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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라고 하면 얼마 전에 소개드린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1956)'이 가장 유명하고 유명세를 떨치게 된 첫 책인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도 잘 알려져 있는데 비해 이 책은 상대적으로 명성이 덜 한 편입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 본인이 머리말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이 책은 '사랑의 기술'과 한 쌍을 이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에서는 인간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고 반대로 이 책에서는 인간의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다루고 있거든요. 그러한 능력의 대표적인 세 가지로 '죽음에 대한 사랑', '악성 나르시시즘', '공생적-근친상간적 고착'을 들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들을 묶어서 '쇠퇴의 증세군'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죽음에 대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 삶에 대한 사랑, 악성 나르시시즘에 반대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 공생적-근친상간적 고착에 반대되는 것으로는 독립성을 들고 이를 묶어서 '성장의 증세군'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모두 전작인 '사랑의 기술'에서 다룬 내용이지요.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이러한 '쇠퇴의 증세군'과 '성장의 증세군'을 모두 갖고 있고 결국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방향, 즉 삶의 방향이나 죽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시간 순서 상으로는 사랑의 기술이 먼저이고 이 책을 나중에 읽어야만 하겠지만 두 권 다 읽어본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책을 먼저 읽든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왕 읽을거라면 두 권 모두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삶의 방향과 죽음의 방향, 둘 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이고 결국은 둘 중 하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어떤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읽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닫기
*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학증은 모두 하나의 본질적인 충동, 곧 다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그 사람을 우리의 의지의 무력한 대상으로 삼고, 그의 신이 되고 마음대로 그를 다루려는 충동으로 귀속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힘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킬 방도도 없이 고통을 겪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지배력은 없기 때문이다.
* 죽음에 대한 사랑의 반대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자기 도취의 반대는 사랑이고, 근친상간적 공생의 반대는 독립성과 자유다. 이러한 세 가지 태도의 증세군을 나는 성장의 증세군이라고 부른다.
* 모든 새로운 종교의 사상 개념은 서로 다르더라도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양자 택일이 있다는 사상만은 공통된 것이다. 사람은 두 가능성, 곧 퇴행의 가능성과 전진의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원초적이고 병리적인 해결로 되돌아 가거나 또는 인간성을 향해 전진하고 인간성을 발달시키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서 실패하는 까닭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아직도 이성에 따를 만큼 자유로운 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점에, 그리고 결정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에야 비로소 선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악하거나 또는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살아가는 기술에 있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을 하고 언제 갈림길에 서서 결정을 해야 하는가를 몰랐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언제 삶이 그들에게 질문을 하며 아직도 그들이 양자택일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길을 걸을수록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는데, 그것은 흔히 첫번째로 잘못 들어선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정력과 시간을 낭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은 책이므로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국민도서관을 이용해주세요~
덧2. 문예출판사에서 2002년에 동일역자의 개정판을 내놓았기 때문에 커버가 바뀌었습니다. 혹시 구매하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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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대표작,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입니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처럼 '사랑의 기술 = 연애의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예전 학부 때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할 고전 100선 같은 걸 치기에 의해 섭렵하던 그 당시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제 기억 속의 이 책은 역시나 연애의 기술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이 책을 연애의 기술이라고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황당함과 낯뜨거움마저 느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은 어느 정도 조장된 면이 있습니다. 당장 이 책을 출판한 문예출판사가 띠지에 홍보 문구로 삽입한 내용마저도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젊은이들의 필독서'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당연히) 연애의 기술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문구가 2장. 사랑의 이론 첫 페이지에 나옵니다. 그건 바로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의미, 더 나아가서 삶의 의미, 실존의 의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즉 삶에 대한 책인 것이죠.
이 책의 머리말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위에서 말한 성질들이 희귀한 문화에서는 사랑하려는 능력을 획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목놓아 부르짖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능력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나 봅니다. ㅠ.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냐에 대한 답을 사랑에서, 그것도 심리학적 의미에서 찾는다는 관점에서 이 책을 저는 심리학 서적으로 분류했습니다. 무려 60년이나 된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통찰로 가득찬 책입니다. 굳이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저처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은 분들은 더더욱)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 내용 중에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은 에리히 프롬이 성서를 인용하면서 동성애를 양극화된 결합의 성취에 실패한 일탈로 간주하는 대목 뿐입니다. 에리히 프롬이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적잖이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죠.
닫기
* 사실상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 나는 전에, 프로이트가 성욕을 사랑과 합일의 요구가 나타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 - 혹은 승화 - 만을 보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잘못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의 생리학적 유물론과 일치하는 바, 그는 성적 본능을 몸속에 화학적으로 생긴, 고통스럽게 해방을 갈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본다. 성욕의 목적은 이 고통스러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적 만족은 이러한 제거에 성공하는 것이다.
*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나의 비판은 그가 성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을 충분히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을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자아도취적이고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여자는 어린아이가 연약할 때에만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성공할 수 있다.
* 분리의 체험과, 여기서 생기는 분리 상태의 불안을 합일의 경험에 의해 극복하려는 욕구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욕구의 기반이다.
*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자는 실망을 견디고 퇴보를 무릅쓰고 끈기를 보일 용기가 필요하다
*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타인을 욕망하고 원하고 집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랑은 아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은 책이므로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국민도서관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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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Erich Fromm의 이름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사랑의 기술'은 읽어본 분들도 계실 테고.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Erich Fromm은 인간의 생존 양식을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 등'의 소유에 집착하는 (소유양식)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존재양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Erich Fromm은 이 책을 통해 산업사회가 가져오리라 굳건히 믿었던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소유양식에 의해 가로막히고 결과적으로 자연의 파괴, 개인의 소외를 가져오게 된 전모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존재양식을 따르라고 강권하지도 않습니다. 선택은 읽는이의 몫이므로...
작년에 <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중 인문 부분에 당당히 들어가기도 한 책입니다. Erich Fromm이 말년에 저술한 이 책은 놀랍게도 30년 전(1976년)에 쓰인 것임에도 지금 세상의 모습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인문사회과학의 서적들은 너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특별히 추천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덧1. 기린총서에서 나온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어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렵지만 링크된 중고 인터넷 책방에서는 3천 원이면 구하실 수 있습니다.
덧2. 이 책을 읽고 Karl Marx의 자본론을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언제 다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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