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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주업으로 하는 임상가라고 해도 심리평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단기 상담 위주의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하지 않고 상담만 한다는 건 지뢰탐지기 없이 맨몸으로 지뢰밭을 헤쳐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본인이 아무리 상담을 잘 한다고 해도 이제는 심리평가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상담자는 심리평가를 잘 하면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무기를 갖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상담자에게 심리평가가 특히 도움이 되는 이유')
그렇다면 심리평가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심리평가 비법을 많이 담고 있는 전문 서적을 다독하면 될까요? 심리평가의 고수에게 supervision을 많이 받으면 될까요? 아님 무조건 심리평가를 많이 해 보면 될까요?
모두 좋은 방법이고 또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남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문 서적에 담긴 심리평가 비법은 그 책을 쓴 저자의 것이며, supervision의 노하우도 supervisor의 것이고, 심리평가를 많이 해 본다고 해도 그 사례는 모두 남의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요새들어 제가 많이 느끼는 건데 심리학 전공자이고, 대학원까지 나왔으며, 오랜 수련 기간을 거치고 전문가가 되었거나 수련 중인 분들인데도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꼼꼼히 분석한 분이 없더군요. 심한 경우는 아예 심리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없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례라고 해도 수검자는 남이기 때문에 심리평가 자료를 열심히 분석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전공자라면 공부를 하거나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꼼곰히 해석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해석의 노하우를 얻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는 제가 TCI 기초편 미니 강의에서 제 TCI 결과를 사례로 사용하는 이유와도 통하는데 제가 TCI 검사의 정확성에 매료되어 파고들게 된 계기가 자기 분석을 통해 저 자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노하우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종합심리평가 결과를 죽이 될 때까지 잘근잘근 씹어서 모든 영양소를 다 흡수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수검자를 평가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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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에서는 대표적인 구조화 검사인 MMPI-2/A로 예를 들겠지만 타당도 척도를 포함한 어떤 자기 보고형 검사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타당도 척도가 포함된 자기 보고형 검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를 확인하지 않으면 다른 검사 결과의 해석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MMPI-2/A의 경우 F척도군의 점수가 지나치게 높거나(증상 과장 경향이 심하거나), L, K, S 같은 방어 척도군의 점수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방어적으로 응답하는 경향이 심한 경우), 당연히 이후 검사 결과 해석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타당도 문제를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타당도 문제는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타당도 문제가 생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뜻밖에도 평가자가 수검자에게 미치는 심리평가의 영향을 별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검자에게 당연히 도움이 되는 것이니 수검자도 이를 알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상담 초기에 진행되는 기관의 routine 절차라서 아무 생각 없이 실시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평가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수검자가 심리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 리가 만무합니다. 특히 정서행동특성 평가 결과로 인해 의뢰된 아동/청소년이나 수강 명령 대상자 등 비자발적으로 방문한 내담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타당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심리평가를 실시하기 전에 orientation을 철저히 실시하는 겁니다. 이 orientation에는 반드시 아래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 심리평가의 실시 목적과 수검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
* 심리평가 실시 절차
* 심리평가 결과의 비밀 보장 범위와 예외 경우
* 심리평가를 수검자가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설명
특히 가장 중요한 내용은 심리평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 모든 이익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을 경우 심리평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수검자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겁니다. 역설적으로 거부권을 주면 거부하는 확률이 줄어듭니다. 수검자에게 통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니까요.
제 경험 상 심리평가에 대한 orientation을 충실히 할수록 타당도 척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더군요. 자기 보고형 검사의 타당도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은 이 점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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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결과를 해석할 때 수검자의 반응 일관성과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평가자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 영역입니다.
최소한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정상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나머지 검사의 결과를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정상 수준이어도 해석에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수검자가 솔직하게 일관된 답변을 했다는 의미일 뿐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까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상태인지에 대해 수검자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MMPI-2의 타당도 척도가 normal profile이고 1-3-3-3 코드 패턴도 아닌데 TCI에서 MHH(사려깊은) 성격 유형이 나왔다고 해 보죠.
수검사가 실제로 사려깊은 성격 유형인지, 사실은 전혀 아님에도 자신을 사려깊은 성격 유형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다른 검사 결과와 교차 검증하고 배경 정보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사려깊은 성격 유형과 상충하는 자료가 하나라도 있다면 TCI 결과가 실제 수검자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normal profile이라도 해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
* 타당도가 normal profile이라는 건 수검자가 솔직하게 일관된 답변을 했다는 것만 보증함
* 수검자의 real self를 반영하는지, ideal self 내지는 perceived self를 반영하는지 신중하게 교차 검증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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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할 때 결과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내용을 수검자에게 추가 질문해야 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생기곤 합니다. 예를 들어 MMPI-2 결과에서 Mf 척도가 단독으로 유의미 상승하거나 APS 척도가 유의미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호소하는 문제가 아니지만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에는 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 때 많은 임상가들이 아예 질문하는 걸 회피하거나 의무감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해서 원하는 정보는 얻지도 못하고 분위기만 어색해지곤 합니다.
이처럼 중요하지만 민감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합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물어보듯이 자연스럽게 질문하라'
성 정체성, 중독 문제 등 내담자에게 private한 문제일수록 오히려 당연한 걸 물어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담자를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질문하는 겁니다.
상담자가 주저하고 쭈뼛거릴수록 내담자는 이런 주제가 상담에 적합하지 않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쉽고 그 결과 방어하거나 뒤로 숨게 됩니다.
단순히 내담자를 돕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라포를 형성하는 걸 방해한다는 겁니다. 내담자는 상담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느끼기 쉽고 그 뒤로는 상담자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스스로 검열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핵심 주제로 들어가지 못하고 상담이 겉돌게 되죠. 그냥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상담 공간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수용되고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상 생활에서는 예의상으로라도 물어보지 못하는 민감한 개인 정보에 대해 아주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주제를 다루기 위해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해 둬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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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 심리평가를 실시할 때 '임상'은 질문을 너무 안 하는 게 문제이고, '상담'은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입니다. 임상은 밀려드는 검사를 쳐내기 바쁘기 때문에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고, 상담은 습관처럼 수검자에 대한 궁금증을 상담에서 질문하듯이 알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원칙부터 말씀드리면 '가능한 한 질문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입니다. 질문을 하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면 최선입니다. 그게 잘 안 되니 최소한의 질문만으로 꼭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지요.
그럼 심리평가에서 질문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비자발적인 수검자일수록 조심할 것
: 자발적으로 방문한 내담자를 심리평가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부모나 학교에 의해 의뢰된 아동/청소년의 경우 검사 라포를 잘 맺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검사 라포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는 평가자의 어떤 질문이든 답할 의지도, 답할 동기도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비자발적인 수검자라면 검사에 대한 orientation을 충실히 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최소한의 검사 라포도 형성되지 않은 수검자의 대답은 어차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평가자가 질문을 하면 할수록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둘째. 유도 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할 것
: 첫번째 주의할 점과 관련이 있는데 검사 라포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질문은 평가자가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문제는 그 가설이라는 게 수검자와 함께 세운 게 아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질문이 취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평가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물어본다고 생각하면 수검자는 그에 맞춰서 평가자가 듣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답변만 하거나 반대로 그 의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엉뚱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피검자와 심리검사 rapport 형성하기' 포스팅에서 강조한 것처럼 검사 선택 및 거부권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폐쇄형 질문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
: 이건 심리검사 뿐 아니라 상담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원칙인데 폐쇄형 질문을 하게 되면 의도와 상관없이 수검자가 뭔가 평가자가 원하는 종류의 답이 있을거라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성적과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폐쇄형 질문을 하게 되면 편하게 답변을 하기 어렵습니다. 고민을 하는 만큼 정보가 왜곡되거나 기억이 윤색될 확률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 최대한 개방형 질문을 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림 검사 할 때 질문지로 PDI하지 마세요'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드렸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고요.
넷째. 답변 자체를 그대로 믿지 않도록 조심할 것
: 제가 상담 영역으로 넘어오고 나서 놀란 점 중 하나는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가 하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대로 믿고 신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선별심리평가에서 문장완성검사(SCT)를 먼저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 : 상담자용'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검사자의 질문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나거나 수검자가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검사 도구의 경우는 배경 정보나 다른 구조화된 검사의 결과와 교차 검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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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심리평가가 상담자의 업무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해서 의뢰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넘기고 나면 그 뒤는 별로 생각할 일이 없는 임상 영역과 달리 상담에서는 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대부분 주 상담자가 담당하기 때문이죠.
정답은 저도 모릅니다만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네요. 결국 해석 상담도 상담이라는겁니다. 모든 문제는 해석 상담이 일반 상담과 다르다고 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물론 해석 상담은 심리평가 결과를 내담자와 나누는 상담이기 때문에 일반 상담과 조금은 다른 부분도 존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심리평가 해석 상담의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1. 심리평가 결과를 긍정적으로 포장하려고 애쓰지 말 것
: 심리평가는 수검자에게 고통을 주는 증상(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야기할 것으로 추정되는 원인을 추론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검자의 강점 영역보다는 개선이 필요한 문제 영역을 주로 다룰 수 밖에 없습니다. 지지적 상담을 하는 상담자일수록 수검자가 받을 심리적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가능하면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려고 애쓰지만 대개는 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강점을 몰라서 내지는 상담자로부터 강점을 확인받고 싶어서 찾아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으로 포장하려는 노력은 대개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은 상담자의 욕구 투영 결과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좋은 상담자보다 유능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담담하게 상담할 것
: 해석 상담 시 상담자가 내담자를 지나치게 안심시키려고 하거나 반대로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포장하면 오히려 내담자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과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포장하지 말고 날 것 그대로 내담자에게 전달한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행히 내담자가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으나 그건 불가피한 결과이고 내담자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고 해석 상담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내담자의 충격을 다룰 기회는 있습니다. 내담자가 충격받을 걸 겁내서 포장하는 건 상담자에 대한 신뢰만 저하시킵니다. 이는 대개 상담자가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자신감이 부족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합니다. 자신의 두려움과 타협하지 마세요. 내담자에게는 당신 밖에 없습니다.
3.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만 모든 시간을 할애하지 말 것
: 해석 상담의 포인트는 '해석'이 아니라 '상담'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목을 해석 상담도 결국 상담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고요.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만 중요하다면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내담자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꼼꼼하게 작성해서 주면 끝이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평가 결과를 듣고 내담자가 받은 상처, 충격, 통찰, 상실감, 불안감 등을 다루는 것이 해석 상담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내용 전달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면 안 됩니다. 시간 안배를 적절히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포장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쉬우면서도 담담하게 결과를 전달하고 나머지 시간을 내담자의 감정을 다루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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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supervision을 할 때 사례 formulation이 끝나면 항상 "질문 없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실제로 궁금한 게 있으면 답변을 할 테니 질문을 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 물음에는 조금은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제대로 받는 법'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 모르는 사람은 앎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모르는 지 알려면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질문 없습니까?"라는 제 물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봤냐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없는 사람은 질문이 없습니다. 그건 단순히 수검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심리평가, 상담,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예 심리학에 입문하지 않았을테고(권력과 재력을 목표로 심리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정도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는 성공하기 힘들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은 호기심의 문제입니다.
저보고 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상담을 전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단연코 가장 중요한 게 호기심이라고 답변할 겁니다. 과장을 조금 섞어서 말씀드리면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이 쪽 영역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호기심이 없다면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을 것이요,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니 아무리 우수한 지적 능력이 있다해도 실력을 쌓기 힘들 것이고, 실력이 없다면 내담자/수검자를 돕지 못할 것임은 물론 일하는 것 자체가 지옥 같을테니까요.
TCI의 자극추구기질 중 '탐색적 흥분' 하위차원이 높은 분이라면 타고난 호기심을 장착하고 있을테니 복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큰 문제 없습니다. 영장류의 DNA와 많은 부분이 겹치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장착된 호기심의 양만 해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문제는 그게 작동하는 분야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질, 적성과 잘 맞는 분야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요.
자기와 잘 맞는 분야를 찾기만 하면 그 호기심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당장 저만 해도 탐색적 흥분 하위차원이 -1 표준편차 이하로 낮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관습적 안정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래도 저는 심리학, 여행 관련해서는 무한 호기심이 작동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누군가는 음식에, 누군가는 음악에, 누군가는 운동에, 누군가는 프라모델 분야에서 호기심이 남다를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호기심이 작동하는 영역을 잘 찾으신 뒤 그 호기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의 홍수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아무런 호기심도 생기지 않고 그래서 질문할 거리를 전혀 찾지 못한다면 안타깝지만 이 영역은 본인과 맞지 않는 것이니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버텨봤자 그 끝은 그리 신통치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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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의외로 상담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3가지' 포스팅에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내담자가 거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일 가능성도 별로 없고, 거기에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왔을 가능성도 많지 않으니 항상 이차 이득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담자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라는 말이죠. 상담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나마 내담자가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내방했는지 조리있게 정리하여 이야기를 해 준다면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거기서부터 가설을 세우고 들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새 별로 힘든 건 없지만 그냥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성격이 어떤 지 궁금해서' 심리검사나 한번 받아보고 싶다며 애매모호한 이유로 상담실을 방문한 경우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건 그냥 친구 따라 심심해서 방문했다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심하다 해도 내 치아가 건치인지 궁금해서 치과를 방문하지 않듯이 상담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일반인에게 상담실이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 상담실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 신경이 쓰이는, 꺼림칙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자발적으로 방문했다는 건 본인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간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막연하고 모호하게 이야기 할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숨겨져 있을 수 있으니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신의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은지, 그게 왜 알고 싶은지, 하필 지금 알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성격이 궁금하다면 성격의 어떤 부분이 궁금한지, 본인의 성격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지, 그게 왜 궁금한지에 대해 물어봐야 하고요.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설에 따라 어떤 검사 도구를 사용해야 할 지가 결정되는 것이니 어차피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내용을 물어볼 수 밖에 없지만 애매한 이유로 내방하는 내담자일수록 더욱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제 경험 상 애매한 이유를 대는 내담자일수록 알고 보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숨겨져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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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에게 이차 이득이 있다는 건 상담자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이기는 한데 해석 상담 시 이를 내담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이르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우울한 건 사실이지만 그 우울 때문에 이득을 보는 점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FBS 척도는 '무의식적인' 이차 이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검자가 자신의 이차 이득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자칫하면 수검자가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진행하는 임상가라면 이차 이득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는 법이 궁금하실텐데요. 저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해석합니다.
"~님은 현재 ~~~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유와 원인이 있죠"
"~님이 그 이유와 원인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FBS 척도가 상승한다는 건 ~님의 마음 만큼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너무나 불안하고 그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한시라도 빨리 불안을 덜고 싶겠지만 마음은 그렇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불안을 줄여서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싶지만 마음은 취업에 실패했을 때의 심리적 타격이 더 두려워서 불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거죠"
"그러니 취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들여다보고 다루어야지만 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불안을 없앤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조금 더 간략하게 줄여서 설명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하다보면 설명이 충분치 않거나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어 수검자가 평가자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완곡하게 표현하는 편이 낫습니다.
핵심은 수검자가 경험하는 고통감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비겁함이 반영된거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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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임상가 중 상담을 주 업무로 하는 상담자는 주로 MMPI-2/A, TCI/JTCI, SCT, HTP(+KFD) 조합으로 심리평가를 하곤 합니다. 반드시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는 수검자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지능 검사나 로르샤하 검사 등이 워낙 난도가 있고 heavy한 검사라서 선뜻 도입해 사용하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맨날 네 개의 검사만으로 routine하게 진행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담자에게 좀 더 도움을 주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검사 도구가 없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림 검사 대신 TAT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심리검사를 실시할 때는 반드시 그 심리검사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과 가설이 있어야 하고 그림 검사와 TAT는 평가 영역이 겹치기도 하지만 당연히 차이나는 부분이 존재하므로 TAT를 실시하면 좋은, 또는 실시를 권하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TAT 실시를 권하는 또는 주의해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관계 역동이 중요한 수검자에게 적합함
: 로르샤하 검사와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로르샤하와 TAT 모두 깊은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로르샤하가 수검자 개인의 정서 조절, 지각 등을 살펴보는 것에 비해 TAT는 관계 역동을 좀 더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대인 관계 역동을 살펴보는 게 중요한 수검자에게 실시하면 좋습니다. 특히 성격 장애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검사이죠.
2. 언어 능력이 뛰어난 수검자가 유리함
: 대부분의 심리검사 도구가 수검자의 언어 능력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TAT는 그림 카드를 보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역동을 투사하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뛰어난 수검자에게 실시할 때 더욱 풍부한 역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적 제한이 있거나 언어적 능력이 부족한 수검자로부터는 원하는 만큼의 반응 내용을 얻어내기 쉽지 않으므로 실시 여부를 잘 따져 봐야 합니다.
3. 자기 개방이 잘 되지 않는 기질의 수검자가 불리함
: 수검자가 TCI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LHL, MHL, LLL, LML 등의 기질 유형인 경우 자기 개방을 어려워하므로 자신의 역동을 카드에 투사해서 드러내는 TAT 검사에서 방어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방어라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리거나 어색해 하는 것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평가자 입장에서는 내용 자체가 풍부하지 않으므로 해석하기 쉽지 않습니다.
상담자 입장에서는 언어적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검사 도구인만큼 로르샤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실시가 용이한 수검자 군이 넓지 않으며 해석 노하우가 쌓이는데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으니 충분히 고민하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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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상담 기관들이 새해 기념으로, 신학기 맞이로 잠재적 내담자에게 기관 홍보 차원에서 심리검사 '프로모션'을 진행하곤 합니다. 플랭카드를 걸기도 하고 X배너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관 홈페이지나 SNS를 이용한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리 서비스에 대해 잘 모르는 수요층에게 홍보를 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찾아온 방문자가 원하는 심리검사를 아무런 제약없이 그대로 실시하는 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심리검사의 선택권을 수검자에게 그대로 넘기는 것인데 이는 전문가의 직무 유기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수검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치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심심해서 치과를 방문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목적이 상담이든 심리검사이든 간에 상담 기관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어떤 심리적 불편함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니 왜 심리검사를 받으려 하는지를 충분한 면담을 통해 탐색해야 하고 그러한 면담 결과에 따라 가설을 세운 뒤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검사 도구를 선택해 제안하는 게 임상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다고 보고한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시점과 경위, 최근 스트레스 상황에 따라 성격 장애부터 가면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충분한 탐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하는 검사는 수검자에게 이차 가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억압하고 있는 수검자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로르샤하 검사나 TAT 같은 투사 검사를 받게 된다면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상처를 깊게 후벼파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요.
임상가는 소비자가 골라온 물건의 바코드를 찍어 물건값을 받기만 하면 되는 편의점이나 마트의 계산대 직원이 아닙니다. 심리검사가 음료수나 과자 같은 물건도 아니고요. 오히려 전동 체인톱이나 화약처럼 적절한 용도와 사용 기술 유무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도구입니다.
정해진 프로모션 기간 동안에 최대한 많이 검사해서 실적을 올려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검사를 요청하는 모든 방문자는 내가 상담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내담자라는 마인드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니 심리검사 선택권을 수검자에게 넘기지 말고 수검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도구를 조언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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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TCI/JTCI를 활용하려는 임상가들께 추천하는 해석 방식은 3단계 전략으로, 이는
'TCI 활용 3단계 전략' 포스팅에서 상세히 다룬 적이 있습니다.
3단계 해석 전략을 따르면 최종적으로 임상가는 수검자의 성격 장애 진단(또는 성격의 미성숙성 여부), 기질 및 성격 유형, 그리고 하위차원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물론 이 정보를 모두 취합하여 상담에 활용하고 내담자에게 적용할 접근 방법을 선택하게 되지만 여기에는 기질과 성격의 조합에 따른 접근법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TCI/JTCI를 많이 사용하는 임상가라면 경험이 조금씩 쌓임에 따라 어느 정도 '전형적'인 유형과 '비전형적인' 유형에 대한 감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기질 유형의 소유자라면 어떤 성격 유형의 조합으로 나타나겠다는 감이죠. 그래서 이를 기본으로 해서 상담 전략을 짜지만 이 전형성에서벗어날 수록 비전형적인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 소위 말하는 튜닝을 해야 합니다. 그게 상담자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조합이 나타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드리겠습니다.
크게 4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1. 전형적 기질 - 전형적 성격 조합
'전형적인' 유형의 경우, 예를 들어 극단적인 강박성(LHL) 기질의 소유자이고 LLL, LLM 성격 유형의 경우는 강박성 성격 장애 역동에 맞춰 접근하면 됩니다. 물론 내면 아이가 매우 어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요.
2. 전형적 기질 - 비전형적 성격 조합
전형적인 기질이라고 해도 이와 조합되지 않는 성격 유형의 경우는 늘상 하던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반사회성(HLL) 기질과 전형적인 성격 조합은 독재적(HLL) 성격 유형인데 이와 정 반대로 의존적(LHL) 성격 유형이라면 전형적인 반사회성 성격 장애 역동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반사회성 기질의 소유자가 왜 의존적인 성격이 되었는지를 염두에 두고 살펴봐야 합니다. 반사회성 기질의 소유자, 반사회성 성격 장애라는 점보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3. 비전형적 기질 - 전형적 성격 조합
다음으로 '전형적이지 않은' 기질 유형의 경우 예를 들어 강박성(LHL) 기질이기는 하나 백분위 점수가 27-71-0인 경우 전형적인 강박성 기질이 아니라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하위) 유형의 강박성 기질입니다. 따라서 LLL, LLM 성격 유형처럼 강박성 기질과 궁합이 맞는(?) 전형적인 성격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전형적인 강박성 성격 장애 역동에 맞춰 접근하면 안 되고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내담자의 적응 양상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합니다.
4. 비전형적 기질 - 비전형적 성격 조합
마지막으로 전형적이지 않은 기질 유형의 경우, 예를 들어 앞에서 살펴본 백분위 점수 27-71-0인 강박성(LHL) 기질의 경우 이기적(MLL) 성격 유형이라면 강박성 기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낮은 사회적 민감성 기질에 적응하기 위한 내담자의 노력이 이기적인 성격 유형으로 발현되었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합니다.
보신 것처럼 각 기질과 성격의 '전형성', '비전형성'까지 고려하여 각 조합의 궁합을 고려하면 내담자의 역동에 따라 좀 더 세밀하게 개입할 수 있으니 TCI/JTCI를 상담에 활용하는 상담자라면 이러한 조합도 고려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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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의 결과 해석은 결과가 산출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만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심리평가 결과를 어떻게 하면 잘 해석할 수 있을까는 경험과 노하우의 영역이라서 노력과 연륜이 쌓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아집니다.
하지만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오류나 실수는 경험과 노하우의 영역이 아닌 습관의 영역이라서 습관을 잘못 들이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고 현장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습니다.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만 나이 계산입니다. 이 포스팅을 '상담자용'이라고 국한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임상의 경우 수련 과정에서 만 나이 계산을 실수하지 않도록 초반부터 아주 혹독하게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하는 원칙 중 하나는 모든 심리검사의 연령 기준은 우리나라 나이가 아닌 만 나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나이 기준으로 연령 규준을 산정한 심리검사 도구는 제가 알기론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아주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만 나이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만 나이가 기본인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나이 체계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임신을 해서 태내에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아이가 생겼다고 보느냐 출산을 해서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온 때부터 계산할 것이냐의 문제로 이건 어디까지나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이므로 옮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없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나이와 만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심리평가를 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1972년 4월 1일 생인 수검자가 있다고 해 보죠. 우리나라 나이로는 올해 50세가 됩니다. 하지만 만 나이로는 48세이기 때문에 두 살 차이가 납니다. 만약 1972년 3월 1일 생이라면 우리나라 나이로는 동일하게 올해 50세지만 만 나이로는 49세가 됩니다. 생일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생일이 지났느냐 지나지 않았느냐에 따라 만 나이와 우리나라 나이는 두 살까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많은 상담자가 TCI, MMPI-2/A와 같은 자기 보고형 검사를 실시할 때 응답지에 수검자가 적은 만 나이를 그대로 코딩하곤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나이에 익숙한 일반인들은 만 나이 계산을 해 본 적이 거의 없고 또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수검자가 기록한 것을 믿지 말고 반드시 평가자가 손으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정확하게는 검사를 실시한 평가일로부터 생년월일을 빼서 ~년 ~월 ~일까지 계산한 후 ~년에 해당하는 나이(이것이 만 나이죠)를 채점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합니다.
실수를 했다고 해도 연령 기준대가 바뀌지 않으면(예를 들어 48~50세가 같은 연령 기준인 경우) 상관없지만 운이 없으면 46~48 연령대와 49~50 연령대가 다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만 나이로 입력했을 때와 우리나라 나이로 입력했을 때의 결과 차이가 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 MMPI-2/A, TCI, SCT의 만 나이가 모두 다른 극단적인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용납하기 시작하면 정확한 검사 결과 해석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합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제 사례도 아닌데 이런 실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수련 과정에서 절대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반복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사지를 보면 무조건 만 나이부터 계산하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만 나이만큼은 직접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주)마음사랑에서 프로그램에 TCI, MMPI-2/A 답안 입력 시 자동으로 만 나이를 계산하도록 구현해주면 좋겠지만 프로그램 수정이 어려운 지(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만) 아직까지 개선이 되지 않고 있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직접 손으로 계산하시는 게 좋습니다.
손으로 계산하는 게 정 싫은 분은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사이트도 있으니 그걸 이용하셔도 됩니다.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만 나이를 계산해 줍니다. 아래에 링크를 달아 드릴테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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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검자에게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모두 받았습니다. 각 검사 결과의 해석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통합하는 게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임상가들이 많습니다. 제가 supervision point를 물어볼 때도 이 통합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렇다면 심리평가 결과 통합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선생님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검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검사 별로 검사 sign을 해석할 수 있는 실력을 더 열심히 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심리검사 워크샵도 꾸준히 참석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실력이 생긴다고 믿는거지요.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가 빠져도 통합이 안 되고, 불필요한 검사가 너무 많이 포함되어도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때문에) 통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심리검사에 대한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정리가 안 되고 통합의 어려움을 느끼는 선생님이라면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routine하게 심리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리평가를 위한 가설 설정과 관련해서는 아래의 관련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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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람 좋은 상담자라는 말을 듣고 싶으신가요 아님 유능한 상담자라는 평가를 받고 싶으신가요?
좋은 상담자와 유능한 상담자가 같은 의미라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오히려 반대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지요.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심리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을 때 이걸 수검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게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심리평가 결과는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수검자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평가자가 알아낸 사실 그대로 최대한 정직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수검자에게 상처주는 일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되기에 평가자는 최대한 수검자가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만요.
하지만 반대로 평가자가 해석 상담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심리평가 결과 중 수검자에게 상처가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수검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첫 번째 가능한 이유는 '좋은' 상담자이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반대로 보자면 '나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나는 내담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 싫다'는 욕구가 강하면 그럴 수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담자는 친구가 아니며 상담은 수다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치유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고통 없는 치유란 건 불가능한 것이죠. 뼛속깊이 들어찬 고름을 모두 긁어내야 새로운 세포와 조직이 생성되어 새 살이 돋아나듯이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필요합니다. 제가 도박 중독 상담을 할 때 중독자와 자주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박을 멈추고 삶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팔이나 다리 한 짝을 내놓으실 수 있을까요?'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치유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결국 큰 희생을 감수해야 진정한 치유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상처받는 상황을 피하겠다면 결국 치유도 포기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가능한 이유는 내담자가 상처받았을 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상담자 스스로의 불안감 때문입니다. 자신감이 부족한 상담자일수록 그러한데 훌륭한 외과의사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우수한 실력만큼 환자를 수술 중 잃어본 경험이 많은 의사일 겁니다. 경험 없는 노하우는 없으며 노하우가 없으면 고수가 될 수 없거든요.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와 실패 경험이 없는 상담자는 절대로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눈 딱 감고 돌파해야 하는 관문입니다. 치유를 위해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상처까지 피하려고만 노력하면 그 상담자는 평생 그렇고 그런 상담만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내담자가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임상가들은 내담자를 위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상처와 모욕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치유를 위해 내담자에게 상처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모든 과정이 상담자가 되기 위한 단계라는 걸 수용하고 노력하는 상담자는 빠른 시간 내에 고수가 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상담자일수록 내담자에게 상처를 덜 입히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 많은 내담자를 빠른 시간 안에 도울 수 있는 유능한 상담자가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능한 상담자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좋은' 상담자로만 남으려고 하지는 않았기에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좋은' 상담자보다는 '유능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상담자로 남으려고만 하면 '무능한' 상담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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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증상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수검자의 TCI 프로파일'이라는 글에서 F, F(B), F1, F2와 같이 faking-bad 경향을 반영하는 척도들이 과도하게 상승할 때 TCI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처럼 보이는 프로파일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계선 성격 장애 내담자들도 가끔은 지나치게 고통감을 호소하는 나머지 타당도에서 F척도군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 과장 경향만 갖고 TCI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 프로파일이 나온 걸 구분하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위차원 분석을 해 보는 겁니다.
경계선 성격 장애가 맞다면 각 기질/성격의 하위차원들의 방향성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증상을 과장하는 수검자들은 하위차원에서도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자극추구 기질에서 증상을 과장하는 수검자는 '탐색적 흥분' 하위차원만 원 점수가 표본 평균 이하로 낮을 수 있는데 이는 자극추구 기질의 네 하위차원 중 탐색적 흥분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할 수 있는 보호 요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경계선 성격 장애라면 그런 눈가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하위차원이 평균 이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또 다른 예로는 연대감 성격의 하위차원 중 '공감', '이타성'만 점수가 표본 평균보다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faking-bad 응답 경향을 보이는 수검자들은 힘들다는 것을 과장하고 싶은 것 뿐이지,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둔감', '이기성'이 높게 나오지 않게끔 자신도 모르게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점수가 높거나 낮다는 게 1표준편차 이상/이하로 유의미하게 높거나 낮은 정도는 아니고 단순히 평균값보다 높거나 낮은 정도이기 때문에 얼핏보면 구분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증상 과장 경향이 있는 수검자는 경계선 성격 장애와 달리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어필하는 쪽으로 응답 방향이 맞춰져 있어 각 기질/성격의 하위차원의 방향을 고려하면(특히 하위차원들의 방향이 갈릴 때) 어느 정도 구분이 됩니다.
그러니 MMPI-2/A의 F척도군의 과도한 상승만으로는 경계선 성격 장애를 변별하는 게 어려운 선생님들은 하위차원을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덧. 이 포스팅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라고 지칭한 건 HHL 기질에 미성숙한 성격 유형을 말하는 것으로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예시일 뿐으로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http://walden3.kr/5013, http://walden3.kr/4347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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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2/A 1-3-3-3 패턴이란' 포스팅에서 1-3-3-3 패턴이 나타날 때는 수검자 본인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방어 기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심리검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신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MMPI-2/A에서 1-3-3-3 패턴이 나타났을 때는 모든 심리검사 해석을 포기해야 하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무의식 수준에서 철저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수검자는 기질/성격 역동을 살펴봐야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TCI/JTCI 결과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기질/성격 유형을 완전히 뒤집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MLH - HLH 유형의 수검자가 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잘 속는-영웅적 기질과 편집성 성격 유형 조합인데 기질/성격의 조합이 좀 이상하죠. 정이 많고 따뜻해서 다른 사람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기질인데 사람을 믿지 못하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성격으로 발달했다는 해석이 됩니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돌봄을 경험하지 못하고 수용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 이 수검자가 MMPI-2/A에서 1-3-3-3 방어 패턴을 보이고 있어서 그렇게 해석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방어를 하는 수검자가 아니었다면 위처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뒤집어 보겠습니다. MLH - HLH 조합을 뒤집어 보면 MHL - LHL, 즉 고립된-겁많은 기질과 의존적인 성격 조합이 됩니다. 이렇게 뒤집어 보니 이해가 되죠. 실제로는 겁이 많고 안전을 중시하는 기질인데 의존적인 성격으로 발달하여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한거죠. 하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경우 나쁜 사람을 만나면 본인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처럼 반대되는 기질과 성격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MLH - HLH 조합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기질/성격 유형으로 나타나는거죠.
정리를 해 보자면,
* MMPI-2/A에서 1-3-3-3 패턴이 나타나면 강력한 무의식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일 수 있으니 심리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 기질/성격 역동을 해석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수검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TCI/JTCI 결과는 살펴봐야 한다.
* 이 때 기질/성격 조합이 어색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완전히 뒤집어서 이해가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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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2/A의 F척도는 임상 척도와 상관이 높기 때문에 임상 척도, 특히 정신증 4척도(psychotic tetrad)라고 부르는 6, 7, 8, 9번 척도가 함께 상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상 척도들이 유의미하게 상승했을 때 F척도도 유의미한 수준이라면 심각성을 어느 정도 감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6-7-8-9 척도들이 패턴 상승했을 때인데요. 이 때 F척도가 높게 상승했다면 수검자의 문제가 정신증일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죠. 수검자가 증상을 과하게 호소하고 이것이 F척도에 반영되어 상승했다면 F척도와 상관이 높은 임상 척도, 그 중에서도 6-7-8-9 척도가 반응하여 동반 상승했을 수 있거든요. 수검자에게 약물 치료를 병행할 지의 여부는 상담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임상 척도와 F척도는 반드시 함께 해석해야 합니다.
반대로 6-7-8-9 척도군이 상승했는데 F척도가 유의미하지 않다면 과장없이 순수하게 증상을 드러낸 것이므로 수검자가 실제로 정신증이거나 정신증 관련 증상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F척도는 유의미한데 상승한 임상 척도가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F척도가 상승했다는 건 수검자가 고통을 호소했다는 말이고 평가자는 수검자가 호소하는 내용이 임상 척도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정작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한 임상 척도가 전혀 없다면 이는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임상적 진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고 더 나아가서 코드 패턴 분석을 할 수 없는 경우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재구성 임상 척도를 살펴보면 코드 패턴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F척도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했는데 임상 척도가 상승하지 않는다면 임상 소척도를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임상 척도의 모척도는 유의미하지 않은데 소척도 수준에서 유의미한 경우가 꽤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임상 소척도의 해석 기준선인 65T-65T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심리평가보고서의 해석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내용은 임상 소척도에서 찾을 수 있으니 임상 척도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임상 소척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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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에는 타당도 척도가 없기 때문에 MMPI-2/A의 타당도 척도를 참고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라포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TCI의 단독 실시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TCI만 단독 실시했을 때 상담 장면에서 보기 힘든 (양호한) 기질/성격 유형이 나온다면 해석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거든요. 수검자의 기질, 성격이 실제로 양호한 것인지, 아니면 방어적인 태도로 작성했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MMPI-2/A의 타당도 척도에서 수검자가 방어하는 경향을 보일 경우 TCI에서는 어떤 프로파일이 나올까요? 제 경험 상 다음과 같은 양상을 고려해 보시면 좋습니다.
* K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경우
: K척도가 상승한다는 건 정교하게 방어한다는 뜻인데 TCI에서는 대개 성격 유형만 양호하게 나타납니다. HHL(조직화된) 유형이 가장 많고 HML(논리적인) 유형이나 MHL(신뢰하는) 유형도 많이 나옵니다. 당연히 신뢰할 수 없고요. 특이한 건 K척도를 띄워 방어하는 수검자의 경우 성격 유형은 건강하게 나와도 기질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유형이 그대로 나타난다는거죠. 그래서 성격은 양호하지만 기질이 취약한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K척도를 띄울 때의 전형적인 양상입니다.
* L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경우
: K척도와 달리 L척도는 다소 naive하게 방어하는 경향을 반영하는데 '다 괜찮다, 다 좋다' 태도를 보이는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격 유형만 양호하게 나타나고 기질 취약성은 그대로 드러나는 K척도 상승 시와 달리 기질과 성격 유형 모두 양호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 S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경우
: S척도는 보통 K척도와 함께 상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K척도가 상승했을 때처럼 성격은 양호하게, 기질 취약성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매우 높게 상승한 경우는 L척도 상승 때처럼 성격과 기질 유형 모두 건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K척도 상승 때와 양상이 비슷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case by case라서 L, K척도 상승 때와는 달리 좀 더 신중하게 해석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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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상담 현장에서도 심리평가 없이 상담만 진행하는 경우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심리평가의 실시가 통상적인 절차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심리평가와 관련하여 평가자가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검사 라포의 형성 유무 확인', '심리검사 실시 관련 orientation', '비밀 보장 범위 및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된 education'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죠.
저는 거기에 이전에 심리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과정을 추가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수검자가 심리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학습 효과입니다. MMPI-2/A, TCI 등 흔히 사용하는 구조화된 질문지형 검사의 경우는 원자료가 가공된 결과물의 내용을 수검자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지만 지능 검사라든가 반응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로르샤하 검사 같은 투사법 검사는 노출 정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interval(지능 검사의 경우 안전하게 하려면 3년 이상)을 두고 실시해야 합니다. 만약 이전 심리검사 경험이 다시 실시하는 검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면 검사를 미루거나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검사 구성을 달리하는 등 대비책을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 다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검사에 노출된 정도를 파악하는 겁니다. 이건 학습 효과와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는데 수검자가 이전 검사의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지, 예를 들어 문장완성검사의 개별 문항이나 로르샤하 카드를 기억하는 정도인지, 해석 상담 시 이전 평가자가 반응 내용을 보여주면서 해석을 진행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전 검사가 이번에 실시하는 심리평가 결과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가설입니다. 사실 상 심리평가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므로 수검자가 이미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면 왜 심리평가를 또 받는지 알아야 합니다. 기존 평가 결과에 의한 심리치료/상담이 실패했기 때문인지, 그래서 변별 진단이 다시 필요한 지 등을 고려해 가설을 수정하거나 새로 가설을 세워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가설이 바뀌면 선택해야 하는 심리검사 도구와 타이밍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사전 경험은 중요합니다.
심리치료나 상담을 하는 임상가라면 과거에 심리치료/상담을 받은 경험이 왜 중요한 지 잘 아실 겁니다. 심리평가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의 비슷한 이유로 심리평가를 받은 경험을 확인해야 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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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보고서는 심리평가 결과를 수검자, 보호자, 의뢰(인, 기관)에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죠. 상담자라면 case formulation을 하는데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전달하는 대상이 다른 임상가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유관 분야 전문가일 경우에는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검사 sign을 동원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검사 sign을 사용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고 심하게는 전문성을 의심받기도 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 작성 시 기술 근거는 어떻게 제시하나' 포스팅에서 저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항상 매 문구마다 이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을 함께 쓰는 방식을 권고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여전히 저도 이 방식으로 기술 근거를 제시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예외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수검자에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직접 제공하는 경우입니다. 수검자에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제공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실거라면 이 글을 더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만 저는 그게 어떠한 이유든 수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에 접근할 기회를 막는 방향으로 가는 정책은 결코 치료적이지 않고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MMPI-2/A, TCI/JTCI, 로르샤하 검사의 구조적 요약 지표 등 수검자의 응답 내용이 가공되어 수검자가 기술 근거를 알았다고 해도 재검사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검사 sign은 제시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검사들, 주로 투사 검사들인데 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로샤 검사의 반응 내용 등은 심리평가보고서에 직접 기술하면 안 되며 가능하면 해석 상담에서도 직접적인 제시를 피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변별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이 중요한 병원 장면에서 재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검사 sign을 적나라하게 보고서에 기술하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학습 효과를 배제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재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실정에서 무신경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포스팅을 인용하느라고 중언부언 말이 길어졌는데 핵심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 수검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근거를 제시할 때는 가공되어 수검자의 재검사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검사 sign들(MMPI-2/A, TCI/JTCI, 로르샤하 검사의 구조적 요약 지표 등)만 사용하고 그림검사, 문장완성검사, 로르샤하 검사의 반응 내용 등은 보고서와 해석 상담에서 제시하지 않는 것을 권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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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검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원칙에 맞춰 수검자에게만 실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법적 보호자인 부모도 그 결과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듣고 싶어할테니까요. 아동/청소년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기를 원하면 해석 상담을 미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부모를 설득해야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부모에게도 해석 상담을 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아동/청소년에게만 문제가 있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자녀는 가정의 불행을 드러내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서 자녀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겼다면 이미 부모-자녀 관계나 부부 갈등, 가족 구성원 간 불화, 심하게는 부모가 치료를 요하는 정신 장애에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할 때도 최소한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TCI, MMPI-2) 정도는 실시해야 하고 이 결과는 부모 각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 여부 뿐 아니라 해석 상담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확인하기 위한 귀중한 정보로 활용됩니다.
부모가 약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 장애로 고통받고 있거나 MMPI-2에서 S척도를 70T 이상으로 띄울 만큼 방어적이라면 해석을 위한 접근이 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문제는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부모 평가가 불가능하다는거지요. 부모가 심리평가를 거부하기도 하고, 비용 문제로 추가 검사를 실시할 수가 없거나 기관에서 부모용 검사를 제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제한이 있거든요.
그래서 부모가 어떤 분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녀 심리평가 결과의 해석 상담을 해야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자녀의 문제가 부모 탓인 것처럼 들리게 말하지 말 것
: 실제로 자녀의 문제가 부모에 의해 생긴 게 맞다고 하더라도 그걸 부모에게 직면시키는 건 거의 항상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부모라고 해도 자신을 탓하는 평가자의 해석을 접하면 자동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그게 인간이니까요. 그러니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결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 부정적인 내용만 이야기하지 말 것
: 특히 임상 장면에서 일하는 평가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인데 훈련 과정 자체가 문제를 찾아내는 것에 치우치다보니 보고서를 쓸 때도 수검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기술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죠. 그래서 해석 상담을 할 때만이라도 수검자의 문제 하나 당 강점 하나씩을 함께 이야기해서 해석의 체감 온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도 어떤 부분이 수검자의 강점인지 부모에게 할 해석 상담을 염두에 두고 찾는 버릇을 들여야 하고요.
* 균형을 맞춘다는 느낌으로 해석할 것
: 예를 하나 들자면,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강압적인 훈육 방법을 고집하는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심리평가를 받게 되는데 그런 부모일수록 평가자/상담자에게 원하는 건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이럴 때 공부만 강요하는 훈육 방법을 고집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듯이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그게 바로 그 부모가 자녀에게 사용하던 방법이니까요. 그럴 때는 균형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저는 두 날개의 비유나 포르쉐 엔진을 단 프라이드 자동차 비유 등을 많이 사용하는데 채찍을 많이 사용하는 부모에게 당근으로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묻거나, 규율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부모에게는 정서적 스킨십과 칭찬 등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묻거나 하는 식으로 부모가 잘못 하고 있다는 핀잔 식이 아니라 당연히 아시겠지만(물론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사용하지 않는 부모가 태반입니다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라는 의미로 뜨끔하게 만드는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설사 부모가 자녀 고통의 원흉이라고 해도 부모를 가능하면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내담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도저히 설득이 불가능한 부모를 밀어내고 아동/청소년 내담자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건 가장 마지막에 꺼낼 카드입니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부모를 협조자로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신중한 해석 상담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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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를 마스터하는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그 중 두 가지만 꼽으라면 구조적 요약의 복잡성과 채점의 어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죠. 채점이 정확하지 않으면 구조적 요약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적 요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상에 비해 상담에서는 구조적 요약까지 꼼꼼하게 익히지는 않지만(사실 임상 수준으로 꼼꼼하게 익혀야 합니다;;;) 내용 분석이나 질적 분석만 한다고 해도 채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 그러니 정확한 채점을 할 수 있느냐는 로샤 검사의 해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로샤 채점이 어려운 이유는 채점 체계가 구조적 요약 만큼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점 체계가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최근 수검자의 응답 내용을 반응하지 못하기도 하고 채점자가 어떻게 채점하느냐에 따라 달리 채점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습니다. 로르샤하 워크북에 있는 소위 '300제'의 채점 내용도 정확도를 완벽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거든요.
때문에 로샤 채점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자만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채점자라고 해도 채점의 실수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채점의 오류를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채점자의 채점 패턴은 이와 다른 문제입니다. 채점자가 일정한 채점 패턴을 갖고 있는 경우 이건 채점 내용 뿐 아니라 구조적 요약에도 일정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채점 패턴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는데, 너무 보수적으로 채점하는 것, 너무 너그럽게 채점하는 것, 쌍반응을 많이 주는 것, popular 채점에 인색한 것, 특수점수를 많이 주는 것, 복합 결정인 채점을 많이 하는 것, F 결정인을 자주 채점하는 것, 운동반응을 일정한 방향(p 또는 a)으로만 채점하는 것, 반응 영역 시 S채점을 자주 놓치는 것 등등 무수히 많습니다.
각 채점 패턴이 구조적 요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익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패턴을 교정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패턴 교정을 위해서는 외부 평가자의 시각이 필요한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험이 풍부한 supervisor에게 점검을 받는 것이죠. 매 사례마다 점검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동료나 동기와 각각 채점을 한 뒤 채점 결과를 비교하면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신에게 일정한 채점 패턴이 존재한다면 이를 교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채점 연습을 한다고 해도 결과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로샤 채점 공략을 위해서는 반드시 채점 패턴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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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 MMPI-2/A로 구성한 선별심리평가를 실시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 TCI : 경계선 기질 - MMM(Intermediate Adaptive Optimum) 성격
* MMPI-2/A : Normal Profile
그런데 정작 수검자는 상당한 수준의 주관적 불편감을 호소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때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로샤 검사를 추가 실시하는 겁니다.
취약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어도 정상적으로 발달한 성격이 기질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에 그런대로 적응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위의 TCI 결과를 보여준 수검자처럼 말이죠. 그래서 의식적인 수준에서 심리적 문제를 규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MMPI에서도 정상 profile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해도 취약한 기질 때문에 수검자는 내면 깊은 곳에서 불편감을 느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서 조절이 잘 안 되거나 여러가지 부정적인 충동을 느끼거나,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등의 문제 말이죠. 그래서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좀 더 깊은 무의식을 살펴보는 로샤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수검자를 깊이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예는 어떨까요?
* TCI : MMM(Intermediate Adaptive Optimum) 기질 - LHH(moody, cyclothymic) 성격
기질은 괜찮은데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기 쉬운 성격 유형으로 발달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했겠죠. 감정 기복이 있거나 기분 변화의 폭이 크고 행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MMPI 결과만 봐도 수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죠.
* TCI 성격 유형의 문제 : MMPI와 같은 구조화된 검사 결과를 집중 분석
* TCI 기질 유형의 문제 : 로샤 같은 투사법 검사 결과를 집중 분석(특히 MMPI 검사 결과가 정상 수준인 경우)
덧. 물론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수검자들 중 많은 수는 기질이 취약하고 성격 또한 미발달되어 있어서 MMPI 결과만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어낼 수 있으니 기질이 취약하다고 해서 반드시 로샤를 실시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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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로 수검자의 기질, 성격 유형을 확인하고 기질과 성격의 상호작용에 대해 살펴보는 일을 자주 하다 보면 결국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1.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신의 '기질'대로 살아야 한다 : 문제가 되는 기질대로 마음껏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님
2. 결국 상담은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 당연히 '독재적인 성격' 등 예외도 있음
그건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의 도움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상당수가 1) 기질 상의 취약성이 존재하거나, 2)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이 약화되어 있거나 1), 2)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것(이 경우 성격 장애인 경우도 많음)으로 상당 부분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기질에 맞게 사는 건 성장 과정에서는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인큐베이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어려서 완수했어야 할) 자신의 기질을 안전하게 시험하며 이를 환경의 요구나 압력과 조율하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커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율성인데 상당수(거의 대다수)의 내담자들이 자율성이 저하된(발달 지연된) 상태에서 내방하기 때문에 자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상담자와 함께 고민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낮은 하위 차원 각각에 대해
* 책임감/책임전가 :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와 아닌 문제를 구별하고 전자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연습을 함
* 목적의식 : 진로/적성 코칭을 통해 자신의 기질과 적성,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함
* 유능감/무능감 : 작은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달성 가능한 목표를 상담자와 설정하고 시도함
* 자기수용/자기불만 : 자신의 강, 약점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함
* 자기일치 :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없는 경우 탐색 및 새로 설정함
처럼 상담에서 다룰 수 있지만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런 접근법도 내담자의 기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율성이 낮은 대표적 성격 유형 중 하나인 LHL(의존적인) 성격의 내담자라도 HMH(자기도취적) 기질과 LHH(수동-의존성) 기질의 내담자는 의존적인 성격으로 발달한 이유가 전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자기도취적 기질의 내담자는 자신의 기질에 맞게 자기애를 충족하고자 하나 부모가 이를 거부하는 비수용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반복해서 narcissistic injury를 받게되어 어쩔 수 없이 살아남고자 의존적인 성격을 형성했을 수 있지만 수동-의존성 기질의 내담자는 반대로 기질에 부합하는 방식(건강한 방식은 아니지만) 으로 부모가 힘든 일, 도전은 모두 면제해주고 오냐오냐 받아만주면서 온실 속에서 키운 나머지 의존적인 성격으로 발달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경우 두 내담자 모두 자율성을 높이는 건 맞지만 수동-의존성 기질의 내담자는 지나치게 상승한 연대감을 낮춰 자율성과 조율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상승이 아니거든요. 반대로 자기도취적 기질의 내담자는 자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연대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요.
자율성을 높이고자 할 때 낮은 수준의 각 하위차원에 대한 개별 개입도 중요하지만 내담자의 기질까지 고려해 세밀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율성을 높이는 게 어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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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식,
무능감,
성격,
성격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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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감,
유능감/무능감,
자기불만,
자기수용,
자기수용/자기불만,
자기일치,
자율성,
책임감,
책임감/책임전가,
책임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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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평가 결과를 가능한 한 수검자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류 상담계와는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 이 포스팅을 시작해야 할 것 같군요.
저는 해석 상담 시 심리평가보고서는 물론이고 전문가에게 리딩을 받으라고 꼼꼼히 주의 사항을 일러준다는 전제 하에 심리평가에 포함된 모든 자료(심리평가보고서, 심리검사 결과지 뿐 아니라 원 응답지까지)를 수검자 본인에게 모두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과 관련된 제 생각은 다음의 포스팅들을 참고하시고요.
* 심리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인가?
* 부모가 아동/청소년의 심리평가 원자료를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 피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겠다는데(혹은 갖겠다는데) 그걸 왜 막나
이 포스팅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내용은 해석 상담 시 수검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처럼 원자료를 활용하는 경우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한 원자료를 해석 상담 시 사용해도 됩니다. 그 두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자료의 내용이 결과 해석에 곧바로 연결되는 검사가 아니어야 함
2. 원자료 노출이 이후 검사(예; 재검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함
이 두 가지 조건을 적용할 때
해석 상담에서 원자료 노출을 피해야 하는 대표적인 검사는 HTP, KFD와 같은 그림 검사입니다. 결과 해석의 근거로 수검자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구조적 해석을 하게 되면 이후 수검자가 검사 결과의 해석 논리를 알게 되어 나중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거나(선무당 효과) 재검사 때 수검자의 반응에 영향을 주게 되어 이전 검사 결과와 비교 분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언어적인 자극을 사용하는 검사 중에서는 문장완성검사(SCT)가 대표적인 예인데 해석 상담 시 평가자는 각 문항의 의도를 수검자에게 알려주면 안 됩니다. 표준화된 문장완성검사가 별로 없다고 해도 몇 개의 버전으로 거의 정리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라 수검자의 나중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조건을 적용했을 때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검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대적으로 지능 검사의 결과표를 활용한 해석과 MMPI-2/A의 척도 해석, 로르샤하 검사의 구조적 요약을 활용한 해석 등은 괜찮습니다. 원자료의 내용이 결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수검자가 짐작할 수 없고 해석 근거가 되는 점수를 안다고 해도 이후 검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데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석 상담 시 해석 근거로 원자료를 사용할 때 그림 검사, 문장완성검사, 로르샤하 검사의 card pull을 활용한 해석 등은 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가끔 수검자가 요구할 수 있지만 이후 재검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저는 오염이 된다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해서 수검자에게 설명합니다) 안 된다고 설명하시면 대개는 이해합니다.
좀 더 안전하게 한다면 모든 심리검사의 원자료를 해석 상담 시 사용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결과 자료만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평가자가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원자료와 해석 결과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는 수검자도 분명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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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
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태그 -
ACT,
Clara E. Hill,
DBT,
EMDR,
Karen M O'Brien,
MBSR,
Nancy McWilliams,
Scott T. Meier,
supervisor,
Susan R. Davis,
김환,
내담자,
상담,
상담 면접의 기초,
상담의 기술,
상담의 디딤돌,
상담자,
수검자,
심리치료,
심리평가,
심리평가보고서,
이장호,
임상,
임상가,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치료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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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이나 상담 심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심리검사에 노출되기 전에 종합심리평가를 받아 보는 경험이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딱 한번의 검사가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심리학도는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을 것' 포스팅 참조)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누구나 한 차례 이상의 심리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등록 환자에게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심리평가를 받게 한다고 해 임상심리 분야에서 악명이 높은 메X스 신경정신과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재실시하게 되는 일은 꽤 자주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상담/심리치료의 사전-사후 비교를 위해 실시하는 것이죠. 사전 평가에서 나타난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증상의 완화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후 재평가 결과와 비교하기 위해 재실시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심리검사의 재실시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이는 검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재실시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건 '학습효과'입니다. 수검자가 이전에 검사를 실시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 것까지는 크게 상관없지만 검사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후 검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간격을 두고 실시해야 하는거죠. 이 때 기준으로 삼는 게 지능 검사입니다.
아직 K-WAIS-IV와 K-WISC-IV의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전 버젼을 기준으로 보면 언어성 영역의 소검사는 대략 1년, 동작성 영역의 소검사는 2년 동안 학습 효과가 나타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지능 검사의 경우 학습 효과 없이 안전하게 재실시하려면 2년의 간격은 필요하다는거죠.
로샤나 TAT처럼 시각적 자극을 사용하는 투사법 검사는 재실시 간격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검사입니다. 검사 자극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자신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기억하는 건 더더욱 그렇거든요. 하지만 문장완성검사처럼 언어적 자극을 사용하는 투사법 검사는 상대적으로 수검자의 기억에 좀 더 오래 남기 때문에 충분한 간격을 두지 않으면 나중에 실시할 검사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증상의 변화에 따른 재실시 간격입니다. TCI와 같은 기질/성격 검사는 재실시 간격이 커도 기질/성격 유형이 급격하게 바뀌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지만 MMPI-2/A와 같은 정서 상태 검사는 수검자의 정서 상태를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좀 더 자주 실시해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종합심리평가의 경우 실시 목적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소 2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실시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만약
증상 또는 심리적 문제 변화의 사전-사후 비교가 유일한 실시 목적이라면 MMPI-2(또는 거기에 로샤 검사를 추가하는 형태)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태그 -
K-WAIS-IV,
K-WISC-IV,
MMPI-2,
MMPI-A,
TAT,
TCI,
내담자,
로샤,
상담,
수검자,
심리검사,
심리치료,
심리평가,
임상,
재실시,
종합심리평가,
학습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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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완성검사는 반 투사 검사이기 때문에 각 문항의 의도가 수검자에게 읽힐 수 있다는 약점이 있고 이로 인해 응답 내용을 왜곡, 윤색, 조작할 수 있어서 결과 해석 시 평가자의 노하우가 많이 필요한 검사입니다.
따라서
'선별심리평가에서 문장완성검사(SCT)를 먼저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조화된 검사의 실시를 통해 교차 검증해야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문장완성검사는 약점도 많고 노하우도 많이 필요한 불완전한 검사이니 가능하면 실시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문장완성검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언어 장애나 학습 장애 가능성을 탐지할 때입니다. 쓰기 장애나 읽기 장애가 있어도 지능 검사 결과로는 변별이 쉽지 않지만 의외로 문장완성검사에서 눈에 띄일 정도의 두드러진 오류 양상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에 언어 장애나 학습 장애 가능성을 의심하는데 문장완성검사가 더 유용합니다. 물론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전문 검사의 추가 실시가 필요하지만요.
또한
지적 제한이 있는지를 찾아내는데도 문장완성검사는 유용합니다. 지능 검사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 있지만 지능 검사는 2시간 이상의 수행 시간 뿐 아니라 평가자, 수검자의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대표적인 heavy test이죠. 물론 정확한 지적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능 검사를 해야겠지만 그 전에 선별평가 과정에서 문장완성검사 결과를 통해 지적 제한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한 내용으로만 일관한다든가, 너무 쉬운 맞춤법이 틀린다든가 하는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죠.
그 밖에도 쉽지는 않지만
조현병을 변별하기 위해 문장완성검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현병 환자들은 사고 장애를 갖고 있고 내용 분석을 통해 사고 내용 상의 장애인 망상을 확인할 수도 있고 관계 사고나 연상의 이완, 우원증 등 사고 과정 상의 장애 양상을 문장완성검사를 통해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고 장애 양상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어야겠지요.
문장완성검사에는 제한점도 있지만 다른 검사 도구가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장점 또한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자주 실시해서 익숙해지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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