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에 굉장히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상담 supervision을 받으러 가면 supervisor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formulation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한 두 명의 supervisor만 유독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뭔가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그렇게 많은걸까요? 숫자 자체는 적다고 해도 상담 장면이라는 특성 상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정말 많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다른 성격장애와 비교하여 자기애성 성격장애만 유독 많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유병률만 봐도 그렇죠) 무엇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 상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다른 성격장애(특히 C군)에 비해 오히려 적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제 경험만 따져봐도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왜 많은 상담 supervisor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제가 이해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 제 TCI 강의를 들으셨거나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아본 선생님들이라면 한번쯤 들으셨을 내용인데 제가 상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TCI 기질 유형이 뭐라고 말씀드렸죠?
바로 고립된-겁많은(MHL)과 강박성(LHL) 기질 유형입니다. 둘 다 위험회피 기질이 높고 사회적민감성 기질이 낮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성격장애 중에서는 가장 먼저 강박성 성격장애를 공부해야 하고, 또 반드시 공부하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상담 현장에서 정말 자주 보게 되는 성격장애 내담자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이야기를 하는 상담 supervisor들이 강박성 성격장애를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착각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B군이고 강박성 성격장애는 C군이니 많이 다른데 왜 이런 착각이 일어나는걸까요? 그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강박성 성격장애 내담자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대개 자율성, 연대감(특히 자율성)이 낮아 미성숙한(LLM), 침울한(LLL) 성격 유형으로 분류되는 분들이 특히 많기 때문입니다. LLM, LLL 유형의 특징은 내면 아이 성숙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 중심성(egocentrism)이 살아있고 이러한 자기 중심성이 대인 관계 맥락에서 노출될 경우 나르시시즘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상담 supervisor의 상당수가 TCI를 아예 모르거나 사용하는 분들이 아주 적은 것을 감안하면 강박성 성격장애를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 supervision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의심해보라는 comment를 들은 경우 반드시 TCI를 실시하여 오히려 강박성 성격장애가 아닌지를 확인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만약 강박성 성격장애가 맞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개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항상 TCI를 사용하는 임상가가 아니라면 TCI 추가 실시를 고려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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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장애에 대한 책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장 전문가를 위한 전문 서적과 일반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볼거리 위주로 가볍게 쓴 책이죠.
이 책은 현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들이 너무 극적이다보니 그만큼 읽는 재미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만큼 유용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인을 위한 책이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반인들이 편하게 보기에는 전문적인 내용이 너무 많거든요.
이 책의 저자인 Yudofsky 박사가 사실 특수분야(?) 중 하나인 신경정신의학(Neuropsychiatry) 분야의 임상가이기 때문에 과연 이 분이 성격장애 치료의 대가일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습니다. 실제로 책 내용 중에 성격 장애의 유전학적, 뇌영상 연구 결과 소개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거든요. 494p에는 '분열형 성격 장애의 결정적 요인 중에는 뇌와 관련된 것이 있을 것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라는 단정적인 말까지 나오죠.
Clonninger 교수의 TCI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뭔가 시사점을 많이 던져줄 것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게 깊이 고민한 것 같지는 않고 성격 장애를 이해하는 하나의 tool 정도로 가볍게 보고 만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또한 서두에 주변 사람들이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는 성격 장애가 의심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알려줄 것처럼 소개했지만 실상 대처 방법은 그저 확인했으면 피하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이 책에는 연극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편집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중독성 성격장애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분들은 일반인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가도 아니고 정신병리학 기본 수업을 들은 심리학과 대학원생 정도입니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중독성 성격 장애(DSM으로는 진단되지 않는 성격장애)에 대한 부분은 제게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Addiction-prone Personality'에 대한 논의에서 별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행위 중독보다는 약물 중독에 대한 예만 다루고 있어 제 입장에서는 좋다 말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장 임상가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 없는 책이고 수련을 앞두고 있는 대학원 졸업반 학생이라면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쉬엄쉬엄 한번 정도 읽으면 좋습니다.
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준 부분도 별로 없어서 '월덴지기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도 작성하지 못했네요;;;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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