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 파트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상담심리학 전공의 임상가들이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로 과거 치료력을 그대로 신뢰하는 게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상담이나 심리평가를 받으러 내방한 내담자가 과거에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다면 그 진단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죠. 하지만 막상 심리평가를 실시해보면 과거의 그 진단이라는 것과 얼토당토 않게 다른 결과를 받아들고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과거에 아무리 유명한 병원에서, 이름난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든 말든 간에 일단 모든 진단은 의심해야 합니다.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외래, 입원, 약물 치료를 막론하고)를 받은 병력이 있는 내담자를 보게 되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 진단이나 치료의 근거가 무엇인가
문진이나 BDI 등 false positive error 확률이 높은 자기 보고형 검사 결과가 그 근거라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기존 진단은 머릿속에서 싹 지우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진단을 받은 지 오래 지난 환자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맨 처음 진단이 틀렸을 경우 환자가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다니며 진료를 받을 때 나중에 환자를 문진한 의사가 기존 진단을 뒤집고 전혀 새로운 진단을 내리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존 진단이 옳다는 전제 하에 약을 바꾸거나 증량하는 등의 수정 조치를 취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는 첫 진단을 잘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2.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하였고 그것에 근거해 진단이 내려진 경우
일단 기존 진단을 신뢰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갖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다음의 두 가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1. 심리평가보고서 사본 확보. 2.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한 임상가의 전문성 확인. 심리평가보고서에 기인해 진단을 내렸다는 건 전해들었지만 내용을 볼 수 없다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반드시 심리평가보고서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또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임상가가 작성한 보고서라면 이 역시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임상가가 심리평가를 잘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 내 내담자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3. (종합)심리평가보고서의 내용이 미심쩍은 경우
내담자 또는 보호자에게 이야기 해 심리평가 원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원자료를 복사해 오라고만 하면 절대로 제대로 된 자료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심리평가 원자료를 선뜻 내주는 병원이나 기관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MMPI-2의 결과지 1번에서 6번까지, 문장완성검사 앞, 뒷면 사본, 로샤 검사의 반응 기록지와 반응 영역 기록지, 구조적 요약지 등등 필요한
원자료 목록을 정확하게 적어서 그대로 의무 기록 복사를 해 오라고 주문해야 합니다. 병원의 원무과나 의무기록과로 직접 간다고 해도 어차피 정신건강의학과의 담당의나 심리평가를 실시한 임상가에게 연락이 가기 때문에 그들과 직접 통화해서 검사 원자료를 보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기관이나 임상가라면 취지를 이해하고 복사해 줄 겁니다. 만약 내규, 원칙, 규정 등을 내세우면서 복사 안 해주려고 버티면 고발하는 등의 조치(엄밀하게는 친고죄로 고소하는 것이며 의무기록 복사를 거부하는 의료인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의거 자격정지 15일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됩니다(그런 일은 가능한 한 있으면 안 되겠지만요).
간혹 심리평가를 실시한 기관이 폐업을 했거나 기간이 오래되어 파기를 했거나 아니면 망실된 경우도 꽤 많은데 그럴 경우는 결국 심리평가를 다시 실시해야 합니다.
단계적으로 살펴보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제 경우는 예전에 Big 5에 속하는 종합병원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supervisor가 supervision한 심리평가보고서에서 떡 하니 Paranoid SPR로 진단받은 환자가 미심쩍어 다시 평가해봤더니 Malingering이어서 큰 충격을 받은 이후 어떤 기관에서 어떤 전문가가 실시한 심리평가보고서도 거의 믿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실시하고 제 눈으로 확인한 검사 결과만 믿습니다.
그러니 상담자 선생님들은, 특히 심리평가에 약하다고 자인하는 선생님들일수록 항상 회의주의적인 자세를 굳건히 유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엄한 내담자에게 낙인을 찍지 않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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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내담자로 만나는 임상가들에게서 부모 교육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모 교육도 일반 강의와 마찬가지로 자꾸 하면 늘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너무 무식한 방법이니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원칙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모 교육을 잘 하기 위한 원칙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1을 알고 있을 때 10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떨지 말 것
2. 1을 알고 있을 때 하나도 모르는 것처럼 겸손(또 다른 유형의 교만)떨지 말 것
3. 1이든 10이든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자신있게 말 할 것
이 세 가지의 조합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임상가라면 결국은 부모 교육을 잘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도박 중독자를 자녀로 둔 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등록된 차를 아들이 전당포에 맡겼는데 대포차로 팔아버려 행방을 찾을 수 없다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1번 예에 해당합니다. 나름 도박 중독 치료를 오래 했다면 도박 중독에 대해서는 그나마 할 이야기가 있으나 대포차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전문가임에는 틀림없죠. 이럴 경우 사견을 전제로 경험담을 들려줄 수는 있으나 결국은 관련 전문가에게 연결하여 최상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경험이 많은 척 으스대봤자 드러나는 건 밑천이요, 잃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내담자의 신뢰입니다.
2. 엄마의 체벌을 두려워하여 눈을 심하게 깜박이는 틱 증상을 보이는 6세 여아가 있고, 이러한 인과 관계가 심리평가 결과를 통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 임상가는 부모 교육에서 체벌의 쓸모없음과 아동이 보이는 증상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분명하게 education해야 합니다. 엄마의 심리적 저항이 강해 체벌을 중단할 것 같지 않거나 반대로 임상가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거나 체벌 무용론에 대해 지리한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건 신중을 가장한 무능일 수 있습니다.
3. 1을 10으로 부풀리거나 그와 반대로 정확히 알고 있는 1도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주눅들지 않았을 때 필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부모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임상가라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부족한 부분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감을 잃은 임상가의 두려움은 그대로 부모에게 전달되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로막습니다. 임상가는 무엇보다 사람이 가진 마음의 힘과 변화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복잡하게 중언부언했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아는 것만 있는 그대로 자신있게 설명하라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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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게 영어 상담이 가능한 상담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일도 있고,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에 영어로 심리적 치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담자 pool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부족한 정보나마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당연히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영어 상담이 가능한 상담자께서는 제게 연락주시면 언제든 목록에 추가하겠습니다. 또한 추천도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 정보 등재는 개인적으로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청이 들어오면 언제든 삭제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2016년 2월 17일 현재(가나다 순)
* 개인
* 김성호
배경 : 미국 정신분석 NAAP 협회원(미국 거주) : 전화상담 가능
소속 :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ICP(설립자 및 이사장)
연락 : 02-743-4313
* 서상봉
배경 : 미국 정신분석 NAAP 협회원(분석 경험 16년 이상, 미국 거주 26년 이상)
소속 :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ICP(이사 및 대표 소장)
연락 : 02-743-4313
* 이민재
배경 :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발달심리학 박사
소속 : 이대 학생상담센터 초빙상담원
연락 : maree0126@hanamil.net
* 조윤화
배경 : Indiana University 상담심리학 박사
소속 : 마음사랑 인지행동치료센터 객원상담원
연락 : 02-511-4411
* 최현정
배경 : 서울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트라우마 전공)
소속 :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회적 협동조합 사람마음
연락 : 02-747-1210
* 허재홍
배경 : 연세대학교 상담심리학 박사
소속 : 경북대 심리학과 부교수
연락 : oshoheo@knu.ac.kr
* 기관
- 마인드케어 심리치료센터(070-8888-8277)
그 밖에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도 영어 상담이 가능한 상담자 목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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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담자 선생님들을 위해 제가 생각하는 아동/청소년 상담의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 부모(보호자)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 문제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의 정보원도 아쉬운 상담자는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의 경우 라포 형성 전까지 내담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많은 아동/청소년들은 대개 자신의 문제를 조리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활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례에서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나타나고 관계 갈등의 주 대상이 부모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주관에 의한 왜곡과 윤색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에 의해 보고된 정보는 생각보다 정보가가 높지 않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의 문제라고 보고하는 내용들이 실제로는 부모의 욕구나 기대가 투사된 경우 또한 많기 때문에 부모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로 상담에서 해결해야 하는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가정하는 게 오히려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또래 관계가 좋지 않고 아무래도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고 부모가 보고할 때 상담자가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또래 관계 양상이 아닙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 형제자매, 친척들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소위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경우이거나 부모-자녀 관계 갈등에 대한 문제때문에 쌓인 불편감을 밖에서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이보다 더 흔히 부모가 보고하는 주요 문제로 자신의 자녀가 통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해 속상하다는 게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의 집중력의 문제(예를 들어 ADHD)가 주요 문제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불안과 같은 심리적 불편감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는 게 관찰되는 것 뿐입니다. 정말 ADHD라면 주의가 산만해서 수업 시간에 앉아 있지 못한다든가 하는 눈에 띄는 행동 문제를 주로 호소할 겁니다.
* 부모와 달리 접근해야 한다
: 저는 상담 초기에 항상 부모의 양육 태도와 훈육 방법을 확인하는 편인데 그것이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상당 부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자기 방을 잘 치우거나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서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 등의 행동은 당연하게 생각해 칭찬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지적하고 잔소리를 하거나 심하게는 체벌을 하는 부모라면 부모와 자녀 관계가 건강할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동/청소년이 보기에 상담자도 부모와 같은 어른이므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역기능적인 관계 양상을 상담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겁니다. 맨날 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을 당하는 것에 익숙한 아동/청소년은 상담자에게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그런 반응을 촉발하는 행동을 골라 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파악한 뒤에는 부모와 달리 행동해야 합니다. 전이-역전이 분석은 필수이며 부모와 의도적으로 다른 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초기에는요. 물론 라포가 형성된 이후에는 이 부분을 다룰 수 있어야겠지요. 굳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죠.
* 호기심을 가져라. 취조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 상담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지금의 위치에 왔건 간에 자신이 살아온 궤적에 대한 가치관을 내담자인 아동/청소년에게 대입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행 판단과 선입견으로 인해 상담이 아닌 취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질이 되면 상담은 하나마나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자칫하면 상담자가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가치관을 중립화하면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게 호기심이라고 봅니다. 상담자들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공부해 온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되고 나니 자신의 공부를 지탱해오던 호기심을 팽개치고 갑자기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내담자에게 투사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상담자가 되게 만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온통 게임에만 몰두하고 학교에 가는 것 조차 거부하는 아동이 좋아하는 게임이 마인크래프트라고 한다면 그게 무슨 게임인지, 그 게임은 어떻게 하는건지, 그 게임을 왜 좋아하는건지, 그 게임에서 충족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해야지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고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서 결국은 패배자가 되고 말거라는 기성 어른들의 논리만 읊조린다면 치유적 상담이 가능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판단은 뒤로 미루고(없앨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본원적인 호기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라포 형성이 되고 치유적 변화가 절로 따라옵니다.
* negative한 건 중요하지 않다. positive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라
: 많은 상담자들이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또는 해결을 돕는) 사람이라는 믿음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당연히 아동/청소년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런 문제를 자신이 없애려 하거나 아동/청소년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려고만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자가 해결사가 되려고 마음 먹으면 상담은 대결의 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혹은 이차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을 지키려는 내담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상담자의 대결 말이죠.
저는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보이는 모든 증상은 임상적으로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실 상의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이차적인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이차적인 이득을 건강하게 충족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한 그 증상은 모양을 바꾸면서 계속 변형될 것이고 그러한 증상의 변화와 숨박꼭질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설사 겉으로 보이는 그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궁극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positive한 측면입니다. 그게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다루어야 할 기본 재료인 것이죠.
재미있는 건 자신의 자녀가 가진 장점과 미덕에 대해 물어보면 거침없이 대답하는 부모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negative한 측면만 바라보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흐믓한 표정으로 장점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자녀들이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걸 경험하면서 상담의 포인트를 negative한 측면이 아닌 positive한 측면에 맞추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만 한번쯤 심사숙고해 보시라고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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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TCI는 임상 현장에서 잘 쓰이는 검사 도구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수가 문제 때문인 것 같지만 그 외에도 워낙 병리적인 문제가 심각한 환자들이 많아 변별 진단이 더 급하고 진단이 내려진 뒤에도 임상심리학자들의 개입 여지가 적은 곳이다 보니 기질이나 성격 문제까지 살펴볼 필요가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작년 여름에 포스팅한 글(
'TCI를 이용한 성격 장애 진단의 개념적 이해')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종합심리평가만으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임상심리학자가 실질적으로 치료적 개입을 할 수 없는 병원 장면에서도 성격 장애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면만 놓고 봐도 TCI의 활용 여지는 적지 않습니다.
임상 현장은 그렇다치고 상담 현장은 어떨까요?
현재도 상담 현장에서의 TCI 활용 가능성이 더 큽니다만 저는 앞으로 TCI는 상담 현장에서 MMPI-2/A 이상으로 상담자들이 선호하는 검사가 될 거라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 이상으로 상담을 위한 접점을 파악하는데 TCI가 아주 큰 도움을 주거든요. 그래서 TCI를 익혀두시는 건 굉장히 효율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상담 현장에서 TCI를 사용하면 좋은 상황에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TCI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들이 애매 모호하여 DSM 체계에 의한 가설을 세울 수 없을 정도일 때'
뭔가 이런저런 심리적 고통감을 호소하고, 부적응적 양상을 보이며 행동 상의 문제도 드러내지만 딱히 어떤 장애로 진단하기에는 애매하다 싶고 굳이 변별 진단을 위한 가설을 세우자니 너무 많은 진단이 떠오르는 경우에 TCI 사용을 고려해 봄 직 합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애매한 증상군은 기질이나 성격 역동에 의해 나타나는 문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증상이 다양하고 심각해 보일수록 기질도 좋지 않고 성격의 조절 기능에도 문제가 있어 기질과 성격의 부적응적인 상호작용 때문에 이러한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물론
기질은 건강하지만 성격의 조절 기능에만 문제가 있거나 성격은 괜찮으나 취약한 기질을 소유하고 있어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제 경험 상 증상이 애매할수록 둘 다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TCI를 실시해서
'TCI 활용 3단계 전략'에 따라 점검해 보면 내담자의 문제가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될 수도 있으니 한번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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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역동치료의 현존하는 네임드 Nancy McWilliams 방한 예정!!'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도네시아 여행 때 노트북을 싸들고 가는 수고까지 불사하고 현지에서 국내 시간에 맞춰 광클릭 한 보람이 있어(맹세코 이런 짓 처음임;;;)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워크샵을 3일 모두 등록 성공하였습니다.
오늘이 1일차여서 휴가내고 다녀왔습니다.
아직 1일차에 불과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워크샵을 듣지 않은 임상가 선생님들은 두고두고 후회하실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들은 모든 학회, 심포지엄, 콜로퀴엄, 워크샵 통틀어 Top 3에 드는 워크샵입니다.
장점에 해당하는 인상깊었던 점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 Nancy McWilliams 선생님의 강연 스타일
: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씀하셔서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
* 통역 : 전문 통역사인 것 같은데(아닐 수도 있음) 심리학 전공 용어도 틀린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
->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통역 중 최고
* 강연자와 통역의 호흡 : 딱 따라가기 좋은 정도로 끊어서 들으니 영어로 들은 내용 중 긴가민가 하는 걸 우리말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반복 학습이 되는 느낌
* 주최 측 진행 : 참석자들이 늦게 와서 그렇지 진행이 아주 매끄러웠음. 시간 배분도 완벽
* 사은품(?) : 자료집과 요기하라고 준 떡, 주최측인 서강대 열린상담소 홍보용 펜(뒤에 스타일러스 펜촉이 달려 있어 유용)과 생수를 줬는데 요긴한데다 군더더기없이 딱 필요한 물품만 줬더군요. 신경 많이 쓴 듯 하네요.
굳이 단점을 끄집어 내 보라면,
* 강의장 의자의 사이드 테이블 크기가 작아 노트북 사용이나 장시간 필기가 좀 불편했음
* 고른 난방이 되지 않아 뒤에 앉은 사람은 덥고 앞에 앉은 사람은 추워 강의에 집중하기 어려움
* 인원 수에 비해 여성용 화장실이 협소해 여성분들이 불편을 겪음
다음은 내용.
이번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워크샵의 주제는 'Individuality and Its Implications for Psychotherapy'입니다.
치료적 접근의 유형별 차이보다 성격이나 대인관계 관련 변인 등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individuality)이 치료 효과 측면에서도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입증되어왔죠. 그래서 바로 이 개별성을 정신분석에서 강조하는 10가지 시선으로 조망하고 성격의 개인차에 대한 이해를 범주적(categorical)이 아닌 차원적(dimensional) 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 워크샵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그 중 1일차였는데요. 개별성과 심리치료의 관계에서 심리치료 장면에 드러나는 내담자 성격의 이해와 치료적 함의에 대해 개관했습니다.
Individuality를 바라보는 10가지 시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Temperament
2. Attachment Style
3. Observed Clinical Patterns
4. Defensive Organization
5. Implicit Cognitions about Self and others
6. Affective Patterns
7. Drive (Motivational Systems)
8. Individualistic vs. Communal Orientation
9. Internalized Object Relations (Inner Working Models / Schemas)
10. Organizing Developmental Issue (Severity Dimension)
1일차 워크샵은 오후 2시부터 5시 15분까지 휴식 시간 15분을 제외하고 1시간 30분짜리 강의 두 개가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시간에 individuality를 다루는 10가지 시선 중 앞의 5개, 두 번째 시간에 나머지 5개를 설명했습니다.
연자 스스로 depressive-hysterical하다고 스스로를 평한 것처럼(제 기준으로 B군 상담자, 저는 A군;;;;) 표정 및 감정 표현이 풍부해서 다소 밋밋(PPT 슬라이드가 주로 읽어보면 도움이 될 참고서적이나 문헌 소개로 채워져 있음. 제게는 유용한 정보였지만)한 강의에 활력을 불어넣더군요.
강의도 좋았지만 질의응답까지 좋았습니다. 직접 청중 질문도 받았지만 주최측에서 강의가 끝난 후 할 질문을 미리 적어서 내도록 했기 때문에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무엇보다 질문과 응답 모두 quality가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 모든 내담자에게 10가지 시선을 모두 적용해서 살펴봐야 하나, 당신은 주로 어떤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나, 모든 내담자에게 성격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가, 상담자라면 역전이 문제가 중요할텐데 당신이 개인적으로 역전이를 강하게 느껴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 성격 장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자기애성 성격 장애, 특히 borderline level이 좀 부담스럽다고 하시더군요. ^^) 등등의 좋은 질문이 많았습니다.
성 폭력 피해 여성의 regressed behavior를 dissociation과 어떻게 구분하는가, 학교 폭력 피해 청소년이 보이는 homicidal idea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등등의 실제 임상 사례와 관련된 질문도 있었는데 정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McWilliams 정도의 대가라면 그런 사례 경험은 풍부할테니 얼마든지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첫날 3시간에 불과한 강의만 접했지만 느낌이 좋습니다. 특히 McWilliams 박사의 저서에도 다루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집약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내일 강의가 기대되는군요.
닫기
* Temperament
- 과거 :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양육 실패)에 주로 초점을 맞춤
- 현재 : 부모와 자녀의 코드(기질)가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가능성에도 초점을 맞춤
* Attachment Style
- Mikulincer : 결혼이나 헌신적 파트너십처럼 love relationship이 5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psychotherapy에서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2년 이상을 필요로 함
- Wallin : 불안정 애착을 성인기에 안정적 애착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화 조건 제시
-> secure, anxious, avoidant, disorganized-disoriented(type D) 애착 유형 구분
-> tyep D 애착 유형의 경우 trauma 경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
* Observed Clinical Patterns
- 증상 위주의 치료 방법에는 한계가 있음. 성격의 문제에 기인하는 사례가 많음
- 성격 구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함
* Defensive Organization
- 각 개인이 emotional distress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와 관련된 문제
- 방어 구조는 방어 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 Implicit Cognitions
- 정신역동에서의 Pathogenic belifs와 유사
- 발달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이 아님. 아이들도 비교적 합리적이다
* Affective Patterns
- Ekman의 스승인 Tomkins가 이 분야의 대가
- 인간은 원래 8초에 한번씩 표정이 바뀌는데 병리적 문제가 있으면 표정의 변화가 없음
- 내담자의 affect를 상담자가 contain하는 것의 중요성
- 내담자의 affect가 상담자의 그것과 matching하지 않고 다르다는 점에서 내담자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함. 치료자가 내담자의 affect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님.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 Drive (motivational systems)
- Panksepp : DSM 체계는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의해 구분하기 때문에 치료적 함의가 부족하다
-> 7개의 motivational system 설명 : sensation seeking(도파민), anger, fear, anxiety, play, sexual desire, care
* Individualistic vs. Communal Orientation : 개인주의 vs. 전체주의
- Blatt의 연구
-> 내사적 우울(수치심, 죄책감) :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며 치료 기법과 내용이 중요, 재발이 잘 되지 않음
-> 의존적 우울(외로움, 정서적 허기) : 관계만으로 도움이 됨. 재발이 쉬움. 재애착 치료 필요
* Internalized Object Relations : Theme/Scheme(중요 생각)
- Schizoid : 친밀감 vs. 거리
- OC : 통제 vs. 통제 상실
- Hysterical : seductive vs. inhibited
- Paranoid : trust vs. distrust(극단적 이분화)
- Narcissistic : I'm OK vs. I'm not OK
* Organizing Developmental Issue : 발달 수준
닫기
* Greenberg, L., McWilliams, N. & Wenzel, A. (2013). Exploring three approaches to psychotherapy.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st Association.
* Attachment Style
- Holmes, J. (2001). The search for the secure base: Attachment theory and psychotherapy. Philadelphia: Taylor & Francis.
- Mikulincer, M., & Shaver, P. R. (2007). Attachment in adulthood: Structure, dynamics, and change. New York: Guilford Press.
- Wallin, D. J. (2007). Attachment in psychotherapy. New York: Guilford Press.
* Observed Clinical Patterns
- Kernberg, O. F. (1984). Severe personality disorders: Psychotherapeutic strategies: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 McWilliams, N. (1994, rev. ed. 2011). Psychoanalytic diagnosis: Understanding personality structure in the clinical process. New York: Guilford
* Defensive Organization
- Vaillant, G. E. (1992). Ego mechanisms of defense: A guide for clinicians and researchers. 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Cramer, P. (2006). Protecting the self: Defense mechanisms in action. New York: Guilford.
- Perry, J. C. (2014). Anomalies and specific functions in the clinical identification of defense mechanisms.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70, 406-418.
* Affective Patterns
- Anstadt, TH., Merten, J., Ullrich, B., & Krause, R. (1997). Affective dyadic behavior, core conflictual relationship themes and success of treatment. Psychotherapy Research, 7, 397-417.
* Drive (motivational systems)
- Panksepp, J., & Biven, L. (2012). The archeology of mind: Neuroevolutionary origins of human emotions: New York: Norton.
* Individualistic vs. Communal Orientation
- Blatt, S. J. (2008). Polarities of experience: Relatedness and self-definition in personality development, psychopathology, and the therapeutic process.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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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에
'자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자가 되지 말고 치유하고 나서 그래도 원할 때 상담자가 되라' 라는 글에서는 마음이 건강한 상담자만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좀 더 확장해보면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도 상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없다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실겁니다. 대부분의 상담자가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 몸살에 걸려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리고 열이 나는 상황에서 내담자가 하는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일 수 없다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에 걸려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하며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내담자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요. 심리적으로 weak해진 상담자는 내담자의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상담은 내담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고도의 정신 노동입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하죠.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는 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한다는 건 내담자에 대한 전문가의 직무 유기입니다. 그러니 평소에도 충분한 신체적 휴식과 마음의 평안을 도모해야겠지만 문제가 심각하다면 상담을 미뤄두고 수리와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가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내담자에게 본보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담자가 왜 내담자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어떤 접근법을 따르는 상담자이냐에 따라 충분히 달리 보실 수 있는 문제니까요.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자의 의도와 달리 상담자를 본보기로 삼는 내담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상담자가 이를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걸 따지는 건 별로 의미없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 내담자는 상담자에게서 희망의 빛을 찾고 싶어하고 상담자의 건강한 부분을 본보기로 삼아 따라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상담자처럼 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걸 그냥 잘못된 의존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습니다.
'나는 그냥 당신을 돕기 위해 훈련받은 상담자이니 나를 좋아하는 것도, 나를 따라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저 내 도움만 받으라'는 건 중립에 집착하는 상담자의 헛된 기대일 뿐입니다.
현상이 그러하니 상담자는 어떤 내담자이든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 모델링할거라고 전제하는 게 낫습니다. 좀 더 능수능란한 상담자는 그러한 내담자의 욕구까지 상담 장면에서 함께 다룰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상담자는 무엇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내담자보다도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더 우선해서 balance를 잃지 않도록 항상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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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라면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같은 기관에서 일하는 임상심리사에게 넘기거나 외부 기관의 임상심리학자에게 refer했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기 때문에 선별심리평가까지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MMPI-2/A, SCT 조합 또는 MMPI-2/A, TCI 조합의 선별심리평가는 대부분의 상담 현장에서 상담자들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앞으로는 종합심리평가까지 상담자들이 해야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담에 도움이 될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심리평가를 한 것 뿐이니 보고서 따위는 안 쓰고 그냥 말로 때울래'와 같은 접근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원래 선별심리검사만 실시했어도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맞죠. 대충 말로 때우면 안 됩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심리평가에 응한 내담자를 기망하는 직무 태만 행위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상담자가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이 중 몇몇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각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1. Reason for Referrals(의뢰 사유) 작성 시 평가 의뢰 사유를 항상 염두에 둘 것
: 임상 전공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담 전공자들은 상담 의뢰 사유만 생각하기 때문에 심리평가 의뢰 사유를 별도로 상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눈물만 나오는 문제로 내방한 것이 상담 의뢰 사유라면 우울 장애 변별이 평가 의뢰 사유라고 할 수 있겠죠. 아예
의뢰 사유 영역을 작성할 때 상담 의뢰 사유와 평가 의뢰 사유를 구분해서 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관련 포스팅 :
'상담 의뢰 사유와 심리평가 의뢰 사유를 구분할 것 : 상담자용'
2. 검사 sign으로 지지되지 않는 내용은 (절대로) 쓰지 말 것
: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소설처럼 (생동감있게) 쓰되 소설을 쓰지는 말 것'이라는 원칙입니다. 수검자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은 좋으나 사실이 아닌 평가자의 주관을 사실처럼 써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죠. 소설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철저히 심리검사 sign에 의해 지지되는지를 검증하면서 써야 합니다. 즉 앞서 든 예에서처럼 '수검자는 현재 우울한 정서 상태'라고 쓰려면 우울하다는 걸 지지하는 검사 sign을 찾아내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보고서에 기술하는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물론 초심자는 개별 검사 sign을 일일이 보고서에 명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검자를 묘사하는 어떤 내용을 보고서에 썼을 때 이를 지지하는 해당 검사 sign을 말할 수 없다면 그 문구는 빼야 합니다. 평가자의 지나친 과잉 해석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론일 수 있으니까요. 명심하세요. 검사 sign으로 지지되지 않는 문구는 쓰지 않는 게 옳습니다. 그러니 상담 전공자는 임상 전공자보다 심리검사 도구와 검사 sign에 대한 공부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죠.
3. '빼는 방식'이 아닌 '넣는 방식'으로 쓸 것
: 상담 전공자가 심리평가보고서를 망치는 대표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각 심리검사 결과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추려냅니다. MMPI-2/A에서는 68 또는 70T가 넘는 지표, 로샤에서는 별이 뜬 지표, 지능 검사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는 지표와 소검사 등등. 그 다음에는 각각의 해석집을 뒤져서 내용을 스크랩한 뒤 보고서의 해당 영역에 붙여 넣습니다. 그 다음에 자신의 수검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빼는 작업을 합니다. 문제는 일단 유의미한 결과라고 해서 몽땅 붙여 넣은 뒤에는 노력이 아깝게 여겨지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라고 빼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그냥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가게 되고 실제 수검자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내용의 보고서가 됩니다.
무엇보다 빼는 방식의 보고서는 군더더기가 많고 지저분하며 자칫하면 앞뒤가 모순된 내용이 들어갈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저 분량이 많아서 내용이 충실해 보이는 착시 효과만 있을 뿐입니다.
심리평가보고서는 넣는 방식으로 써야 합니다. 수검자를 기술할 내용을 하나 찾으면 해당되는 검사 sign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교차 검증을 해 보고 이를 통과한 내용만 넣어야 합니다. 당연히 이 방식은 처음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습니다. 다 써놓고 보면 분량이 적기 때문에 부실해 보이기도 하고 통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수검자에게 정확히 적용할 수 있는 핵심 내용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시작점이 되는 핵심 문제가 담겨 있어서 곧바로 치료로 연결하기도 편합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좀 어렵더라도 처음부터 '빼는 방식'이 아닌 '넣는 방식'으로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 관련 포스팅 :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 : 빼지 말고 넣는 방식으로 쓸 것'
4. 상담이 이미 진행중인 내담자의 경우 상담 내용을 넣지 않도록 주의할 것
: 상담 현장도 점점 단기 상담으로 재편되면서 상담자에게 배정되기 이전부터 선별평가를 실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그래도 상담 도중에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상담자가 평가자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거지요. 이 때 특히 주의해야 하는 건
상담 동안에 형성되었던 내담자에 대한 인상과 가설을 심리평가 동안에는 잠시 덮어둬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개인적인 주관과 선입견의 영향력은 의외로 심리검사 해석에 자신이 없는 상담자의 눈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마땅한 검사 sign을 찾지 못하는 경우 상담한 내용에서 그 근거를 가져와 보고서에 대신 넣는 것이죠. 보고서를 읽다가 관련 근거를 대지 못하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다면 상담 내용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고 그런 경우 원칙적으로 빼야 합니다. 상담 내용으로 수검자의 모든 문제를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애꿎은 내담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강요한 꼴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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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는 심리평가가 주 무기인 임상 전공자에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나는 상담자에게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입니다.
미국에서는 이제 별로 안 쳐주는 검사인 것 같지만 그건 미국이 기본적으로 정신역동적 접근을 배타하는 문화인데다 계량화, 구조화된 검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서 그렇지, 로샤 검사가 그만큼 무시해도 되는 듣보잡 검사여서가 아닙니다.
구조화된 요약에만 목숨을 걸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로샤의 질적 해석을 해 보면 왜 로샤가 이런 불완전한 해석 체계를 갖고도 지금까지 당당히 살아남은 검사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임상 수련을 받는 사람은 어차피 피할 수도 없거니와 기존의 수련 체계에서 로샤를 공부할 기회가 충분히 많이 있으나 상담자는 스스로 공부 의지를 불태우지 않으면 로샤를 공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거니와 설사 마음을 굳게 먹었다손쳐도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죠.
그래서 상담자의 입장에서 로샤 공부를 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추천드려보겠습니다.
1. Exner의 종합체계 워크북 구입
: 로샤 관련 책들은 번역서로도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어차피 읽어야 할 필독서인데다 다른 책만 봐서는 제대로 로샤를 익힐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책을 독파하는 게 낫습니다. 괜히 쉬운 길 가겠다고 주해서 같은 책으로 공부해 봤자 어차피 이 책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러니 정석으로 가세요.
이 때, 로샤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로샤 검사에 오염되기 전에 전문가에게 로샤 검사를 받아보는 겁니다. 이 자료는 나중에 채점 연습을 하기 위해서 잘 챙겨둬야 합니다. 관련글(
'심리학도는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을 것')
2. 종합체계 워크북 정독
: 이 단계 공부 패턴에 따라 다른데 혼자서 일독하는 것도 괜찮고 팀 플레이에 강한 분들은 스터디 팀을 짜서 강독을 해도 됩니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겁니다. 스터디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발표하는 부분도 자신이 발표하는 부분처럼 철저히 읽고 연습해야 합니다.
워크북을 읽을 때 중요한 건 실제 원자료를 채점해 보는 경험을 갖는 것입니다. 이 때 미리 받아놓은 자신의 로샤 원자료를 활용합니다. 스터디를 한다면 팀원들의 원자료를 돌려가면서 채점하고 토론하면 다양한 원자료를 채점할 수도 있고 자신의 채점 오류에 대해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로샤 워크샵 듣기
: 임상 전공이라면 수련 과정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로샤 채점과 해석을 할 것이기 때문에 워크샵까지 굳이 들을 필요가 없지만 상담 전공자라면 종합체계 워크북을 정독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로샤가 워낙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핵심을 요약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훑어주는 워크샵을 한번쯤은 듣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워크샵을 먼저 듣고 종합체계 워크북을 나중에 보면 안 되냐고 묻는 분이 계신데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로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워크샵을 들어봤자 흰 것은 프로젝터 바탕 화면이요, 빨간 것은 레이저 포인터일 뿐입니다.
힘들더라도 책을 먼저 보시고 그 다음에 워크샵을 듣는 것이 시간 대비, 비용 대비 효율성이 훨씬 높습니다.
4. 로샤 실시 및 채점, 구조적 요약의 반복 연습
: 종합체계 워크북도 공부했고 관련 워크샵도 들었다면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이 망각되기 전에 자꾸 리허설해서 장기기억으로 넘겨줘야 합니다. 임상 전공자는 수련 과정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로샤를 실시, 채점, 해석하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상담 전공자는 상담하느라 로샤를 실시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능한 한 많은 로샤 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로샤 검사가 불필요한 내담자에게 실시하는 게 윤리적으로 부담스러우면 주변 지인이라도 마루타로 삼아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최소한 워크샵을 들은 지 1년 이내에 50개 이상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채점해야 합니다.
정 사례가 없으면 종합체계 워크북에 실린 300개 예제라도 반복해서 채점하고 채점이 틀린 예제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따로 모아서 공부하세요.
로샤를 채점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최소한 10 사례 정도는 채점 프로그램의 힘을 빌리지 말고 손으로 구조적 요약을 해 보라는 겁니다. 이건 통계 방법론을 익힐 때 변량분석을 손으로 직접 계산해서 해 보는 것과 유사한데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지표들이 계산되는지 손으로 계산하면서 익혀놔야 나중에 지표 해석 이해가 쉽습니다. 복잡하다고 채점 프로그램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아무리 단계별 해석 방법을 공부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조언드리면, 가끔
로샤 채점 체계의 불완전성을 강변하면서 구조적 요약 없이 질적 해석만 공부하면 안 되냐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게는 안 됩니다. 질적 해석의 풍부함은 구조적 요약의 바탕 하에서만 나오는 겁니다. 구조적 요약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질적 해석을 아무리 열심히 파 봐야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령 부리지 말고 구조적 요약을 돌파한 뒤 질적 해석으로 넘어가시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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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치료를 하는 상담자가 현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유형의 도박자는 아니지만 간혹 자신은 잡기에 능하고, 도박을 잘 하며, 좋아하기도 하니 이참에 아예 프로 도박사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바람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기함하게 만드는 내담자가 있죠.
이들은 대체로 젊고 혈기 왕성하며 머리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도박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수준이 아직까지는 그리 극심하지 않아서 소위 바닥의 쓴 맛을 아직 못 본 분들이 많죠.
이러한 도박자를 상담하는 상담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도박 중독자라는 인식을 하게끔 노력하는 과정에서 프로 도박사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길인지를 강변하는 것입니다.
이는 도박자에게 도박으로 돈을 따는 것이 왜 불가능한 것인지 그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함정입니다.
물론 프로 도박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도박자가 (머리로) 알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도박 중독 상태에 있는지를 도박자가 깨닫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작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이 오면 프로 도박사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아래의 내용들을 먼저 생각해보도록 돕습니다.
1. 프로 도박사가 되는 것처럼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의사 결정은 현재 깨어진 삶의 균형(balance)를 회복한 이후에 즉,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회복한 이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2. 삶의 balance를 회복하고자 노력할 때에는 일시적인 성공만으로 자만하지 말고 몸에 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해보자.
이 두 가지를 먼저 해 보자고 합니다. 물론 당연히 실패하게 마련이죠. 삶의 균형을 그렇게 쉽게 회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도박 중독자가 아닌 겁니다.
실패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이 프로 도박사가 되기 위한 재원이 아니라 단순한 도박 중독 상태에 빠져 착각을 하고 있는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죠.
만에 하나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프로 도박사가 되는 길에 대해 상담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느냐고 우려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프로 도박사가 되겠다고 매달리는 건 진지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도박을 끊고 싶지 않은 갈망과 집착에 의해서 생긴 착각이니까요.
그래서 막상 삶의 균형을 회복하게 되면 프로 도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예전에
'지도가 영토가 아니듯 증상이 원인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다른 포스팅에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도박자가 하는 모든 말이 도박자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상담자는 그 안에 숨겨진 도박자의 양가 갈등과 고민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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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 행동 치료 두 분야에서 모두 훈련을 받은 Paul L. Wachtel 박사가 쓴, 'Inside the Session : What Really Happens in Psychotherapy(2011)'을 북 크로싱합니다.
상담을 할 때 상담자와 내담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two-person perspective로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기대가 커서 그런지 거창한 서문과 달리 통상적인 사례 분석집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저는 좀 실망한 책입니다만 흥미롭게 읽으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북 크로싱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소개글'을 참고하시고요.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제도 안내에 있는 내용대로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 예외 서적인 원서이므로 기존 방식으로 북 크로싱합니다. * 월덴 3의 북 크로싱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북 크로싱 신청을 하시기 전에 반드시 경고 제도를 숙지하세요. * 신청자 명단(2016년 3월 5일 23:3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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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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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담을 받은 적이 없는 저같은 상담자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과연 제대로 상담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래도 상담 관련 서적을 꽤나 읽고 공부했기 때문에 상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대가들의 상담 시연을 담은 동영상도 열심히 복기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어느정도는 흉내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상담 동안에 내담자 뿐 아니라 상담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낱낱이 알 수는 없는 것이죠. 내담자에게 집중하는 상담자일수록 더 모르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런데 이런 제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것만 같았던(과거형이라는데 주목~) 책을 찾았습니다. 제목부터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 출판부에서 나온 이 책은 임상심리학 박사인 Paul, L. Wachtel이 썼습니다. Wachtel은 특이하게도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의 양쪽 field 모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치료자로 어찌 보면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가지 접근을 접목하여 활용하는 임상가입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심리치료의 원리와 가정들에 대한 이론적인 소개와 함께 이 책에 실린 심리치료 사례를 보는 관점인 two-person perspective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부부터 문제입니다. 1부가 너무 장황하고 산만해요. 비유하자면 양식 코스에서 전채인 샐러드를 계속 리필해주다보니 정작 스테이크를 음미할 식욕이 남지 않는거죠. 2부가 두 명의 내담자와 진행한 3 session의 심리치료를 two-person perspective에 따라 상담 중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하는 main part인데 이걸 읽기도 전에 김이 확 빠져서 동기가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부는 그야말로 각 session의 vebatim을 낱낱이 풀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서문의 거창한 발문과 달리 맥이 빠질 정도로 평범합니다. 일반적인 사례 분석집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을 모두 취한다길래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게다가 원서라는 걸 감안하면.... ㅠ.ㅠ
3부에서는 지난 회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부분인데 이 역시 2부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ㅡㅡ;;;;
번역서도 아니고 원서(현재 아마존에서 49.95$)라는 걸 감안하면 그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양가 있는 사례 관련 책을 찾기 위해 계속 try 해 볼 예정이니 찾으면 곧바로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북 크로싱을 할 예정이오니 직접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도저히 추천은 못 드립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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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상담자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능력으로 간주됩니다.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담 및 심리치료적 접근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죠. 그만큼 상담에서는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수련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애도 많이 쓰고 공감을 잘 하는 상담자는 실제 상담에서 유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감이 잘 안되는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편이지만 제가 처음 상담을 하던 당시에도 저는 내담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내담자가 갈등을 겪은 상황이 정확하게 머리에 그려지고 왜 힘이 든건지 감이 오지만 공감만큼은 도무지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공감이 잘 안 되니 아무래도 내담자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서툴게 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내담자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한번도 안 해 주시더라는 불평 아닌 불평을 듣게 되기도 하고, 2년 이상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가 오늘은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되기도 합니다(사실은 아직도 좀 당혹스러워요;;;).
내담자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건 상담자에게 큰 결함이라고 배웠기에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예술을 자주 접하면 마음이 좀 열릴까(실제로 이건 효과가 좀 있습니다~) 등등.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 습관, 대인 관계 기술, 외모 등을 고치려고 집착하는 것처럼 저 또한 공감을 못하는 제 자신만을 탓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죠.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공감이 그렇게 안 되는데 왜 나는 내담자의 입장과 갈등의 이유, 의사 결정의 중요도와 우선 순위가 도표를 그리듯이 자동적으로 번호가 매겨지면서 정리가 되는건지.... 왜 어떤 내담자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혼란이 가라앉아서 좋아요 라고 말한 건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
상담에는 머리와 마음이 모두 필요하지만 머리가 더 발달한 상담자가 있고, 마음이 더 발달한 상담자도 있는거지요. 머리가 발달했다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그랬다면 상담자가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제 TCI 결과표를 보고 나서 왜 공감이 잘 안 되는지, 그런데도 왜 상담자의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TCI 기질 유형은 LLL유형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chizoid 유형이죠. 점수대가 39-38-35T이니 점수도 꽤 극단적인 편입니다. LLL 유형의 특성 상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으니 그 사람에게 진정한 공감을 하는 게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어떻게 상담이란 걸 하고 있느냐 하면 제 성격 유형이 HMH 유형이거든요. 연대감 차원의 백분위 점수가 65.4 정도 되니 관계 맺기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이죠. 게다가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Schizoid 기질이 병리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되지도 않고 잘 통제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머리 80, 마음 20 정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담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예 공감이 안 되지는 않으니 부족한 공감 능력은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그보다 특화된 분석 능력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인정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머리와 마음을 자유자재로 잘 사용하는 균형잡힌 상담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본인이 공감을 잘 못하는 상담자라며 자책만 마시고 강점 영역을 잘 찾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저처럼 공감에 서투른 상담자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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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가져 오는 문제는 프로이트가 이야기 한 '일'과 '사랑'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랑', 즉 대인 관계 문제가 압도적 다수라고 할 수 있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흔히 '그럼 나한테 문제가 있는건가?'하는 의문을 품은 상태에서 상담자를 찾게 됩니다.
심리검사도구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하고 상담자와 상담을 하면서 나에게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뭔가 대화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사 소통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처세술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뭘 좀 아는 분들은 비폭력 대화법 등을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대인 관계 문제에서 대인 관계 기술과 같은 표면적인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가 발견됩니다.
바로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동기, 의지, 욕구가 없는 것이죠. 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한 건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대화 기술은 상대방도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나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려고 익히는 것이지 나와 대화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동기를 불어넣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러니 뭔가 대화가 겉돌고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는 대화 기술을 새로 익힐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이야기(접촉, 관계 유지)를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한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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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언제부터 이렇게 붐을 일으켰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참 많은 분들이 상담자가 되고 싶다거나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상담하는 내담자들(특히 청소년들)이 그런 이야기를 특히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듣고 넘겼죠.
그런데 이 문제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이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상이나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있는 분들의 진학, 수련 동기를 들어보면 과거에 비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세 줄로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씀드리고 나머지를 설명하겠습니다.
1. 마음이 건강한 사람만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2. 마음이 건강한 상담자만 내담자를 온전히 도울 수 있다
3. 따라서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치유하고 난 뒤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or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중에서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자가 되려고 하죠.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넘치는 분들이 상담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문제를 자가 치유하려고 상담자가 되는 분들은 문제입니다. 자가 치유 과정도 결국은 배움의 과정인만큼 어디까지가 치유이고 어디까지가 배움인지를 단칼에 나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아픈 마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내담자를 돕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다친 마음이 내담자를 대할 때 온전한 도움을 주는 걸 방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상담자가 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다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내담자를 온전히 받아 안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상담 과정만큼은 확실히 책임져야 합니다. 그건 상담자에게 주어진 직무니까요. 상담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아픈 마음을 움켜쥐고 내담자 앞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자나 임상가가 되려는 분들은 마음을 바꾸세요. 자신의 상처 치유가 먼저입니다. 상담자나 임상가가 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나서 생각하세요. 자신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고 난 이후에도 상담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변화가 없다면(또는 오히려 더 강해진다면) 그 때 상담자의 길을 걸어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길은 어차피 평생 걸어야 할 길이니까요.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만 상담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 뒤 상담자가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바닥에서 내담자보다도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를 보는 것만큼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덧. 이 포스팅은 네이버 블로거 '서늘한 여름밤'님의
'마음의 고민은 대학원이 아니라 상담소에서!' 포스팅을 보고 영감을 얻어 평소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본 겁니다. (개인적인 첨언 : 잘 살고 계실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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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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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님의 블로그에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치유한 후에 상담가가 되는 것을 권한다고 하는 글을 보고 적습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마음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가..
이 블로그(월덴 3)에 들어오지 마세요.
자신보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고통보다 큰 것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들의 애절하고 피끓는 이야기가 지겹고 듣고 싶지 않다는 건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고 그들의 입장 따윈 배려하고 싶지 않으며 진실 따윈 궁금하지도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건데 이처럼 큰 고통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담자가 된다 한들, 심리평가를 잘 하게 된다 한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파렴치한 인간이나 될 따름입니다.
제 블로그에 있는 정보들이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니 안 본다 해도 그대가 임상가 나부랑이가 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테니 굳이 이 블로그까지 기어들어올 이유가 전혀 없으며 꼭 필요한 정보라 한들 밥벌이를 위해서만 임상가가 되려하는 사람을 위해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니 추저분하게 기웃거리지 말고 얼씬도 하지 마세요.
설사 몰래 들어온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축객문이나 쓰는 거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기분 나쁘고 더러워서라도 안 들어오겠다는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내 기쁘게 욕 먹겠습니다.
양심이고 뭐고 나는 내 이득을 위해 이 블로그의 정보를 이용하겠다면 내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시기를.... 블로그 뿐 아니라 이 좁은 임상, 상담 바닥에서 서로 엮이지 않도록 합시다.
특히 일베 같은 한국형 나치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분들은 저한테 사람 대접 받을 생각 마시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측은지심 따위는 제게 없으니까요.
다시 말합니다. 세월호 이야기가 지겨운 분들은 내 블로그에 얼씬도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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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미 훌륭한 상담자이거나 그런 상담자가 될 자질이 넘치는 분들도 만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사람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상담자의 윤리를 심하게 어기는 경우를 먼저 떠올리실 수 있지만 그건 상담자의 자질 문제라기보다는 외현화된 행동의 문제이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징계를 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해서 안 되는 것일 뿐 평생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결격 사유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잘 극복한 사람이 훌륭한 상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건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담자를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상담 센터에는 대부분 대기실이 있고 예약 일정 조정을 하거나 기타 도움을 주기 위해 데스크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담 센터의 데스크 직원이라면 상담과 내담자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와 공감적인 배려심이 필요합니다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종종 있죠. 상담을 위해 방문한 내담자의 자녀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는데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데스크 직원이 호되게 야단치는 바람에 내담자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들은 담당 상담자가 내담자를 달래면서 데스크 직원을 나무랐겠지요. 그런데 다른 상담자가 끼어들어 데스크 직원 편을 들며 옹호합니다. 나중에 본인의 입으로 밝힌 이유인즉슨 상담자인 자신도 센터에 속한 직원이고 자신은 내담자보다 같은 조직원과 사이가 좋은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데스크 직원의 편을 들었다고요.
데스크 직원도 감정 노동자이고 부당한 요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약자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문제의 상담자가 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담자를 희생시키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죠?
그래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프랜차이즈 형식의 기업형 상담센터나 기업 소속의 EAP 상담센터는 지역마다 센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파견 형식으로 발령을 받거나 새로운 센터가 세워지게 되면 순환근무 형태로 재배치되기도 합니다. 기존에 없던 지역에 새로운 센터가 세워졌고 새로운 인력을 충원할 여력이 없어 기존 상담자 중 한 명이 담당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상담자 중 한 명이 집에서도 가까운 거리라서 담당하면 딱이지만 공교롭게도 기존에 상담하던 내담자가 많은데 새로 생긴 지역센터와 거리가 멀어 기존 내담자들을 새로 생긴 센터로 연결해서 상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담자를 종결할 시간동안 불편하더라도 상담자들이 한 달씩 순환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상담자는 자신의 집이 멀어서 출퇴근이 불편하고 당신은 집이 가까우니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당신이 맡아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내담자들을 빨리 정리하고 고정 담당을 하라고 압박합니다.
내담자를 착취하는 상담자를 상상하셨다면 이 경우도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이 상담자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의 우선 순위에 내담자가 아예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상담자라면 이득의 유무를 떠나 어떤 결정을 할 때 그게 자신의 내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먼저 고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수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한 그런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직장 동료와의 인간관계, 자신의 출퇴근 거리가 더 중요한거지요.
이런 상담자는 자신의 이득과 내담자가 충돌할 때 언제든 내담자를 먼저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내담자를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착취하는 사람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만 생기면 사소한 자신의 이득마저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믿고 있는 내담자를 내동댕이칠 수 있는 위험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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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에 올린 포스팅 중에
'심리평가보고서 작성의 ABC'라는 글이 있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쓸 것인지 참고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B(기술, description), A -> B(설명, explanation), B -> C(예측, prediction)를 염두에 두고 쓰면 좋다는 내용이었죠.
물론 A -> B -> C를 모두 담아낼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심리평가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검자의 현재 심리 상태 뿐 아니라 이러한 상태를 야기한 가장 신빙성 있는 원인을 찾아 설명하고, 게다가 향후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상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한 후 어떠한 개입을 해야 하는지, 제언까지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결국 평가자는 심리평가의 어떤 요소에 더 초점을 맞출 것인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 가설을 검증해 원인을 밝혀내는 쪽에 집중할 것인지, 경과의 진행 여부를 추적하기 위해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예측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상담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심리평가에만 주력하는 임상가들과 달리 상담자는 주로 하는 업무가 상담이고 심리평가는 상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에서 실시하게 됩니다.
저는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실시한 후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A -> B 보다는 B -> C에 집중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서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설사 가능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 원인 찾기에만 집착하다보면 검사 결과가 아닌 상담 내용이나 배경 정보 등의 비검사 결과를 갖고 소설을 쓰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A -> B가 아닌 B -> C에 집중한다는 건 수검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러한 어려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까지 진행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개입을 해야 하는지를 다루겠다는 것이니, 내담자를 도와 내담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상담자의 마음 자세와 맞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검자의 심리 상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예측하려면 변별 가설을 정확하게 세워야 하기 때문에 심리평가를 위한 가설 설정을 위한 공부에도 절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A -> B 보다는 B -> C를 좀 더 비중있게 다루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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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 분위기가 단기 상담, 구조화된 상담 위주로 바뀌는 추세이기 때문에 덩달아 심리평가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건 상 종합심리평가를 하지는 못하고 MMPI-2/A, SCT 조합으로 구성한 선별심리평가 결과를 상담 전에 routine하게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담자를 배정받은 상담자는 자신과 상관없이 실시된 선별심리평가 결과를 손에 쥐고 상담을 시작하게 되는데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심리검사 실시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이 때 주로 활용하는 검사는 HTP이며 심리검사에 익숙한 상담자의 경우 로샤, TAT 등을 추가로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로샤 검사의 경우 Exner 방식의 구조적 요약 해석에 익숙한 상담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반응과 inquiry에 입각한 내용 분석 결과를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문제는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가설을 설정, 검증, 채택/기각하는 과정 대신 배경 정보나 상담 내용 등과 일치하는 내용만 선택적으로 활용하게 되어 선별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상담자가 맥락 정보를 다루는데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훈련 과정 때문인데 선입견과 편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구조화된 검사 활용에 치중할 필요가 있고 특히 구조화된 검사의 대표격인 MMPI-2/A의 결과 해석 공부에 주력해야 합니다.
투사법 검사를 공부하는 것, 특히 로샤의 구조적 요약 해석을 공부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만큼 객관적인 검사의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도 상담자에게는 중요하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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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성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남자는 입장과 처지를 이해받는 게 중요하고, 여자는 마음을 알아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생각이든, 마음이든 간에 어쨌거나 나를 알아주는 것, 내가 받아들여지는 것,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원하죠.
이걸 상담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인 공감에 포함된 중요한 내용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공감이란 게 정작 말처럼 쉽지는 않아서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자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병상련도 아니고 단순한 측은지심도 아니면서 동정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죠.
사설이 길었는데 오늘은 상담 현장에서 사용하는 공감 말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공감(위에서 이야기 한 나를 알아주는 것과 유사한 의미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모든 대인 관계에서 내가 받아들여지는 것, 나를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부 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쌍방 관계에서는 더더욱 중요하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전업주부인 아내가 가사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합니다. 당연히 남편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서 위로하려고 애를 쓰죠. 하지만 아내는 당신은 머리로만 이해를 하지 내 감정을 마음으로 아는 것 같지 않다면서 쏘아 붙입니다.
위의 예에서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고통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할 뿐,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문제의 핵심은 이해냐 감정이냐가 아닙니다.
아내가 자신의 고통과 힘겨움을 남편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편의 이해가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감은 행동을 기반으로 작동하거든요.
말로는 혼자서 살림하고 애보느라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하지만 정작 퇴근하면 나 몰라라 자신만 씻고, 밥 먹고, TV 보고, 일찍 자고, 새벽에 아이가 울어도 모른 척하고, 주말에는 일 핑계를 대면서 휴일 근무를 나가거나 라인 관리를 해야 한다며 골프나 등산을 가면서도 정작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가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겁니다.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상담에서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알게 모르게 자연스레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내담자의 고통에 공감이 되면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게 되고 공명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내담자가 고통을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탐색하게 됩니다.
'네가 왜 힘든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고통의 원인으로는 A와 B, 그리고 C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B인 것 같고 나머지 두 개의 이유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으니 환경 개선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온전히 직관할 수 있도록 자동적 사고를 교정할 필요가 있겠다'
이처럼 머리에 기반한 상담자의 문제 이해는 공감에 이르는데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감을 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다 보면 더 깊은 공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진정한 공감을 하고 싶으면 먼저 행동이라도 하세요. 하루라도 혼자서 아이를 돌보면서 모든 집안 일을 해 보면 아내의 고통이 어떤 수준인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이후에 공감을 더 깊게 하게 만드는 다른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어질 지, 공감을 방해하고 차단하는 회피 행동으로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행동을 해야 공감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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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나름의 이유로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것이 승진을 위한 전진이든, 마음의 평안을 위한 후퇴이든 간에 말이죠.
EAP 상담을 하다보면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내담자를 꽤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도 불사하고, 눈도장을 찍느라고 퇴근한 후에도 다시 회식 자리에 나가 얼굴을 비추기도 하고요. 웃기지도 않는 상사의 농담에 맞장구도 쳐야하고 일이 돌아가게 하려고 옆 부서의 동기나 후배에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순한 정치 논리, 라인 논리로 승진에서 밀리고 엉뚱한 부서로 발령이라도 나면 이놈의 직장은 왜 내 충성심을 알아주지 않는거냐고 분통을 터뜨리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면 자상한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을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상한 아빠는 기본이니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재워야 합니다. 휴일에는 가족과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하고 그런 가운데 짬짬이 자기 계발을 위해 운동도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지요. 그런데도 가사 분담에 적극적이지 않고 여전히 수동적이라는 배우자의 볼멘 소리를 듣거나 조금만 비위를 못 맞추면 쪼르르 엄마 품으로 달려가 버리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는 수퍼맨, 수퍼우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력과 시간에는 한계란 것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은 아니지만 EAP 상담에서는 이런 역할 갈등 해결을 위해 내담자와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 때 자칫하면 포인트를 잘못 잡기 쉬운데 대표적인 것이 회사와 가정 둘 다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만 택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조절해서 양쪽 모두 적당히 하라는 뻔한 조언을 하는 것이죠.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느 정도로 조절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내담자의 몫이고 상담자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내담자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 볼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나는 왜 외부의 인정에 이렇게까지 목을 매고 있는가'
자신의 진가에 대해 스스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아무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EAP 상담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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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포함한 couple therapy를 할 때 가만히 지켜보면 현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는 건 대화의 패턴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계속 겉돌고 있다고 서로가 느끼고 있다면 상담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하는데 하나는 가치관의 차이고 다른 하나는 접점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가치관은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고 싶다면 가치관 탐색을 하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담자가 자신의 선택과 결과의 현실적 괴리를 이해하는데도 필수적이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인 관계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만 이는 대인 관계 영역에서 다루기보다는 개인 수준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필요하다면 원가족 관계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깊이 내려갈 수도 있거든요.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2자 관계의 각 구성원을 개별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것이 가치관에 대한 접근이라면 이와 달리 접점의 여부는 두 사람의 상호작용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고집이 세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있다고 해 보죠.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욕구에 최대한 귀를 기울임으로써 현실적인 요구에 맞추려고 아이를 닥달하지 않는 여유로운 양육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체벌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행동 변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또래나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아빠는 내 자식이 그렇게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도 못마땅하고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정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곧바로 따르지 않고 떼를 부려 집안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체벌의 도입 여부로 항상 부부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남편은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으니 체벌을 가해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남편이 아이의 말을 귀 기울일 생각은 안 하고 자기 편하자고 손쉬운 체벌을 고집한다고 맞섭니다. 그리고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라도 찾아보고 그러는거냐며 남편을 몰아세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부부는 대화의 접점이 없습니다. 남편은 체벌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체벌 무용론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설사 남편이 때로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찾아내 들이민다고 해도 아내는 절대로 체벌을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접점이 없으면 대화가 계속 제자리를 맴돌며 감정만 격화시키다가 누구 하나가 말실수를 하는 순간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무익한 대화를 계속하는 부부나 couple을 상담하는 상담자는 전형적인 episode를 찾아 최소한의 접점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위에서 예를 든 부부의 경우 접점은 체벌의 도입 여부가 아닙니다. 아이가 떼를 써서 일이 지연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의 행동 전략이 하나의 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침에 옷을 입는 것을 거부해 유치원에 가는 게 늦어질 것 같고 남편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회사에 지각하고 싶지 않은 남편을 배려해 먼저 출근시키고 비용이 들더라도 아내가 택시를 이용해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거지요.
물론 모든 갈등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작은 접점이라도 먼저 만드는 겁니다. 접점이 없다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일단 접점이 만들어지면 그 접점 영역을 넓혀가는 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상담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 갈등에서도 가능한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고 소통하고 싶다면 작은 접점부터 만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나중에 다시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접점이 없는 이유는 쌍방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경우도 있으니 상담자는 처음부터 가치관 문제도 함께 고려하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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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도박자를 만나는 상담자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들 계시겠지만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도박자에게 설명하는 건 대체로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나아진 건 없지만 그야말로 도박중독치료의 불모지였던 10년 전 쯤에 참고할 만한 전문 서적이라고는 미국에서 사용되던 원서밖에 없었던 당시 그런 책을 썼던 전문가들이 강조한 건 대부분 인지행동치료에 입각한 논리적, 합리적 접근법이었죠.
저도 거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통계적, 심리적, 사회적 이유를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안을 만들어서 예방 교육도 하고, 상담을 할 때 도박자에게 상세히 설명도 해 줬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가 굉장히 컸던 것이죠. 미국의 경우에는 굉장히 중요했던 치료 기법이고 실제로 효과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생각만큼의 효과가 없습니다.
사전 예방 체계가 발달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전문기관을 방문하는 도박자들은 이미 많은 재발 경험을 거친 상태여서 논리적인 근거만 몰라서 그렇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담자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걸 학생에게 강의하듯이 알려줘 봐야 반감만 생길 뿐입니다. 자칫하면 쓸데없는 실갱이로 천금같은 상담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지 공부만 조금 더 하면 정말로 돈을 딸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도박 중독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경계하는 건 외국에서 효과적인 치료 기법이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자에게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그다지 효과 없습니다. 한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로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에 짧게 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보다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면 그 돈으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탐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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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로서의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심리평가나 상담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투명하게 모든 것을 내담자와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심리평가와 관련해서는 관련글을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도 있고요.
*
'심리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인가'
*
'피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겠다는데(혹은 갖겠다는데) 그걸 왜 막나'
그런데 부부 상담이 실패하여 이혼 소송으로 귀결된 상황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의 내담자였던 부부 중 한 쪽 배우자가 이혼 소송에 사용하겠다며 상담 기록을 달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담 기록은 내담자의 것이니 그냥 줘도 될까요? 아니면 소송 상대인 배우자의 동의가 없는 한 요청한 내담자의 상담 기록만 추려서 제공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걸린 경우에는 가능하면 상담과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담자로서의 중립 위반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담 기록을 요약하거나 확인서를 쓰려고 노력해도 이미 진행된 상담 내용을 통째로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부 상담자로서의 중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큽니다. 상담자의 중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라든가, 중립을 지키는 것이 100%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couple therapy의 경우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거지요.
2. 상담 내용의 오용 문제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지만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과 반대로 법은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내담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법은 사실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치유를 위해 내담자가 힘겹게 털어놓은 본인의 치부와 비밀이 악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상담 기록을 요청하는 배우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걸 활용하려고 요구하는 것이죠).
3. 이중 관계
제가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상담 기록 공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이중 관계를 맺는 것이고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상담 기록을 넘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법적인 조력자 또는 지지자의 관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추가되는 겁니다. 그 뿐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한 때 내담자였던)와 맺었던 치유 관계가 훼손되는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상담자들이 법적인 문제로 상담 기록을 요구받을 때 법적 한계와 상담자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의 무게만 고려하기 쉬운데 치유적인 관계 안에서만 생각해도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적 소송 때문에 상담 기록을 요청받으면 상담 중이든 이미 종결한 상태이든 반드시 요청한 내담자와 다시 약속을 잡아서 전후 사정을 듣고 이를 상담의 틀 안에서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상담 기록의 요구가 냉철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의 충동적 표출이나 수치심의 배출 경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상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담자의 역할을 고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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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 상담이 지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말하는' 치료라는 사실 때문에 형성되는 저항의 형태로 '내담자의 저항을 뒷받침해 줄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됨
-> 내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찰을 보이면서 "맞죠?"라고 묻는다면, 여기에 동반된 정서가 얼마나 크던지 간에 상관없이, 이때는 저항이 작동되는 것이다. 통찰이 타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간에 이런 논설적인 언급은 내담자가 상담자의 동의나 승인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1. 주지화를 감소시키는 방법
1) "왜?"로 시작되는 질문을 가급적 하지 말 것
: "왜"라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떠올려 말해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또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난 거죠?"라고 묻는 것이 "왜"라고 묻는 것보다 더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다. 또한 "왜"라는 질문은 내담자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기도 한다.
2) 상담자가 원하는 답을 암시하는 질문을 피할 것
3)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할 것
4) 상담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 내담자가 반문조의 질문을 사용하는 경우 침묵을 사용할 것
예) "선생님께서는 왜 제가 아내가 집에 있을 때마다 화를 내게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 질문 그대로에 대해 대답을 하는 것은 주지화를 강화하게 됨. 상담자가 침묵한다면 내담자는 대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게 된다.
5) 내담자가 심리치료나 정신치료에 관한 책을 읽는지 탐색할 것
-> 그런 류의 책을 읽는 내담자의 동기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 더욱 값진 방법인데 동기는 거의 항상 전이적 감정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임
* 일반화(Generalization)
: 내담자가 자신의 생활과 반응에 대해 일반적인 용어(general term)로 표현하며, 각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피하려 하는 형태의 저항
* 집착(Preoccupation)
: 증상이나 현재의 사건, 과거력 등과 같은 자신의 인생에서 특정 부분에만 집착하는 것도 저항이며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행동은 신체화 장애, 공포증 환자에서 특히 흔하다
* 정동의 진열(Affective Display)
: 의미 있는 의사소통에 대한 저항이며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 깊숙하게 숨겨져 있는 고통스러운 affect를 피하기 위해 emotion을 사용하는 것
-> 지나치게 자주 즐겁게 진행되는 상담(happy session)은 내담자가 우울이나 불안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상담 동안 정서적 만족(emotional gratification)을 충분히 얻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저항을 보인 것이다.
* 경쟁적 전이 및 경쟁적 저항(Competitive transference and resistance)
: 상담자의 생각을 미리 알아 맞추려하거나, "선수를 치려는" 태도도 저항일 수 있음
예) "이것에 대해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실 지 알아요", "지난주에도 선생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 "제가 이제 무슨 말을 할 것 같습니까?"라고 되묻거나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죠?" 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내담자의 추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대답해 주지 않도록 유의할 것
* 유혹적인 행동(Seductive Behavior)
: 상담자의 사랑과 마술적 보호를 얻거나 아니면 무장 해제시켜 압도하기 위한 행동을 저항으로 사용하는 것
예) "제 성생활이 궁금하세요?"
-> "저는 당신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응수할 수 있으며 이러한 류의 질문이 반복된다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군요"라고 덧붙일 수 있다.
* 호의를 요청하는 행동(Asking for favors)
: 상담자에게 약간의 돈을 빌리는 등의 호의를 요청하는 행동도 저항일 수 있음. 내담자의 의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상담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것.
* 행동의 내향화(Acting in)
: 상담 동안 어느 정도의 긴장(tension)은 방출하면서, 동시에 위협적인 느낌을 피해가려는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유발된 행동이나 습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
예) 상담 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담배를 피우겠다고 하거나, 상담실 안을 서성이는 행동 등
* 행동의 외적 표출(Acting out)
: 상담 또는 상담자에 대한 느낌이 무의식 중에 환경 외부의 인물이나 상황으로 전치되는 형태의 저항
예) 상담자 외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상의하는 내담자, 부정적인 전이 감정을 다른 권위 대상에게 전치시켜 상담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내담자
출처 : '임상 실제에서의 정신과적 면담(The Psychiatric Interview in clinical practice, 1st, 1971)'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변형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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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내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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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담자가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를 확인하려고 상담자를 찾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이 문제인가를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무턱대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막연하기는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왠지 끌리지만 겁이 나서 저지르지를 못하겠다'라는 정도의 느낌은 갖고 있죠.
내담자가 갖고 오는 모든 문제는 그것이 '일'에 대한 것이든, '관계'에 대한 것이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고 보면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마음을 따를 수 없거나 반대로 현실적인 이득을 따르고 싶으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기도 하고, 정답을 모르지만 그 정답으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고 이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다면 언제 열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내담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건 선택 결과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이해득실에 따라 결정토록 돕는 겁니다. 그런 도움을 원했다면 내담자는 상담자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이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장점이 있는 대신, 이런 단점이 있고, 저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있지만 이런 좋은 점도 있다는 식의 결정 저울(decisional balance)을 암만 정교하게 만들고 양쪽 저울에 심리적인 무게추를 열심히 달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그 저울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가치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제도화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 세뇌, 강요, 설득된 전형적인 가치관을 대충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을 따름이지요.
물론 그런 가치관으로도 사회 생활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가치관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갈등이 발생하고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막연히 그동안 존재감을 몰랐던 자신만의 가치관의 존재나 필요성을 느끼고 탐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비건(vegan)입니다. 비건이 되기 바로 전까지 고기를 잘도 먹다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완전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경우이죠. 평소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저항이 별로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가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고기를 먹을 때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 모르는 찝찝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몰랐지만요. 환경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도 많았기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동물 권리에 대한 책까지 읽게 되었고 그 때서야 마음 한 구석에 스물거리던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죠. 동물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어요. 우연이었지만 제가 몰랐던 제 가치관 하나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건이 되었고 지금은 비건이 되기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제 가치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죠.
가치관은 그런 겁니다. 원래부터 꼭 맞는 맞춤옷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야 행복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담자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찾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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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제가 기억하는 한) 처절한 외로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밝혀 둡니다(아무런 고통 없이 평탄하고 행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이 정말로 외로워서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그 분들의 고통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외로움을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 게 군 생활을 할 때 계급이 낮을 때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분명 있었거든요. 다만 그것이 외로움인지, 당장은 도달할 수 없는 익숙한 사회 생활에 대한 동경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역을 하고 나서부터는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특히 상담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런 것이 사람에 치여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할 정도로 개인화된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불쌍히 보고, 혼자 있는 것을 비정상이라 생각하고,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움에 몸부림쳐야만 되는 것처럼 여깁니다. 여전히 우리는 어떻게든 이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와는 함께 있어야 외롭지 않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따돌림을 당해 친구가 없을까봐 염려하고, 일을 하게 되면 직장 내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사회에서는 인맥을 관리해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성인이 되면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노년에 외롭다는 협박아닌 협박에 떨고....
그런데 정말 우리는 외로운걸까요?
뭉치지 않으면 맹수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원시시대의 생존자들도 아니고 대체 왜 우리는 혼자 있는 것에 외로움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제가 상담을 하면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친구가 필요하다며, 너무나 외롭다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며, 상담자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내담자들이 하나같이 혼자 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과는 깊은 대화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이 얼마나 취약하고, 문제가 많으며,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 다른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는, 그저 없어야만 하는, 어떻게든 피해야만 하는 그런 고문 같은 시간이더군요.
저는 상담자로 일을 하면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있는 사람은 비정상이며, 홀로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 외로움은 고통을 유발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제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행복하게 만드는지 제 자신에게 묻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말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건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여행도 시작하고, 고양이도 입양하고, 채식도 하게 되었죠.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 운영도 마찬가지 이유로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채워져 충만하게 된 제 마음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스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외로움은 내가 동의할 때만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가 지금까지 외로움이라고 착각했던 많은 감정들이 사실 각종 결핍은 아닐까요?
답은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내용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모르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처절한 외로움이 어디에선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진정한 외로움과 짭퉁 외로움을 분명하게 구분하려면 우선 철저히 혼자가 되어 내면의 자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고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때가 되면 평소 내가 혼자 있을 때 느꼈던 감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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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자극적인데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말을 편하게 하는 상담자'였고 나중에 제목만 보고도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도록 하려고 제목을 바꿨습니다. 태그를 붙여도 되겠지만 포스트 수가 3천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태그 검색이 느린데다 관련 포스팅이 너무 많이 검색되어서 말이죠. 어쨌거나 의도치 않게 기분 상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길게 사전 설명을 드렸습니다.
예전부터 한번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최근에 모 기관의 상담 케이스 supervision을 하는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리해 둡니다.
먼저 개인적인 기준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원칙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내담자에게도 말을 놓지 않습니다. 지금은 종결했지만 최근까지 상담했던 내담자 중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있었는데 당연히 끝까지 꼬박꼬박 높임말과 존칭을 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저를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시죠. 또한 말을 놓는 것이 내담자(특히 아동/청소년의 경우)가 상담자를 좀 더 쉽게 친숙하게 느껴 빠른 라포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상담자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내담자에게도 반말하지 않고 꼬박꼬박 존칭과 높임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담자의 반말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는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이고 상담자는 이러한 도움 요청에 호응해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권력 관계만 떼놓고 보면 이미 시작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상담자는 상담자에 대한 의존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안전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상담자의 반말은 이러한 안전 공간을 만드는 걸 어렵게 만듭니다. 반말과 하대는 상담에서 꼭 필요한 수평적인 의사소통체계와 안전 공간의 구축에 매우 해롭습니다.
둘째,
내담자에 따라서는 존칭과 높임말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 의외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의외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데 그것이 내담자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담자에게 희망을 갖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소리지르는 부모에게 야단만 맞았던 아이가 부모와 같은 연배의 상담자에게 존대를 받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그 아이가 경험하는 의외성의 치유적 효과에 대해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내담자들에게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들은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 때문에 마음의 힘이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상담에서만큼은 존중받는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따스함의 힘을 느껴야 하지요. 상담자가 자신과 최대한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자신과 동등한 입장(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에서 성심성의껏 자신의 상처를 들어주려는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이 필요한데 저는 일방적인 반말이 어떻게 상호 존중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는 반말 존댓말 섞어 쓰는 것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내담자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자의 반말로 인해 내담자가 상담자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는 서두의 이야기를 반박해 보겠습니다. 정말로 그게 맞다면 좀 더 빨리 친숙해지기 위해 내담자도 상담자에게 반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로 말을 놓게 되면 그만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말을 놓아도 되고,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그럴 수 없다는 건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한 상대적인 우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런 이론적인 논의를 다 떠나서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상담자가 자신에게 반말을 한다면 과연 그 상담자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이 상담자가 왜 내 허락도 없이 말을 놓는지만 생각하면서 상담을 받는 내내 기분이 상해 있을 것 같고 상담자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계속 거슬릴 것 같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편하게 반말을 해야만 상담이 가능하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요?
저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존칭과 높임말을 쓰면서도 충분히 치유적인 상담이 가능하고 오히려 그래야만 진정한 치유적 상담이 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덧.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룬 상담 분야의 전문 서적을 본 기억이 거의 없고 현장에서도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공론화하는 상담자가 많지 않다는 게 저로서는 참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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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상담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개인 상담보다 집단 상담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집단 상담을 하게 되면 더 긴장하고 요모조모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내담자가 한 명이라면 그 내담자만 신경쓰면 되고 저와 그 내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만 다루면 되지만 집단 상담에서는 집단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의 경우 수가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도 많이 발생합니다. 집단원의 수가 늘면 늘수록 그에 비례해 더 많아지겠지요.
오늘은 집단원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반치료적 역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6~8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 중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과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있다고 해 보죠(저는 특정 문제를 선별적으로 다루는 특수한 치료 집단이 아니라면 남녀 청소년을 한 집단 내에 배정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집단 회기가 진행되면서 동병상련의 정으로 서로 가까워진 두 학생이 서로 사귀게 됩니다(여학생이 더 좋아하는 양상). 이 두 학생은 각각 다른 상담자에게 개인 상담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학생은 품행 문제가 심각한 상태이고 여학생은 상담 동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등교 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개인/집단 상담에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문제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가출을 권유하거나 술, 담배 등을 권하는 등 기존에 아무런 품행 문제가 없었던 여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각 상담자가 개인 상담에서 이 문제를 각각 다루었으나 남학생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여학생은 강하게 반발해서 자기들 사이에 개입하면 모든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협박합니다.
집단 상담을 이끄는 상담자와 개인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상담자들이 모여서 대처 방안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단 상담은 참여하는 내담자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 모델이 되거나, 의지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치료적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장점이 역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든 경우가 대표적이죠.
상담자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점은 상담자가 모든 내담자를 구원할 수는 없으며 구원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구원자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 안타깝게도 두 청소년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의 관계는 반치유적인 관계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묵인하면 상담이라는 방패 뒤에서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개인 상담이든 집단 상담이든 목적과 치료 계약의 적용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담자가 다른 내담자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거나 심한 경우 결탁하여 반치료적으로 행동할 때 상담자는 필요하다면 과감히 치료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면서 질질 끌려가기만 하면 결국은 내담자의 치료 선택권도 보장해 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집단 상담의 경우 남은 집단원에게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담자가 개인 상담에서 각 내담자와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었다면 본인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빨리 조치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내담자끼리 파괴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만 더 커지게 되니까요.
그러니
집단 상담에서 내담자끼리 반치료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 그 관계부터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제일 좋은 건 치료 계약 조건을 꼼꼼히 점검해서 그런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만...
집단 상담에 참석한 내담자끼리 왜 사귀면 안되느냐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중 관계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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