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인터파크
'케네디와 나'는 1996년에 프랑스 텔레비젼 문학상을 수상한 장 폴 뒤부아(Jean-Paul Dubois)의 작품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프랑스 문학이 지적 유희에 빠져 독자를 무시해왔다는 따끔한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장 폴 뒤부아는 독자와의 의사소통을 강조하며 이러한 틀을 깨뜨린 작가로 유명합니다. 장 폴 뒤부아의 소설은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어제 나는 권총을 샀다"로 시작해 똑같은 문장인 "어제 나는 권총을 샀다"로 끝나는 이 소설은 장 폴 뒤부아와 비슷한 나이의 작가가 끝을 모르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가 어떤 계기로 삶의 활력을 찾는 과정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묘사합니다. 워낙 그쪽 방면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걸쭉한 입담과 가진 자들의 위선과 허영심에 날리는 한 방의 썩소와 조롱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감자 바위'를 날리게 만듭니다. ^^
제목에 나오는 케네디는 사실 상 주인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또 어찌 보면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인생의 향방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 영화화가 되었다던데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유머와 풍자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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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문학을 이끄는 기수인 박완서가 9년 만에 엮어서 내놓은 소설인 친절한 복희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친절한 복희씨'에 대한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딱 한번 읽은 책이고 북 크로싱을 염두에 두고 읽었기 때문에 밑줄 하나 긋지 않아서 책 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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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가까운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모처럼만의 소설(집)입니다. 감수성을 훈련한답시고 이런 저런 문화 생활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소설을 멀리 했는데 오랜만에 손에 잡은 소설이 바로 박완서가 9년 만에 묶어 내놓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작가인 박완서가 살았던 시대를 공감할 수 없는 세대에 속하면서도, 제 나이의 거의 두 배가 넘는 노작가가 풀어놓는 노년의 이야기가 마음 구석구석 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역시 박완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맨 뒤에 있는 김병익씨의 해설을 보면서도 동감했지만 박완서는 이 시대의 노년문학을 이끌어 가는 기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는, 그리고 그런 세태를 굳이 머리 부여잡고 고민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결국은 노인이 되고 죽음을 앞둘 수 밖에 없다는 소박한 진리를 기억한다면, 이 소설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 고맙게 느껴질 겁니다.
책 자체는 가벼운데 내용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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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버닝라이프님의 블로그
외교관의 딸로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아멜리 노통의 소설입니다. 아멜리 노통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유명한 소설가로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이 소설은 2000년에 쓴 것으로 아멜리 노통 본인을 빗댄 것 같은 출생 이력을 가진 여자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무려 3살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죠. ^^
3살 때 자신이 어땠는지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만큼 3살이라는 나이는 까마득하게 멀고 그렇기때문에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나이죠. 아멜리 노통은 이 나이를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기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감에서 벗어나 좌절을 맛보고, 삶과 죽음의 불분명한 경계선이 점차 분명해지는 나이이죠.
그걸 1인칭 시점으로 쓰자니 상당히 건방지고 되바라진 것 같은 문체가 나오는데 그것이 또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주인공인 아이가 처음으로 초컬릿을 맛보았을 때의 절정감을 묘사하는 장면은 '쾌락주의자'가 되는 입문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내가 초컬릿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초컬릿이 나를 원하고 나를 통해 이처럼 달콤한 쾌락이 된다는 말의 향연....
하드커버이기는 하지만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매콤 쌉싸름한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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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황석영의 작품입니다.
바리데기는 죽은 이를 천도로 인도하는 '황천무가'에 나오는 무속신의 원조인, '생명의 공주'를 일컫습니다. 바리라는 북한 소녀의 삶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며 풀어내는 솜씨가 역시나 보통이 아닙니다. 현실 상에서의 공간도 북한, 만주, 런던을 오가는 등 스케일이 장쾌합니다.
이 소설은 이북 사투리가 심한 부분에서 읽는 속도가 다소 느려지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한국전쟁 이전 세대 중 황석영처럼 소설을 재미나게 쓰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소설이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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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알라딘
'개미'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입니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사랑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개미의 법칙'과 '쥐의 법칙'에 대한 부분에서 말이죠).
이 책은 '멸망을 목전에 둔 지구 탈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괴짜 항공 우주 엔지니어 '이브 크라메르', 억만장자 '맥 나마라', 생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드리앵 바이스', 그리고 항해사 '엘리자베트 말로리'가 우여곡절 끝에 의기투합하여 태양빛을 추진 동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선에 14만 4천명의 선택받은 인간들을 태운 뒤 20조 킬로미터에 항해 기간 1,252년이 걸리는 신천지를 찾아 멸망의 위기에 빠진 지구를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을 통해 매우 비관적인 인간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거 지구에서 경험했던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제도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지구에서와 동일한 운명의 굴레에서 자멸하는 인간의 불쌍한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냈습니다. 뒷부분은 참으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무겁더군요.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식의 반전이 있습니다만 그 반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야말로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달려드는 도전 정신 고취가 아니었을런지요.
'개미'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름끼치는 상상력이 예전같지 않아 아쉽지만 그런대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패러디했음이 분명한 여러가지 장치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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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알라딘
8권의 저서를 전 세계에 4300만 부 이상 판매한 밀리언 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입니다. 마르케스 이후 남미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브라질 작가죠.
연금술사가 되기를 원하는 양치기 산티아고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책장을 계속 넘기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흡인력'을 꼽습니다. 그 원동력이 '재미'든, '짭짤한 정보'든 간에 흡입력이 없는 책은 읽는 사람과 읽히는 책 모두를 김빠지게 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읽은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면 이미 그 책은 최소한 그 사람에게만큼은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저에게 확실히 2% 이상 부족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파올로 코엘료에게 개인적으로 걸었던 기대가 지나치게 높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작품은 심오한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두드리는 '결정적 어구'를 발견하기 힘들고, 흥미진진하지도 않으며 진행까지 느슨하다는 점에서 별 한 개에 하나를 더하는데 상당히 주저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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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퇴근 시에는 주로 PDA를 이용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는데 얼마 전에 e-book으로 다빈치 코드를 구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보통 톰 클랜시의 소설처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혹은 그렇게 여겨질 정도로 정교한)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다소 몽환적이지만 따뜻한 일상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저에게 다빈치 코드는 전작에 들어가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그냥 추리소설을 보듯이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니 소설이 끝나더군요. 모처럼 재미난 소설을 읽어서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 관련 게시판을 들여다 보니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의 교리 전쟁이라도 시작된 듯 온통 난리더군요.
기독교인들의 정신적인 충격과 혼란이 극에 달한 듯 보였습니다. 종말이 다가오면 적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부정하면서 나온다고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으니 저자인 댄 브라운이 적 그리스도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죠. 얼마 전에는 기독교 단체에서 다빈치 코드를 반박하는 성명서를 내기까지 했죠.
저도 기독교 신앙이 있는 사람이지만 좀 우습더군요. 소설은 그냥 소설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핏대를 올리면서 싸우는 기독교인들을 보니 믿음이 굳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온라인 게시판에서 다빈치 코드가 객관적인 사실이다 아니다를 가지고 싸우는 것일까요? 아닐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치열한 자기 부정을 하지 않는 종교인이야말로 맹신의 늪에 빠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책 하나에 발끈해서 독설을 퍼부을 정도의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고 어찌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하겠다는 것인지 사뭇 의심이 듭니다.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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