같은 가설을 설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family system theory의 차원에서만 내담자의 문제를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애착 이론으로만 내담자의 문제를 설명하려고 한다면요? 가설을 설정할 때는 내담자의 표면적 주 호소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다양한 가설을 세워보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를 옮겨타는 파격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담자를 보는 시각이 넓어집니다. 깊이보다는 넓이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되어 일가를 이루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상담은 어차피 평생 작업이니까요. 한 우물만 무작정 깊이 파다 보면 그 우물에 갇히게 됩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입니다.
4. 다다익선이 아니라 소소익선
: 상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을 주문받습니다만 앞으로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소소익선을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내담자의 어려움을 파악하는게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단기 상담이 주된 접근법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무엇보다 비용 대비/시간 대비 효율성을 따지게 될 테니까요. 라포를 형성할 회기 수를 확보하는 것마저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텐데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상담을 통해 모으는 건 내담자와 작업해야 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유관 전문가가 더 잘하는 부분은 분업해서 전담하도록 맡기고 상담자가 잘 하는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
소소익선을 통해 핵심적인 정보를 도출하려면 앞에서 말씀드린 가설을 설정하고 접근하는 법을 반드시 익혀야 하고 가설을 잘 설정하려면 회의주의자의 시각으로 내담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설정한 가설을 검증하려면 심리평가에 익숙해야 하니 이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모든 조언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 수련 중에 배운 것만 갖고 소속 기관에서 수퍼바이저나 선배가 시키는대로 history taking에 가계도 그리기, 매번 문장완성검사 결과까지 타이핑하면서 정해진 회기가 줄어드는 것에 발 동동 구르는, 번갯불에 콩 볶는 상담을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상담자라면 제 조언을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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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크게 나누어 볼 때 '일' 아니면 '사랑(대인 관계)'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관계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죠. 이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매일 만나다보면 일 대 일 관계 이상을 맺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다면,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직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은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게끔 강제하는게 가능하다면 어떨까, 거의 대부분의 관계 갈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여간 많은 내담자들이 관계가 힘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상담자를 찾습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상담자들은 대인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상담자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혹은 강하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들이 분명히 있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schizoid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schizoid한 사람들은 관계 욕구는 분명히 있지만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상이 동물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추상적인 object일 수 도 있습니다. 즉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죠. 관계 욕구의 대상이 동물이라면 동물을 좋아라하고 동물에게 애틋한 감정도 느끼지만 사람에게는 아닌 겁니다.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때로는 싫어하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관계 욕구의 대상이 자연이라면 이 사람은 오지에서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고 믿는 상담자는 이런 schizoid한 내담자에게 반치유적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schizoid한 내담자를 꽤나 자주 만나는데 이 사람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히키코모리나 사회 부적응자, 아스퍼거, 게임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저 관계 욕구의 대상이 인간, 인간 조직, 인간 사회가 아닐 뿐입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감은 사실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이들을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는 인간 사회가 유발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방법은 이들을 억지로 인간 사회에 편입시켜 강제 연애를 주선하고, 커뮤니티에 집어넣고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질적 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인간 사회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schizoid한 사람들에게는 이 거리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담자에게는 대인 관계 욕구가 있고 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도 있다는 걸 상담자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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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내담자는 어떤 주제로든 어떤 내용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나 타인을 해하겠다는 행동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내담자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입 밖에 낼 수 없었을 부끄러운 개인적인 이야기나, 실수담, 환상, 상처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담자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상담의 진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담자 개인에게는 기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언제든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어떠한 질문이라도 진지하게 대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묻는 것이죠.
하지만 상담 장면 안에서 내담자에게 질문할 권리가 주어진다고 해서 상담자가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하거나 필요하다면 답하기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담 수퍼비전을 하다 보니 내담자가 한 질문에 반드시 답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힘들어 하는 상담자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곧이곧대로 대답을 하자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오픈하는 것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내담자에게 호응하지 않고 밀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는거지요.
다시 한번 제목을 빌어 말씀드리면, 내담자에게는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상담자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단순히 상담자로서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상담자가 답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전이-역전이 문제 때문이든, 아직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든, 자신의 개인사를 오픈하는 것이 불편하든 간에 결과적으로 억지로 답하는 것이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주장에 동의하는 많은 분들이 불편한 질문을 받았을 때 즉답을 피하고 "그게 왜 ~님께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와 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다루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연극성 성격 문제가 있는 여자 내담자가 반복된 실연으로 상처를 받고 상담을 받고 있는데 어느 날 남자 상담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제가 사랑받을 만큼 매력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렇죠?"
이 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대답을 해야 할 만큼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회피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게 왜 중요한지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 상담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실력이 없는 상담자이거나 내 말을 경청하지 않은 주의가 부주의한 상담자라고 단정할 가능성도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대답하기를 거절해야 합니다. 문제는 방법이죠.
"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방향으로 대답하든 우리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제가 매력있다고 대답하면 ~님께 사심이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 앞으로의 상담에서 상담자-내담자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고, 그렇다고 제가 매력이 없다고 대답하면 상심하셔서 저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우실테니까요. 저는 ~님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 상담자 역할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질문에 답하기 싫습니다"
이건 출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유명한 상담자의 일화에서 따온 겁니다.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상담자는 내담자의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담자의 역할은 내담자를 돕는 것이지 내담자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내담자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올라오는지 찬찬히 관찰하시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대답이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어떻게 거절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면 대체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전혀 감도 안 잡힐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의무는 없다고 믿으신다면 내담자에게 상처주지 않고 상담을 위태롭지 않게 하면서도 현명하게 대답을 거절할 수많은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방법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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